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재림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희망입니까? 계19:8
첫째, 구원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가 상급을 받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넷째,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은 역사에 대한 무서운 심판을 증언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절망의 책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은 단순히 심판의 날만이 아닙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사모하고 소망하던 신자들에게는 희망의 새 날입니다...
◑1.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우리의 희망인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완전히 영화롭게 되는 구원의 완성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8절에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1:8
그런데 22:13절에 또 예수님의 자기 계시가 나옵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계22:13
그리고 요한계시록 22:14절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계22:14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서 구원받는 순간에 죄 사함을 받습니다.
그것이 <성화의 시작>입니다.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우리의 <성화가 완성>되는 날입니다.
즉, 영화 glorification 단계로 들어갑니다.
주님을 닮아감으로써 거룩해지는 과정이 완성되는 그 순간,
바로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날입니다.
▶계19장은 이제 심판의 날이 다 지나가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19:8
주님의 재림과 함께 우리는 온전히 새로운 옷을 입습니다.
우리의 성화가 완성되고, 우리의 영화(깨끗한 세마포)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그 기대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2. 우리가 상급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역사의 심판과 최후의 전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무시무시한 날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이 우리에게 희망인 것은, 우리가 상급을 받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간혹 상에 대해서 열정을 잃어버린 분들을 보게 되는데,
아마 신앙의 순수성을 잃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신이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또 자녀들을 보십시오.
상 받았을 때 그들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아빠, 아빠! 나 상 받았어요. 미술 대회에서 <최고상>을 탔어요!” 하면서
자랑스런 마음으로 칭찬받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순수한 모습입니까?
하나님은 상급을 약속하시며 우리의 거룩한 삶을 격려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2:12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22:12
가장 작은 수고라 할지라도,
누군가가 내 수고를 알아 주지 않아서, 슬피 우는 외로움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주께서는 다 갚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해서 수고의 땀을 흘린 사람들은 그 날을 기다리게 됩니다.
주님이 아시기 때문 입니다. 주께서 당신의 수고를 기억하십니다.
이름 모를 소자(小子)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냉수 한 잔의 친절을 베푼 것까지
잊지 않고 그 보상을 약속하신 주님!
재림의 그 날은 그리스도인이 상급을 받는 날입니다.
그래서 재림은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의 날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체상이 아닙니다. 개인 각자에게 주는 상입니다.
그날에는 상급이 없어서 부끄러워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고전3:12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다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은 같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아 놓고서는 아무것도 안 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충성스럽게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도 있습니다.
이것을 고린도전서 3장에서는 집짓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다 집을 짓습니다.
어떤 사람은 금으로 은으로 보석으로 짓고,
어떤 사람은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짓습니다.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고전3:13
나무, 풀, 짚 등을 재료로 하여 지은 집은 얼마나 잘 타겠습니까?
그러나 금, 은, 보석으로 지어진 집들은 그대로 남을 것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고전3:14~15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는다고 했는데,
이 “해”(害)가 어떤 해인지는 정확히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여간 해를 받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성경이 거기까지만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더 이상 이것에 대해서 상상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지나치게 끌고 나가면 가톨릭의 ‘연옥煉獄 교리’까지 비약될 수 있습니다.
솔직히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그 말이 구원을 못 받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의 공력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왜 그렇습니까?
지푸라기 같은 혹은 거지같은 신앙생활을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그 공력은 다 불에 타도 그 터만은 남습니다.
그 터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원의 근거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구원은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크리스천들에게는 이 순간이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나를 위해서 했던 그 모든 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드린 그 모든 수고를 내가 안다!”
이 상급을 받는 날이 기다려지지 않습니까?
오히려 두려워진다면 그 사람은 타락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받을 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큰일입니다.
주께서 상급을 주실 그날에 당신은 어떤 상을 받게 될 것 같습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 약속된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상급은 면류관입니다.
옛날 왕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최대 영광의 상징은 면류관이었습니다.
주를 위해서 수고하고 충성한 성도들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면류관!
▶성경에는 5가지의 면류관이 나오는데,
고린도전서 9:25절 이하에 나오는 “썩지 아니할 면류관”
데살로니가전서 2:19~20에 나오는“기쁨의 면류관”
요한계시록 2:10절에 나오는 “생명의 면류관”
디모데후서 4:8절에 나오는 “의의 면류관”,
베드로전서 5:2절 이하에 나오는 “영광의 면류관”이 그것입니다.
