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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2 기독교인의 목표의식

LNCK 2008. 11. 5. 14:10

◈기독교인의 목표의식                 눅9:49~50              설교 녹취



▲쑈 하지 맙시다!

한 두 번 하면 그것은 쑈다.

그러나 계속하면 그것은 충성이요, 영향력이다.


부모에게 맛있는 것을 사다 드린다든지,

새벽기도를 드린다든지

무엇을 한 두 번 하는 것은 ‘쑈’지만,

그것을 계속 하는 것은 절대 ‘쑈’가 아니다.


상사를 기쁘게 하는 것도.. 한 두 번 하면 ‘아부’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은.. ‘충성’이다.


요즘 광고 카피에 “쑈를 하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가 세상에 ‘쑈’를 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한 두 번 보여준다는 의미)

정말 계속해서 빛을 발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

선한 일을 ‘계속’하는데서 그런 능력이 나오는 것이다.



◑목표를 분명히 정하면.. 삶은 성공한다.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면, 아무리 가는 길이 그럴듯하게 보여도

종착역은 엉뚱한 곳이 된다.


▲일본이 노벨상을 18명이나 수상한 이유

2008년도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 수상자가 일본인으로 결정되었다.

그래서 금년에 4명을 합해서, 이제까지 모두 18명의 일본인이 노벨상을 받았다.


전통적으로 동양인은 노벨상을 받기가 참 어렵다고 하는데,

어째서 일본은 한 두 명도 아니고, 무려 18명이나 노벨상을 수상했을까?

참 얄미우면서도, 본받아야 할 이웃나라이다.


일본은 일찌감치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백년 전부터 이 분야에 집중 투자해 왔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GDP(국가총생산량)의 2%를 기초과학 분야에 투자해왔다.

일본이 세계 2위권 경제규모를 감안한다면, 대단한 액수이다.


약 20년 전부터 집중 투자하며 육성한 열매가 오늘날 차츰 나타나는 것이다.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둘 다 수상한 것은, 기초과학을 휩쓸었다는 말도 된다.

과거에 기초과학에 투자하고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앞으로 수 십 년 안에 일본에서 수 십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게 하겠다’고

했던 말이 이제는 결코 공언空言으로 들리지 않는다.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한 18명 일본인 중에 13명이 기초과학 분야에서 나왔고,

앞으로 2~30년 동안 계속해서, 기초과학 분야에 수 십 명의 일본인 수상자가

더 나올 것이라고 저들은 내다 본다.


요지는, 목표를 올바로 세우고 매진한 결과

올바른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목표의식이 희박한 한국 학생들... 중도탈락 비율이 높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미국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미국 대학교 관계자들이 놀라고 있다.

‘어떻게 고등학교에서 영어로 공부한 것도 아닌데..,’


그런데 최근에 하버드 대학교에 석사 논문 한 개가 발표되었다.

조사 기간 중에 미국에 명문 대학에 입학한 한국 학생들 숫자가

약 1천4백 명 인데, 그 기간동안 중도 포기한 학생이 44%나 되었다고 한다.

어림잡아 절반이다. 2명 중에 1명이다.


한국 말고도, 이스라엘, 인도, 중국, 학생들을 조사해 보았는데,

그 중에 유대인들은 12.5%가 중도탈락

인도인들은 21.5%가 중도탈락

중국인들은 25%가 중도탈락

그런데 한국은 그런 나라 학생들보다 약 두 배로 중도탈락했다.


그 논문은, 그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지적했다.

“(한국) 학부모들의 지나친 입시 위주의 교육 방식 때문에 그랬다.”


부모가 “너 거기 들어가야 성공한다”고 너무 다그쳤던 것이다.

자녀들도 “거기만 들어가면 다 되나 보다...”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막연하게 그 대학에 입학하는 것만 목표로 해서 살아왔는데,

이제 그 대학에 입학한 다음부터는, 뚜렷한 목표 없이 생활하다 보니까,

대학 공부와 생활에 적응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에 ‘내가 왜 이 대학교에 입학해야 하는지...’

‘내가 왜 이 전공을 택해서 그 저명 교수 밑에서 배워야 하는지...’

‘이 대학을 마치고 나는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이런 분명한 목표의식이 있었더라면, 중도탈락하는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연하게

‘그 대학에 입학하기만 하면, 나는 남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거야..’

라는 생각만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온 다음에는 도중에 하차해 버린다는 것이다.

대학공부와 생활에 대한 목표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학교의 입학처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 사회는 남을 위하여 작은 것이라도 희생할 줄 알고, 베풀 줄 아는

희생정신을 가진 리더십을 요구하고 환영합니다.

학문적으로 뛰어나다 해도 사회생활에 서툰 사람,

또는 편협한 학생들은 환영받지 못합니다.”


한국은 ‘공부만 잘 하면’ 어디 가든지 환영받는다.

그런데 거기에 가 보니, 아니더라는 것이다.

자기를 환영해 주고 떠받들어 주는 사람은 한국처럼 많지 않았다.

아무도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까 견디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해 버린다.


