◈큰 믿음은.. 큰 시련을 통과해서 생긴다. 히11:6 <08.01.01. 인터넷 설교 정리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했다. 히11:6
그만큼 믿음은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큰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모세가 큰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은, 10가지 재앙을 거쳤기 때문이다.
바로와 영적 전쟁을 10번이나 거쳤다.(10재앙)
한 번 한 번이, 결코 쉽지 않은 전쟁이었다.
그런 시련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모세는 백전노장의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갔다.
그런 시련이 없었더라면,
아마 홍해 앞에서 가로막혔을 때, 주저앉아 통곡하고 원망하다가 망했을 것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양칠 때부터 큰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은 아니었다.
남다른 격심한 고난을 겪으면서... 그는 점점 큰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어갔다.
▲큰 믿음의 사람, 큰 믿음의 교회가 되려면, 시련과 풍랑 속을 통과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시험과 시련을 끔찍이도 싫어한다.
대부분 평탄한 삶을 살기 원한다.
그런데 창22장,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바친 사건에서 보듯이,
큰 믿음은, 큰 시련을 통과한 다음에 비로소 생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사회에 빛을 발하는 강력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큰 시험과 난관과 도전을 이기고 돌파해 나갈 때, 비로소 그렇게 된다.
▲그렇다면 큰 시험(시련)이란 무엇인가?
이렇게도 볼 수 있다.
*‘작은 시험’은, 원인과 결과를 자기가 아는 시험이다.
즉, 자기가 불순종해서 얻어맞고 돌아오는 시험은... ‘작은 시험’이다.
탕자가 불순종하고 집나갔다가,
쥐엄 열매도 못 얻어먹는 시험을 통해서 돌아오는 것은... ‘작은 시험’이다.
이렇게 ‘작은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작은 믿음’만 생긴다.
*반면에 ‘큰 시험’은 납득이 되지 않고, 해석이 안 되는 시험이다.
백세에 낳은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것은, 아들을 쪼개서 태워드리라는 것은
-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시험이다.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철떡 같이 약속하셔 놓고는
이게 도대체 웬 마른하늘에 날벼락인가! 아무리 궁리를 해도,
이삭을 바치는 데 대한 합당한 논리적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욥기, 시편 등 지혜문학의 중요 메시지는
인생은 인과율, 권선징악 등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심오한 깊이가 있다는 것이다.
도저히 인간의 머리로 해석, 납득되지 않는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다루고 있다.
그런 ‘해석 안 되는 큰 시련’을 당하는 중에,
큰 믿음의 거장이 된 사람들이 탄생되었다.
그래서 욥, 다윗, 아굴, 솔로몬, 아삽, 고라자손, 모세 등의
깊은 고뇌에서 우러나오는 신앙고백을 노래하고 있다.
▲창세기를 읽었던 광야 출애굽 백성들
창세기는 모세가 기록했고, 가장 먼저 읽었던 독자는 출애굽 백성들이었다.
그들이 광야를 지나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이전에,
자기들의 여정과 역사가, 자기들 머리로 다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가나안에 바로 보내지 않으시고, 광야에서 돌리시는지,
왜 광야에서 여러 시험과 환난이 많은지...
왜 1주일이면 가는 길을, 40년이나 방황하도록 하시는지...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쉽게 해석, 납득할 수 없었다.
이때 그들은 창세기를 듣고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사건을 듣고, 묵상했다.
그리고 참 믿음이란, 해석이 안 되어도, 믿고 순종하는 것임을... 결단했을 것이다.
▲지금은 해석이 안 되도, 시간이 지나면 해석 된다.
금년 한 해도, 여러분 각자의 삶 속에 (지금 신년 설교임)
해석이 안 되고, 이해도 안 되고, 납득도 안 되는 많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예를 들면, 새벽기도 계속 나와서 부르짖는 자매는 결혼이 안 되는데,
어쩌다가 새벽기도 딱 한 번 나와서 부르짖은 자매는
킹카를 만나서 결혼했다는 결과를 볼 때... 쉽게 납득이 되는가?
과연 ‘공평하신 하나님’이신가?
물론 지금은 쉽게 해석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묘한 것은, 10년이 지나고, 20년, 길면 30년이 지나서 돌이켜 보면
거의 대부분 다 해석이 된다.
지금 이해하지 못한 하나님의 섭리를, 왜 그 때 결혼을 막으셨는지... 다 해석된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해 안 되어도, 순종하는 일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듯이 순종할 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각자가 ‘큰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현실을 극복한 아브라함
지금 우리는 ‘전지全知적 작가의 시각’으로 창세기 22장을 보고 있다.
결론을 다 알고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못 바칠 이유가 전혀 없다.
다 이해된다. 이삭이 결국 안 죽을 것도 알고,
아브라함이 크게 축복받을 것도 다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4천 년 전 당시 아브라함은 ‘전지적 작가의 시각’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에게 있는 것은 당연히 현실적 시각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큰 믿음’으로 그 딜레마를 극복해 내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큰 믿음의 사람으로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켰다.
▲나를 믿고 따라와 줄래?
목회를 하면서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내가 꼭 이해하고, 내가 꼭 납득해야 순종하고 따르겠다’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내가 아무리 옳은 길을 제시해 줘도,
사실은 자기가 들을(듣고 이해하고 순종할) 능력(믿음)이 없는 청년들이 많다.
그 때 나는 이렇게 대화를 풀어 간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 아니?
그렇다면, 정말 너를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무조건 믿고 따라줄 수 없겠니?”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절대로 다 이해 못 한다.
‘네가 네 수준으로 이해할 수 없더라도, 일단 좀 믿고 따라와 보지 않으련?’
이때 아브라함은 “아멘!” 하고 믿고 따라갔다는 것이다.
인생은 다 알고 가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다 믿고 가는 것이다.
말씀도 자세히 읽어 보면, 이해 안 되는 부분도 많다.
그러나 ‘큰 믿음의 사람’은, 그냥 믿고 나아간다.
▲‘큰 믿음의 사람’은 자아를 내려놓는다.
내 뜻을 내려놓는 것이다.
내 아집을 버리는 것이다.
이삭이 얼마나 귀중한 아들인가?
믿음이란 - 그 귀한 것을 기꺼이 ‘내려놓고’ 희생할 줄 아는 것이다.
성화되는 삶이란 - 점점 포기하는 삶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것이 자아(에고)이다. 자아를 내려놓아야 한다.
‘내려놓는다’는 말은 - ‘자아’를 버린다는 뜻이다.
자기 뜻, 자기 고집, 자기 집착을 버린다는 뜻이다.
부모가 여러분을 내 팽개쳤다면... 부모를 내려놓으시라.
자식이 여러분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자식을 내려놓으시라.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면.. 나중에 끔찍한 자식 된다.)
내 뜻대로 안 되는 모든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집착하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아브라함처럼 큰 믿음의 사람이 된다.
▲열등감, 자기비하... 아직 자아를 내려놓지 못한 것
혹자는 자기 비천한 학력, 경제력, 가문 등 온갖 약점 때문에
늘 자신감 없이 자기를 비하하며 살아간다. 자기가 열등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자기비하’이다.
‘자기비하’ 역시... 자기에게 집중focus하니까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기에게 집중하지 말고, 말씀의 가르침대로, 이웃에게 집중하시라!
그리스도께 집중하게 되면, 자기가 아니라 이웃에게 집중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자기에게 집중하는 자아를 내려놓으면... 열등감, 자기비하도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