예전에는 부흥 목사님들이 설교하면서,
예수를 시원찮게 믿으면 나중에 “개털 모자”를 쓰게 될 것이라고
우스개 소리를 했습니다만, 성경에 개털 모자는 없습니다.
하여간 이 5가지 면류관에 대한 묘사들을 보면,
각기 다른 수고에 대한 상급의 약속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은 하나님의 나라가 드디어 실현되는 순간입니다.
저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순간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시작되었다고 믿습니다.
주님의 공생애 첫 번째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
주님은 왕으로 오셨습니다.
왕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그 왕의 통치 능력을 경험합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아직 하나님의 나라와 사단의 왕국이 싸우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주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의 그날에 비로소 끝날 것입니다.
그때 사단의 왕국은 완전히 깨지고, 부서지고, 멸망할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메시야의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는 온전히 실현될 것입니다.
▶정의와 평화!
성경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에 대한 표현 중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두 단어는
“정의와 평화”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의 나라요, 평화의 나라입니다.
즉, “정의가 온전히 실현된 평화로운 나라”입니다.
“나라가 임하옵시며!”
이것은 아직 완전한 정의와 평화를 맛보지 못한
인류의 숙원이요, 몸부림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나라가 재림을 통해서만 완성됩니다.
그래서 재림은 우리에게 ‘희망’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이 찬란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절정에서 약속된 이 메시지를 보십시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계11:15
최후 심판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천사가 선언합니다.
드디어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모든 것을 온전히 지배하는 세상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갈 크리스천들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계22:5
▶이 땅에 난무하는 불의와 불공평을 바라보면서,
평화가 짓밟히는 것을 몸으로 느끼면서
우리는 사도 요한처럼 성경의 마지막 기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그날에야 정의와 평화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희망의 사건인 것입니다.
◑4. 우리가 천국 통치에 동참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우리도 하나님 나라를 함께 다스리게 됩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참으로 깨닫는다면,
국회의원이 되려고 지나치게 발버둥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이 땅에서도 그리스도인 정치 지도자가 많이 필요합니다.
역사는 하나님 나라의 이상을 제시하고 정의와 평화를 이루는 일에 기여하는
그리스도인 정치가들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주께서 다시 오셔서 주님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그 때에,
우리도 주님과 함께 그 나라를 함께 통치하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요한계시록 22:5절을 보십시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마19:27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마19:28
세상이 새롭게 되는 그 때가 옵니다.
그때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한다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은 아주 흥미로운 장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고발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성도들끼리 판단해서 시시비비를 가리면 되지,
그 문제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법정에까지 가지고 가서 서로 헐뜯어서야 되겠느냐
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뜻밖의 말씀을 합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고전6:2
▶누가복음 19:12절 이하를 보십시오.
가라사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19:12f
여기에서 ‘돌아온다’는 것은 주님의 재림을 말하는 것입니다.
드디어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왕이 돌아왔습니다.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눅19:16f
이 상급이 재미있습니다.
한 도시의 시장이 아니라, 열 개 도시의 시장 노릇을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비유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다시 오셔서 그 나라를 완성하실 때 주시는 상급 중에 하나가 무엇입니까?
그냥 면류관만 씌워주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비유는 그 나라에 이루어질 놀라운 사실에 관한 예시적이며 암시적인 사건입니다.
우리는 면류관을 받아 멋있게 쓰고 다니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스리는 자의 위치에 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천국에 가면
심심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지금부터 걱정합니다.
그러나 천국은 심심한 나라가 아닙니다. 천국에도 정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세상에서와 같이 권모술수가 판치는 불의한 정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정의와 평화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 나라에서 참으로 멋진 정치가가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주님을 위해서 헌신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날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통치하는 이 놀라운 꿈,
주님과 함께 시장도 하고 도지사도 하는 삶!
그렇다고 너무 세속적인 욕망으로 변질시키지는 마십시오.
우리가 아직은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천국은 거룩한 정치가 있는 나라임이 분명합니다.
공법(公法)이 물같이,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는 그 위대한 나라!
불의가 전혀 없는 나라! 탐욕이 조금도 없는 나라!
뇌물이 조금도 없는 정의로운 샬롬의 나라!
이 천국의 비전에 눈을 뜬 사람마다 사도 요한처럼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치는 말 : 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희망의 사건입니까?
첫째는, 구원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상급을 받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동원 목사님 설교 인터넷에서 발췌, 정리, 연도 알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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