※관련글 : 주입식 교육과 실험식 교육 -클릭-



◑목표의식이 분명했던 제자들


▲본문은 제자들이 목표를 잘 못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느 날 제자들이 와서 말했다.

“주님, 보니까 어떤 모르는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더라고요.

그래서 당연히 못 하게 말렸죠.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 소속이 아니잖아요!”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의 배타적 태도를 교정해 주셨다.

“금하지 말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으면, 우리를 위하는 사람이다.“


크리스천의 분명한 삶의 목표는

사도바울의 말대로 ‘먹든지 마시든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이다.


‘주님이 영광 받으시면 되지!’ 만약 이런 분명한 목표를 생각했더라면

자기들이 쫓든지, 남들이 쫓든지... 누가 귀신을 쫓아내든지.. 별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마 엉뚱한 데, 자기 목표를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앞서 눅9:37~43에서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제자가 아닌 사람이 귀신을 쫓아내니까  눅9:49

어쩌면 예수님의 직계제자인 자기들의 무능함이 드러나면서

열등감이 생겼을 수도 있다.


만일 제자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목표만 분명히 있었더라면,

누가 귀신을 쫓아내든지 그것은 아무 관계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으면,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눅9:50

그렇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예수 이름 아래’ 누구든지 서로 동역한다.

내 편, 네 편 따지지 않는다.

남이 열심히 섬기면, 괜히 싫어하기 보다는.. 오히려 기뻐한다.

남이 봉사 많이 하면, 어색해 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한다.


‘저거 뭐 이상하다!’ 면서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사람은

아직 신앙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본문의 제자들처럼!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무슨 말을 포장해서 하지만, 그 이면 속 마음으로는

‘내가 못 하면 너도 못 해야 돼!’ 하는 속 좁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할 때 그렇다.


내가 못해도, 다른 사람이 잘 해서.. 주께 영광이 되면... 얼마나 좋은가!

내가 못 하는데, 저 사람이 잘 해서.. 신경질나면 안 된다.

괜히 꼬투리 잡아서 긁어버리는 자기 죄성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워렌 버핏을 보시라!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 3백억$을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했다.

그 돈이면, 자기 이름의 재단을 1백 개도 세우고 남을 큰 돈인데

‘그 일은 빌 게이츠 부부가 나보다 한 수 위 전문가다’라는 생각이 드니까

자기가 하든, 게이츠가 하든.. 누가 하든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말 아프리카 사람을 잘 구제할 수 있는가?> 하는 목표였다.

그 일은 게이츠 부부가 너무 잘 하고 있으니까, 그들에게 기부해 버렸다.


한국의 유교적 위계질서 사회에서는

뭐든지 ‘반드시 나를 통해서 thru me’라는 의식이 무의식속에 자리 잡고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그런 자기중심주의를, 여지없이 깨뜨려 버리셨다.


 

◑기독교인의 목표의식


▲기독교의 목표가 세상 목표와 분명히 다른 점 

세상의 목표는... 모든 일을 ‘자기 영광을 위하여!’이다.

기독교의 목표는.. 모든 일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이다.


세상의 목표는... ‘남을 희생시키고, 밟고, 경쟁에서 이겨서 올라가라’ 이다.

기독교의 목표는.. ‘자기가 희생해서, 남이 자기를 밟고 올라가는 사다리가 되라’ 이다.


본문의 제자들은 <남이 못되게 막아서> 자기가 잘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참된 기독교는 <남이 잘 하도록 도우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희생시킨다.

한 알의 밀알처럼 땅에 떨어져 죽는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남을 밟지 마시라!

그것은 사실 <자기 영광>을 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진정 위하는 사람은.. 남을 밟지 않고, 도리어 세워준다.

그리고 묵묵히 자기를 밟고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되어준다.


▲세상 승리와 기독교의 역설적 승리

그런데 세상 논리와 상식은, 남을 밟고 올라가는 사람이 승리할 것 같은데,

성경의 역설적 진리는, 사다리가 되어 준 사람이

밟혀서 죽은 다음에.. 부활하여.. 많은 열매를 맺어서 승리하는 방식이다.


둘 다 같은 승리인 것 같지만, 완전히 다르다.

세상 승리는 자기 한 명 살고, 남들 다 죽이는 ‘정글의 법칙’적 승리지만,

기독교의 승리는, 자기는 희생해서 죽었다가.. 부활해서 살고,

남들은 자기가 사다리 되어줘서 살리고

그래서 모두가 사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십자가 정신’을 깊이 깨닫지 못한 사람은

명분은 <예수 이름, 예수 영광>을 위하는데

방법론은 <세상 철학, 경쟁에서 승리 방식>을 따른다.

예수 이름을 팔았지만, 이면은 사실 <자기 이름, 자기 영광>인 것이다.

그러면 승리한 것 같은데, 모래 위에 쌓은 승리요, 오래 못 가서 욕 먹는 승리다...

 

<08.10.12. 인터넷설교 녹취, 편집                                    [주제별 분류] 삶의 통찰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