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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원지기 예수님의 사랑의 수고 1762

LNCK 2009. 2. 24. 23:55

◈과원지기 예수님의 사랑의 수고       눅13:6~9            설교 스크랩



▲유교적 전통의 단점인 비판, 정죄

한국의 문화 전통은 사람들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유교적인 가르침의 특징은, 사람들이 살아야 할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가르치고

그 기준에 따라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좋은 전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당하고, 정죄를 받고,

무시를 당하고, 인간쓰레기 취급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문화는 전통적으로 높은 기준을 심어주기 때문에

누구를 보든지 먼저 그 기준을 생각하면서, 그 사람을 봅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부모님들과 사회가 가르쳐준 기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아니면 외식적이 되거나, 항상 남의 눈을 의식하는 가식적인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기준에 못 미친 것들이 많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서, 특히나 기준에 못 미친 부분들을 봅니다.

예를 들면 100%의 기준에서 80%에 도달하였다면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20% 모자란 것을 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평가하고 모자라다고 비판합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주위를 돌아보세요. 기준에 모자란 사람들이 한 둘입니까?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람들도 있고, 해충과 같은 사람들도 있고,

무덤에나 가버렸으면 하는 사람도 있고, 조용히 제거해 버리고 싶은 사람들도 있고,

싫은 사람, 미운 사람, 사람 같지 않는 사람들...


◑땅만 버리는 무화과나무 이야기 (본문 설명)


▲무화과나무는 땅을 많이 차지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열매 열리지 않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말씀합니다.

주인은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3년 동안 열매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열매 열리지 않는 나무를 찍어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땅만 버리는 무화과나무는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인이라면, 땅만 버리는 무화과나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이런 무화과나무는 찍어버릴 수밖에 없지요?


포도나무는 키가 작습니다. 무화과나무는 키가 크고 넓은 땅을 차지합니다.

무화과나무 한 그루 심으면, 포도나무 여러 그루를 심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땅을 차지하고 포도나무를 심지 못하게 한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습니다. 이제는 결단할 때가 아닙니까?

열매 열리지 않는 무화과나무를 잘라버리고 그 자리에 포도를 심으면

더 이익이 크지 않을까요? 이렇게 하는 것이 정도인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과원지기에는 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과원지기는 주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래서 실과를 열리게 하겠습니다.

실과가 열리면 무화과나무를 건지는 것이 아닙니까?”

과원지기의 대안은 두루 파고 거름을 주어

열매를 열리는 무화과나무를 만드는 것입니다.


◑과원지기 예수님의 마음


여러분, 열매 열리지 않는 무화과나무를 없애는 방법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주인의 말대로 잘라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열매가 없고 땅만 버리는 나무는 없어지는 것이지요.


-열매가 열리지 않는 무화과나무를 없애는 또 한 가지 방법이 있지요?

그것은 두루 파고 거름을 주어 열매를 열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 나무에 열매가 열리면, 열매 열리지 않는 나무는 사라지게 됩니다.(변화됩니다.)


과원 지기는 무화과나무를 사랑의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을 잘라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입니다.

그는 두루 파고 거름을 주는 수고를 하여 열매 열리게 하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과원 지기는 지금은 열매가 없지만 앞으로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무화과나무를

마음에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열매를 열리게 하기 위하여

수고하고 노력하고 땀을 흘리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시각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우리들을 비유합니다.

예수님은 실패자들, 땅만 버리는 무화과나무 같은 사람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 악하고 더러운 놈들,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놈들,

뻔뻔스럽고 사악한 사람들까지라도 사랑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법적인 정의와 창조적 정의


독일 신학자 폴 틸리히는 세상에서 말하는 정의와

성경이 말하는 정의는 다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정의justice 하면 ‘법적인 정의’를 말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정의 하면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난 ‘창조적 정의’라고 주장합니다.


<법적인 정의>는 과학적으로 검토하고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립니다.

잘잘못을 가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합니다.

잘못 된 것을 보면 가차 없이 판단하고 정죄하고 무시합니다.

이것은 땅만 버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잘라버리는 정의입니다.


그러나 <창조적 정의>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먼저 바라봅니다.

사랑의 눈으로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줍니다.

땅만 버리는 무화과나무 같을지라도,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 같을지라도

존중하고 사랑합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보기 때문에 수고와 희생을 아끼자 않습니다.


창조적인 정의는, 미련한 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서

지혜 있는 자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수고하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미련한 자를 지혜로운 자로 만들어가는 정의입니다.

창조적인 정의는 약한 자를 불러서 강한 자로 변화시키며,

멸시받는 자들을 불러서 존중받는 인격으로 변화시킵니다.


▲저희 교회 2007년 비전

창조적인 정의는 잘라버리는 정의가 아니라,

두루 파고 거름을 주어 열매를 열리게 하는 정의입니다.

이것이 바로 2007년도 저희 교회의 비전입니다.

2007년도에 땅만 버리는 무화과나무 같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과 같은 성령님의 열매를 주렁주렁 열리게 될 것입니다.


무시 받고 비판 받으며 좌절하는 사람들이 광장교회에 와서

영접을 받고 존중받으며 사랑받는 사람들로 변화를 받게 될 것입니다.

실패하고 상처 입고 부도나서 넘어지는 자들이 광장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면 존중하기를 서로 먼저 하고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땅만 버리는’ 정신병 환자들을 사랑한 도로시 딕스

뉴잉글랜드에 도로시 딕스라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학교 교사였는데 건강이 너무 나빠서 40세에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어느 주일 교인들과 함께 교도소를 방문했습니다. 정말 비참했습니다.

특히 정신병 환자가 교도소에 많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날 딕스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버림받은 정신질환자들과 함께 서 계심을 강력하게 실감하였습니다.

그녀는 주님께서 자기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와 함께 이 처참한 정신병자들을 돕지 않겠느냐?”


그녀는 이들 소외된 정신질환자들을 돕는 일이 곧 예수님의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딕스 여사는 개인과 사회단체와 교회와 정부에 호소하며 뛰어다녔습니다.

그녀는 건강이 나빠 직업을 포기할 정도였으나 눈부신 활동을 벌였으며

미국뿐만 아니라 캐나다, 그리고 유럽까지 그녀의 정신병원 설립운동이 번져가

그녀가 사망한 1887년에는 30개의 정신병원이 설립되었고

미국 주 정부 예산으로 정신병원을 설립하기 시작한 것도

이 한 명의 여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임종 시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값’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값’은, 대가, 치러야할 희생을 뜻합니다.

포도원에 ‘땅만 차지하는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같은

쓸모없는 사람들, 쓸데없이 보이는 사람들, 우리 사회와 가정에 짐짝 같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돌보고 사랑하는 데는 ‘고랑 파서 거름 주고 기다리는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도, 그런 값을 톡톡히 치르신 사랑이었습니다.


<2007년 인터넷설교 스크랩                                                                         ▣ 크리스천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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