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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준엄한 명령 1682

LNCK 2009. 1. 8. 10:27

 

◈바울의 준엄한 명령       딤후4:1-5         설교 스크랩

 

 

▲주님의 궁극적 관심

저(박삼우 목사)는 오늘까지 성경을 연구하면서

나름대로 얻은 한 가지 분명한 결론이 있습니다.

성경 66권을 다 읽어 보고 깊이 상고해보니,

하나님은 우리가 병들고/건강하며, 잘 살고 못/살고,

오래 살고/짧게 살고 하는.. 그런 문제에 대해 별로 흥미가 없습니다.

절대로 그것이 하나님의 궁극적 관심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주제는 언제나 ‘죄의 문제’가 그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불행한 이유가 죄 때문이요, 괴로움의 원인이 죄 때문이요,

슬픔의 밑바닥에 죄가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관심은 인생들이 죄 문제 해결 받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하나님의 관심이요 소원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사실상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영원 전에 계획하셨습니다. 때가 차매 독생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죄의 값을 대신 지불하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이제 이 구원의 역사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적용시키십니다.

이 놀라운 역사에 하나님은 우리의 참여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이루어진 복음을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전하라”는 본문의 이 말씀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큰 소원이 있다는 진리입니다.  

 

▲생각이 달라진 제자들

예수님의 제자들을 생각해보십시다. 제자들이 주님을 따라다닌 것은

주님을 통해 무엇인가 자신들이 유익을 얻기 위해서 였습니다.

예수님 따라다니면 무엇인가 자기들에게 돌아올 줄 알았습니다.

주님이 왕이 되시면 한자리 할줄 기대했습니다.

한마디로 복 받기 위해 따라다닌 것입니다.

 

행1장에, 주님이 승천하실 때, 제자들과 마지막 나눈 대화가

“주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입니까?”

‘이제 주님 나라를 세우십니까? 이제 우리가 한 자리 하게 됩니까?’ 하는 뜻입니다.

 

참으로 끈질길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승천하신 후 다락방에서 기도하면서 생각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다시 기억하면서 돌이켜봅니다.

 

주님 덕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주님은 이미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내가 주님을 위해 희생해야 할 차례입니다.

복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모든 복을 다 받았습니다.

구원 받았고 만 가지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제 내가 하나님의 소원을 생각할 차례입니다.

그래서 이 때부터 그들은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희생했고

마지막에는 자기 목숨까지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그것이 가장 복된 생애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복된 역사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디모데에게 준 바울의 마지막 권면

 

▲딤전4:1, 바울의 준엄한 명령

하나님 앞과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심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한다고 했습니다.

일찍이 바울이 이토록 엄숙하고 준엄하게 명령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 앞에서 명한다’고 해도, 더할 수 없이 중요한 명령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라고 했습니다.

거기에다 그것으로 모자라서 다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한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일이면, 자기 생애 최후의 순간에 이토록 엄숙하게 명령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준엄한 명령

우리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명령을 기억합니다.

이스라엘의 회복, 그런 것은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을 받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행1:8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명하셨습니다. 마28:18~20

이것은 주님의 유언, 마지막 소원입니다. 준엄한 명령입니다.

 

▲딤전4:2a,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성경을 읽어보면, 초대교회 당시에 ‘복음을 전하라’는 설교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이상합니다. 사도행전이나 서신서 어디에도 “전도하라”는 명령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초대교회 성도들도 모두가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들에게 전도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의사에게 “병 고치시오”라는 말 할 필요가 없듯이

저들에게는 “전도하라”고 말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누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다 전도했고,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왜 디모데후서 본문에는 유독 <말씀을 전파하라>고 가르칩니까?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전도하지 않을 때가 다가올 것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딤후3:1~에 언급한대로 ‘말세’입니다.

 

말세에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이 식어지게 될 것이고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의 자리에 떨어지게 되고

결국 전도하지 않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기 이토록 엄숙하게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합니다.

