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소망에 눈뜬 사람 히10:23 도서축약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유기성, pp.162~196. 읽고 축약
◑노랑 고무신 한 짝
1950년대 초반 강원도 어느 깊은 산골에 상수라는 아이가 살았습니다.
어느 날 상수는, 큰아버지로부터 노랑 고무신 한 켤레를 선물 받았습니다.
난생 처음 받아본 새 고무신이 너무 아까웠던 상수는
그 신발을 신지 않고 손에 들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상수는 개울에서 노란 고무신을 씻다가 그만 한 짝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고무신은 물살을 타고 아래로 떠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상수는 고무신 한 짝을 건지려고, 무작정 개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고무신은 계속 떠내려갔고, 큰 강에 이르렀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고무신을 따라갔는지, 어린 상수는 결국 길을 잃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졸지에 고아가 된 상수는, 온갖 고생을 다하며 한 많은 세월을 살았습니다.
어느 덧 세월이 흘러 초로의 노인이 된 상수는
TV 이산가족 찾기 프로에 나와 굵은 눈물을 흘리며 그 때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마침 그 시간에 그의 형이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동생을 알아보고
방송국에 연락했고, 그렇게 해서 다시 가족과 만나게 되었지만,
어머니는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셨고,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치매를 앓아,
50년 만에 다시 나타난 자식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초로의 노인이 된 상수는, 아무 말도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나는 그 TV 프로를 보면서, ‘우리 인생도 저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낱 노랑 고무신 한 짝처럼 별것 아닌 것을 붙잡으려고 내달리다가
정말 소중한 것들을 다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는 그런 허탄한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은 삶이 끝날 때, 죽음 앞에 섰을 때에야 비로소
여태까지 자기가 쫓아온 노랑 고무신 한짝 때문에
더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 명예, 권력, 건강, 직업 등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지 알지만,
그것들은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것들은 아닙니다.
진짜 절대적인 것은, 우리가 죽음 앞에 직면했을 때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나라/천국을 바라보고 사는 믿음’입니다.
▲꿈에서 본 두려운 길
내(저자)가 철원에서 군목으로 근무할 때, 평생 잊을 수 없는 꿈을 꾸었습니다.
내가 죽어서 하나님 앞으로 걸어가는 꿈이었습니다.
나 혼자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곧 하나님 앞에 서게 될 텐데,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맞아주실까?’
하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때 소원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안아주시면서 “수고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는
그 한 마디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 한 마디만 들을 수 있다면, 다른 어떤 것도 다 바꿀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안타까워하다가, 깨보니 꿈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내 유익을 위해 살지 않겠습니다!’ 라는 것이 일평생 소원이 되었습니다.
내 유익만 위해 산다면, ‘나중에 걸어가게 되는 그 길’,
즉 꿈에서 본 그 길을 실제로 걷게 될 날이 왔을 때,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나는 정말 천국 소망을 가진 사람인가요?
나는 자연적으로, 내가 천국 소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경을 묵상하다가 이런 질문이 들었습니다.
‘내가 밭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한 농부처럼.. 흥분하고 기뻐 날뛰는가?’
남의 밭에서 일하던 소작 농부는,
그 밭에서 남모르는 보화를 발견하고, 자기 전 재산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샀으며,
자기 마음이 흥분하고, 기뻐하고 크게 만족했습니다.
나는 내 마음이, 그 농부만큼은 기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천국의 기쁨과 소망을 머리로만 알고 있었지,
정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소망은 없었던 것입니다...
◑현재 임하는 천국
▲‘현재 천국’의 영광을 사모합시다!
죽어서 가게 될 내세 천국만 바라보는 사람은,
‘시한부종말론자’처럼 현실도피자가 될 약점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믿는 천국은, 죽어서 가게 될 ‘내세 천국’과 아울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임하는 ‘현재 천국’을.. 둘 다 포함합니다.
주님의 통치(다스림)가 임하는 곳은, 지금 이 세상도 ‘현재 천국’입니다.
과거에 믿음의 선배들은, 죽어서 가게 되는 ‘내세천국의 영광’만 사모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 이 땅에 이루어지는 영광’을
사모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섬기는 교회는 물론이요, 지금 우리가 다니는 직장에서도
‘하나님의 통치’가 나타나는, ‘현재 천국의 영광’이 드러나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의, 평강, 희락이 넘치는 곳이 바로 ‘현재 천국’입니다. 롬14:17
▲전체 하나님 나라를 생각해야!
