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소원, 참된 소망 시20:4 09.02.08.설교 녹취
◑‘헛된 희망’은 득보다 실이 많다
헛된 희망을 남발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을 천박하게 만들 수 있는데...
▲‘희망’을 자주 말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우석훈 씨가 쓴「88만원 세대」는
우리 사회에 희망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희망이 너무 과해서 문제가 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저자는, 취업이 안 되어 좌절과 절망을 느끼고 있는 20대들에게
너무 많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일종의 고문’이라고 주장했다.
서점에서도, 방송에서도, 20대부터 성공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요즘처럼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에, 다음과 같은 뉴스들이 떠돌아다닌다.
누구는 20대에 벌써 재테크로 1억을 모으고, 20대에 벌써 연봉이 억대이고...
저자는 이런 세태를 ‘희망의 과잉상태’로 지적한다.
우리는 젊은 세대에게 지나치게 자주 희망을 이야기한다.
젊은 세대가 희망을 실현시킬 기회가 턱없이 줄어든 마당에
그들에게 자꾸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저 ‘희망 고문’과 다름없다.
고문의 의도가 없다고 해서, 고문이 아닌 것은 아니다.
‘성공한 20대’를 자주 논하는 것은.. 일면 ‘희망’을 주는 것 같지만
반면에 ‘절망’을 준다는 것이다. 아마 후자가 더 많이 느껴진다.
현실적으로 많은 젊은이들은, 그런 '헛된 희망' 이야기를 듣기 싫어한다.
사실 실질적으로도 도움이 거의 안 된다. 오히려 본의 아니게 약만 올린다.
▲헛된 희망은 고문과 같다.
‘헛된 희망이 고문이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여러분, 만약 어떤 여자가, 어떤 남자에게 결혼할 의사가 없거나
애인으로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남자에게 ‘절망’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괜히 술에 취하면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네 목소리 듣고 싶었어!’ 한다든지
당장 심심하니까 그 남자 불러내서 데이트 하면서 밥이나 얻어먹고.. 하는 것은
그 남자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요, 일종의 ‘고문’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성공한 이들의 간증은, <소망>이 되기보다, <고문>이 될 수도 있다.
교회에서 예화로 등장하는 사람들,
무슨 메달을 따거나, 큰 상을 받거나, 크게 대박난 사람들의 이야기만 골라서
소개하는데.., (자꾸 무슨 마케팅 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겠지만, 그 보다는 오히려 좌절을 주기도 한다.
(과거에는 다들 희망을 갖고 설교를 들었는데, 요즘은 다들 좌절을 느끼며 듣는다.
과거에는 그렇게 하면 나도 될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렇게 해 봐도 나는 안 되더라며... 주)
세상에 희망이 되어야 하는 교회가 ‘값싼 희망’을 팔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진정한 소망’을 전해야 하는데,
‘성공, 대박’등의 값싼 희망으로 사람들을 유혹해서는 안 된다.
◑소망과 소원
그렇다면 과연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소망>은 무엇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소망’과 ‘소원’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소망hope과 소원wish의 구분
우리 각자가 가진 어떤 기대는,
‘소망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소원한다’가 맞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 훌륭한 배우자 만나는 것,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
- 이 모든 것들은 우리 소원wish들이다.
물론 크리스천이 이런 소원들을 갖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이런 소원들이 이루어질 때 행복감을 느끼는데..,
▲소망hope을 제쳐놓고 소원wish에만 매달리니까 문제다.
다만 이런 소원들은, 우리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궁극적 <소망>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욕심에 눈이 어두워, 참된 <소망>을 제쳐놓고, <소원>에만 목을 매니까
그것이 도를 지나쳐 우상숭배가 되어버린다.
이런 우리 <소원>들은 이루어질 수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들은.., 좌절과 절망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예수 믿다가 실족해 버린다.
그러니까 성도가 구해야 될 참된 <소망>을 제쳐놓고,
자기 욕심으로 가득찬 <소원>때문에 늘 일희일비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니...
그게 잘못인 것이다.
▲우리는 <소원>할 수 있지만, 미래를 통제할 수는 없다. 미래는 하나님만 통제하신다.
신앙생활에서 절망하고, 좌절하는 것은
<소망>이 잘 못 되어서가 아니다. 소망(예수 그리스도)은 확실하다.
다만 자기 <소원>대로 안 되니까..
막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신앙생활에 회의가 드는 것이다.
여러분, 주위에도 둘러보시라.
신앙 생활하다가 실족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소원이 많았던 사람들>이다. <큰 꿈>에 부풀어 있었던 사람들이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것이다.
▲헛된 소원이 클수록 실망이 크다 - 소위 ‘스톡데일 패러독스’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에서 전투기 조종사였는데, 추락해서 포로가 되었다.
