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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열왕기상 8:28
◑친구를 찾아라 -출처 보기-
우리가 벽에 부딪혀서 막막할 때, 기도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지혜(해결책)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성령의 9가지 은사 중에 '지혜의 말씀'이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중국에 왔을 때...
말도 제대로 안 되는 우리가 이런 저런 수속들을 하러
이 부서, 저 부서 뛰어 다니며 애를 쓰던 때였는데...
공안국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남편과 XC가 만나는 장면...
우리 남편이 워낙에... 물 불을 못 가리는 성격이라서..
공안국의 새파랗게 젊은 놈이 앉아서
이거 내놔, 저거 내놔 하는 꼴이 볼썽사납던 터에...
하루는, 고객은 안중에도 없이 제 할 일만 하고
노닥거리는 꼴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야~~ 너 XX"
한국말로 큰 소리를 냅다 질렀겄다~~
깜짝 놀란 공안국 직원들이 달려 나오고...
"너가 공안이냐? 사람이 왔으면 응대를 해야지 네가 ...."
한국말로 따발총처럼 쏘아 대고 돌아온 남편...
그 후로
XC는 우리의 거류증 연기를 안 해 주고 8개월 동안 애를 먹였는데...
사진을 가로로 찍어 와라, 세로로 찍어와라,
요구대로 가지고 가면, 또 틀렸다
‘내가 엄마랑 애들이랑 같이 찍으라 하지 않았냐...’
이런 식으로 8개월이 지나는 동안,
우리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었다.
높은 사람도 찾아보았고...
그렇게 8개월을 이거 해 와라 저거 해 와라 하더니 결국은 "출경"
중국에서 나가라고 통지가 왔다.
세상에나~~ 이렇게 억울할 데가...
한 여름, 날씨는 더운데... 미미(글쓴 이)는 주님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주님, 저는 이렇게는 못 나갑니다. 우리가 무얼 잘못했다고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떠난단 말입니까? 어떻게 좀 방법을 알려 주세요.."
그 때 불현듯이 한 생각이 떠올랐다.
"XC의 친구를 찾아라~~"
‘친구를 찾아라~~, 어떻게 친구를 찾는다?’ 고민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때르릉 울렸다.
이전에 남편이 비행기 타고 오다가 만난 은행 다니는 아저씨였다.
그 아저씨 왈,
‘요즘 잘 지내냐? 내가 뭐 도와 줄 일은 없느냐?’
그냥 접대성 멘트인 줄 알지만
"날 좀 도와 줘요. 당신 혹시 공안국의 XC란 사람의 친구를 아시나요?"
내가 생각해도 우스운 멘트가 흘러 나가고...
"내가 알 것 같은데... 알아 보리다"
그 다음날,
XC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가족 네 명과
그 당시 함께 회사에서 일했던 한국인 한 명의 여권을 가지고
공안국으로 오라고...
XC의 친구 덕에,
아니.... 주님과의 묵상 덕에....
우리 다섯 명의 거류증은
그렇게 벌금 쬐끔 물고 (싱겁게) 끝이 난 것이었다.
◑그까짓 4천만 원 -출처 보기-
▶1년이 지나도 4천만 원을 갚지 못한 우리는
본사와 상의를 한 후, 빵 집을 L집사에게 넘기기로 합의를 보았다.
(중국에서 사역을 위한 빵 집으로 여겨짐)
우리 가족은 귀국하였지만, 있을 집 하나 변변히 없어서
작은 방 하나에 4식구가 옹기종기..
아이들은 한국 초등학교에 전학을 하였는데
두 달 만에 둘 다 지진아가 되어
선생님이 방과 후에 따로 교육을 시켜야 했다.
다 떨어진 티코차를 타고 다니면서
남편의 자존심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L집사는 장로가 되어 있었는데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하여 우리 부부를 불러냈다.
“워커힐 로비 말고, 문 앞에 서 계셔요~~”
그렇게 워커힐 문에서 두 시간을 벌을 서기도 했다.
어느 날 남편과 나는 희망공원이라는 데에 올라가서
절망적인 심정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L집사는 회사(중국 빵집) 인수에 대해,
예도, 아니요도 아닌 태도를 취했다.
남편이 "이제 나는 땅이라도 파고, 당신은 보모라도 해서 빚부터 갚읍시다."
라고 말하는데
문득 이전에 중국에서 대학생 한 명을 도와주었던 생각이 났다.
