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광명한 새벽별 이라 계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계22:16
◑역사의 희망의 빛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마지막 자기 계시는
“나는…광명한 새벽 별이라”는 선언입니다.
“새벽 별”은 어둠을 추방하는 희망의 상징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어둠은 두 가지 면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①박해와 고난의 어둠
주께서는 요한과 박해 받고 있는 초대 교회를 향해 자신을 계시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광명한 새벽 별이라!”
이 말씀은 박해와 고난의 어둠 속에 있었던 1세기의 신자들에게
놀라운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②역사의 어둠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이 세상과 역사 속의 종말론적인 상황은
문자 그대로 하나의 어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점점 깊어가는 죄악의 밤!
그 역사 속의 죄악의 밤과 그 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클로즈 업 되어,
한 점(재림)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둠을 밝힐 빛은 -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런 모습들이 성경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 요한계시록 입니다. 계시록은 역사의 어두운 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이 밤을 향해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세지말末世之末을 앞둔 이 마지막 고비를 외줄을 타듯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어두워져 가는 역사 속에서도 희망의 새벽 별이 빛나고 있습니다.
그 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께서는 성경 최후의 계시를 닫으면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나는 광명한 새벽 별이라”
▲세상의 희망 ‘새벽 별’
<새벽 별>이라는 표현은 성경 계시에 익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별로 낯설지 않는 말입니다.
이 표현은 두아디라 교회를 향한 메시지에도 이미 등장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계2:28
깊은 죄악에 빠진 어두운 도성 두아디라!
두아디라 도시는 사단의 깊은 어둠이 지배하고 있었던 곳입니다.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계2:24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계2:28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사회의 어둠, 문화의 어둠, 역사의 어둠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그 세대의 어둠을 이기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주님께서 주셨던 약속 중의 하나가 이 말씀-새벽 별-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승리는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가 승리의 원천이십니다.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은 주님 자신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되었던 요한계시록의 계시는
나는 광명한 새벽 별이라는 계22:16
주님의 말씀으로 그 마지막 장章을 닫습니다.
▲‘다윗의 뿌리’ - 초림, ‘광명한 새벽 별’ - 재림
그런데 여기에는 새벽 별만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먼저 나오는 것은 <다윗의 뿌리>라는 말씀입니다.
메시야는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오실 것이라고 예언되었는데,
그리스도께서는 예언된 그대로 다윗의 뿌리로 오셨습니다.
아마도 이 <다윗의 뿌리>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초림을 더욱 강조한 표현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윗의 뿌리>로 오셔서 구세주 사역을 시작하셨을 뿐만 아니라,
<광명한 새벽 별>이셨던 것입니다.
‘새벽’이라는 뜻이 -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신 것처럼 1:8, 21:6, 22:13
‘다윗의 뿌리’(구속역사의 알파, 시작)요 ‘광명한 새벽별’(오메가, 마침)이라 하십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역사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시작하신 분이 계시고, 그 분이 또한 완성하실 것입니다.
‘완성한다. 마친다’는 말 자체가 - 무질서가 아니라 질서, 혼돈이 아니라 마무리를 의미합니다.
◑개인의 구원, 복 받은 사람은... ‘계속’ 이루어간다.
예수님이 역사와 온 세상을 구속하셔도, 내가 구원 못 받으면 아무 의미 없습니다.
계시록에는 역사와 세상의 구원과 아울러, 내 개인의 구원 문제도 교훈해 주는데요...
▲요한계시록은 재앙과 아울러 ‘복’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은 무서운 재앙의 메시지만 담고 있지 않고, 복이 담긴 책입니다.
계시록은 “복이 있나니 1:3”라는 말씀으로 시작해서,
마지막도 복으로 마무리됩니다.22:14
이렇듯 요한계시록에는 ‘복’이 전반적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숫자는“일곱”인데, 완전수입니다.
복이 7번이나 기록된 것은, 이는 하나님의 완전한 복을 상징합니다.
①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1:3
②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14:13
③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16:15
④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19:9
⑤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20:6
⑥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22:7
⑦자기 두루마기(옷)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22:14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바라던 "복"하고는 조금 다른 차원이네요)
▲계속 해야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사함 받고,
소망을 가지고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두루마기 빠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⑦“두루마기를 빤다”고 하는 것은, 한 번만 빤다는 말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빠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두루마기를(자기 옷을 계속해서)빠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22:14
성경에 “너희가 옛 사람을 벗으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엡4:22
이것도 계속해서 벗으라는 말입니다.
“새 사람을 입으라”도 계속해서 입으라는 말입니다. 엡4:24
성화의 과정은 단회적(單回的) 사건이 아닙니다.
구원은 단 한 번에 이루어지지만, 우리가 거룩함을 이루어 나가는 것은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거룩함을 닮아가는 것은,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말씀을 통해서 그분과 계속 교제할 때 가능합니다.
때로는 실패하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우리 자신을 계속하여 빠는 것입니다.
이런 성화의 과정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완성됩니다.
그때 우리는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수 있는
당당한 권세를 얻습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기다리는 사람만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그날이 구원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계22:20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정리
[주제별 분류] 종말과 내세 http://blog.daum.net/bible3/14218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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