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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로써 경주하며 히12:1~3 도서 스크랩
맥스 루케이도「예수님처럼」JUST LIKE JESUS 복있는사람 출판사 pp.171~175, 정리.
필립 얀시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면
맥스 루카도에게는「예수님처럼」이 있습니다. 빼어난 작품입니다.
◑경주 race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히12:1
▲경주는 조깅이 아니다.
경주라는 말은, 헬라어로 agon인데
바로 그 단어에서 고통agony이란 영어단어가 나왔다.
성도의 신앙 경주는, 가벼운 조깅이 아니라
(마라톤처럼) 녹초가 되도록 힘들며, 때로 심한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런 고통스런 경주를 끝까지 펼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한때 달리다가, 더 이상 달리지 않는 사람들
우리 주변에 끝까지 강한 경주를 달리는 사람이 간혹 있기는 있으나, 결코 흔하지 않다.
조금 뛰다가.. 지치고 힘들면, 옆길의 구경꾼 대열로 그만 합류해 버린다.
한때 잘 달리던 이들이 있었다.
그들도 자기 페이스를 잘 유지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피곤이 찾아왔다.
이들은 경주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주자를 보고 기세가 꺾였던 것일까?
이유야 어찌되었든,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달리지 않는다.
▲경주에 임하지 않는 크리스천
아시다시피, 지금 크리스천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는 교회에 정기적으로 다닌다.
주일날 헌금함에 지폐 한 장을 넣는다.
교회 빈 좌석 한 자리는 채울 수 있을지 모르나
지금 경주에 임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마음은, 경주에 있지 않다.
이들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뭔가 변화가 없는 한, 초반에 반짝 달린 것이, 이들의 최고 성적이 될 것이다.
경주가 힘에 겨워 끙끙거리다가 그만 포기해 버리고 만 것인데,
문제는 천국에서 아무 상이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더 심할 수도 있다.)
▲반면에 예수님의 경주는
경주 막바지에 이를수록 더욱 피치를 올리셨다.
‘막판 스퍼트’라고 하는데, 정말 전 구간 중 가장 막판에
가장 최선을 다해/사력을 다해 달리셨다. 환상적인 막판 스퍼트였다.
일찍 경주에서 포기하신 분들은, 다시 신발 끈을 동여매시기 바란다.
지금 아직 포기하지 않고 달리시는 분들은,
예수님의 막판 스퍼트(십자가)를 모델로 삼으시고,
경주의 막바지에 이를수록.. 더욱 피치를 올리게 되시기 바란다.
▲인내의 경주
예수님이야말로 인내하는 자의 정형적 모본이시다.
예수님을 생각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이 그를 미워해서 악한 일을 할 때에도 묵묵히 참으셨습니다.
지칠 때라도 낙심하지 말고 예수님의 본을 따르기 바랍니다. 히12:3, 쉬운성경
위 성경은 예수님이 ‘묵묵히 참으셨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참지 못하고/경주를 돌연 중단하시고/죄인들을 징계하실 수도’ 있었다.
예수님이 죄인들을 참으신 것은, 경주하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경주자 예수님은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가 버리실 수도 있었다. (우리들처럼)
경주를 포기하고, 자기를 놀리는 죄인들을 엄히 징계하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증거 한다.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히12:3
◑그 어떤 것도, 예수님의 경주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예수님도 유혹/시험 받으셨다.
무슨 유혹이었을까?
포기하고싶은 유혹이었을까?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이었을까?
아니면 세상 왕국의 영광으로 만족하려는 유혹이었을까?
(우리 중에 이런 유혹에 넘어갈 사람이 많을 것이다.아니 세상 모든 영광을 다 준다는데..)
예수님도 유혹을 당하셨다.
내적인 전투가 벌어졌을 것이다.
유혹받으실 때, 그분은 경주를 포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으셨다. 그분은 계속 달리셨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묵상한다는 뜻은
이렇게 유혹을 받으셨으나 승리하신/끝까지 경주하신 예수님을.. 묵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유혹의 현장에 있으나, 그런 주님을 본받으려 하는 것이다.
▲비난도 그분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마라톤 경주 주자에게, 구경꾼들이 욕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간혹 축구경기장에서, 관중들이 특정 선수를 욕하고 생수병 등을 던져서
그 선수가 평정심을 잃고 흥분해서 맞받아치는 일들이 보도되는데...
성경에는 심상치 않은 표현이 나온다.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히12:2
우리가 깊이 묵상해야할 부분이다.
▲격려자도 있다
몇 해 전 나는 5킬로 경주에 참가한 일이 있었다.
어느 자선단체 기금마련을 위해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이었다.
달리기에 무지했던 나는 초반에 사력을 다해 달렸다.
그랬더니 절반도 못가서 숨이 헐떡거렸다.
그러나 적시에 길가에 늘어선 관객들이 나를 격려해 주었다.
친절한 구경꾼들이 나를 응원해 주었다.
어느 인정 많은 아주머니는, 물 컵을 건네주었고,
다른 사람은, 달리는 이들에게 호스로 물을 뿌려주기도 했다.
고통 중에 달리는 나는, 그들과 초면이었다.
그런 그들의 격려는 내게 너무 큰 힘이 되었다.
이들의 응원에 힘입어 나는 완주할 수 있었다.
영적 경주에 있어서도, 격려자의 응원은 너무나 소중하다.
(후략) ▣고난의 신학, 영광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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