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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8 12제자를 따로 세우신 이유

LNCK 2008. 3. 21. 09:26
◈12제자를 따로 세우신 이유            막2:1~28


저는 성경말씀을 읽을 때마다, 이해가 안 되고 의문이 생기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시일이 지나서 어느 날, 그 의문이 풀리는 순간,

하나님이 큰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을 종종 경험했다.


◑신약 성경을 읽다보면, 이런 의문을 갖게 된다.


①예수님께서는 왜 제자를 12명만 택하셨을까?

이왕에 좀 더 많은 사람을 택해서 훈련하셨으면, 어쩌면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12제자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한다.

12명만 뽑으신 것은, 예수님은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 12지파를 회복시키기 원하신다는 의도를 볼 수 있다.

 

②그렇게 생각해 보니까, 12제자들을 택하신 것 자체가 또 의문이 들었다.

이미 당시 이스라엘에는, 2천년을 내려오는 전통적인 신앙공동체가 있었다.

아브라함-모세-다윗-히스기야-포로귀환으로 이어지는 신앙공동체가 존재했다.

제사장 그룹도 있었고, (외형적으로) 신앙이 독실하다는 바리새인들도 있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라면,

지난 2천년 동안 내려온 그 전통적 신앙공동체와 손잡고 일을 하시는 것이

어쩌면 더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12제자 따로 뽑으실 필요 없이 말이다.


그 신앙공동체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정통성을 지닌 후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율법의 전통을 좇아, 성전 중심의 예배가 내려오고 있었고,

누구보다도 성경 지식도 많고, 율법 준수에도 열심히 있던 공동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버려두시고, 새로 12명을 택하신 이유는 과연 뭔가?

왜 예수님은, 전통적인 신앙공동체를 외면하시고,

12명을 따로 뽑으셔서, 새로 시작하셔야 하셨는가?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다음과 같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 전통적 신앙공동체는

예수님의 모든 사역에 사사건건 반대하고, 걸고 넘어졌다.

그러니까 도저히 그들과 함께 동역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죄 사하는 권세에 대한 거부감   막2:1~12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집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모여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그래서 네 사람이 (아마 흙으로 된)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를 달아 내렸다.

그 때 예수님은 감동하셔서 고쳐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 말씀을 듣는 순간에, 서기관들이 마음이 불편했다.

‘도대체 저가 누구이기에, 죄를 사한다는 것인가

하나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사하신단 말인가!’


예수께서 그들의 수군거림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과

네 죄가 사함을 받았으니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더 쉽겠느냐?”


그 신앙공동체는, 예수님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수군 거렸다.

예수님 역시, 그들에게 호감을 가지실 수 없었을 것이다.


▲죄인들과 함께 교제하시는 것에 대한 거부감   막2:14~17

하루는 예수님이 세리 레위의 집에 식사하러 가셨다.

레위는 당시 로마 식민지 정권 아래서 세무공무원이었다.


당시 사람들이 제일 싫어했던 부류 중에 ‘세리’가 있었다.

(일제 때 일경의 앞잡이로 독립군을 탄압했던 자들과 비슷한 이미지로 보면 된다.} 


그의 집에는 여러 세리들과 죄인들이 앉아 있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제자들에게 비방의 말을 했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이 들으시라고 한 말들 이었다.↙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가? 막2:16


풀어서 설명하면 이런 내용일 것이다.

“너희 선생님은 애국심도 없느냐?”

“비난받아 마땅한 자들과 함께 같이 식사하는 것은... 유유상종 아닌가?”

이렇게 예수님을, 매국노와 사회적 죄인으로 매도하는 분위기로 몰아갔다.


물론 예수님은 그들의 비난을 들으셨다. 그리고 저희에게 이렇게 응대하셨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아마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의인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죄인과 같이 있으니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자기들이 죄인이라고 생각했으면, 동병상련 비슷한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기들만 의롭다고 생각하고, 자기들만 구원받았다고 착각했다.

그리고 자기들 무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사람들은 죄인 취급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회개하고 천국에 갈 것이고,

자기가 의롭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나중에야 그 착각을 비로소 깨달을 것이다.

자기가 죄인이라고 진짜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죄인을 보면 긍휼히 여긴다.


금식논쟁   막2:18~20

유대인들에게, 금식, 기도, 구제는 경건의 3가지 표시였다.

유대교의 이단이라 할 수 있는 이슬람교도, 이런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요한의 제자들도 금식하고, 바리새인들도 금식하는데,

너희들은 왜 금식하지 않느냐?  불경건한 사람들이구만!”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금식할 수 있느냐?

지금은 기쁜 때이지, 금식할 때가 아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기는 날이 이르면, 금식할 것이다.

너희들은 번번이 내가 하는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는 구나!”


안식일 논쟁  막2:23~28

안식일에 제자들이 길가의 밀밭의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까서 먹었다.

율법에는 없지만, 율법해석서인 탈무드, 미쉬나에 보면

안식일에 밀을 까서 먹는 것은... 추수에 해당, 안식일을 범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저자들을 보라. 안식일을 어기고, 추수를 하고 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지 않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느니라.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사사건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트집 잡았다.

물론 예수님도 그들이 마음에 드실 리 없었을 것이다.


요한은 한 마디로 요약해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  요1:11


바울 사도는 이런 현상을 이런 비유로 설명했다.

<참 감람나무(유대인)가 찍히고 돌 감람나무(이방인)인 너희가 접붙임을 받았다.>

참 감람나무가 예수님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렇다.

왜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했나?

그 가르침이 내 생각, 내 기호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제까지 익숙했던 내 종교적 전통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2명의 제자공동체를 따로 세우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


▲새 술은 새 부대에

그들 전통적 유대인들은 사사건건 예수님에 대해 트집 잡고 나왔다.

할 수 없이 예수님은 따로 12명을 세우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결코 예수님과 함께 동역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막2장 한 가운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막2:21~22


그 전통적 신앙공동체의 위상은 사실 대단한 것이었다.

조상 대대로 아브라함, 다윗, 사무엘, 다니엘 그 외 수많은 선지자들 

그렇게 화려한 성경적 전통을 가진 공동체였지만,

자기 전통만 믿고 예수님의 진리를 거부했을 때.., 버림을 받고 말았다.


▲바울은 스스로 조심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한 다음에

도리어 내가 버림을 당할 까 두렵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고전9:27


대 사도요, 큰 믿음의 사람인 바울 사도조차도

자기의 구원에 대해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거늘

오늘날 나 같은 평범한 신자는 어떠하랴!


이것(두렵고 떨림)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라는 것이다. <08.02.24. 인터넷 설교 부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