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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0 재림과 종말을 맞이하는 성도의 자세

LNCK 2008. 5. 14. 12:39

 

◈재림과 종말을 맞이하는 성도의 자세     마24:32~51    하용조 목사님 설교 스크랩             

                                                                                                               출처 보기

며칠 전에 중국 쓰촨 성에서 강진이 발생해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는데,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적과 같이 홀연히 ‘종말’이 닥친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내 개인적 종말>과 <우주적 종말>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것 역시 도적같이 홀연히 닥칠 것입니다.


내가 지금 쓰촨 성에서 갑작스런 지진으로 종말을 맞게 되었다고 가정하고,

나의 종말적 신앙상태를 한 번 점검해 봅시다.



▲1. ‘때와 기한’보다 더 중요한 성령충만


-나는 지금 성령충만해서 땅끝까지 복음전파하는 일에 투신하고 있습니까?

 

마지막 때의 중요한 주제는 주님이 언제, 어디에, 어떻게 오시는가 하는 것,

즉 ‘때와 기한을 예측해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때의 중요한 주제는 성령충만입니다.


행1:7절에,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언제 오시는가, 어느 때 오시는가, 몇 시에 오시는가,

이것은 너희의 관심거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1: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때에 주님이 오시는가가 문제가 아닙니다.

마지막 때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 노릇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관심과 자기 관심이 일치하는 사람이 있고,

주님의 관심과 자기 관심이 어긋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주님의 재림 전에, 땅끝까지 복음 전파하는 일을 위해 기도하며,

관심을 기울이며, 자신을 투신합니다.

미성숙한 사람은, 그저 자기가 성공하고 잘 되려고 하는 데, 자신을 투신합니다.

 

노아가 홍수 심판을 앞두고 방주를 지었다면,

우리는 최후 심판을 앞두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시대에 노아처럼 '방주를 예비하는 일' 입니다.


▲2. 경건하고 거룩하게 사는데 관심


-나는 경건하고 거룩하게 사는 일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까?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올수록 우리는

경건하고 거룩하게 사는 데 큰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우주의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벧후3:10~11


베드로 사도의 권면을 잘 들어봅시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3:12


그렇습니다. 마지막 때의 참된 주제는 주님이 언제 어느 때 오시는가가 아니라,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 이탈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기도원으로, 어느 신령한 집단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처해 있는 나의 삶의 터전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매일매일 하나님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는 것입니다.


성도는 <결국 무너져 버릴 것, 결국 불에 탈 것>을 위해 목숨 걸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런 현실을 떠나서 등지고 살 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 살지만,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세우실 성city of God을 바라보며 삽니다. 히11:10

 

▲입시생 예화

대학입시가 다가올 때면 두 종류의 학생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 학생은 고통스럽지만 날짜가 다가올수록 깨어서 시험에 대비합니다.

도시락 2~3개 싸들고 밤 12시, 한 시까지 열심히 공부합니다.

 

놀고 싶은데 놀지 못합니다. 연애하고 싶은데 연애도 못합니다.

그 집은 초비상이 걸립니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가 공부를 잘 해서

원하는 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고 전력을 다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또 이런 학생들이 있습니다.

시험 때가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나 놀이에 열심입니다.

전자게임에 빠져 오락실을 들락날락합니다. 고 3인데도 연애에 열심입니다.

계획 없이 잠을 자고 적당히 시간을 때우며 졸업하기만 기다립니다.

 

어떤 때는 공부하느라고 책상 앞에 앉아 있기는 하지만 지속성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 두 학생의 차이는 언제 판명이 날까요? 그 결과는 너무나 뻔합니다.


우리는 공부 안 하는 자식을 보면, 애가 타고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대학입시>보다 훨씬 더 중요한 <천국입시>를 앞두고

주님은 우리를 보시며 한숨을 푹푹 내 쉬실 수도 있습니다.


내가 우리 자녀를 보고 한숨 쉴때,

주님이 나를 바라보시며 한숨 쉬시는 장면을 연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올바른 종말신앙이 거부해야할 두 극단

 

①첫째, 언제 어느 때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주장하면서 현실에서 도피하는 삶입니다.

이것은 비성경적이요, 성경이 거부하는 모습입니다.


②둘째,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세상에 취해 시집가고 장가가고, 돈 버는 데, 성공하는 데만 관심을 갖는 삶,

이것을 성경이 거부합니다.


