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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건 원수 뿐이다

LNCK 2009. 4. 14. 19:25

 

◈믿을 건 원수 뿐이다                  욥16:1-22              -설교 스크랩/정리/출처-

 

 

                                                                        

◑본문 설명 : 미워도 다시 한 번!

 

과거에 ‘미워도 다시 한 번’이란 영화가 어떤 내용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아무리 미워도.. 내가 사랑할 사람은 그 사람뿐’이란 뜻인 것 같습니다.

욥이 바로 지금 그 심정입니다.

 

 

▲욥이 친구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다. 16:1~5  註1)

 

▲욥의 원수가 다름 아닌 하나님

욥은, 자신의 고난의 모든 이유를, 하나님이 조종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16:7 이제 주께서 나를 피로하게 하시고, 나의 온 집안을 패망하게 하셨나이다.

 

16:8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16:9 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적대시 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원수가 되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보시고.

 

지금 욥의 원수가 하나님이세요.

여러분, 원수가 뭐예요? 내게 해를 끼치는 자가 원수입니다.

 

그런데 지금 욥이, 자기에게 해를 끼치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중국영화 같았으면, 이 원수를 갚기 위해서 온 가문이 달려들어야 할 판이에요.

 

자녀 열 명을 다가져갔어요. 그리고 재산을 다 몰수했어요.

재산의 100분의 1만 가져가도 원수 아닙니까?

그런데 그 재산을 다 몰수해 갔는데, 그 장본인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이십니다.

 

사탄에게 시켰지만, 제1원인자는 하나님이 시켰으니까.

하나님이 다 빼앗아 가신 것으로, 욥은 말하고 있어요.

 

그래서 보면 나를 찢고 적대시 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간다는 것이에요. 16:9

 

▲그래도 믿을 분은, 원수(하나님)밖에 없다는 욥의 고백

하나님께 우리가 감히 어떻게 원수라는 명칭을 붙이겠습니까마는

원수가 할 모든 일의 백 배, 천 배로

지금 하나님께서 욥에게 하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묘한 것은 욥은 쓸개도 없고 밸도 없는 사람인지

v.18절 이하에 보면

그렇게 자기에게서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신,

심지어는 친구들조차도 등을 돌리게 하신 그 하나님을

16:19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무슨 말 입니까? 내 증인?

그래도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나의 하나님을 향한 의로움을 인정할 자는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가신 원수의 위치에 서계신

하나님 그분밖에는 없다고 고백합니다.

 

정말 이게 얼마나 모순된 고백입니까?

하나님께서 다 빼앗아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땅에는 티끌만큼의 면적도

욥이 마음에 붙일만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게 돼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욥은 고백합니다.

<그렇게 된 것이.. 다 하나님 때문>인 것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상한 고백을 합니다.

<원수처럼 내게서 그렇게 처참한 현실을 허락하신 그 하나님만이

내가 마음을 붙일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시다>라는 걸 고백합니다.

 

▲미워도... 기댈 곳은 하나님 뿐!

그리고 v.20에 보면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나이다.   이 설교의 요절

 

자 보세요. 이제 하나님을 향하여 귀를 돌리고 있던 야곱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눈을 들고 하나님을 향해 울고 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을 그리워하기 시작합니다.

 

눈으로 보기를 원합니다. 각도가 이제야 맞춰집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각도가.

마음의 눈이 하나님을 향하여 각도를 조정하게 됩니다.

 

왜? 이 땅에는 더 이상 그 누구도, 그 무엇에도

마음을 붙일 곳이 없게 되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드디어 욥이 하나님을 향하게 되고 높은 곳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이래서 믿을 건 원수밖에 없다는 것이에요.

이 세상의 모든 친구들이 자기를 배신하고,

하나님마저도 자기의 모든 재앙을 허락하시니까,

그런 모든 최악의 환경들이,

욥을 더욱 더 하나님만 간절히 사모하고/붙잡고/눈물 흘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적용 : 나중 된 자 먼저 되고.. 먼저 된 자 나중 된다        마20:26

 

 

▲하나님만 똑바로 잘 쳐다보라고.. 다 빼앗아 가셨다.

나에게 다정합니다. 나의 마음에 쏙쏙 들어오게 행동을 합니다.

