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순종의 기적 히6:14 도서 요약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유기성 저, pp.129~134. 축약, 편집
▲포기하면 더 좋은 것 주신다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양보해서 한쪽 요단 편을 잃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동서남북을 다 주겠다고 하셨다. 창13:14~15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면 하나님을 위해 신앙을 위해 얼마나 포기하느냐?
붙들려고 할 때는 더 큰 문제가 일어났지만
포기할 때는 더 큰 것으로 보상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소돔을 포기할 때.. 가나안을 주셨다.
이스마엘을 포기할 때.. 이삭을 주셨다.
이삭을 포기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
이것이 하나님 백성의 성공의 비결임을 믿으시기 바란다. (이 단락 펀 글)
▲학위를 내려놓아라!
내(유기성 목사님)가 서울 광림교회 부목사로 사역하며
신학대학원 공부를 병행할 무렵,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려니, 자연히 학업에 어려움이 있었다.
교회 부교역자 사역을 하는 가운데서 학업을 계속하는 것은
주위에서 많은 배려를 해 주셨지만, 그래도 쉽지 않았다.
겨우 겨우 코스웍을 끝내고, 이제 석사 논문학기만 남겨놓게 되었다.
“하나님, 이제 논문 학기만 남았습니다.
논문 작성은 특히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합니다.
학업도 잘 마치고, 목양에도 소홀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예상치 못한 말씀을 주셨다.
‘네 대학원 석사 학위를 나에게 바칠 수 있겠느냐?
어차피 공부는 다 했고, 논문만 쓰면 되는데,
마음에 부담이 되면, 차라리 학위를 포기하고
사역에만 집중하는 것이 어떻겠니?’
▲‘차라리 그 말씀을 안 들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학문이나 학위의 권위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게는 그것이 특별한 경우였다.
나는 마음속에 언제나 <학벌, 학위>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하나님은 그런 내 마음을 꿰뚫어 보시고,
모리아 산의 이삭처럼, 그것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셨다.
즉, 석사학위를 포기하라고 하신 것이다.
이것은 내게 청천벽력 같은 통보였다.
나는 일찍이 목사인 부모님의 서원에 따라.. 나도 목사가 되기로 일찍부터 결심했고
이왕 목사가 되기로 하고, 이왕 신학교에 가기로 결정했는데,
혹시나 ‘공부 못 해서 신학교에 갔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고등학교 때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모른다.
그 결과, 신학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고, 또한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것은 은연중에 내 마음에 자랑이자,
못다 이룬 세상 성공에 대한 보상(대리만족)과 같은 것이었다.
대학원에 진학 할 때도, 그냥 목회신학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꼭 석사학위를 따기 위해
굳이 독일어 시험을 치르면서 본 대학원을 선택했다.
나는 늘 주위에서 ‘공부를 잘 한다’는 평가를 들었고, 또 계속 듣고 싶어 했다.
그래서 학위를 따서, 보란 듯이 나 자신을 차별화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보다...
▲하나님께서는 정확하게 그 <석사학위>를 바치라고 하셨다.
나는 신학대학을 마치고 군목으로 가면서 목사안수를 받았고,
제대 후에 곧바로 부교역자 생활을 하는 중에, 학교를 더 다닐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중 광림교회 부목사로 섬기면서 틈틈이 학점을 따서 모았다.
그래서 코스웍을 끝내고, 이제 논문을 쓰려고 하는데,
하나님은 그 <석사학위>를 따지 말라고 하셨다.
지금은 석사 학위가 흔한 시기인지도 모르나,
그때 당시만 해도 석사 학위는 희귀하고, 자랑할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대학원 논문학기부터 포기했으니,
문교부가 인정하는 학력으로는 <학사>만 가진 목사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요즘도 집회에서 강사 초청을 받을 때마다,
의례히 학력과 경력을 질문 받는다.
그러면 ‘신학대학원 중퇴, 졸업예정자’ 이렇게 길게 쓸 수 없으니
그냥 ‘감리교 신학대학교 졸업’ 이렇게 간단히 쓴다.
그러면 “신학대학원은 어디 졸업하셨어요?”
