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 받은 후에도, 외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출4:10 설교 스크랩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며 혀가 둔한 자니이다 출4:10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라는 말씀이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이 엄청난 사명을 주신 다음에도, 자기 입은 여전히 뻣뻣하다는 것입니다.
출3장에, 모세가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명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출4장에, 그래도 불안한 모세를 위해서
하나님은 지팡이를 던져서 뱀을 만들고, 자기 손을 품에 넣었더니 문둥병이 걸리는
그런 이적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라는 말은
그렇게 불꽃이 타나 사그라지지 않는 가운데 사명을 받고,
지팡이를 던졌더니 뱀이 되고, 손을 자기 품에 넣었더니 문둥병이 걸리는
그런 이적들을 다 체험한 후에도 <여전히 입이 뻣뻣하다는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사명 받기 이전의 자기 모습과 달라진 게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큰 사명을 받았지만, 자기 외적 조건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마음에 전에 없던 ‘믿음’은 생겼겠지만,
외적 조건은.. 아무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초라한 촌로였습니다.
모세는 자기 말이 어둔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애굽에 가서 바로와 대결하여 이스라엘을 구출해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말을 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로 이 일을 시키시려면
당연히 내 입술과 내 혀에 변화를 주셔야 한다는 것이 모세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명을 주신 다음에도
여전히 입은 뻣뻣하고 혀가 둔해서 말을 더듬습니다.
나는 본래 말이 능치 못한 자인데,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합니다.
사명을 받은 후에도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딱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모세에게 대하셨을까요?
▲1. 네 있는 모습 그대로 가라!
어떤 분들은 주일학교 교사 하라고 하면
“글쎄요, 하긴 해야겠는데 제가 더 배워서 하겠습니다”며 머뭇거립니다.
교회 봉사 하라고 권할 때도 마찬가집니다.
자기가 좀 더 생활이 안정된 이후에 봉사하겠다고 합니다.
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모세를 보면, 출애굽의 그 큰 사명을 받아서 떠나려는데,
‘외적으로’ 자기에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세의 마음 속에 <믿음> 말고, <은혜, 성령> 이런 것 제외하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외적으로 아무 것도 특별한 것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입이 둔하고, 가진 것은 고작 지팡이 하나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대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 모습 그대로 일하라고 하십니다.
▲2. 가서 말할 때, 네 입을 틔워 주겠다.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입을 지은 자가 누구냐?
내가 너 입과 함께 있어 할 말을 가르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출4:11
할 말을 미리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라
먼저는 ‘가서 말하라’ 그러면 ‘할 말을 가르쳐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출4:12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파송할 때
너희들이 법정에 끌려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염려치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일하는 현장, 그 현장에서 그곳에서,
하나님은 능력, 지혜, 언변을 직접 내려 주십니다. 신비한 방식입니다.
전도할 때도 그렇습니다.
‘전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고 전략만 짜다가는.. 전도 못 합니다.
전도 현장에 뛰어 들어가서 부딪힐 때, <전도할 능력>이 현장에서 임하는 것입니다.
가야만.. 능력이 주어지고,
일어서야만.. 힘이 나고,
말해야.. 말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환란과 핍박 앞에서, 어려움 앞에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바로 그 현장에 임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그 자리가 능력의 자리요, 역사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3. 가기만 하면, 뒷일은 주님께 믿고 맡겨야 합니다.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출4:12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다>는 확신이 있으면,
나머지는 하나님께 다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시키신 그 일을 한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은,
자기 생활 전체를 주님께 맡겨 버립니다.
반대로, 자기 생활이 아직 항상 걱정되는 사람은
<하나님이 내게 시키신 그 일을 한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생활을 책임져 달라’고 기도하기 이전에,
‘자기 사명을 확실히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는 편이, 차라리 더 현명합니다.
세상에도 월급 안 주고, 사람 쓰는 사장 없고,
출장비 안 주고, 출장 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어떠하시겠습니까?
<자기가 주님이 시키신 일을 한다>는 사명감이 확실한 사람일수록
생계 걱정이 사라집니다.
‘생계를 안 도와 주시면, 주의 사명 감당 안 하면 된다’고 마음 편하게 먹습니다.
물론 생계 말고도, 안전의 보장 등 주님이 책임져 주실 분야가 더 많이 있습니다.
사실 모세가 바로 왕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간이 배 밖에 나온 꼴입니다.
그러나 ‘뒷 배경’을 믿는 든든한 믿음이 있으니까, 그냥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명 받아서 가는 사람은, 뒷일은 모두 주님께 맡기고 간다는 것입니다.
▲4. 자기가 모자라는 부분은, 동역자를 세워 보충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래도 못가겠다고 버팁니다.
하나님이 실컷 말씀하셨더니,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합니다.
참 모세도 대단한 ‘고집형’ 입니다. 주님이 아무리 설득해도 못가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침내 노를 발하십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말 잘하는 네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 그를 동반자로 줄 터이니 데리고 가라.
그가 너를 대신하여 말 할 것이다. 출4:13~14
말 못한다고 불평하는 모세, 하나님은 말 잘하게 해 주시지 아니합니다.
‘말 잘하는 네 형과 함께 가면 되지 않느냐?’
평범하고도 오묘한 이 진리를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내가 부족하면.. 부족하다고 핑계하지 말고
그 부분을 메워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함께 일하면 됩니다. 얼마나 간단합니까?
그런데 이 간단한 진리를, 우리는 실천할 줄 모릅니다.
내가 못 가진 것, 다른 사람 가졌다고 시기하는 사람은,
독불장군처럼, 혼자서 일을 다 처리하겠다고 덤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주변 사람과 함께 일하라는 것입니다.
내게 부족한 것을 매워줄 사람과 함께 일하면 됩니다.
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귀중한 진리입니까?
말에 어눌했던 모세는, 말 잘하는 아론과 같이 가면.. 그만입니다.
아주 쉽게 해결될 문제였습니다. 오래 고민할 문제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변 동역자들과 함께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모두 함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이 보다 더 아름답고 귀한 일이 없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교제의 최고 차원입니다.
▲마치는 말
마침내 모세가 순종합니다. 애굽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지팡이를 들고, 아론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는 모세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양을 칠 때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초라한 모습 그대로입니다.
자랑할 것도, 내놓을 것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손에 든 것이라고 전에 들었던 지팡이 하나뿐입니다.
여전히 말을 더듬는 입이 뻣뻣한 사람입니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했지만’ (사정이 똑같았지만)
애굽에 가서 바로 왕 앞에 나타났을 때, 기적의 능력이 나타났으며,
바로에게 말할 때, 어눌한 입술이 틔어졌으며,
생명의 위협 등 모든 뒷 일은 주님께 맡겼고,
아론이란 대변자를 세워서, 동역자와 함께 나아갔습니다...
*관련 글 : 김삼환, 아무 것도 없을 때 능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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