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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8

1300 재난을 보면서, 살아있음에 감사하다

LNCK 2008. 5. 31. 21:06

◈쓰촨성 재난을 보면서, 살아 있음에 감사하다!   창7:17~8:22


 

나는 이번에 중국 쓰촨성 지진 현장을 구호 방문 하면서,

거기서 많은 죽음의 현장을 보면서, 노아의 홍수 재난을 연계해서 생각하게 되었는데...



◑노아의 믿음 - 기다림


▲노아, 방주에서 함부로 내리지 않다.

노아가 방주 속에서 지낸 기간은 약 1년간이다.

어찌 보면 무척 답답한 기간이다. 밀폐된 공간 아닌가!

거기에다 사람만 사는 게 아니라, 온갖 짐승들이 바글바글 들끓었다.

개 한 마리 짖으면 염소, 낙타, 호랑이, 까마귀까지 모두 울어댔을 것이다.

시끄러워서 잠을 제대로 잤을까?


소음 공해는 둘째 치고, 그 많은 배설물과 거기서 나는 구린내는 과연 어땠을까?

방주 속 1년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방주가, 홍수 개시 5개월 후에 아라랏 산기슭에 걸터앉았다.

그 때 배에 탔던 사람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 땅 밟아보는 것이다.

물기가 좀 덜 빠졌더라도, 어서 빨리 배에서 내려, 땅을 밟고 싶었을 것이다. 

(간혹 영화에, 몇 달 항해한 선원들이 땅에 내리면 미칠 듯이 기뻐한다.)


그런데 노아는 여전히 방주에서 땅으로 내리지 않았다.

그는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보니까, 지면에 물이 점점 빠지는 것을 보았다.

땅도 점점 말라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지 않았다.

(워낙 방주에서 안 내리니까, 혹자는, 혹시 또 홍수가 날까봐 두려워서 못 나왔다고,

즉 노아가 패닉 상태에 있었다고 인간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우리는 여기서 노아의 믿음을 본다.

노아는 여호와의 말씀을 다 준행하였더라고 했다. 창6:22, 7:5

노아가 방주에 자기 임의대로 들어가지 않았듯이,

노아는 방주에서 자기 임의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방주 안이 짐승들로 인해 열악한 상태였지만,

<방주에서 나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기까지

노아는 방주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그는 창을 열고, 새들을 밖으로 몇 차례 내보냈다. (방주에서 나올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자기 임의로 방주에서 내리지는 않았다.


▲노아의 믿음 - 기다림

여러분,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은 이렇게 답답한 면이 있다.

이런 면을 놓고 보면, 노아는 아브라함보다 더 뛰어났다.

아브라함은 자식 약속 받고서,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이스마엘을 낳아버렸다.

그러나 노아는 철저히,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노아’ 여러분,

우리도 노아처럼, <말씀의 인도를 기다리고, 말씀의 인도를 전적으로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란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믿음은 기다림>이다.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다 한없이 기다렸다.

노아, 아브라함, 요셉, 다윗 등등

어떤 일을 앞에 두고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기>를 기다렸고,

<하나님의 때>가 도래하기를 기다렸다.


못 기다리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대표적으로 사울왕!


▲말씀이 임할 때까지 기다리시라!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할 때>까지!

노아가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판단으로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


물론 세부적인 것까지 하나님이 일일이 간섭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큰 결정을 앞두고는, 모두가 기도하며,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


아브라함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실 때.., 비로소 떠났다.

여러분 자녀의 진로와 대학 선택도... 내 길을 버리고, 주님의 길을 따르시라.

반드시 말씀의 인도를 받으시기 바란다.


우리 어릴 적에 ‘가라사대’ 게임이 있었다.

“하나님 가라사대” 하면 그대로 따라해야 했고,

그 말이 없으면 따라하면 안 된다. 기가 막힌 성경적인 게임이었다.

오늘날 그런 게임을 좀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성경)도 있다.

예를 들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리라’이다.

사회적으로도 우리 사회 제도와 분위기가 <노인 공경>으로 갈 때

나라 전체가 복을 받고, 잘 되어질 줄 믿는다.


그런데 젊은 가정들이 요즘 부모 공경을 잘 <안> 한다.

