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새 옷 입기 골3:1-17 -출처 보기-
◑새 자아를 입어야!
▲새 옷을 입기
신약 성경에 종종 그리스도인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라 그랬습니다.
이건 우리가 세례를 받는 의미를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의 태도와 관련된 말인 것입니다.
즉, 우리는 과거에 자기를 만족시키려고 살던 삶이 죽고,
이제는 이웃을 만족시키고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삶으로
가치관이 바뀐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가치관의 전환을, 바울은, 옛 자아를 벗고
새 자아를 입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가치관의 변화를
<마치 옷을 벗고 입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여러분은 옛 사람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골3:9~10,
(엡4:22-24도 마찬가지)
▲새 옷을 입게 되면, 더러운 옷은 자연히 벗게 된다.
올 봄에 제 어린 아들이 야구를 했습니다.
야구를 끝내고 나면 옷이 흙투성이가 되어 더러워지곤 했습니다.
그러면 제 아내는, "아들아, 가서 옷 갈아입어!"하고 말합니다.
그러면 아들은 더러워진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더러운 옷을 벗으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는 새 옷을 입기 위해서는, 더러워진 옷을 벗어야 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된 그리스도인은
옛 자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땅에 속한 지체의 일들, 곧 음행과 더러움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탐욕 등입니다. 골3:5
옛 자아와 새 자아는 서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잘 안 죽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의 고뇌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옛 자아를 죽이고, 새 자아를 입을 수 있을까요?
▲옛 감이 떨어진 이유
제가 시골에서 목회할 때의 일입니다.
교회 앞마당에 커다란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해마다 감이 많이 열리곤 했습니다.
가을이 되면, 교인들이 예배드리러 왔다가 감을 따먹곤 했습니다.
그래도 나무에 높이 달린 감은 아무도 손대지 못했습니다.
그런 감은 땅에 떨어지기도 하고, 그대로 가지에 붙어있기도 했습니다.
통통했던 감이 가지에 붙어서 곶감이 되어갔습니다.
저희 교회는 깊은 계곡에 위치했었기 때문에,
겨울이 되면,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불어대곤 했습니다.
그래도 가지에 붙은 곶감은 떨어질 줄 몰랐습니다.
기나긴 산촌의 겨울이 가고, 어느덧 봄이 되었습니다.
감나무에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아, 봄이 되었구나!"하고 생각하며,
곶감을 찾아보려고, 감나무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곶감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 매서운 겨울의 강풍도 떨구지 못한 곶감들이
새싹에 떠밀려 다 떨어지고 없어져버린 것입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옛 자아에 대해 죽는다는 것, 옛 자아를 벗어버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밀려올 때에만 가능한 것이구나!"
▲은혜를 받아야 바뀐다.
여러분도 많이 경험하셨죠? 옛 자아를 벗어보려고 애써보지만
번번이 실패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내 마음속에 물결처럼 밀려올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설교가 사람 못 바꾸더라구요. (즉시로, 당장은)
인간적으로 관심 가져주고 잘 대해준다고 사람 바뀌지 않더라구요.
인간의 어떤 노력과 수고가 사람 못 바꿉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바꾸십니다.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은혜 받고, 새 옷 입고, 어떻게 변화되었나?
▲1. 용서의 사람이 된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로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골3:13
남을 용납한다는 거, 남을 용서한다는 거, 이거 참 어려운 거거든요.
그런데 주께서 나를 용납하여 주시고, 나를 용서하여 주신 은혜를 깨달을 때,
용납 안 되던 사람도 용납이 되고, 용서 안 되던 사람도 용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은혜 받아야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평화가 지배한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골3:15a
여러분, 인간관계처럼 어려운 일이 없지요?
돈 버는 일도 쉽지 않고, 공부하는 일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관계에 비하면, 그건 큰 문제가 아닙니다. That's not a big deal!
인간관계가 한 번 얽히고, 꼬이고, 뒤틀리면, 계속 신경이 쓰이고,
생각나고 또 생각나고, 기도해도 마음이 잘 안 잡힙니다.
어떤 분은 "기도해서 모든 걸 다 해결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결했습니까?"하고 물어보면,
자기는 모세고 상대방은 바로입니다. 자기는 다윗이고 상대방은 사울입니다.
자기는 의인이고 상대방은 악당입니다.
(매사를 이런 식으로 판단하면, 아직 은혜 못 받았거나, 은혜가 고갈된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평화란 어떤 것이냐?
