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sFqBo_RXbtk
◈마리아의 끈기 요20:1∼18 1997.08.31.이재철 목사 설교 스크랩
◑마리아의 끈기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하여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의 문이 열린 채, 마땅히 그 속에 있어야 할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는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단숨에 달려가 제자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요20:2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서 없어 졌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생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대로
죽음을 깨트리고 부활하신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를 들은 사도들의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1. 대부분 사도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 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 눅24:11
사도들은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듣고 주님의 부활을 깨달아 기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말을 허탄케 여기며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을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 생시에 그토록 강조하셨던 부활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티끌만큼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수없이 듣긴 들었으되, 그 말씀을 머금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말씀을 다 흘려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황량한 사막과 같은 심령을 지니고 있던 그들은,
진실을 말하는 막달라 마리아를 허탄한 거짓말쟁이로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심령은 진실을 담을 수 없는 밑 빠진 독이었던 것입니다.
▲2. 그러나 제자들 중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막달라 마리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즉시 일어나 주님의 무덤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과연 무덤 속에는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고,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세마포와 수건만 잘 정리되어 개어져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말한 대로였습니다.
두 제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의 말이 허탄한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이었음을,
그 현장에서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뛰어 너머,
‘사흘 후에 부활할 것’이라던 주님의 말씀을 믿어야 할 차례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찾아야 할 때였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증언해야 할 때였습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바로 부활의 현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깨닫지) 못하더라.” 요20:9
그들은 막달라 마리아 다음으로 부활의 현장에 들어간
두 번째 증인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현장에서조차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생각지도, 깨닫지도,
믿으려 하지도, 없어진 주님을 찾아 볼 엄두를 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습니까?
안타깝게도 본문 10절이 다음과 같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 가니라." 요20:10
누가복음은 이때의 상황을 더욱 상세하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푸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눅 24:12
‘기이히 여겼다’는 것은 ‘이상하게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긴 했지만,
그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희한한 일이라 여기면서
그만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다른 사도들보다 좀 더 나았을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무덤까지 달려오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예수님의 부활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그만 집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참 생명이 없는 사람들에게, 오늘 이 세상은, 단지 ‘생노병사’만 있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자연인은 오직 늙음과 병듦과 죽음이 있을 뿐이기에,
그 심령 속에 생명을 머금지 못한 인간들은,
지금 살아있다 하더라도, 실은 '미래의 무덤'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도 많은 자연인들은, 부활을 사실적으로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실에만 집착하면서 목숨을 걸고 삽니다.
그곳에 영원한 행복이 있는 양 착각하면서 말입니다.
▲3. 막달라 마리아의 생명에서 오는 끈기
안식 후 첫날 이른 새벽,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갔다가,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한 자는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제자들에게 뛰어가 그 사실을 알린 자도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역시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자기 집으로 되돌아감이 마땅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도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판에,
그녀에게 그 순간 달리 찾아 갈만한 곳이 어디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원문 11절은 ‘그러나’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제자들과는 달리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음을 강조하기 위한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디로 갔습니까?
"(그러나) 마리아가 무덤 밖에서 울고 있더니" 요20:11a *헬 De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무덤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곳은 막달라 마리아의 집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꺼려하는 묘지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시신이 사라져 버렸음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의 무덤이라도, 하루에 연거푸 두 번을 찾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막달라 마리아는 비어 있는 주님의 무덤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곳에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왜 막달라 마리아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줄 알지 못했음에도
그 빈 무덤을 다시 찾아갔습니까?
왜 막달라 마리아는 그냥 집으로 되돌아 가버린 제자들과는 달리
홀로 주님의 무덤 앞에서 서럽게 울어야만 했습니까?
주님 생시에 주님께로부터 들었던 생명의 말씀들이 고스란히
그녀의 심령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 생명이, 그 생명의 능력이, 그 생명의 힘이 그녀로 하여금
다시 주님의 무덤을 찾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게 했습니다.
◑적 용
▲1. 무덤에서 생명의 예수를 발견하다
무덤이란 무엇입니까? 죽음의 현장입니다. 사망의 확인장입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가 생명을 머금은 심령을 지니고
다시 주님의 무덤으로 돌아갔을 때, 그곳은 더 이상 무덤이 아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거기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친히 뵙고
주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 곳은 죽음이 묻힌 무덤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진원지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삶의 현장이, 아무 생명이 없는 무덤과 같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처럼 끈기 있게 예수님의 생명을 기대한다면,
무덤이 변하여, 생명의 주님의 부활의 임재가 충만한 자리가 될 것입니다.
▲2. 생명의 예수는 끈기로 만난다.
제자들은 아예 포기했고,
베드로와 요한은 가까이 왔으나 포기했고,
막달라 마리아만이 끝까지 인내하며, 버텼습니다.
한 아기가 중병에 결려 고통 받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포기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그의 부모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 같이’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시103:13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이사야66:13
막달라 마리아는 그런 사랑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랑을 마음에 품고서, 엉엉 울며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그래서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듯한 그런 사랑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요20:16
대사도 베드로와 요한마저 받지 못했던 사랑을 말입니다.
끈기 있게 매달려, ‘사랑의 주님’의 그 사랑을
마리아처럼 반드시 체험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결코 당신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당신이 주님을 버릴지 몰라도, 그 순간에도, 주님은 결코 당신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런 사랑을 깨닫는 사람만이... 마리아처럼,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97.08.31.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편집
'분류 없음 > 2000~2001 그 이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58 내가 모르는 순종의 역사 (0) | 2008.03.08 |
---|---|
1150 금식 기도 (0) | 2008.03.04 |
병 속에 담긴 말씀 (0) | 2008.02.09 |
1096 추수할 일꾼을 찾습니다 (0) | 2008.01.31 |
1070 기독교 가족관 (0) | 2008.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