이렇게 서로 정이 주고받아 지는 그런 나이스한 사람들,

이런 모든 평탄한 것들이, 나에게, 하나님을 향한 시선과 각도를 다 막아버립니다.

 

지금 하나님은, 욥을 오직 하나님만 간절히 쳐다보게 하기 위하여

계속 <마치 원수처럼> 다 빼앗아 가시는 거예요.

 

그냥 멀찍이 소문 등 귀로 ‘듣는 신앙’에서

→ 코앞에 대면해서 ‘보는 신앙’으로 발전시키시기 위해서

마귀를 이용해서, 하나님께서 욥의 모든 소유를 다 빼앗아 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 잃고/재산 잃고/아내 잃고/집안이 멸망하고

친구 잃고/건강 잃고/모든 것을 다 잃어도

하나님을 보는 것이 훨씬 더 유익인 것을 하나님이 아셨기에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신 것이에요.

 

▲세상 복보다 하나님 복이 더 커요

이걸 한번 적용을 해봐요.

이 세상에 있는 복을 다 모아놔도, 하나님과 저울에 달면

하나님 보고 하나님 갖는 것보다 못한 거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더 커요.

 

그러니까 하나님만을 간절히 우러러 볼 수 있도록

내게 고난을 주는 자들이.. 사실은 고마운 자들이에요.

 

누가 그렇게 합니까?

누가 내 마음을 이 세상에 붙이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만 향하도록 해 줍니까? 다 원수들이에요. 원수들.

 

▲남편이 너무 자상하면.. 하나님을 못 본다.

남편이 그저 아내를 생각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밖에 나가면 멋진 남편, 씩씩한 남편, 제 구실 잘하는 남편,

집에 들어오면 자상한 남편. 그 남편이 어떤 남편? 내 마음을 붙이게 하는 남편

그래서 하나님을 향하는 시선의 각도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자식이 너무 나이스하면.. 하나님을 못 봐요.

자식도요, 내가 원하는 대로 공부도 아주 잘하고

말썽이라는 건 아예 피우지 않고

생기기는 잘 생겨서, 집밖에 나가면 다 잘생겼다고 칭찬하지요.

데리고 나가면 부모 어깨가 쑥쑥 올라가는 거예요.

 

누가 물어 봐도, 일류대학 들어갔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고... (그것도 좋지만)

그 자식이 그 <짜식>이에요.

 

그 놈이 여러분의 시선을

하나님께로만 향하지 못하게 막는 놈이라니까요.

 

그런데 오히려 말썽피우고

생긴 것도 못나고

누구한테 대놓고 말하기도 창피한 그 놈,

도저히 그 자식한테는 마음을 붙일 수가 없는 그 놈, 그 놈이 원수요,

그러나 그 놈이 여러분에게 주님만 쳐다보게 하는 <님>입니다. 님! (↔짜식)

원수가 도리어 도움이 된다니까요!

 

자상한 남편, 능력 있는 남편이 대단한 원수, 진짜배기 원수라는 겁니다.

뭐 바람피우고, 문제 일으키고, 돈 못 벌고, 맨 날 제구실 못하는 남편,

도저히 그 남편에겐 마음을 붙일 수가 없어요.

 

그 남편이 아니었으면, 내 시선이 온통 남편에게 쏠려있었을 터인데,

그 남편에게 쏠리는 시선만큼이라도, 내 시선을 하나님을 향하게 해 주니,

너무 현실을 비관적으로만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반복되는 인생

그래서 예수님 말씀이

앞 선자 뒤에 서고, 뒤에 선자 앞에 선다고 하셨습니다.

자녀/남편 문제가 뒤쳐져서 간절히 하나님만 쳐다보다가.. 점점 앞에 서게 됩니다.

또 앞에 서서 교만 떨다가... 자녀/남편이 점점 속을 썩이면서... 점점 뒤로 밀립니다.

인생은 그게 반복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 번 앞에 서면

훌륭한 자녀/남편이 있을 때에도 계속 신앙의 내공으로 하나님만 간절히 찾으면서

앞자리를 뺏기지 않고 계속 선두를 유지한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성숙한 신앙인이라 할 수 있겠죠. (이 단락 삽입)

 

거지 나사로는 왜 구원을 받고, 부자는 왜 구원을 못 받았겠어요?

