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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7장 네가 나를 위해 집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LNCK 2008. 6. 2. 10:33

 

◈네가 나를 위해 집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삼하7 :1~17    08.05.11. 인터넷 설교

내가 너를 위해 집을 세운다.

 

 

다윗이 왕궁에 거한 후에,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짓겠다고 했다.

그 때 하나님은 다소 의외의 대답을 하신다. 요약하면 이렇다.

“네가 나를 위해 무슨 집을 짓겠느냐?

내가 너를 위해서 집을 짓겠다.

아니 내가 너를 위해서 오래 전부터 이 집을 지어오고 있다.

앞으로도 내가 너를 위해서 집을 짓겠다.”

 

 

◑가정에 적용

 

여러분, 여기 가정에 대한 신비한 교훈이 있다.

우리는 내가, 내 힘으로, 내가 돈을 벌어서, 내 가정을 일으켜 세워보려고 한다.

그 외에도 내 책임감, 내 용서, 내 화해 등으로 가정을 세워보려고 한다.

일면 맞다.

 

하지만, 가정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세워주셔야 세워진다.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서 집을 세워주셨던 것처럼 말이다.

 

◑교회(하나님 나라)에 적용

 

▲핵심을 놓치면 안 된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겠다고 고백한 것은, 아주 잘 한 일이었다.

다윗은 왕이 된 후에, 자기는 백향목 궁에 거하는데,

하나님의 성막은 아직 텐트로 남아있는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네가 피를 많이 흘렸으므로, 네 아들 솔로몬이 짓게 하겠다”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이 말씀을 자꾸 오해한다.

 

<하나님이 다윗을 위해서 집을 짓겠다>는 이 중요한 메시지는 놓쳐버리고,

<다윗은 짓지 못한 성전을 솔로몬이 지었다>는 사실에 더 많이 치중한다.

결국 ‘물질로 지은 집’을 자꾸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그래서 성경의 원래 핵심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그렇다. 성전 짓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름답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핵심은 이것이다.

<네가 나를 위해서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위해서 집을 짓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성전건축을 허락지 않으시고, 솔로몬에게 허락하신 것은

다윗이 피를 많이 흘렸던 이유도 물론 있다.

(그러면 솔로몬에게는 무슨 흠이 없었겠는가?)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성경의 더 큰 핵심은 <하나님의 주권, 이니셔티브>이다.

‘다윗, 네가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내가 집을 짓겠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물론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지만, 더 크게 보면, 솔로몬이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솔로몬으로 하여금 성전을 짓도록 하셨다>가 맞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지은 것이 아니라,

성전은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이었고,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그것을 허락하셨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다윗, 네가 나를 위해서 집을 짓겠다고? 잊어버려라! Forget it

내가 너를 위해서 (내)집을 세울 것이다.

나는 너를 통해서, 또한 네가 하는 일을 통해서

나의 나라를 세우고 있는 중이다.

집을 세우는 일은, 네가 아니고, 나다!

 

네가 지금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그러면 예루살렘 사람들이 모두 이 성전건축공사에 시선을 집중할 것이다.

망치 소리, 수레가 돌과 나무를 운반하는 요란한 소리,

수많은 건축 재료들이 왔다갔다 하고,

아름다운 건물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 때

모든 사람들이 시선이 (눈에 보이는) ‘건물’ 하나에 옮겨갈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지금 내가 짓고 있는 집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것은 너희들의 가슴 속에 먼저 지어야 하는 ‘하나님의 집’이다.

<지금>은 이런 것들에 너희 시선을 집중해야 할 때다.”

 

▲<성전 건축>보다 더 큰 그림을 볼 줄 알아야...

즉 <하나님이 짓기 원하시는 나라는 영원한 나라>를 볼 줄 알아야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명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삼하7 :11~12

 

이 말씀이 일차적으로 솔로몬에게 적용되겠지만,

(그러나 솔로몬이 이어간 다윗 왕조는 5백년 이상 가지 못했다.)

이 말씀의 원래 의도는, <다윗을 통해 이뤄질/이어질 영적인 나라>였다.

 

실제로 이 약속대로, 다윗의 후손에서 그리스도가 탄생하셨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졌고,

이제 신약시대부터 영원까지, 그 나라는 계속될 것이다.

 

다윗은, 성전건축은 거절당했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큰 그림에 대해 하나님의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감사드리고, 경배드렸다.

 

 

▲하나님, 내가 하겠다!

