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세 영역 빌2:12 09.03.15.설교 녹취, 정리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
구원은 주님께서 다 해 주시는 것인데, 우리보고 ‘이루라’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구원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이루어가야 한다는 주제의 설교문.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
이 말씀은,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즉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서, 사도바울은 말씀하고 있다.
이렇게 성도가 ‘구원을 이루어 내야하는 이유‘가 연이어 다음 절에 나온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2:13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은, ‘계속 우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성도가 구원을 잘 이루어 가는 그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 계속 일하신다.
우리가 ‘구원을 잘 이루어 가고 싶은 소원’은 있지만, 사실 몸이 안 따라준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그 일을 잘 도와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구원을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구원에 대해 불충분하게 알고 있는 점들을 교정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천국 가는 기차표 정도로 이해한다.
성경구절 몇 개 암송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천국은 따 놓은 당상쯤으로 여긴다.
이런 예화도 과거에 여러 번 들었는데,
사람이 죽으면, 천국 입구에서 베드로사도가 문을 가로막고 물어본단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는 고백이 나오면 통과,
그 ‘말’(일종의 주문)이 안 나오면 천국 문에 들어가지 못한단다.
그 예화가 의미하는 바가 있겠지만,
구원과 믿음의 문제를, 그 예화 하나로, 단순화 시켜버리는 것은.. 큰 잘못이다.
(사실 오늘 우리나라 기독교의 모든 문제의 근원을 추적해 가면
바로 여기 ‘값싼 구원’이란 정점에 도달하게 된다.
기복주의, 성공주의, 현세주의, 율법폐기론 등 모든 파생상품들의 출발점이 ‘값싼 구원’이다.
자기는 일단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신앙의 9부/10부 능선을 다 넘은 것으로 여긴다.
일단 3등칸이라도 천국행 기차표를 따 놓았으니.., 이제 이 세상에서 ‘열심히/재미나게’ 살자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을 이루어간다>는 목표를 가진 사람들은, 그게 무엇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니까,
일평생 영생에 초점을 맞춰서 살아가고, 가르친다.
그런데 <구원은 이미 따 놓았고>라고 생각하면... 주제가 현세적인 것들로 자연히 옮겨가게 된다.)
▲구원의 3영역
구원은 나의 신분/인격/행위(삶)에 일어나는 지속적인 변화이다.
여기서 세 영역을 꼭 기억하시기 바란다. - 나의 신분/나의 인격/나의 행위
그리고 그 변화는 지속적이다. 일시적 one time이 아니다.
다른 말로, 만약 내게 위 세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변화가 금년에도 지속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있다면...
나는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 받았으면, 그게 자연적/자동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영생이니라 롬6:23 등의 구절에 근거해서
자기가 이미 구원받았다고 과거에 우리가 믿었는데,
그것은 구원을 ‘신분’차원에서의 변화만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참된 구원에는, ‘신분 차원’ 말고도 ’인격, 행위 차원‘도 있다.)
▲구원의 인격적 영역(차원)
구원은, 에덴동산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며,
신약의 예수님의 형상을 본 받는 것이다.
이 인격적 영역의 변화를 놓고 볼 때,
구원은 ‘예수 믿는 순간’에 <시작>되는 것이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루라.., 즉 완성해가라는 뜻이다.
구원은, 지속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상식적으로 봐도, 성도가 예수님 형상을 본받는 것은, 평생 이루어나갈 숙제이다.
▲<구원의 확신>에 대한 세부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은, 구원은 예수 믿을 때 시작된다. (완성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점을 생각지 않고, 너무 자주 반복해서 쓰는 말이 있는데,
‘나는 구원 받았습니다’ 라는 ‘구원의 확신’도 엄밀히 따지면
구원을 완성했다(이루었다)는 뜻이 아니라, 구원을 시작했다는 뜻이다.
내 신분은 영접하는 순간에 당장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었지만,
내 인격과 내 삶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다. 여전히 바뀌어져 가고 있다.
‘내가 구원받았습니다’라는 말을 쓸 때, (쓸 수 있다)
그런 점들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우리가 오해할 수도 있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이룬 것처럼...
실제로 우리가 그렇게 오해해 왔다. 성경의 한 부분만 뚫어지게 보았기 때문이다.