그 뭐 학자들의 논의가 분분해요. 그러나 분분할 게 하나도 없어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거지 나사로란 말이 무슨 뜻이냐면

<나사로란 뜻이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시다>라는 말이에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마음 붙일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내가 마음 붙이게 되어 있다.

왜? 내가 거지니까. 아무 것도 없으니까. 그래서 하늘나라 올라간 거예요.

 

그런데 부자는 왜 못 올라갔습니까?

부자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말이 한마디도 없어요.

 

그런데 왜 못 올라가요?

추측이지만, 간절히 하나님만 바라보지 못할 여건이라는 겁니다.

비싼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잔치하는데,

간절히 하나님만 쳐다보기가 정말 어렵죠.

그러니까 지옥 간 거예요.

 

▲마치는 말

그러니까 모범생 자식 놈이 그놈이, 그놈이 여러분한테 위험한 놈이에요.

그 놈한테 마음 붙이게 되니까.

 

훌륭한 남편, 그 ‘님’이 그게 진짜 위험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내게 못하는 남편 고마워하세요. 내게 잘하는 남편 경계하세요.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분이 좋다는 것,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들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서 빼앗아 가십니다. 욥처럼!

 

사업, 지지리 안 되지요? 그 사업체가 여러분의 영성을 살려줍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붙이게 하니까.

반대로 잘되는 사업은 위험합니다.

 

지금 사업이 잘 되세요? 그때 경계하세요. 조심하세요.

또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분명히 멀어져요, 여러분. 내 말이 틀리지 않았을 걸요?

그래서 앞선 자 뒷 서고, 뒤에 선자 앞에 선다니까요!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원수가 진짜 원수인 줄로만 압니다.

그러나 정말 무서운 원수는 내게서 내 마음을 하나님으로부터 빼앗아가는 자들이요

내 마음이 붙일만하다고 느껴질 만큼 내게 잘하고 내게 다정하고

내 마음에 들고 내 뜻대로 되어지는 그 상황과/그런 대상과/그런 사람들이

내게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시선의 각도를 빼앗아가는 것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이 땅에서 내 마음이 붙일 곳이 없게 만드는 원수들이야말로

내 하나님 내 아버지 나의 사랑 나의 남편 되시는 우리 하나님을 향한

시선의 각도를 허락 하신다는 사실 꼭 기억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들이 나중된 자 되었을 때는, 간절히 하나님만 바람으로.. 속히 먼저된 자 되게 하시고,

우리들이 먼저된 자 되었을 때는, 여전히 간절히 주님만 바람으로.. 나중되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註1) 욥이 친구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다. 16:1~5

여러분 오늘 욥의 참 처절한 심정이 묘사돼 있어요.

욥16:1~5절까지 욥의 심정이 이런 거예요.

 

욥이 친구들을 향해서 말합니다.

‘야, 이젠 그만하자. 

지금 내 처지를 놓고 너희 말이 옳다/내 말이 옳다

지금 그런 것을 따지고 싶지 않다.

 

그런데 한 가지 서운한 게 있다.

지금 내 처지가 어쨌든 이렇게 되었는데

어떻게 내 마음에 위로가 될 한 마디의 말도 주지를 않느냐?

 

지금 옳고/그름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너희들이 나의 친구라고 하면서

내 마음에 위로 한 조각 허락하지 않고 있느냐?’

 

그러니까 욥이 지금 필요한 것은

뭐 회개해서 내 죄를 깨달아가지고 회복하고...

이런 게 지금 당장 중요한 게 아니라

좀 마음 붙일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에요. 마음 붙일 곳이.

 

그런데 친구들조차 마음을 붙이게 하지를 않습니다.

정말 아무 것에도 머리털 끝만큼도 마음 붙일 곳이 없게 돼버려요.

 

욥의 심정이 지금 너무너무 어려워서, 어디다 한번 마음을 붙여 기대고 싶은데,

조금이라도 이 고통에 짓눌려 있는 마음을 좀 쉬게 하고 싶은데.

이미 자식들은 다 죽었지요, 아내는 욕하고 떠났지요,

친구들이 와서는 계속해서 자극을 하고

눈꼽만큼도 마음 붙일 장소를... 친구들조차 허락하지를 않고 있습니다. 

 

<설교 스크랩, 편집                                                     ▣ 삶의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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