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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9

좋은 시어머니 같은 하나님? 1771

LNCK 2009. 3. 2. 10:46
 

◈좋은 시어머니 같은 하나님?            욥25:1~26:14        설교 녹취



◑빌닷이 보는 하나님 상image - 멀리 떨어져 있는 시어머니 같으신 하나님


▲하나님을 자기 삶의 영역에서 추방하는 사람들

욥의 친구 빌닷의 언사 중에 보면, 그가 이해하는 하나님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은 주권과 위엄을 가지셨고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  욥25:2


물론 빌닷의 하나님은 ‘높은 곳에서’ 계신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욥기 25장(매우 짧은 장)의 전체 문맥을 보면,

그가 이해하는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 계신’ 하나님이다.


사람들이 보통 ‘하나님이 멀리 떨어진 높은 곳에 계시는’ 분으로 느끼는 이유는,

자신 스스로 <그런 하나님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계시는’ 하나님으로, 자기가 딱 규정해 버린다.


▲멀리 떨어져 계시는 <시어머니 같은 하나님 상 image>

빌닷이 생각하는 하나님을,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부자시면서, 마음이 후하시면서, 손 크신 시어머니!

그렇지만 절대로 며느리와 같지 살지 않으시는,

하늘 높은 곳에 멀리 떨어져 계시면서

평화(욥25:2)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


오늘날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神) 개념을 더 자세히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위에 높이 머물러 계시면서, 땅으로 은혜만 내려주시기를 원하며,

-내게 복을 내려주시되, 내 삶에 세밀하게 간섭하시면 안 되고,

-내가 원하는 일이 잘 되도록 밀어주시되, 절대로 방해하시면 안 되고,

-내가 어려울 때 나를 도와주시되, 내 원수들은 절단 내 주시는...


오늘날 사람들이 원하는 ‘하나님 상image’이  

오늘날 며느리들이 원하는 ‘시어머니 상’과 묘하게 일치된다.


-절대로 아들 집에 전화 안 하시는 시어머니,

단 예외가 있는데, ‘얘야, 통장에 손주들 학비 좀 부쳤다’ 할 때만 전화하시는..

‘아이고 어머니, 너무 고마워요.’


-어쩌다가 시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며늘아, 내가 여기 근처에 올 일이 있어서 왔는데, 한 번 들러야 되겠다.’

‘어쩌요, 어머니. 제가 오늘 집에 없어요. 급한 볼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되요!’


-며칠 있다가 또 전화가 온다.

‘며늘아, 여기 고향에서 좋은 옥돔fish이 나서, 방금 택배로 좀 부쳤다’

‘어휴, 어머니, 고마워요!’ 뭘 그런 걸 다 보내세요...’


▲시어머니(하나님)가 나타나면 불편하다...

며느리들이 원하는 시어머니는

구좌로 돈을 송금해 주시고, 택배로 반찬 보내주시고,

단, 절대 안 나타주시기를 원한다.


왜 시어머니가 나타나면 안 되는가 하면,

시어머니가 나타나시면, 내(며느리) 생각이 허물어진다.

절대로 내 마음대로 안 된다. 시어머니가 일일이 간섭하시니까!

자기 생활패턴이 자유롭지 못하다. 시어머니가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계시니까!


빌닷이 인식한 하나님이 바로 그런 하나님이었다.

높은 하늘에 멀찍이 떨어져 계시면서

내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뭐든지 보내주시는 하나님... 을 원한다.



◑욥이 보는 하나님 상 imge - 모든 곳에 편재해 계시는 하나님


▲욥이 이해하는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며 어디서나 우리와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 상이다.


욥26:5, 죽은 자의 영들이 물 밑에서 떨며, 물에서 사는 것들도 그러하도다.

-빌닷은 ‘높은 곳’을 말했지만, 욥은 반대로 ‘물 밑 가장 낮은 곳’을 대조하고 있다.  

그런 물 밑 낮은 곳에도,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다.


26:6, 하나님 앞에서는 스올도 벗은 몸으로 드러나며 멸망도 가림이 없음이라

-하나님은 ‘스올’ 즉 무덤 또는 죽음의 세계에도 계신다.

‘..드러나며.. 가림이 없다’... 하나님의 눈앞에서 아무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26:7,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

26:8,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요즘 과학자들이 깜짝 놀라고 있다.

욥이 어떻게 이런 천문학적인 지식을, 기원전 2천년 경에 갖고 있었던가?

어쨌든 하나님은 우주(허공, 아무것도 없는 곳)에도 계시고, 우주를 다스리신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곳에..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임한다>는 것이다.

모든 곳에 하나님이 계시며, 사람은 절대 하나님 앞에서 피하여 숨을 수 없다.


▲무서우신 하나님

세상에 위험한 사람들도 많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처럼, 내 소원을 까 부숴버리시는 분이 없다.