미국 LA 어느 지역에 ‘Church on the Way’라는 작은 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
개척교회가 보통 그렇듯이, 사람들이 쉽게 모이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그 교회 근처에는 제일침례교회라는 유명한 대형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얼마나 큰지, 교회를 지나려면 신호등을 4개나 통과해야할 만큼
큰 규모였습니다.
그 개척교회 목회자는 운전을 하며 지나갈 때마다
그 4개의 신호등에 한 두 번은 걸리게 되는데,
신호대기 시간에, 열등감과 비교의식 때문에 몸서리쳤습니다.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령님이 그를 감화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자신의 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대형교회가, 이제는 아군이요, 동지로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눈물로써 자신의 옹졸함을 회개한 그 목회자는
그 다음부터 그 교회 앞을 지날 때마다, 조용히 그 교회를 축복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저 교회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그 교회로 들어오고 나가는 수많은 교인들로 인해
더 이상 불편한 심정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자,
그 옆의 작은 자기 개척교회도 점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꽤 몇 년 후, 그 대형교회는 더 부흥되어 더 넓은 곳으로 이전 해 갔습니다.
그 때 수천 명의 성도로 성장해 있었던 ‘Church on the Way’ 교회는
신호등 4개를 차지하고 있던 제일침례교회 건물로 이전해 들어갔습니다.
결국 두 교회를 통해 모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었던 것입니다.
▲곧 임할 나라 때문에 거지 행세를 한 여자
일제 말엽 함경도 나남이란 도시에 한 여자 거지가 나타났습니다.
그 여자는 여기저기서 밥을 빌어먹고,
아이들이 돌을 던지며 놀려대도 실실 웃기만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여자를 그저 정신 나간 여자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패망하고 그 도시에 소련군이 진주했을 때,
그 여자가 소련군 장교 군복을 입고 사람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녀는 소련군이 그 도시의 상황을 정탐하기 위해 간첩으로 파견한
소련군 장교였던 것입니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정신 나간 거지 행세를 하면서 파악한 정보를 바탕으로
도시의 지주와 관리들을 잡아들여서 인민재판에 회부했습니다.
소련군 여자 장교는, 곧 소련이 통치하는 나라가 임한다는 사실을 아니까,
거지꼴을 하고 사람들을 조롱을 감내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천국과 하나님 나라가 분명히 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의 처지를 한탄하고 불평할 수 있겠습니까?
천국의 소망이 분명한 자는, 결코 현실의 처지를 불평할 수 없습니다.
◑미래 임하는 천국
▲‘돌짝밭’에서도 소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
한번은 서울 어느 큰 교회의 부흥회에 초청되어
그 교회에서 마련해 준 서울의 최고급 호텔 숙소에서 지냈습니다.
정원은 잘 꾸며져 마치 산속의 고급 별장 같았고,
유럽식으로 꾸며진 방도 너무 아름다워, 잠자며 시간보내기가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하룻밤을 자고 새벽집회를 인도하고 난 후, 다시 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커튼을 젖혀 보니,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핀 정원이 내다보였습니다.
‘도대체 내가 뭐기에 이런 호강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불현듯 제 머릿속에 할아버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친할아버지를 생전에 한 번도 뵌 적이 없습니다.
할아버지는 625전쟁이 터지기 전에 평양 사동교회를 담임하고 계셨는데,
전쟁이 나자 가족을 모두 남쪽으로 내려보내고, 혼자 남아 교회를 지키다가
인민군들에게 끌려가 순교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할아버지 생각을 하다가, 객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제가 이런 호강을 누리는 것은,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후손에게 물려주신 상급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나는 소위 ‘옥토밭’ 목회자였습니다.
이렇게 뒨 배경에 할아버지의 순교의 피가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잊고 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평생 ‘돌짝밭’을 일구시다가 순교로 생을 마치셨습니다.
그 분이 받으셨어야 할 상급을, 손자인 내가 대신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날 이후, 나는 ‘돌짝밭’ 사명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옥토밭’ 만을 바라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 ‘옥토밭’에서 호강을 누리다가, 훗날 주님의 나라에서 받을 상급이 없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 ‘돌짝밭’에서 피와 땀을 흘릴지라도,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 큰 상급을 받게 된다면,
그보다 더 소망스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현실의 신앙생활 여건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습니다.