▶왕 형제는 공대 영어과 4학년 학생이었는데, 우리와 자주 교제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한동안 얼굴이 까매 가지고 무슨 고민이 있는 것 같아 보여서
그의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빚이 4천원($500)이래요" 그런다.
가난한 농촌에서 명문 대학에 입학은 하였는데
재정적으로 힘이 들어 입학 초기부터 100원씩 빌린 돈이
어느새 중국 돈 4천원이 된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들을 때 우리에게는 참 가벼운 액수라는 생각이 들어
그것을 우리가 해결해 주자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금...
4천 위안이 왕형제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큰 돈이었지만
우리 부부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듯이,
지금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4천만 원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본다면?
분명 아무것도 아닌 액수일 것이라는 생각...
“우리가 잘 못 해서 지은 빚도 아니고
이 일은 분명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거예요.”
남편을 위로하고 내려온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아침,
남편이 한 방에서 자고 있는 우리들을 깨우더니 기도를 하자고 했다.
부시시 일어나 앉은 우리에게
"자 ~~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두 가지 좋은 소식이 있어요!" 하는 것이다.
미국에 있는 어떤 집사님 내외분이 우리 얘기를 듣고
회사 빚을 갚아 주고
우리 가족을 위해 게스트 하우스까지 마련해 주신다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 선배 중의 한 분이 미국에 계시는데, 그 분을 통해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미미(이 글의 저자)는 남편이 너무 그 고민을 많이 해서
잠시 꿈과 현실을 혼동했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일 줄이야~~
미국의 기부 문화가
한국과 중국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를 살리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남편은 마취과 의사이고, 부인은 산부인과 의사인 그 분들이
우리 가족을 구하여 주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윗글의 댓글
▶미미 님 내외분은 <믿음의 은사>가 있으신 모양이네요.
저는 그 까짓 4천원만 있으면 (영국 유학) 공부에 박차를 가해서
과정을 끝낼 수 있을텐데
이렇게 3년 째 맨날 중국집 음식 배달하며 삽니다~~~
기도 안 해 봤냐고요?
하나님은 예쁜 사람들은 사랑하시지만
저 같은 인간은 무지 뺑뺑이 돌리시는 분이시거든요.
5년 동안 한국 한 번도 못 갔시오^^.
미미 님 내외분은 참 이쁘신 분들인 것 같아요. 진심입니다~~~.
▶저도 가끔 그 까마귀가 무엇을 물어다 주었어요.
신학대학 4년 내내 그 까마귀 덕에 학교 댕겼고
석사 과정도 세 개나 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여기 영국에 와서도 계속 까마귀를 바라보았어요.
때로는 차도 물어오고, 돈도 물어오고 , 사람도 물어 오고......
런던에서도 그 까마귀는 쉬지 않고 뭘 물어다 주었어요.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오라는 까마귀는 안 오고, 대신 계속 일자리가 생기더군요.
금식하며 기도하며 "아부지, 이제 왜 까마귀 안 보내줘요?" 물었지요.
제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 자슥아...... 청소부, 접시 닦이, 배달부. 그게 다 내가 까마귀 통해 보낸 거야."
이 곳 런던에 1백 여 목사들이 택시 기사, 청소부, 음식 배달, 민박집, 관광객 안내...
다들 그렇게 먹고 살지요.
게 중에는 부모님 잘 만나 별 고생 없이 공부만 하며 사는 내일의 일꾼들도 있고요.
▶영국인들과 호흡하며 느끼는 일 중에 하나는
그들은 경제적으로 남의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 참 신기하네요.
심지어 아들이 결혼을 하는데도 부모가 땡전 한 푼 안 줘요.
"왜 안 주느냐?" 물으니
"내 것을 왜 자식에게 주냐? 지가 벌어서 살아야지."
그래서 우리 풍습을 이야기 하니, 너무도 신기해하는 것이 아닙니까?
영국 학생들은 고등학교 마치면 대학, 결혼, 주택 구입 일체를 스스로 벌어서 합니다.
부모는 줄 생각 않고, 자식은 받을 생각 않고......
▶우리 한국 교회 신앙에, 유난히 물질 관련 간증이 많은데
한 편으로는 은혜로우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자꾸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것을 바라보니
돈 귀한 줄 잘 모르고, 돈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공돈으로 여기기 쉽고, 또 헌금을 많이 강요하고......