하나님께서 ‘내가 집을 짓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무려 23개 동사의 1인칭 주어로 ‘내가’를 말씀하고 계신다.

‘내가 한다. 내가 하겠다’는 식으로 23번 반복, 강조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가> 뭘 좀 해 보겠다고 나섰다가,

자기가 큼직한 일 하나 이루어서 하나님께 칭찬도 받고,

사람들 보기에도 근사한 업적 하나 이루어보려고 했는데,

도리어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엄청난 교훈을 받았다.

 

다윗은 함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감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나도 마찬가지다.

‘너희들이 나를 위해 뭔가를 하겠다고? 그것은 잊어버려라!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행하는 일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너희가 생각해 보아라.

그리고 다윗과 같은 마음으로, 이 일에 너희가 동참해라!’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식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여러분, 다윗은 ‘성전건축’이란 성업을 아들에게 빼앗긴 처량한 신세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이 지으시는 하나님의 집(하나님 나라)’에 동참했던 사람이다.

그 타이밍과 그 경륜에 자기를 겸허히 맞추어 나갔다.

 

자기 시대에, 자기 힘과 재력으로, 자기가 모든 것을 이루려 하지 않았고,

그럴 만한 힘과 능력이 충분히 있었지만... 오히려 겸허했다.

 

 

▲다윗은 삐지지 않았다.

 

‘아니 내가 엄청난 돈을 자발적으로 헌납해서, 그 위대한 일을 하겠다는데...

내 은행 잔고가 바닥날 정도로 올인해서 큰 일 한 번 해 보겠다는데...

싫으시면 마시고!’

이렇게 다윗은 삐지지 않았다.

 

하나님께 이 말씀을 들을 다윗은,

조용히 성막에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고 성경은 말한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삼하7:18

 

▲착각하지 말자.

여러분, 오늘날 우리도 다윗과 같이

<내가 하나님을 위해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우리의 헌신도 좋고, 희생도 필요하고, 거금을 드리는 헌금도 필요하다.

그러나 우쭐해서는 안 된다. 주도권이 내게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일에 내가 쓰임 받는 것뿐이다.>

 

그리고 주님이 No 하시면, 다윗처럼,

다른 사람에게로 바통을 기꺼이 넘길 줄도 알아야 한다.

 

▲겸허히 내려놓을 줄 아는 믿음

주님은 우리에게 <일을 많이 충성되게 하라>고 하시지만,

어떤 경우는 <일을 멈추어라>고도 명하신다.

일을 <많이 충성되게 하는> 것도 ‘큰 믿음’이지만,

일을 <멈출 때 멈출 줄 아는 것>도 ‘큰 믿음’이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슨 무슨 일을 하겠습니다!> 이것도 믿음이지만,

믿음이 더 성숙해 지면

<내가 너를(=나를) 위해서 이런 저런 일을 할 터이니, 너는 좀 빠져라> 하실 때

성막에서 엎드린 다윗처럼, 조용히 순종할 줄 아는 사람도 “큰 믿음”이다.

 

사실 주님을 위해서 내가 위대한 일을 <수행하는> 것도 어렵지만,

주님을 위해서 내가 위대한 일을 <포기하는> 것은 어쩌면 더 어렵다.

나단 선지자를 통해 <너는 이제 그만 포기해라!>하실 때,

다윗은 일절 토를 달지 않았다. 대꾸하지 않았다. 잠잠했다.

보통 신앙의 내공이 쌓이지 않고는, 사실 이렇게 순종하기 힘들다.

 

▲잘 나갈 때 조심해야

다윗은 정말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았다.

오직 하나님이 자기편에 서서 일하시는 모습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그런 와중에 <하나님의 NO>는 어떤 면에서 다윗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다윗은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다.

그래서 <내가!>가 나온 것이다.

승승장구하는 사람이 갑자기 이런 응답을 받으면... 큰 충격에 휩싸인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다윗의 더 위대한 신앙의 면모를 발견한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이상

다윗은 일절 섭섭한 마음, 아쉬운 마음, 시험드는 마음이 없이

겸허히 그 뜻을 따랐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NO하실 때

사실 살다가 보면, 내 뜻대로 안 되는 일들이 가끔 있다.

<하나님의 NO>가 반드시 있다.

이 때 반응도 가지각색이다.

-길길이 날뛰는 사람,

-끝까지 인위적으로 자기 뜻을 관철시키는 사람,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 그래서 사역을 중단하는 사람,

-다윗처럼 겸허히 수용하는 사람

그 반응을 보고서, 우리는 내 믿음의 척도를 알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