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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의 통치자 하나님

LNCK 2009. 4. 2. 12:57

 

◈온 세상의 통치자 하나님           계4:1-11         09.3.1.설교 스크랩

 

◑질문 :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다스리고 계십니까?

 

건축업을 하던 한 사장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건설 현장에 철근을 공급하는 사업을 했습니다.

철근이 많이 공급되면 될 수록 매출은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건설 현장에서 상식처럼 통용되는 방식으로,

때론 인부들에게 뒷돈을 얹어 주며, 규정 이상의 철근을 투입하도록 하여

더 많은 이익을 챙기곤 하였습니다.

 

그는 건축업에서 번 돈으로 커다란 고깃집을 냈습니다.

음식 솜씨가 좋다는 소문이 나서 많은 손님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순풍에 돛을 단 듯 그의 인생 항해는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고급 차를 타고 다녔고 돈을 물 쓰듯 썼습니다. 멋진 옷들로 장롱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외환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이로 인해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빚은 산더미처럼 늘어났습니다.

재산을 다 처분하고 남은 것은, 자동차와 옷장 가득 들어있는 옷가지와

그리고 월세방 한 칸 겨우 얻을 돈 뿐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인생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하늘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길고 어두운 인생의 터널이 계속되었습니다.

약 2년 동안 집에만 쳐 박혀 폐인처럼 살았습니다.

 

‘이래서 사람이 미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때 그는 속으로 절규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 나를 이토록 망가지게 할 수 있습니까?’

 

한 탈북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18세 때 두만강을 헤엄쳐 건너서 북한을 탈출했습니다.

중국에서 한 아주머니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이 너무 친절하게 잘 해주어 신뢰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국 여자의 친절에는 꿍꿍이가 있었습니다.

그녀를 인신매매단에 팔아 넘겨 버렸습니다.

그녀는 거기서 온갖 성적 학대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 중국 농부에게로 또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와의 사이에 딸도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지옥 같은 결혼 생활을 견딜 수 없어 다시 도망을 쳤고,

한 탈북자 도움 단체를 통해 우여곡절 끝에 한국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곳에서 먹고 살려면 취직을 해야 하는데,

그동안 받은 충격으로 글자를 모두 잊어 버려 취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봉천동에 있는 한 공부방에 한글을 배우러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자원 봉사를 다니시는 한 분이 그녀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그녀의 질문은 한 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나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이것이 어찌 그들만의 질문이겠습니까?

우리 믿는 성도들도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도 인생길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일을 당할 때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저도 그랬고 우리 성도님들도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아니,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질문을 놓지 못하고 계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인 사도 요한도

그런 질문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을 경험 했습니다.

아마도 그때 사도 요한도 이렇게 질문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다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사도 요한은 현재 밧모라는 섬에 있습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계1:9

 

지도에 보면 소아시아 앞 바다에 밧모라는 작은 섬이 있는 것이 보입니다.

밧모 섬은 남북의 길이가 약 16km, 면적은 약 40㎢로

우리나라 울릉도의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작은 섬입니다.

1세기 당시에 이곳에는 광산이 있었는데, 주로 죄수들이 매우 혹사를 당하면서

채광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을 증언하던 사도 요한을

로마 황제가 이곳에 유배시켜 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 2,3장에 묘사된 것을 볼 때.

당시의 교회들도 큰 환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순교를 당하는 사람도 있었고, 옥에 던져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집과 전토를 빼앗기고 유리방황하는 거지 신세로 전락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반면에 극심한 핍박을 견디지 못한 성도는 세상과 타협하기도 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볼 때, 자기의 처지도 앞날이. 캄캄했지만,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앞날도. 깜깜했습니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좌우를 둘러보아도 모든 문들이 닫혀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의 답답함과 괴로움 가운데서 탄식하며

자주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세상이 너무나 어둡습니다. 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죽는 것은 괜찮지만, 양들과 주님의 교회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답변 1. 열려진 하늘 문 을 보세요!

 

▲하늘에 열린 문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하늘을 우러러 보았을 때, 이게 웬일입니까?