이유인즉, 자기 자녀 키우는 일에 너무 바빠서, 부모를 잘 못 섬긴다.

여러분, 내 생각에는 늙은 부모보다, 미래의 희망인 자녀에게 투자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지만, 성경말씀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셨으니,

내 생각이 아니라, 말씀의 인도함에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란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더 많은 경우) 이미 임하신 성경말씀이 있으므로, 거기에 순종해야 한다는 뜻.


▲내게 생명 있음으로 인해 감사를!

제가 재난의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체험한 것인데,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생명이 있으면... 냄새가 안 난다. 안 썩는다.

생명이 없으면... 고약한 냄새가 난다. 썩는다.


생명이 있으면... 안 무섭다.

생명이 없으면... (시신을 보면) 무섭다.


노아는, 홍수 심판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면서

자신과 가족에게 생명을 주신 것을 보고 너무 감사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땅에 내리자마자, 하나님께 감사의 번제를 드렸다. 창8:20


여러분, 내게 생명이 있음을 인하여, 춤을 추며 감사할 수 있게 되시기 바란다.

미얀마 쓰나미, 중국 쓰촨성 지진... 이런 곳을 방문해 보면,

내게 생명이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절실히 깨닫게 되는데...

(이 부분 맨 아래에서 다시 설명)



◑중국 쓰촨성 지진 구호활동 체험담


(구호 목적으로) 재난 현장에 가보면,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구호팀을 보내더라도, 위해서 뒤에서 항상 기도해 주셔야 한다.


▶제가 중국 청도에 도착해 보니

“이것은 실제상황입니다. 연습이 아닙니다.

진도 6~7도의 여진이 오늘과 내일 중에 발생할 것입니다!”라는 다급한 방송이

계속 TV에서 흘러나왔다. (마치 옛날 우리나라 민방위 방송을 연상케 했다.)


청도 공항에서 비행기에 내려서 대합실을 빠져나오려는데,

거기에는 공항으로 이불 싸들고 피신 온 사람들이 청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팀도 (비교적 안전한) 공항에 진을 쳐야 하나?’ 라는 생각에

우리도 얼른 공항 청사 한쪽 구석에 가방으로 우리 영역을 일단 확보해 두었다.


그러다가 숙소를 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고속도로가 참 볼만 했다.

우리가 차를 타고 청도 시로 진입하는 차선은 텅 비어 있고,

반대로 청도에서 차타고 빠져나오는 차선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득 찼다.

사람들은 최대한 거기를 멀리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데,

우리 일행은 그 물결을 거슬러 들어가고 있었다.

 

▶5층짜리 숙소를 잡았는데, 손님들은 다 밖에 나와 있었다.

혹시 지진이 나서 건물이 무너질까봐...

우리는 로비에서 1층을 달라고 사정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대부분 대피하기 빠른 1~2층에 투숙하고 있었고,

3층부터 비어 있었다.

호텔 직원들도 ‘외국인’ 받기를 꺼려하는 눈치였다.

혹시 다시 사고라도 나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까봐 몸 사리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가장 안전하게 보이는 길바닥(건물은 무너지니까)에서 자려는데,

우리가 소지한 구호금이 문제였다. 길에서 강도 만날까봐...

그래서 할 수 없이 3층에 방을 한 개 빌려서, 짐을 거기에 두고,

우리 일행들은 밖에서 자기로 했다. 그래서 방에 짐을 두러 올라갔는데,

L(부)목사는 일이 어떻게 되든지, 자기는 방에서 자겠다고 드러누워 버렸다.

나(담임목사)도 그냥 그 방에서 자기로 했다.


그날 상황이 어느 정도로 심각했냐 하면, 자꾸 여진 방송이 나오니까

산모들이 병원에서 나와서, 병원마당에서 밤을 지낼 정도로 모두들 떨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L목사는 옷을 다 입고 자고 있었다.

그는 밤에 여진이 있어서, 자다가 깨서 황급히 옷을 차려 입은 것이다. 

그리고 막 저를 흔들어 깨웠다고 한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흔들리긴 뭐가 흔들려? 그냥 자자!” (그런데 나는 전혀 기억 안 난다.)

 

▶이튿날부터, 우리는 재난 현장을 찾아다녔다.

