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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결하게 된 후에 더 큰 부흥이 일어나다 1773

LNCK 2009. 3. 3. 13:57
 

◈정결하게 된 후에 더 큰 부흥이 일어나다         행5:1~11     설교 스크랩, 축약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통해 모든 교회/교인들에게 큰 두려움이 임하고, 더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교회는 더 부흥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님은 항상 이렇게 역사하십니다. 

 

 

▲어떤 점에서 충격 인가요?

오늘 말씀은 예수 믿고 성경을 처음 읽는 분은 정말 큰 충격을 받았을 내용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땅을 팔아 교회에 헌금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땅을 판 돈 일부를 감추고 다 바쳤다고 거짓말하였기 때문에

그 부부가 즉시로 성령의 치심을 받아서 죽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읽고 가슴에 어떤 형태로든 충격이 왔을 터인데

어떤 것 때문에 충격이 왔습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말한 것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런 거짓말을 했다고 그렇게 죽일 수가 있어!’ 하는 것입니까?


그들은 자신의 소유인 땅을 팔아 일부만 바치고도 다 바친 것이라고 한 것은

거짓말이긴 하지만 그렇게 큰 죄입니까? 남의 돈을 가지고 바친 것입니까?

교회 돈을 떼먹기나 했습니까? 결국 헌금한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어느 쪽이 더 충격이 됩니까?


우리가 받는 충격은 아나니아의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 정도의 거짓말 때문에 어떻게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죽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이런 성령을 속인 것 때문에 죽어야 한다는 것이 충격일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오늘도 예배드리고 죽어나갈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이런 죄 때문에 죽어야 된다면 무서워서 예수라도 믿겠어요?’

우리가 솔직히 이런 마음이니까 이 본문으로 설교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성령의 두려움>이 임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이 흥분으로 뛰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설교하기 위하여 일부러 이 본문을 택하라고 했으면

저는 이 본문으로 설교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은혜로운 설교를 하기에는 너무나 어렵다고 느껴지는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로운 분위기에 오히려 찬 물을 끼얹는 것과도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에 본문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특별한 메시지가 있으리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습니다.

항상 그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기대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11절 말씀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행5: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아, 하나님께서 두려워해야 할 일(눈에 안 보이는 마음 속 죄)을 두려워하게 하신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말은 평소에는 두려워할 일인데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앞으로 더 큰 일을 하실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 사건을 통해서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마음’에서부터 무너진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 사건으로 인하여 초대교회는 큰 시험에 빠져 무겁게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부흥이 일어납니다. 오히려 진정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교회에 진정한 부흥을 주시려고 이 일을 쓰신 것입니다.

그것은 교인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5:3, 네가 성령을 속이고

아니니아와 삽비라가 지은 죄는 ‘성령을 속인 죄’였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기심, 탐심, 거짓말의 3가지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땅을 팔아 헌금을 했지만

동기는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바나바가 땅을 팔아 바치고 교회로부터 칭찬을 듣는 것에 대한 질투 때문이었습니다.


①시기심 : 모든 성도들의 칭찬을 자기도 받고 싶었습니다.

‘나에게도 땅이 있는데 이것을 팔아서 교회에 바치면

사람들이 이렇게 나를 칭찬하겠구나.’


②탐심 : 그러나 막상 땅을 팔아 다 바치려고 하니 돈이 아까웠습니다.

탐심이 역사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땅 판 것을 다 바쳤다는 칭찬은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를 감추었습니다.


③거짓말 : 그리고 사도들에게 그것이 땅 판 것의 모든 것이라고 거짓말 했습니다.


▲우리도 잘 짓는 죄목인데요...

이 죄가 그렇게 심각한 죄입니까?

사실 시기심, 탐심, 거짓말은 우리가 늘 쉽게 넘어지는 죄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큰 죄인가? 그 죄가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죽어나가야 할만큼 큰 죄인가?’

그런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는 것입니다.

심히 두려운 죄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5:4,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그렇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큰 헌금을 하였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업신여긴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금하고 헌신해도

우리가 이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쪽으로 보면 분명히 큰 헌금을 했고 교회를 위해서 크게 봉사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동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고 전혀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속이려 들고 업신여기는 사람의 죄가 작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께서 항상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충격입니다. 왜냐하면 아니니아와 삽비라가 있었던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오순절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의 역사가 가장 강력하게 나타났던 때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성령에 대해서 듣고 성령에 대해서 배워도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구나.

