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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가면 죄인이 더 완악해 진다 / Lucado

LNCK 2008. 3. 21. 20:42

 

◈지옥가면 죄인이 더 완악해 진다        계16:9             Max Lucado

 

*이 글에서 '지옥'은 장차 미래에 있을 지옥도 되겠지만

'현재 지옥, 현실 지옥'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합당한 듯 합니다. / 편.

 

 

 

▲지옥에 가면 하나님을 더 저주한다.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죄인들을 지옥에 보내실 수 있나?

하나님이 죄인을 등 떠밀어 지옥에 보내시는 것은 결코 아니다.

죄인들이 자기 발로 걸어서 내려간다.

 

거기에 한 번 가기만 하면, 빠져나오기 원치 않는다. (설명 나옴)

저주받은 자들의 어리석고 완악한 마음은, 거기서도 결코 부드러워지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은 결코 변화되지 않고, 거기서도 하나님을 저주한다.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계16:9

 

 

사람들이 지옥에 가면, 거기서라도 애통하고 회개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그들은 지옥에서 더 하나님을 모독할 것이라고 성경은 증거 한다.↖

 

(왜 그럴까? 그만큼 지옥의 고통이 극심하다는 뜻도 되겠다.

고통이 크면 클수록, 사람들은 입에서 욕과 험담이 나온다.

그러나 다른 이유도 있는데...↓)

 

▲왜 부자는 지옥에서 물 한 모금만 요청했을까?

눅16장에 나오는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부자를 기억하시는가?

그는 지옥에서 눈을 들어 천국을 보았지만,

자기를 천국에 보내달라고 거기서 애원하지 않았다.

 

대신에 천국에 있는 나사로를 자기에게 보내달라고만 했다.

그는 왜 자기를 나사로 있는 천국에 보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을까?

 

그 부자는 자기가 심이 목이 탄다고만 말했다.

자기가 지옥에 떨어진 것이 <부당하다고> 전혀 하소연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심사해 달라고 애원하지 않았다.

다만 물 한 모금 달라고만 요청했다.

그가 만약 자기 영혼을 위한 ‘생수’를 달라고 요청했다면... 어땠을까?

 

*인간이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위에서 주셔야 가능하다.

지옥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전혀 미치지 않는 곳이므로,

그곳에 지내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모할 마음도 전혀 생기지 않는다.

위의 부자를 보시라!

 

모든 무릎이 하나님 앞에 절하고,

모든 입이 주님을 고백할지라도 롬14:11

지옥에서 마음이 딱딱하게 굳은 사람은, 너무 완고해서

절대 주님께 경배하지 않는다.

 

(캄캄한 지하 동굴에 사는 심해어深海魚가 시력을 상실하는 것처럼

캄캄한 지옥에 사는 자들은... 경외심, 사모함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

 

지옥에는 무신론자가 아무도 없다. 빌2:10~11

그들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유신론자들이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을 애타게 사모하고 찾지 않는, 완악한 심령의 소유자들이다.

지상에서 그랬지만, 지옥에서는 더 심해질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 인자, 은혜, 사랑이 전혀 비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 부자처럼, 신앙심이 완전히 마비되고, 물만 찾는 것이다.

 

**왜 부자가 재심을 요청하지 않고, 그저 물 한모금만 달라고 했을까?

왜 부자가 자기를 천국에 보내달라고, 아브라함에게 간절히 사정하지 않았을까?

 

다른 각도로 보면,

그것은 절대 불가능 하다는 것을 그가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자는, 자기 생각에 성취 가능할만한 부탁을 요청했다.

그것은 나사로를 통해 물 한 모금 얻어 마시며 타는 갈증을 잠시 푸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눅16:26

 

▲하나님은 결코 너무하시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지옥의 형벌이 과연 공의로운가?’ 의문을 품는다.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데, 동시에 아무리 공의의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영원한 지옥 형벌’은 너무 과도한 판결이 아니냐고 묻는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더라도, ‘영원한’ 고통의 형벌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사람이 감히 누구이기에 전능하신 하나님께 도전하겠는가!

지옥에 간 자들이 얼마나 수없이 복음을 거절했으며,

완악한 마음으로 전도자들을 비웃고 욕한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다 아신다.    

 

하나님이 너무하시다고?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지옥의 출입구에 <출입금지, 폴리스라인>같은 테이프를

수없이 쳐 놓았으며,

수많은 경고자들을 보내서, 저기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경고했으며.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엄청 많은 숫자의 붉은 깃발(십자가, 교회)을

꽂아 놓으셨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지옥의 출입구 계단을 태연히 밟고 내려간다.

왜냐하면 자기들 눈을 완전히 감아버리고, 그래서 그 경고표시 하나 못 보고,

자기들 귀를 완전히 닫아버리고, 그래서 그 경고음성 다 무시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역사적으로 명백한 대 사건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무시했다.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시며 울부짖고 절규하시는 그 음성을

그것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이 고난주간에도

그들은 여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듣지 않으려고 자기 양쪽 귀를 꽉 막아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발로 내려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지옥에 대해 가장 깜짝 놀랄만한 사실은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 대신 내려가셨으므로,

이제 내가 거기에 내려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 종말, 내세, 심판 

 

 

◑Every Knee Shall Bow   by Max Lucado

 

(아래 영문 위에서 대충 번역, 편집했음)

 

“. . .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 . .”

How could a loving God send sinners to hell? He doesn’t. They volunteer.

Once there, they don’t want to leave. The hearts of damned fools never soften; their minds never change. “Men were scorched with great heat, and they blasphemed the name of God who has power over these plagues; and they did not repent and give Him glory” (Rev. 16:9 NKJV). Contrary to the idea that hell prompts remorse, it doesn’t. It intensifies blasphemy.

Remember the rich man in torment? He could see heaven but didn’t request a transfer. He wanted Lazarus to descend to him. Why not ask if he could join Lazarus? The rich man complained of thirst, not of injustice. He wanted water for the body, not water for the soul. Even the longing for God is a gift from God, and where there is no more of God’s goodness, there is no longing for him. Though every knee shall bow before God and every tongue confess his preeminence (Rom. 14:11), the hard-hearted will do so stubbornly and without worship. There will be no atheists in hell (Phil. 2:10–11), but there will be no God-seekers either.

But still we wonder, is the punishment fair? Such a penalty seems inconsistent with a God of love—overkill. A sinner’s rebellion doesn’t warrant an eternity of suffering, does it? Isn’t God overreacting?

Who are we to challenge God? only he knows the full story, the number of invitations the stubborn-hearted have refused and the slander they’ve spewed.

Accuse God of unfairness? He has wrapped caution tape on hell’s porch and posted a million and one (엄청 많은) red flags outside the entrance. To descend its stairs, you’d have to cover your ears, blindfold your eyes, and, most of all, ignore the epic sacrifice of history: Christ, in God’s hell on humanity’s cross, crying out to the blackened sky, “My God, my God, why have you forsaken me?” (Matt. 27:46). The supreme surprise of hell is this: Christ went there so you won’t have 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