하늘에 한 문이 있는데, 활짝 열려져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사도 요한의 감격이 어떠했겠습니까?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계4:1

 

로마의 보좌에 앉아서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는

사도 요한과 교회가 나갈 문들을 다 봉쇄해 버렸습니다. 사방이 꽉 막혀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처한 현실은 답답하고 어두웠습니다.

그런데 로마 황제도, 하늘로 향한 문은 닫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 닫혔지만, 하늘로 향한 문은 활짝 열려져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하늘에 있는 문이 열려져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길은 활짝 열려져 있습니다.

세상으로 향한 문들이 다 닫혀 버려도, 하늘 문은 열려져 있습니다.

세상이 다 우리와 단절되어도

우리에게는 하늘로 향하는 길이 열려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여전히 하늘로 올라가고 있고,

하나님의 도움이 여전히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일찍이 한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121:1,2

세상의 문들이 다 닫힐지라도 하늘로 향한 문,

하나님께로 향한 문은 활짝 열려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 어디에서도 호소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고,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 드릴 수 있습니다.

 

▲혹시 ‘하늘 문’이 닫혀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 문이 너무 활짝 열려 있어서, 혹시 하늘 문이 닫혀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진정한 복이 아닙니다.

 

반대로, 세상 문이 닫힌 연고로,

이제 ‘열린 하늘 문’을 쳐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그 닫힌 세상 문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아브라함은 ‘열린 하늘 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롬4:17

어떤 상황에서도, 가능성을 열어두었습니다.

사라의 태가 닫힌 상황에서도,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땅의 모래처럼 많아질 것을. 여전히 바라보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열린 하늘 문,

밧모 섬의 사도요한에게 열린 하늘 문이

똑같이 오늘 여러분에게도 열려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보좌에 앉으신 이 를 바라보세요!

 

▲감격의 “보라!”

사도 요한이 하늘에 열린 문을 보고 있을 때,

그의 귀에 익숙한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4:1b

 

사도요한은 연이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2~3

 

하늘에 열린 문을 통해 하늘에 올라간 그의 눈에, 하늘에 베풀어진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가 들어왔습니다.

그는 너무 감격스러워 "보라." 라며 외치고 있습니다.

 

그 보좌는 하늘에 베풀어져 있었고

그 주위에는 녹보석 같이 빛나는 무지개가 둘러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보좌에 벽옥과 홍보석의 신비스러운 광채를 발하며

위엄 가운데 앉아 계셨습니다.

 

▲보좌.. 하나님이 현실을 여전히 다스리고 계신다는 뜻

오늘의 짧은 본문 속에 ‘보좌’에 대한 언급이 무려 14번이나 나옵니다.

사도 요한은 왜 그렇게 많이 ‘보좌’를 언급하고 있습니까?

보좌는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왕들도 보좌에 앉아 있었습니다.

 

특히 로마 황제는 보좌에 앉아 전 로마 제국을 다스렸습니다.

로마 황제의 말 한 마디에 교회는 엄청난 핍박을 받게 되었고

존폐의 위기까지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다시 보니 그 보좌는 진짜 보좌가 아니었습니다.

진짜 보좌는 하늘에 있는데 그곳에는 하나님이 앉아 다스리고 계셨습니다.

로마 황제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세를 일시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땅에서 당하고 있는 환난은 <일시적인 것>이요, 거기에는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었던 것>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보좌, 하나님이 다스리심

 

▲우주의 관제탑에 올라간 사도요한

이제 그는 하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온 우주의 관제탑>에 올라가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공항에서 우연히 창밖을 내다보면 비행기들,

장비들과 수화물들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관제탑으로 안내를 받는다면 공항 전체를 내려다보면서,

관제사들이 치밀한 계획 가운데 모든 지시들을 내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저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을, 순식간에 이해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를

우주의 관제탑으로 이끌어 올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우주의 통제자가 되시고

선하신 계획과 목적 가운데서 역사해 가고 계신 것을 볼 때,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당한 일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하나님이 다스리시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 설 수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이 낙심이 되지만, 하나님이 다스리시기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믿고 소망 중에 거할 수 있습니다.

 

▲숨어 계신 하나님

영국의 유명한 여류 그리스도인 문학가 한 사람이 '숨어 계신 하나님'(hidden God)

이란 제목으로 수필을 썼습니다.