하노이 포로수용소에서 8년간 지내면서, 수감된 미군포로 중 최고위 장교였다.
그는 가능한 많은 미군포로들을 격려해서, 수용소 생활을 견디게 했고
나중에 결국 그들이 석방되어 미국으로 돌아가게 한 ‘전쟁영웅’으로 존경받았다.
그는 20차례나 고문 당해서, 끝내 다리를 절게 되었고, 석방 후 3성 장군까지 진급했다.
포로들은 석방날짜가 정해진 것도 없고,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도 불확실했다.
수용소에서 서로 간에 말을 못하게 하니까
모스부호 같은 ‘두드리는 것’으로 자체 신호체계를 계발해서
그는 포로들 간에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지휘했다.
나중에 석방된 후 어떤 작가가 그에게 물었다.
‘포로수용소에서 끝내 견뎌내지 못한 사람은 누굽니까?’
그런데 그의 대답은 우리 생각과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그건 간단하죠. 낙관주의자들입니다!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갈 거야... 하다가 크리스마스를 넘기고
그 다음 부활절까지는 석방 될거야... 하다가 부활절을 넘기고
마지막으로 추수감사절 때까지는 나가겠지... 하다가 못 나가면
그들은 상심해서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말이 생겼다.
‘희망’을 많이 말하는 자일수록, (패러독스, 역설로) ‘절망’이 크더라는 것이다.
(과거 10년 동안 한국 기독교 교세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원인이 이런데 있었다고 본다.
한 때 헛된 소원을 갖고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이.., 실망하고 점점 빠져나간 것이다.)
▲참된 소망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에 유일한 참된 소망 hope이 되시는데,
그 분이 <지금 나를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 흔들림이 없이 견고하다.>
<성도의 최후승리 - 에 대한 소망은 결코 흔들림이 없이 견고하다.>
물론 성도도 소원 wish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소원이 만약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셨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소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이다.
그러므로 소망이라는 것은,
‘주님이 가장 좋은 것을 내게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다.
‘결코 끝을 알 수 없지만, 주님이 최후승리 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러기에 절망의 반대는.., 희망(=소원)이 아니다.
절망의 반대는... 소망(예수 그리스도)이요, 믿음이다.
▲대학입시에 적용
우리는 신년기도회에 가서 ‘네 입을 넓게 열라. 그리하면 내가 채우리라’
이런 말씀으로 쉽게 자기 ‘소원’으로 덜커덩 삼아버린다.
그리고 그 해 대학입시를 앞두고 ‘내 입을 넓게 열고, 하나님의 채워주심’을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한다.
그런데 저(설교자)는 우리 첫째 자녀의 대학입시를 앞두고 늘 이렇게 기도했다.
‘우리 자녀, 공부한 만큼 성적 나오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면 아내는 ‘아멘’을 안 한다.
그런 기도를 들으면, 도리어 힘이 빠진다고 한다.
수능(대학입시)을 앞두고 힘을 북돋아주는 기도를 해 줘야 되는데..,
즉 ‘우리 자녀 수능성적이 기적과 같이 오르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해야 되지 않겠는가?
제가 냉정하게 ‘심은 만큼 거두게 해 달라’는 식으로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를 믿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원하는 성적이 안 나와서, ‘우리 자녀가 상처를 받을까봐, 그래서 신앙마저 실족할까봐’
개인적으로 염려해서였다.
괜히 헛된 소원을 품었다가, ‘우리 가족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이 안 들어주시네’ 하면서,
우리 자녀가 하나님께 시험 들까봐 염려해서였다. (사실 그렇게 많이 시험 든다.)
그냥 자기 실력만큼 최선을 다하고, 그만큼 결과를 얻으면.. 상처도 없는데,
자기 실력은 7인데, 10의 결과를 욕심내서 소원하다가, 혹시 결과가 6이 나오면,
하나님께 시험 들고, 교회에 시험 들고,
(기도 안 해 준, 기도에 능력이 딸리는) 목사님께 시험이 단단히 든다.
저도 내심 우리 자녀 수능 성적이 잘 나오기를 기대하지만,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 유일한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나의 신앙을 결코 타협할 수 없었다.
내 마음대로 미래의 끝(소원, wish)을 정해 놓고,
내 마음대로 입을 크게 열고,
내 욕심대로 기도하다가.. 그게 안 이루어지면 낙심하고 시험 들고 하는
그런 식의 ‘천박한’ 신앙생활은.. 이제 우리가 청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하나님을, 내 구미대로 이용하려는 것이지, 하나님을 신앙하는 자세가 아니다.
(너무 길어서 나머지 후략)
<09.02.08. 인터넷설교 녹취, *원제목 : 하나님의 백성의 희망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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