15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라" 그랬습니다.
직역하면,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 사이의 심판자가 되게 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심판에게 요구되는 자질quality이 뭡니까? 공정 fairness입니다.
그리스도보다 더 공정한 분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라"는 말은,
나와 너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그리스도를 심판자로 세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평한 눈으로 보게 되고, 평화를 누리게 된다 .... 이런 말인 것입니다.
즉, "문제를 그리스도의 (심판자의) 눈으로 봐라!" .... 이런 뜻이 되겠지요.
은혜 받은 사람은, 절대로 ‘이기적으로,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의 눈으로, 공정하게’ 판단하려고 기도하며 노력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절대로 그렇게 공정한 눈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라인홀드 니버라고 하는 신학자는,
"모든 인간의 눈은 자기 이익에 오염되어 있다
(Every human being is tainted by self-interest)"고 주장했습니다.
누구나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누구나 자기를 변명하는 쪽으로,
누구나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보게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죠.
아무리 까무라치고, 죽었다 깨어나도, 인간은 절대로 완벽하게 공정할 수 없습니다.
▲3. 감사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리스도가 주시는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까?
15절에서 바울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 그랬습니다.
이 평화를 누리게 하시려고 여러분을 한 몸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골3:15b
여러분 감사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좋을 때만 감사하는 사람입니까?
문제 있을 때에도 감사하는 사람이 진정 감사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문제 안에서도 감사할 뿐만 아니라,
문제에 대해서도 감사할 줄 압니다. 왜 그렇습니까?
문제로 인해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문제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 발견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문제가 아니고서는 결단코 하나님의 은혜를 뼈에 사무치도록 경험할 수 없고,
옛 자아가 밀려나가는 사건은 벌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 안에서 감사할 조건들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문제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감사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하는 사람이 되면, 평강과 평화는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은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빌4:6-7
▲4. 말씀이 풍성해야 은혜가 유지된다.
그런데 사람이 문제 때문에, 열 받고, 속상하고, 답답하고,
억울하고, 분통하고, 실망스럽고... 거기에서 무슨 감사가 나옵니까?
은혜 받아도 문제 안에서 감사할 조건들을 발견하는 것이 힘든데,
문제에 대해서 감사한다? ... 이거 보통 은혜 받아서는 될 일이 아니질 않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골3:16a
우리가 매주일 말씀을 들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하게 살아 있어야 은혜가 넘치고,
우리 안에 여전히 웅크리고 있는 옛 자아를 밀어내고,
새 사람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 제가 참 잘 안 바꿔요!" 그러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 분은 말씀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양날 가진 칼보다도 날카로워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향을 가려냅니다. 히4:12
은혜는 내 눈을 흐려놓게 하고서 얼렁뚱땅 넘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말씀은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말해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만 발견되면,
은혜는 파도처럼 밀려와 내 영혼을 채우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우리의 판단력과 가치관과 존재 전체를 새롭게 바꾸어 놓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5. 찬양과 감사의 생활화
이 단락의 결론을 바울은 이렇게 맺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여러분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십시오.
그리고 말을 하든지 일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골3:16b~17
찬양과 감사를 생활화하라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의 입에선 찬양이 끊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내 이름으로 하지 않고, 주 예수 이름으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감사하거나, 억지로 감사하거나, 마지못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어제 저에게 어떤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제게 크리스마스카드를 주시면서,
우리 교우 가운데 몇 분에게도 그 카드를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 카드마다 작은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매 주일 얼굴을 대할텐데, 제가 직접 전해주면, 불편해하지 않겠어요?
제가 하는 걸로 하지 마시고, 목사님이 하시는 걸로 해 주세요."
전 이 카드를 받아들고, "이번 크리스마스가 과연 따뜻하겠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이런 일을 숨어서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자기 이름으로 일하는 분이 아니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일하는 분들>입니다.
여러분, 돈 벌어서, 어디다 쓰시겠습니까?
예수님은 낮고 낮은 곳에 오셨다고 하는데,
여러분은 어디서 주님을 만나려고 하십니까? 우리 낮은 곳으로 갑시다.
거기서 주님 만나고, 주님과 찐하게 hug해 봅시다.
여러분은 이번 크리스마스에 어떤 카드를 쓰시겠습니까?
<99.12.19. 인터넷 설교 스크랩 [주제별 분류] 크리스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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