구호소마다 구호품이 가득 쌓여있었다. 물자는 넉넉하게 보였다.

그러나 비교적 시내와 가까운, 구호대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그렇고,

산길을 타고 올라가서, 도심에서 떨어진 마을에 가 보니까,

거기는 멀어서 그런지, 구호품 전달이 원활하지 않았다.

(가는 길에 쩍쩍 갈라진 길을 보니까, 가슴이 섬짓했다. 방문도 쉽지 않았다.)


그날 저녁에 TV뉴스를 보니,

우리가 다니던 길 조금 위쪽이, 여진으로 인해 산사태가 나서,

도로를 복구하던 군인 2백 명 정도가 흙더미에 매몰되었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런 지역을 다음 날 차를 타고 다시 들어간다는 것은... 진짜 담력이 필요했다.


TV뉴스를 못 본, 모 집사는 코를 골며 잤지만,

그 뉴스를 본 나는... 그날 밤 머리 속에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나는 일단, 일행들에게 그 뉴스 내용을 알리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숙소에서 그날 밤에, 나는 평소보다 더 심하게 웃기고 장난을 쳤다.

긴장을 풀고, 두려움을 쫓기 위한 나의 오버액션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다음날, 우리 일행은 예정했던 산지 마을 구호활동을 감행했다.

언제 도로가 갈라지고, 산이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긴장이 맴돌았다... 

 

▶이렇게 구호활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제 방에 들어가 보니,

집이 왜 이렇게 편안하고, 밝고, 좋은지... 새삼 깨달았다.

모든 긴장이 풀리면서 이렇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새삼 감격스러웠다.


여러분, 무엇보다 <내게 생명이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감사함을 느꼈다.

거기서 수많은 사람들의 시신을 보고,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다.

 

노아가 홍수 후에 땅에서 번제를 드리는 심정이, 조금 비슷하게라도 느껴졌다.


여러분, 시어머니가 좀 힘들게 하시는가? ... 아무 것도 아니다.

남편이 마트에서 장 볼 때 안 따라 가 준다고? ... 아이쿠! 

(남편이)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의 절을 열 번 해야 한다.

남편이 좀 늦게 들어온다고? ... 늦게라도 들어와 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거기는 늦게라도 들어올 남편이 지진에 파묻혀 죽어 버렸다)


여러분, 남편이나 아내에게 이렇게 인사해 보시라!

“여보, 이렇게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요!”


▶내가 이번에 쓰촨성 지진 현장을 다녀와서 철저히 깨달은 것은

<살아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가!>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도 저렇게 부지불식간에 죽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살아있음, 생명있음’이 매일 계속 연속되다 보니까,

그 소중함과 고마움을 잘 모르고 살아간다.

그것은 한 번 죽어봐야 느끼는 데, 죽으면 다시 돌아올 수 없으니...


▶미얀마는 지금도, 아직까지 사람이 죽어 나간다고 한다. 굶어서!

지난 번에 제가 가서 보니, 20분 배타고 가면서 본 떠다니는 시신이 42구였다.

거기 바닷가 120개 마을에 주민들 절반이 살았고, 절반이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때 용케 살았던 사람들은, 지금 굶어서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 때 우리가 사건 발생 8일째 갔었는데,

미얀마 정부가 어떤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전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은 정부에서 구호활동을 드디어 허락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나라에서 파견된 수송선들, 거기에 담긴 구호물자들이

지금 나눠지고 있다고 한다.

구호단체들은, 너무 급한 나머지 (가장 신속한) 공중투하를 하고 있다고 한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하루라도 빨리 살리기 위해서다.


▶여러분, 이런 일을 남의 얘기처럼 하지 않고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직접 참여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또한 우리에게는 강력한 도구가 있는데, 바로 ‘기도’이다.


한국교회 봉사단등 여러 팀들도 기금이 꽤 많이 조성되어 있는데,

지금까지 미얀마로 갈 수 있는 길이 막혀 있어서, 애만 태우고 있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막힌 길을 뚫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면 뚫릴 것이다.

그래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이 소중한 일에, 우리가 쓰임받게 되기를 바란다.


<08.05.25. 인터넷 설교 중 발췌  *원제목 :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다

 

[주제별 분류] 사회적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