저도 ‘까마귀 역사’ 부인 안 합니다~~~
하지만 땀을 흘리며 살게 되면서 부터는
땀 흘려 번 돈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일인지 알게 되었어요.
교인들이 한 푼 한 푼 벌어 하나님께 드린 헌금의 의미도 알게 되었고요.
그 한 푼의 돈을 바치기까지 얼마나 노심초사 마음 졸이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수고를 했는지를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헌금에 대한 새로운 생각도 많이 들더군요.
제가 만약 계속 까마귀 덕만 봤으면... 아마 돈 무서운 줄 몰랐을 것 같아요.
그리고 계속 의존적이 될 수도 있었고요.
▶요즘은 이런 기도를 합니다.
"주님, 건강만 책임져 주십시오. 힘닿는 데 까지 일하겠습니다."
두 아이들도 이젠 자기들이 벌어서 대학가고 결혼하고 살겠다고 하네요.
부모 인생, 자기들 인생 다른 거라고도 말 하고요.
제 장모께서 서울의 어느 큰 교회 권사인데
사흘이 멀다하고 목사, 선교사들이 와서는 '도아 달라'고 읍소해서
권사하기도 너무 부담스럽다네요.
▶저도 한국에서 목회할 때는 이런 생각 못해 봤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다른 구조에서 살아가는 이들과 호흡하다보니
생각에 변화가 많이 왔어요.
그렇다고 영국인들이 다 옳다는 건 아니고요.
단지 그들은 대부분 <돈>이 오가는 일을
그리 자연스러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인상 깊어요.
언제나 공식적인 기부를 통해서 공개적으로 일을 하고
<돈>에 관련된 야야기는 간증거리에 별로 포함되지 않은 것 같아요...
<영국 유학 중인 어느 목사님의 댓글 퍼 옴
◔윗 댓글의 댓글
광야에서 40년간 내리던 만나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마자 즉시 그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첫 해에 거기서 난 것을 거저(은혜로) 먹게 하시고,
이듬 해에도 거기서 난 것을 거저 먹게 하시지만
3년째는 제 손으로 심고 거두어 먹으라고 말씀하신 적도 구약에 몇 번 나옵니다.
위에서 잘 지적하셨듯이
까마귀(=조지 뮬러) 식으로 기도 응답 받는 수도 있고,
또한 자기 손으로 일해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뭐든지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알맞는 방식 대로 case by case 주실 것입니다.
굳이 비율로 따진다면, (후원이 부족한 사역자들이)
조지 뮬러 식 응답과 자기 손으로 직접 일해서 응답 받는 식의 비율이
2:8쯤 된다고 할까요? (개인적 관찰임)
조지 뮬러 식 응답이 반드시 있지만, 일반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까마귀만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가는 낭패 당할 수 있습니다.
조지 뮬러 식(=까마귀 식)은
하나님께서 그런 식으로 응답하실 때는
위 글 미미 님의 경우에서도 보듯이 <먼저 믿음을 주십니다.>
위에서 미미 님은 '그까짓 4천만원'이란 믿음이 확 생겼습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응답이 올 것이라는 어렴풋한 믿음요!
그런 믿음이 안 올 때에는.. 열심히 일해야 되겠죠?
일하는 것도, 위에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여러 가지 교훈과 연단(유익)이 많습니다.
그것을 두고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라고 단순하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편집자
◑장애우들의 기도를 들으신 주님
고훈 목사님 교회(안산 제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장애인학교 교사인 남자 집사님이 갑상선에 암이 발생해
5㎝짜리, 4㎝짜리, 3㎝짜리 종양 3개가 무섭게 자리 잡았습니다.
의사는 수술하고 치료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고, 그는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러나 입원하는 날부터 9일 동안 수술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집사님에게 열병이 발생해 체온이 40도를 오르내려, 수술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장애인 제자들은 선생님의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했고
교회는 열병이 빨리 나아 암이 더 확산되기 전에
수술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9일 후 하나님의 응답으로 열이 내렸고
곧장 최종검사를 받았는데
놀랍게도 3개의 종양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9일 동안의 열병이 그 무서운 암덩어리 3개를 녹여버린 모양입니다.
중보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열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했으나
하나님은 암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더 악화될 때 낙심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가끔 더 악화되게 해서 고치시기도 하십니다.(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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