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 교만, 망각 신8:11-18 09/03/08설교스크랩
풍요로움(성공) → 교만 → 타자들과의 소통 거부 → 하나님 망각
의 순서로 보통 신자들의 삶이 진행되는데요...
◑도시에서.. 광야가 그립다
▶콘크리트 숲속에 파묻힌 도시에 산다는 것은
무한(영원)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삶이 지지부진하다고 느낄 때면, 마치 이명증耳鳴처럼 광야의 부름을 듣습니다.
광야라야.. 차를 타고 지나가 본 적밖에 없지만,
사람이 만든 어떤 구조물도 보이지 않는 그 허허로운 풍경은
제게 참 많은 말을 걸어왔습니다.
테오도르 모노라는 분은 사막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 공간은 파우스트적인 인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막은 잡다한 생각을 버리고 강인해지도록 가르치는 학교이다.”「사막의 순례자」 24쪽
그는 또한 사막은 ‘생략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면서,
“한 사람에게 하루 2.5리터의 물, 간소한 음식, 몇 권의 책,
몇 마디 말이면 족하다”고 말합니다.
삶이 단출해지면 번뇌도 적을 텐데,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세속의 거미줄에 붙잡혀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어쩌면 출애굽은 고대에 완결된 사건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바로의 전제정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광야로 나갔습니다.
지금은 욕망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출애굽을 감행해야 할 때입니다.
▶도시가 제공하는 느른한 행복에 빠져 사느라, 우리는 하늘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는 나팔소리가 우리의 잠을 깨웁니다. ‘잔치는 끝났다’는 것입니다.
근 30여 년 세계를 지배해왔던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은 체제임이 드러났습니다.
이 위기는 우리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낯선, 그리고 반갑지 않은 손님이 하루 속히 가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런 바람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흔히 위기는 기회라는 말을 합니다. 옳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앞에 당도한 기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저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를 것입니다.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위기의 때일수록 근본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신앙인은 근본에 충실하기 위해 진력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오늘의 위기가, 뿌리를 돌보지 않고 과실에만 매달려온 결과라고 확신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뿌리는 물론 하나님의 뜻입니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을 향해 돌아서야 할 때입니다.
◑풍요, 교만, 망각
본문 말씀은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경계의 말씀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 대한 사전 경고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성경이 후대에 기록된 사실을 감안하면
이 말씀의 삶의 자리는 출애굽 공동체가 아니라
정착생활에 익숙해진 백성들의 삶임을 알 수 있습니다.
▶12절부터 14절까지의 문장 구조를 간략히 하면
“A 할지라도 B 하지 말라”가 됩니다.
A에 들어갈 말은 다양합니다.
‘배불리 먹다’, ‘좋은 집을 짓고 거기에서 살다’,
‘소와 양이 번성하다’, ‘은과 금이 많아져서 재산이 늘어나다’ 등입니다.
그에 비해 B에 들어갈 말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잊지 말라”가 그것입니다.
이런 경고가 주어진 까닭은 하나님을 잊는 일이 현실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은 까닭을 간추리면 그들이 부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참 어쩔 수 없는 게 사람인가 봅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한다는 말은 씁쓸하지만 진실입니다.
사람은 삶을 위한 도구를 바꿀 때
하나님까지 바꾼다는 말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고통의 시험보다 더 이기기 어려운 것이 풍요의 시험입니다.
본문 말씀을 잘 보면 A와 B를 매개하는 것이 드러납니다.
‘교만한 마음’입니다. 8:14a
▶세상에서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의 능력, 경험, 판단, 결단을 자랑합니다.
말은 겸손해도 그 얼굴에 깃든 득의의 표정이 그의 교만함을 드러낼 때가 많습니다.
믿음이 좋아 보이는 이들 가운데는
‘자기 자랑’을 하나님의 은혜로 덧칠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교만한 마음에 사로잡힐 때.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무시합니다.
세상에 무시당하는 것 좋아할 사람은 없겠지요.
그러니까 그가 있는 곳에는 불화가 끊이질 않습니다.
교만한 마음이란 굳어진 마음입니다.
그들은 남과 소통하기를 싫어하고, 남에게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으로부터도 멀어집니다.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길은 이웃들을 통해 가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일련의 흐름을 아시겠지요?
풍요로움(성공) → 교만 → 타자들과의 소통 거부/불화 조장 → 하나님 망각
▶웨슬리 목사는 수입이 늘어도 생활비 지출은 늘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청빈한 마음은 청빈한 삶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았기 때문일 겁니다.
신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때, 은사이셨던 윤성범 학장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을 마친 후 가족들은 선생님의 장서를 학교 도서관에 기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책을 가져오는 임무가 당시 문예부장이었던 제게 주어졌습니다.
한 겨울에 불기라고는 전혀 없는 이층 서재는 참 추웠습니다.
그런데 사모님께서 올라오시더니 춥지 않냐면서 지나가는 말로
선생님은 평생 불기 없는 서재에서 공부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정신이 서늘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제게 인상적인 장면은
지바고가 하얗게 성에 낀 창문 아래서 촛불을 밝혀놓고
손가락을 잘라낸 장갑을 끼고, 손을 호호 불며 시를 쓰던 장면입니다.
세상에는 그렇게 ‘정신의 칼날’을 서늘하게 세우며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마음을 잃어 우리는 작은 일을 만나도 비명부터 지릅니다.
다시금 광야를 돌아보아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
신명기 역사가는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히브리인들을 종살이 하던 땅에서 이끌어내
자유의 새 삶으로 이끄신 해방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사람이 다 소중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세상을 미워하십니다.’
스탠리 머피 Stanley Murphy 신부의 말은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누구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어떤 상황에서든 신성한 실재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는 순간
죄를 저지를 가능성은 거의 무한하게 커진다.”
<존 하워드 그리핀, 「블랙 라이크 미」에서 재인용
▶‘애굽’이란 다른 곳이 아닙니다. 사람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모든 곳입니다.
애굽은 그렇기에 지금 우리 곁에도 있습니다.
가난하다고 하여, 배우지 못했다고 하여, 연줄이 없다고 하여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받는 사람들의 현실 때문에
누구보다도 아파하고, 누구보다도 분노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죄와 두려움과 부자유의 종살이에서부터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해방 사역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물론 만나manna는 진수성찬이 아닙니다.
반석에서 흘러나온 물이 넉넉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나누어 먹고 마시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는 되었을 겁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열악했기에
광야 공동체가 경험한 것은 삶의 고락을 함께 하는 이들의 깊은 연대의식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삶이 풍족한 데도 곤고한 까닭은
누군가와의 결속감정이 가져다주는 내적인 따뜻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은 용기 있게 살아갑니다.
용기courage라는 말은 ‘마음’ 혹은 ‘심장’을 뜻하는 단어 ‘cor’에서 왔다고 합니다.
용기 있다는 것은, 자신 심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우리 심장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용기입니다.
참으로 용감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고,
전쟁과 폭력과 학대와 착취를 예방하기 위한 행동에 가담하는 사람입니다.
<09.03.08.설교 스크랩 *원제목 : 초점을 바로 잡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