그는 수필 가운데 자기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자기가 어떻게 숨어 계신 하나님을 이해하게 되었는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가 결혼해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조그만 침대에 아기를 뉘어놓고 잠을 재운 후, 불 끄고 자기 방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아기가 울기 시작합니다. 당장 좇아가서 도와주고 싶지만

그 아기가 자립하는 독립적인 인격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엄마는 참습니다.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져 갔습니다. 엄마는 같이 울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기다립니다. 엄마는 이렇게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아가야, 나는 너한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단다. 엄마는 너를 도울 수가 있단다.

그러나 너는 이 어두움의 두려움을 이기고, 혼자 그 방에서 자는 것을 배워야 해."

 

이 독백을 하는 중 그녀는 순식간에 그가 질문했던

시편 속에 나타난 숨어 계신 하나님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시편에서 ‘주여, 어디 계시나이까?’로 자주 노래함)

 

우리의 삶이 곤고할 때 숨어 계신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얼마든지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성숙을 위해서

우리 곁에 숨어 계신 모습으로 탄식하며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피할 수 없이 우리의 성숙을 위해서 신음과 고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제가 너무 좋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마10:30~31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20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유명한 건축업자였습니다.

소녀는 풍요로운 가정환경 속에서 무럭무럭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소녀가 일곱 살 되던 해 아버지는 의문의 변사를 당했습니다.

아버지의 동업자들이 전 재산을 빼돌려

소녀와 가족들은 졸지에 거리에 나앉고 말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소녀에게 일어나야 하였습니까?

 

그러나 환난을 겪으며 소녀는 비로소 자신의 주위에

가난하고 병든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소녀는 어느 날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저는 평생 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겠어요!"

 

이 소녀는 훗날 수녀원에 들어갔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사랑의 선교회'를 만들어서 활동했습니다. 이 소녀가 바로 마더 테레사입니다.

 

하나님은 감당하기 힘든 환난을 통해 자기만을 위해 살아갔을 한 소녀를

가난하고 병든 많은 영혼들을 섬기는 인생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할렐루야.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119:71

 

 

◑3. 궁극적인 승리를 보세요!

 

▲24장로의 온전한 예배

요한이 또 보니, 하늘 성소에서는 모든 성도들과 피조물들이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또 보좌에 둘려 24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24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4:4

 

‘24 장로들’은 구약의 성도들과 신약의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그들이 흰 옷을 입고 금관을 썼다는 것은 승리한 자들 곧 이긴 자들임을 상징합니다.

믿음으로 승리한 자들이 하나님과 함께 보좌에 앉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3장 21절을 보십시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4생물의 온전한 예배

또한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 4:6

네 생물.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는.. 세상 모든 피조물들을 상징합니다. (이견 있음)

 

그들이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피조물들 가운데 임재 해 계셔서

그들로부터 영광을 받고 계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네 생물은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하고  4:8

 

▲땅은 혼돈하나, 천상에서는 여전히 다스리심

그들과 조화를 이뤄 24장로들이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찬송했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4:11

 

이 광경은 너무나 장엄하고 아름다운 하늘 예배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예배의 중심에, 하늘에 베풀어진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 온 우주를 통치하고 계셨고

모든 존재들은 그 분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천상에서는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비록 현재는 극심한 고난 속에 있지만

하나님께서 여전히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여전히 다스리시며, 여전히 영광 받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땅은 혼돈과 무질서 상태인 것 같지만,

하늘은 완벽한 질서와 경배가 계속 이어지는 것은

오늘도 여전히 주님이 보좌에 앉아서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현재 우리의 형편이 좋지 못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무척 어렵습니다.

세상은 점점 더 하나님의 통치를 거슬러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적인 역사는 식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우리의 헌신이 무의미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늘 성전에 올라가 보면 사정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이것을 봄으로써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은 자신의 뜻 가운데 세상 역사를 운행해 가고 계시며,

그 가운데 우리와 우리 교회를 사용하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그저 굴러가는 것도 아니고,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도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도해 가십니다. 할렐루야.

 

이 민족의 복음화와 열방의 생명 구원의 역사는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통해서 일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고 도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들을 붙여주시고 영혼을 구원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립니다.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4:2

 

<09.03.01. 설교스크랩                                                           ▣ 크리스천 삶(리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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