 

이 명령은 디모데뿐 아니라, 사실은 예수를 믿었지만

이 귀한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줄 모르는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구원을 받았지만, 그 구원의 기쁨을 다른 사람과 함께 누리지 아니하고

결국은 희미하게 신앙생활하는 바로 우리를 향해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축복만 생각하지 말고, 비극도 생각해야...

여러분, 우리는 <자신이 받은 구원의 축복>을 더 깊이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갖게 되는 비극>을 다시 한번 새롭게 깨달아야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사람이 한번 죽은 것은 정한 이치요. 죽음 이후에도 심판이 있다

가르칩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곳에서 영원토록 고통을 당한다

고 가르칩니다.

 

마13장에 그곳을 풀무불이라 했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니라 했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지옥은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했고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도 보면

지옥에서 부자는 혀끝에 물 한 방울을 애타게 갈구할 만큼 심한 고통이 있습니다.

 

▲자식이 굶어 죽음을 보는 부모

저는 최근 어떤 잡지에서, 굶어 죽은 자식을 앞에 두고 앉아있는

부모의 허망한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몸에 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자녀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야 할 때

부모는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가슴이 찢어지도록 슬퍼하며 땅을 치고 통곡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진의 부모는 굶어죽은 자식의 시신을 앞에 두고도

아무런 표정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저를 더욱 슬프게 했습니다.

너무 기진맥진해서.. 슬퍼한 기력조차 다 상실해 버렸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식이 굶어 죽는 것보다, 만 배 더 무서운 비극

그런데 이 땅위에는 이러한 비극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천 배, 만 배 더 무서운 비극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순간에도 수 천, 수 만의 영혼들이

지옥이라는 무서운 불 속으로,

멸망이라는 무서운 시궁창속으로 굴러 떨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다른 비극과도 비교가 될 수없는, 너무나 큰 슬픔입니다.

이 고통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십년 이십년 천년 만년도 아니고

영원토록 계속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무엇으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의 초점

이 고통이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의 영광까지 버리셨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제 주님 예비하신 이 구원의 길을 전파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결코 윤리나 철학적인 차원의 종교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가르치는 종교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잘 사는 것은 최고로 아는 ‘축복의 종교’는 더더욱 아닙니다.

 

기독교는 천국과 지옥을 가르치는

그래서 지옥 갈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해주는 기쁜 소식, 복음입니다.

영원히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인생들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치고

영생으로 인도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초점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선교사가 나가야 하고,

교회적으로는, 해외에 복음전하는 일에 보다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가까운 데서부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다고 했습니다.  고전9:16

에스겔은 피값을 묻는다고 했습니다.

진실로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딤전4:2b,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견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견책’이란.. 불신자들에게 죄를 확인하고, 죄를 책망하는 것입니다.

‘경계’는.. 죄를 짓지 못하도록 타이르는 것입니다.

‘권함’은.. 곧 예수님 앞으로 나오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즉, 전도에는 모든 방법이 다 동원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권면, 때로는 책망, 때로는 설득합니다. 여기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일을 오래 참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인내를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몇 번 권해보고 듣지 않으면 ‘저 사람 택한 사람 아닌가보다’하고

포기하는 수가 있습니다. 잘못입니다. 오래 참음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그 사람이 세상 떠나는 날까지는 전도해야합니다.

마지막 죽는 순간에 회개하고 구원 받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옥문까지 따라가서 생명을 구해오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전도해야합니다.

 

▲딤전4:3,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은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니라

 

사람들은 복음은 듣기 싫어하고 다른 소리, 헛된 소리를 좋아합니다.

롯의 사위들은 성이 망한다는 소식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복음을 농담으로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 참된 복음을 전하면..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딤후1:8

사도들은 이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고난이야 말로 가장 큰 축복이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마치는 말, 새해의 꿈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새해 첫 주일입니다.

금년에는 ‘내 소원’ 이루기에 앞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는

한 해를 한번 만들어보십시다.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맺혀지는 열매들을 보며 기뻐할 때, 하나님 큰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더 큰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진정 새해에는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터넷 설교 스크랩,  축약. 오래 전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