“대학원은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어색해지니까, 대화의 주제는 금세 다른 것으로 옮겨진다.
물론 저도 학업을 중도포기 하기 전에,
선배 목회자 몇 분과 제 일을 상담해 보았다.
그들 대부분은 남은 논문학기를 계속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이 우선이냐, 네 자랑이 우선이냐?’ 라고 물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결국 학업을 포기한 것은 잘 된 결정이었다고 본다.
내가 그때 석사 학위를 땄다면, 또 이어서 목회학 박사, 신학박사에다가
‘포닥 post-Doc’이 있으면, 거기까지 계속 도전했을 런지도 모른다.
사람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
만약 그랬다면, 제 개인의 학문적 발전을 이루었을 런지는 모르나
결국 목회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마도 지금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었을 것이다.) *( )는 편집자 주석
▲쉽지 않은 갈등
토요일이 등록 마감인데, 나는 금요일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나 고민이 되었는지 몸살이 나서 열이 펄펄 오르고,
자리에 몸져누워 일어나지도 못했다.
나는 내가 왜 그렇게 앓고 있는지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주님과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리에 누워서 끙끙 앓다가 금요철야기도회 시간이 되어
혼자서라도 기도는 해야지 하고 일어나 이불 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렇지만 기도는 할 수 없었다.
나는 주님과 싸우고 있었고, 나 자신과 맹렬히 싸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입을 열어 고백하고 말았다.
“석사 학위를... 바치겠습니다!”
그렇게 고백하고서... 나는 이불 위에 엎드려서 정말 서럽게 통곡하며 울었다.
아직 내 육신의 생명이 끊어지지 않았지만, 내 자아의 죽음을 경험한 것 같았다.
내 삶의 미래가 모조리 죽고, 주님이 내가 아주 오래 전부터 품어온
소중한 꿈을 송두리째 가져가버리신 것 같았다.
나는 이제 큰 교회를 목회하고 싶다는 생각은 버려야 했다.
요즘 세상에 박사학위 소유자도 수두룩한데,
석사학위조차 없는 사람을, 어느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청빙하겠는가?
지금 와서 보니, 나는 그 때까지도,
학위, 학력.. 이런 것에 굉장히 목매고 살았던 것이었다.
그런 것 없으면 거의 죽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 울고 나니,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열도 다 내렸고, 몸에서 힘이 났다.
그 순간 내 마음에, ‘잘 했다, 참 잘 했다’는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 다음날, 학교에 가서 자퇴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그간 학업을 핑계로 소홀했던 심방에 치중했다.
▲완전한 순종의 기적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예정대로라면, 신학대학원 석사를 딸 무렵이었다.
그 시점에, 부산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감리교회인)
부산제일교회에서 담임목사 청빙 요청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내게 부산에서 담임목회의 길을 예비하고 계셨다.
그래서 신학대학원 학위를 포기하라고 하셨던 것이다.
만약에 내가 그때, 학위에 매달려 목회를 소홀히 했더라면,
아마 부산에서 청빙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설령 청빙 받았다 하더라도,
내가 공부에 바빠서 담임목회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석사 학위가 없는 나의 학력은, 담임목사 청빙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때 부산으로 가서 10년간 목회하다가
안산광림교회를 거쳐
2003년부터 성남 복정역 근처에 있는 선한목자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다.
2004년도에는, 모교인 감리교신학대학교의 특별초청으로
그해 새로 완공된 채플에서 처음 열리는 신학생 부흥회를 인도하기도 했다.
사실 그런 자리에 설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총장님을 위시한 여러 교수님들, 대학원 학생들, 학부 학생들 앞에서
나는 3일간 말씀을 전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내게 벌어질 수 있었을까?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내 것을 포기하는 순간
성령님은 내 삶을 온통 기적과 간증거리고 채워주셨다.
▲혹시 지금, 성령님께서 내게 무엇을 <순종>하라고 요구하고 계시는가?
혹시 내게 아직도 권리포기 하지 못하는 것이 남아있는가?
내가 아직 버리지 못한 ‘세상’은 혹시 없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전적으로 순종할 때,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기 원하신다.
독자 이삭을 바침으로써 완전히 순종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축복하셨다.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또한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히브리서 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