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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에서 하나님의 부재 속 임재 1833

LNCK 2009. 4. 8. 22:55
 

◈겟세마네에서, 하나님의 부재 속 임재                    마26:53         도서 스크랩

 

 

맥스 루카도 「예수님처럼」 JUST LIKE JESUS, pp.143~153. 정리



◑위기 일색의 그날 밤


예수님 체포 당시 (가상의) 신문 기사

만약 그때 당시에 신문이 있었다면, 예수님 체포 기사가 이렇게 보도되었을 것이다.


측근에게조차 버림받은 갈릴리 출신 설교자

일주일 전만 해도, 그들은 종려나무 잎을 흔들며 그를 환영했다.

그 군중들 중에 상당수가 어젯밤 칼을 앞세워 가서 그를 체포했다.

도시 성벽 바로 외곽의 한 동산에서, 군사들과 성난 시민의 무리에 체포됨으로써

그동안 꾸준히 명성을 이어오던 나사렛 예수는 마침내 좌초하고 말았다.


승리의 입성이 있은 지 일주일도 안 되어, 그의 명성은 치명적 위기를 맞았다.

그의 추종자들조차 그의 편에 서지 않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와 함께 다니는 것을 과시하던 측근들이

어젯밤에는 그를 버리고 도망가고 말았다.


군중들은 예수의 죽음을 부르짖고 있고,

사도라는 그의 측근들은 일체의 관련을 부인하는 가운데

이 저명한 랍비의 미래는 암울해 보이고,

그가 이제껏 끼쳤던 영향도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의 삶에서 가장 어두웠던 그 밤은 위기 또 위기, 그야말로 위기 일색이었다.


▲그는 응답되지 않는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예수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26:39


이것은 고요하고 평온한 기도가 아니었다.

마태는 예수께서 고민하고 슬퍼하셨다고 했다. 마26:37

주님은 얼굴을 땅에 대시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누가는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기도하사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었다고 했다.


일찍이 땅에서 그렇게 애절한 요청을 올려 본 적이 없었다.

일찍이 하늘은 그렇게 싸늘한 침묵을 고수한 일이 없다.

예수님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다.


혠리 포드의 아들이 자동차를 한 대 달라는데, 아버지가 거절할 수 있겠는가?

빌 게이츠의 아들이 컴퓨터를 한 대 달라는데, 아버지가 거절할 수 있는가?

천하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아들에게 뭔가를 거절하실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날 밤은 그러셨다.

그 결과 예수님은 응답되지 않은 기도의 딜레마를 해결하셔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곧이어 누가 등장하는가 보시라.


▲온통 배신으로 얼룩진 밤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이에 저희가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마26:47,50

 

유다가 성난 무리와 함께 왔다. 

3년간 애써 가르치고 설교했지만, 무리들에게는 아무 열매가 없었다.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도리어 자기를 체포하러 왔다. 

자기가 사랑하고/구원하려는 사람들이, 도리어 자기를 체포하러 온 것이다.


유다는 대여섯 명의 병사를 데리고 왔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마태는 ‘큰 무리’가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다고 말한다.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마26:47


요한은 더 구체적이다. 그가 사용한 “군대”(요18:3)라는 말은,

헬라어로 ‘스페이라’인데, 이는 최소한 2백 명의 군 병력 단위를 가리킨다.

많게는 1,900명의 병력을 지칭할 수도 있다.

 

요한의 표현에 힘입어, 우리는 수백 명의 군사들이

겟세마네 동산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오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모인 사람이 그 정도로 많다면, 적어도 한 사람은 예수님을 변호할 자가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도와주셨던가?


“예수님은 무죄하신 분이요” 하고 외칠 그 한 사람을 기다려 본다.

그러나 아무도 없다. 그분을 두둔해 주는 자가 단 한 사람도 없다.

예수님이 구원하러 오신 사람들이, 그 구원자 분께 등을 돌린 것이다.


군중이야 대충 용서할 수 있다.

그들이 예수님을 접한 시간은 너무 짧았고 너무 가벼웠다.

그들은 별로 잘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잘 알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예수님을 변호하고 나섰는가?

아니다. 예수께서 삼키셔야 했던 가장 쓴 약은, 제자들의 배반이었다.


배반자는 유다만이 아니었다. 마태의 솔직한 고백을 보시라.

이에 제자들이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마26:56

 

요한도, 마태도, 다 도망갔다. (나중에 베드로는 멀찍이 따라가기는 했지만)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마26:35

다 충성을 맹세했다. 그리고 다 도망갔다.