하나님처럼, 내 계획에 맞서는 분은 없다.

하나님처럼, 이 땅 위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의 안정을 구축하고 싶어 하는

내 바램을.. 깔아뭉개시는 분은 세상에 다시 없다. 


어떨 때 보면, 하나님은, 절대로 같이 해서는 안 될 분처럼 여겨진다.

(신앙이 미성숙할 때, 특히 그렇다.)

어쩌면 하나님은 그렇게 시시콜콜 간섭을 하시는지...

하나님은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다 훼방하시는 분으로 여겨진다.


사람이 살다보면, 내가 잘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내가 남보다 우월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고,

뭔가 이루었다는 성취감을 느낄 때도 있는데,

-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시면서 까 부셔버리신다.

용납을 안 해 주신다. 인간이 교만하신 것을 절대 눈 시려서 보지 못하신다.


(이게 용납되는 사람이 있다. 그러고도 아무 탈 없이 잘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그들은 ‘유기된 자들’ 즉, 하나님이 ‘선택하지 않으신/버려두신 자들’로 본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시어머니’라고 느끼는 며느리가 혹시 있을까?

마찬가지로 신앙이 일정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는

‘좋으신 하나님’이란 고백이 안 나온다.

하나님이 막 내 삶의 좋은 것들을 까부수며 치고 들어오시니까..

어떤 때는 혼비백산 할 때도 있다.


초신자들이 뭘 모르고 ‘좋으신 하나님’을 찬송하기도 하는데,

그들이 생각하는 ‘좋으신 하나님’이란 ‘돈 많고 인심 넉넉한 시어머니 상’이다.

간섭 절대로 안 하고, 대신에 손은 크고, 절대 나타나지 않고,

돈만 보내주시고, 반찬거리만 택배로 보내 주시는, 그런 좋은 시어머니 같은 하나님이

바로 <사람들이 원하는 하나님 상>이다.


‘당신의 뜻, 당신의 계획’ 자꾸 이런 것 가르치지 마시고

그냥 멀리서 ‘내가 원하는 뜻과 계획’을 다 이루어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

- 바로 오늘날 전 세계 사람들이 가지는 ‘종교성’이 바로 그런 것이다.


과거에 우리 교회에서도 그러했다.

맨날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그러면 네 소원을 이루어주신다’는 것을 강조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자기 뜻>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선포하고, 꿈꾸고, 구하라는 것이다.

‘좋으신 시어머니 같은 하나님 상’을 갖고 있으니까... (기복주의가 된다)


▲주님이 우리에게 소개해 주신 하나님은

욥이 고백하는 대로

기본적으로 우리 삶의 터전이 하나님의 다스림, 주권, 간섭 아래(위에) 놓여져 있다.


하나님은 내 머리카락을 세고 계실 뿐만 아니라

내 생각을 모두 알고 계신다. 시139:2~3

다윗은, 자기 생각을 모두 세밀히 살펴 달라고 기도했다.  시139:23


겪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내 생각대로’ 안 해 주신다.

아니 내 생각은 무참하게 다 까 부셔버리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신다. 타협 절대 안 하신다.

‘너 자신을 아예 죽여라!’고 요구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과 <갈등 관계>를 한동안 가지게 된다.

이제까지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과 <갈등 관계> 한 번 가지지 않으신 분은

거듭나지 않은 가능성이 크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은 그 때부터 <갈등 관계>가 시작된다.


언제 그 갈등이 끝나고 <평화 관계>가 시작되는가 하면

내 자아가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고, 하나님의 계획을 100% 수용하게 될 때부터다.


그때 욥처럼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이 된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1:21~22


그러나 그런 수준에 오를 때까지는, 예수 믿는 게 오히려 화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 모든 계획을 망가뜨리시고, 내 사업을 망하게 하시고,

끊임없이 내 삶을 방해하고 태클 걸고 들어오시는 분이.. 다름 아닌 하나님이신 것이다.


▲마치는 말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서 ‘좋으신 하나님’ 찬송을 많이 불렀다.

그런데 ‘좋은 시어머니 같은 후하고 마음 넉넉한 하나님’으로 믿고 불렀다면

그것은 ‘자기 스스로 만든 하나님 상’이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그래서 좋으신 하나님이 아니다.


도리어 내 생각, 내 육신의 소원을 모두 깡그리 부셔버리시고,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시며,

그 때까지 성도는 하나님과 갈등관계에 놓이게 된다.

‘좋으신 하나님’이 아니라, ‘껄끄러운 하나님’이 되신다.


그러나 자기 자아가 완전히 죽고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을 100% 수용하게 될 때

비로소 ‘좋으신 하나님’을 고백하게 된다.

진짜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은, 내 생각보다는 ‘훨씬 좋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09.02.02. 인터넷설교 녹취     *원 제목 :  위험한 시어머니 내 살같은 애인            ▣ 물질과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