요즘 보면 시집가고 장가가는 데만 신경 쓰고,

공부하고 돈 버는 데 미쳐있고,

성공하는 데만, 세상의 쾌락을 누리는 데만 자기의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3. 세 번째 주제는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마24:42-44절까지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어떤 성도는 경성하여 깨어 기도하며,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아갑니다.

또 어떤 성도는 새벽부터 기도로 자신의 삶을 정리하며, 전도하며 살아갑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기는 나오지만 그건 주일날 잠깐 뿐이요,

세상에 취해서, 친구에 취해서 삽니다.

여기에 취하고 저기에 취하고, 이 사람 만나고 저 사람 만나고,

이 사업 벌리고, 저 사업 벌리고... 주님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의 경건한 삶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인생의 본질 문제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어떤 때는 교회에 나옵니다. 부흥회에도 옵니다. 눈물도 흘립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또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이 두 사람의 삶의 차이는 대학입시를 앞둔 두 사람의 차이와 똑같은 것입니다.

종국에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수치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깨어있었던 노아 - 심판을 믿었다.

하나님은 보여주시지 않고 일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24:38f


노아와 그의 가족, 그들은 왜 구원을 받았습니까? - 심판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겠다고 노아에게 말씀하셨을 때

노아는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우직하게 방주를 예비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종말과 재림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방주를 짓지 않습니다.’ 즉 예비함이 없는 것입니다.


노아에게 있어서 어려운 문제는,

홍수 심판이 언제 온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냥 장래에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을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은... 굳이 ‘믿음’이라 말할 필요 없습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을... 성경은 ‘믿음’이라 말합니다.


노아는 '언제'인지 몰랐지만, 120년 동안이나 열심히 방주를 짓습니다.

해가 뜨나, 비가 오나, 기분이 좋으나, 기분이 나쁘나, 그냥 짓는 겁니다.

최선을 다해서 집을 짓습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기분이 좋아도 하고, 기분이 나빠도 합니다.

병들어도 해야 되고, 건강해도 합니다.

주님이 하라시는 대로 충성스럽게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사람이 보건, 보지 않건,

박수를 쳐 주건, 쳐 주지 않건,

내가 암이 들었건 내일 죽게 되었건, 살게 되었건 상관 없습니다.

부도가 났건, 사업에 성공을 했건 상관없습니다.

끊임없이 충성해야 됩니다. 노아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큰 방주를 산에다 지으니, 장안에 소문이 안 났겠습니까?

그것도 1-2년 지은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무엇이 되어가거든요.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보고 얼마나 놀렸겠습니까?

노아 가족들은 수많은 조롱과, 핍박과, 반대에 부딪쳤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결론이 무엇입니까?

노아는 심판 속에서 구원을 받았지만

노아를 비웃었던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서 결국 물에 빠져 다 죽었습니다.


▲과거에 민방공 훈련

과거에 우리는 민방공 훈련을 꽤 철저히 했습니다.

사이렌이 울리면, 각자가 소지해야할 중요한 물건을 지니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습니다.

그 목적은, 실제 상황이 닥쳤을 때, 우왕좌왕 허둥대지 않기 위함입니다.

자기가 연습한 대로, 그 경로대로 움직이면 됩니다.


우리 각자도 이런 훈련을 정기적으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그 날이 오면’ 허둥대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은 ‘그 날’이 올 것을 아예 잊어버리고, 아마 안 올 거야며 억지부리고 살아가는데,

만약 내가 그렇다면, 나는 적어도 ‘노아 가족’은 아닌 셈입니다.

 

▲암이 축복이라고 말하는 이유

어떤 사람은, 암에 걸려 죽는 것이 '복'이라고 말하는데, 절반 맞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자기 종말의 때를 안다>는 것입니다. '6개월, 길어야 1년' 등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자기 삶을 정리하고, 내세를 준비할 시간을 그만큼 가집니다.

 

그렇지 않고 많은 사람들은,

그냥 갑작스레 찾아온 개인적 종말 앞에서 허둥지둥 합니다.

그래서 당황하며, 제대로 준비된 종말을 맞이하지 못 합니다.

 

-나는 땅끝까지 복음 전파 사역에 동참하고 있습니까? (승천 전 예수님 말씀)

-나는 거룩함과 경건함으로 그 날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사도 베드로의 권면)

-나는 깨어있습니까? (세상을 떠나시기 전 예수님 말씀)

 

▣ 종말, 내세, 심판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