내가 지금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는구나.’ 하는 것을

실제로 안 믿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과 같은 일을 보면 압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이 무서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그 자리에서 거두어 가셔야만 하는 이유는

영적으로 마귀의 역사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3절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에 사단이 가득하여 성령을 속였다고 했습니다.


▲5:3, 사탄이 ‘마음’에 가득하여

이 말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가룟유다와 같은 상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속이게 된 것입니다. 영적으로 완전히 소경처럼 되어버리니까.


사단이 <마음에 가득하다>는 말은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은 30에 팔 때 되어진 일과 똑같습니다.

사단은 가룟유다에게 처음에는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어 주었습니다.

 

그때 가룟유다가 그 생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스스로가 분별할 수 있었는데도

‘생각’이니까 어때? 생각을 누가 알겠어요? 그래서 ‘생각’을 품습니다.

그러니 마귀가 가룟유다 속에 들어갑니다.

그때부터 가룟유다는 모든 자기 의지를 잃어버리고 마귀의 종노릇합니다.

그래서 결국 가룟유다는 예수를 은 30에 팔았습니다.


나중에 깨닫고는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알고 난 다음에

감당을 못하겠어서 자살을 하고 맙니다. 가룟유다의 비참한 일입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똑같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에 사단이

시기심과 탐심과 거짓말을 할 마음을 심어 넣어주었습니다.

마귀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도 처음에는 거짓말을 할 생각을 넣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 생각의 뿌리를 살피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생각이려니...’ 하고 품은 것입니다.

이것을 심각하게 여겼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떨쳐버렸겠지만

그것이 ‘생각’이니까 그냥 마음에 품었습니다.


▲5:4,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

결국 사단이 마음에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지금 사람에게 거짓말하는지 하나님께 거짓말하는지도

분별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사단이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영이 어두워졌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분명히 예수 믿고 성령의 체험도 했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마귀가 주는 생각을 품으니까 사단이 마음에 가득해져서

불신자와 똑같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고 야단을 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생각의 근원>을 살펴야 합니다.

잠언4:23절 말씀처럼 무엇보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모든 지킬 것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여러분, 마귀가 주는 생각을 품으면 큰 일 납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을 품으면 가룟유다 같이 마귀가 들어와 주인 노릇하게 됩니다.

성령의 임재를 전혀 느끼지도 못하게 되고, 불신자처럼 영적으로 소경이 됩니다.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교회 안에서 마귀가 주는 생각을 자기 생각으로 알고 품어서

마귀의 종노릇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중에 보면 마귀가 하는 일을 합니다.

이것은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지난 주간에 살인죄나 간음죄를 지었다면 지금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극심한 마음의 고통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아실텐데

내가 이런 죄를 짓고도 이렇게 예배 드려도 될까?

하나님은 나같은 죄인도 용서해주실 수 있을까? 내가 새 삶을 정말 살 수 있을까?

내가 왜 그런 죄를 지었을까?’ 얼마나 마음이 고통스럽고 안타깝고 간절하겠어요?


살인죄 짓고, 간음죄 짓고 오늘 예배드릴 때 졸 사람이 있겠습니까?

졸음이 안 오지요.


그러면 탐심과 시기심과 거짓말은 어떻습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여깁니다.

그런 죄를 짓고 예배 시간에 졸 수도 있습니다.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으니까.

“아니 시기 안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 돈 좋아하지 않는 사림이 누가 있어?

거짓말 안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


죄를 제대로 죄라고 느끼면 졸음이 옵니까? 고개를 들 수 있습니까?

살인죄나 간음죄와 시기, 탐심, 거짓말하는 죄하고 어떤 것이 더 무섭습니까?


시기, 탐심, 거짓말하는 죄가 더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회개하지 않고 넘어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고도 태연히 예배하고 성찬도 받고 웃고 인사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나는 죄 지은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성령을 속인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를 짓고도 죄인 줄 모르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아무런 인식이 없습니다.