때로 우리는 그런 불공평함 때문에 주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약 다가오는 미래천국에 대해 눈을 뜬다면,
우리는 이런 불공평이 <원망>의 조건이 아니라, <감사>의 조건임을 알게 됩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계14:13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선교하던 찰스 마쉬 선교사는
현지에서 7명에게 세례를 주었지만, 모두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이 선교사는 너무 안타까워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래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이런 응답을 주셨다고 합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천국에 소망을 걸고 살아야!
▲나의 셋째 동생은 의사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동생 내외는 의료선교사로 지원하고, 선교훈련을 떠났습니다.
동생이 떠나는 그날, 동생을 위해 기도하다가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동생이 왜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을까?’
그때 주님이 내 마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동생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다!”
나는 그 음성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니까,
세상에서 보장된 직업(의사)이 크게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동생을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유언장에 공통적으로 쓰인 말 : ‘미안하다’ ‘사랑한다’
저희 교회에서 제자훈련을 할 때, 유언장 작성 시간이 있습니다.
약 30분 정도 진지하게 생각하며 자기 유언장을 작성한 다음
소그룹 안에서 서로 발표하며 나눕니다.
성도들이 작성한 유언장의 내용은 거의 같은데, 크게 2가지 내용입니다.
하나는 ‘미안하다’이고, 또 하나는 ‘사랑한다’입니다.
자신의 죽음 앞에서, 사람은,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잘못한 것을 미안하게 여깁니다.
죽음 앞에 섰을 때, 비로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소중한 사람을 그간 얼마나 소홀히 대해왔는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평소에 중요하게 생각해왔던 가치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더 이상 소중한 가치들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야 비로소 가장 소중한 것들을 깨닫는다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우리의 가족 가운데 ‘현재 천국’이 임하도록, 날마다 기도하며 최선을 다합시다!
▲당장 천국 갈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교인들에게 “천국 가시기 바랍니다!” 하면,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가시기 바랍니다!” 하면, 싫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천국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지금 당장 가기는 싫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식도 키워야 하고, 여러 현실적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복음전파를 위해서 천국을 늦게 가려는 사람을 제외하고)
사람들이 천국 가기를 자꾸 지연하고 싶은 것은,
아직 천국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짜 천국에 대해서 잘 알게 되고, 우리가 그 영광을 조금이라고 맛보기만 하면,
변화산 위에서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천국을 너무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모두가 전부 빨리 천국에 보내달라고 날마다 생떼를 쓰면 어떻합니까?
이래 저래 주님은 전지전능하신 지혜로,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만 보여주십니다.
다만 우리가 오늘 당장 천국에 가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천국을 오늘, 날마다 <사모하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눌러 붙어 살 것처럼 사는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천국을 바라보는 신앙을 가진 사람은 2가지가 나타납니다.
①세상의 유혹을 이깁니다.
천국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며, 들어갈 준비를 날마다 하고 사는데,
세상의 유혹에 빠져서 가룟유다처럼 주님을 배반하면 어떻게 합니까?
천국을 바라봄으로써, 세상의 여러 달콤한 죄의 유혹을 이깁니다.
정직하게 살려다가 가난하게 되더라도, ‘천국에서 상급’을 기대하며 넘어갑니다.
복음전파 하느라 돈을 못 모으더라도 ‘천국에서 큰 집’에 살 것을 기대합니다.
②핍박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핍박을 참습니다.
천국을 바라봄으로써, 세상의 극심한 고난과 핍박도 인내하며 감당합니다.
일례로, 스데반 집사님이 그랬습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행7:56
▲천국 소망은 죽음이 임박한 노인들을 위한 사은품이 아닙니다.
성도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며, 지금 현재가 전부가 아니니,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게 합니다. 히10:23
천국 소망에 눈을 뜨면, 온전한 삶, 성결한 삶, 헌신적 삶을 살게 됩니다.
영어로 Bird's eye view (조감)I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이 세상은, 땅에서 바라보는 세상과 사뭇 다릅니다.
비행기를 타고 세상을 내려다볼 때, 우리는 비슷한 느낌을 가집니다.
지상에서 올려다보는 빌딩, 높은 산.. 모두 굉장하게 보이지만,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그것들은.. 그저 평평해 보입니다.
다 똑 같은 성냥곽입니다.
천국소망을 가진 사람은 Bird's eye view (조감)으로 세상을 내려다봅니다.
지상에 살지만, 세상을 올려다보지 않고, 내려다보는 것입니다.
▲예화 : 만약 오늘이 마지막 설교라면? -클릭-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유기성 목사님 저, pp.162~196. 읽고 축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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