온통 배반뿐인 밤이었다.

제자들은 그분을 버렸다. 사람들은 그분을 거부했다.

하나님도 그분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셨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예수의 세계는 무너져 내렸다.

하늘은 응답이 전혀 없었고, 사람들은 아무 도움이 안 되고, 친구들은 충절이 없었다.



◑예수님다운 대처


▲유다를 친구로 대하시다.

그 분은 악 속에서 선을 찾으셨다. 유다보다 나쁜 사람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유다를 착한 사람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성경은 말한다.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요12:6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다르게 보셨다.

코앞에 마주선 배반자의 얼굴을 보며 그분은 말씀하셨다.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마26:50


예수님이 유다를 친구로 부를 만한 어떤 가치를 보셨는지, 나로서는 상상이 안 된다.

그러나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예수께서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 순간 예수님은 이 악인 안에서 뭔가 선을 보셨다.


우리도 똑같이 하면 얼마나 좋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역시 예수께서 모본을 보이셨다. 그분은 모든 것을 유다 탓으로 돌리지 않으셨다.

그날 밤 그분은 또 하나의 존재를 보셨다.

이제는... 어두움의 권세로다 눅22:53


유다에게 죄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나, 유다 혼자 하는 일만도 아니었다.

당신도 적도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단체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6:12


우리도 이와 같이 원수를 친구로 보는 눈을 갖자.

우리를 배반하는 이들, 우리의 원수들은

타락한 세상의 피해자다. 모든 것을 그들 탓으로만 돌릴 필요는 없다.


예수님은 유다의 얼굴에서도 그를 친구라 부를 만한 선을 찾으셨다.

우리도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처럼 똑같이 대할 수 있다.

그분이 본을 보이셨으니...



▲예수님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셨다.

예수께서 체포 현장에서 말씀하신 98개의 단어 중

30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것이다.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마26:54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마26:56


예수님은 당면하신 고통을, 더 큰 계획의 한 필수부분으로 보셨다.

겟세마네의 배반을

하나님의 드라마의 전체 각본에 담긴 중요하고도 특이한 한 막으로 보신 것이다.

 

최근 여행길에 나는 이와 비슷한 장면을 목격했다.

내가 비행기로 세인트루이스에 가던 중이었다.

비행기는 폭풍으로 늦게 출발한 뒤, 다른 도시로 항로를 바꾸었다.

그곳 활주로 위에서 우리는 비구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언제나 도착할까 시계를 들여다보며 손가락을 두드리고 있는데

통로 건너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내 팔을 꾹 찌르더니,

내 성경을 좀 빌려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성경을 건네주었다.

그는 옆자리의 젊은 여자 쪽으로 몸을 돌리고는 성경을 폈다.

두 사람은 남은 여정을 내내 성경을 읽었다.


얼마 후 하늘이 개이면서 우리 비행기가 다시 이륙했다.

목적지 세인트루이스에 착륙할 즈음, 그는 내게 성경을 돌려주며

가만가만 내막을 들려주었다.


그의 옆자리 여자는 비행기를 난생 처음 탄 것이었다.

여자는 얼마 전 육군에 입대하여, 처음으로 집을 떠나는 길이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그리스도를 믿느냐고 물었고,

여자는 믿고 싶으나 방법을 모른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내 성경을 빌려 여자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해 주었다.

비행기가 착륙할 즈음, 여자는 이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 후로 줄곧 그 사건에 대해,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여자에게 복음을 듣게 하려고, 하나님이 폭풍을 부르신 것일까?

충분한 시간 동안 예수님 얘기를 듣게 하려고 도착을 지연시키신 것일까?

정말 그러셨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예수께서 자신 앞에 닥쳐온 ‘폭풍’을 보신 시각이었다.

하나님의 계획에 꼭 필요한 비구름으로 보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잿빛 하늘을 본 곳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보셨다.

그분의 고난은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으며

그분의 희생은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마치는 말 : 하나님 부재의 환경 속에서 임재를 보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재를 보는 곳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보셨다.

하나님의 뜻을 찾으셨다.

 

마26:53을 특히 주목해 보시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이것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는 것이다. 그분은 아버지를 보셨다.

문제 속에 계시는 아버지의 임재를 보셨다.

열두 영의 천사가 그분 눈에는 보였다.  <이상 도서 정리                      ▣ 부활, 추수, 성탄, 성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