그러니 회개가 없는 죄가 어떻게 용서함이 있느냐 말입니다.

그러니 살인, 간음죄보다 더 무서운 죄가 시기, 질투, 탐심, 거짓말 죄란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우리에게 생각하지도 못했던 큰 죄가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죄 지은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 앞에 가서야 다 드러납니다.

시기하고 탐심을 가지고 거짓말하는 죄입니다. 성령을 속이고 산 죄입니다.


살인자 강호순, 인물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이웃사람들이 입을 모아 "친절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증언했던 것은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매력적이라 할 만큼 준수한 외모와 선량한 미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무서운 살인자였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살인마 강호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빠진 자들이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다 드러납니다.

(낙태를 하거나, 낙태한 사람을 동조하면서도.. 사람들은 살인범만 손가락질 합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성실하고 흠없이 잘 사는 것 같은데,

하나님 앞에 갔더니 드러나는 죄마다 상상할 수 없는 죄가 나오는 것이지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정말 두려워해야 될 죄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적용


▲여러분, <시기심>을 한번 놓고 봅시다.

시기심이 그렇게 큰 죄라고 정말 생각하십니까? 시기심을 작게 여기면 안됩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 곧 영적으로는 어린 아이라고 말하는데

그 증거로 시기와 다툼을 꼽았습니다.

고전3: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회개가 안 되니 문제인 것입니다. 죄라고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탐심>은 모든 죄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아십니까?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

 

여러분은 여전히 돈을 사랑하십니까? 돈을 미워하십니까?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회개할 거리라고도 생각 안합니다.

‘내가 무슨 살인죄를 지었나, 간음죄를 지었나.’


그러나 성경은, 모든 죄의 뿌리가 돈을 사랑하면서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가정 불화, 범죄, 전쟁이 일어나고

노예제도, 공산주의, 지금의 경제위기가 다 <탐심> 때문에 일어난 것들입니다.


여러분 속에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살인죄 지은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오늘 본문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통해 성령께서 우리를 깨우치시는 것입니다.


▲<거짓말>, 정말 무서운 죄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거짓말에 익숙해 있습니다. 거짓말은 죄로도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입니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우리가 거짓말하는 것이 내 속에 있는 마귀에서부터 튀어나온 것입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교회에서 거짓말하고도 전혀 가책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회개도 없는 것이고, 회개가 없으니 씻음도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십일조는 정말 바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헌금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물로 하나님을 속이려 했을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말1:8~10

 

 

◑정결하게 된 교회에, 더 큰 부흥이 일어나다


▲하나님은 교회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초대교회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일어났던 것처럼

즉각적인 징계가 계속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전11:28~30,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여기서 ‘잠잔다’는, 죽은 자를 의미합니다.

진정으로 죄를 회개하지 않고 성찬을 받은 자 중에

병든 자와 죽은 자가 적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러한 일은 계속 된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회개해야 할 죄를 죄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무 가볍게 지나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려도 회개하지 않고 예배를 드립니다.

성찬을 받아도 아무런 회개없이 성찬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초대교회를 건강하게 부흥시키기 위해서

그들이 정결함을 받아야 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이 일로 인해서 더 부흥이 됐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더 정결해졌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시기심조차 탐심조차 마음에 일어나는 거짓말하고자 하는 욕구조차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회개하니, 교회가 얼마나 정결해졌을까요!

 

▲5: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온 교회’에는 우리 교회도 포함되고

‘이 일을 듣는 사람’에는 저와 여러분도 포함됩니다.

성령께서 이 사건을 왜 기록하게 하였을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괜히 두렵게 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진정한 부흥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잠깐 불꽃처럼 일어났다가 사그라져 버리는  일시적인 부흥이 아니라

지속적인 부흥, 모래 위에 세워지지 않은 부흥,

겉으로만 요란하고 얼마 동안만 뜨거웠던 부흥이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

진정한 부흥이 일어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이 사건으로 인하여 초대교회는 큰 시험에 빠져 무겁게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부흥이 일어납니다. 오히려 진정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교회에 진정한 부흥을 주시려고, 이 일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교인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09.02.08. 인터넷설교 스크랩, 축약    *원제목 : 어찌하여 성령을 속이려 하였느냐?               ▣ 교회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