성경의 다른 면(오늘 본문 같은 구절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했기 때문이다.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 맞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구원받고 있습니다!’ 라고 자기 마음속으로 믿어야 한다.
구원/하나님의 형상을 매일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 가야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내 의지로 이루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속에서 역사하신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빌2:13
예수 믿는 순간 내가 구원을 끝냈다(구원받았다)고 극단적으로 믿는 것은
사실 이단에 가까운 주장이다.
요즘에도 ‘죄 사함의 비밀’을 주장하는 분들은, 이런 식의 극단적 구원론을 주장한다.
예수 믿는 순간 죄사함/구원이 다 완성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기성교회에서도 많이 이렇게 가르쳐왔다.)
신분의 영역에서 볼 때, 완전히 바뀐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격적 영역과, 행위(삶)의 영역에서는, 구원은 계속 이루어져가야 한다.
구원받은 사람은, 자연적으로 자기 속에 ‘거룩한 씨’가 그런 활동을 이루어 가신다.
▲예를 들면,
어떤 학생이 일류 대학에 들어갔다.
입학을 했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졸업해야 한다.
졸업할 때까지 학업을 이루어가야 한다.
아이가 엄마 배속에서 태어난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
‘중생’의 의미는 ‘새로 태어남’이다.
그러나 태어난 이후에는, 계속 자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구원받는 순간, 우리는 죄 용서를 받았지만
죄의 근원은 아직 우리 몸에 가득 차 있다.
우리가 법적으로 의인이 되었지만, 성품적으로는 점점 의인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구원이 완성된다.
(그럼 질문은, 구원을 시작했으나 만약 구원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천국에 무사하게 들어갈 수 있을까?
'하나님의 열심', '성도의 견인' .. 이런 말은
'성도가 한 번 구원 받았으면,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끝까지 구원을 이루어가신다'는 주장이다. 맞다.
그러므로 구원을 시작했으나 구원을 완성하지 못할 사람은 거의 없다. 하나님이 완성하시니까...
만약 있다면, 현실적으로는 있다고 본다. 하나님만 아시지만
만약 있다면, 애초에 그가 받은 구원의 진정성이 의심스러운 것이다.- 편집자 주)
▲예수님 재림 때, 우리가 변화하여, 완전히 구원을 이룰 것인데,
우리가 뭐하러 땅에서 애쓰며 구원을 이루어가야 하는가?
이것은 애써서 우리가 땅에서 이루는 것이 아니다.
구원을 시작한 사람은, 자동적으로 속에서부터 이루어져가는 과정이다.
물론 우리가 로봇이 아닌 이상, 내가 해야 될 역할(순종 등)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주도권이 언제가 ‘내 속에 있는 새 생명’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럼 ‘내 속에 계신 성령님/새 생명’의 역사에
의도적으로 거부/불순종할 수 있는가?
여러분, 여기서 ‘마귀의 역사’도 고려하셔야 한다.
끊임없이 방해/훼방하고 지옥으로 데려가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우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
이것은,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에 항상 순종하라는 뜻이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것’은,
내 삶을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에 항상 순종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자기 삶에 ‘성령의 인도’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몇 달이 지나도, 기도할 마음도 안 생기고, 교회 와서 예배 때만 기도하고,
몇 달이 지나도, 죄의 유혹에 싸울 마음이 안 생기는 등 .. 여러 현상들이 있다.
이런 사람은, ‘지식적 동의’를 했어도, 아직 중생(새생명의 탄생)하지 못했을 수 있다.
▲자전거 타면서 받은 은혜
한 번은 안성에서 분당까지 제가 자전거를 타고 온 적이 있다. 약 50킬로.
그런데 그날 너무 힘들었던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맞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자전거 탈 때 맞바람이 불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아무리 힘들게 패달을 밟아도, 자전거가 기어다가시피 한다.
그날 두 시간 반 동안 너무 힘들게 자전거를 타면서, 저는 오직 한 가지만 생각했다.
‘주여, 제가 성령의 바람을 거스려 살지 않게 하소서!’
바람을 거스려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날 실감했다.
영혼이 거듭난 사람은, 성령이 자기 속에서 인도/역사하신다.
그것을 순종해서 사는 것이 아예 쉽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불순종하면.. 성령이 소멸되거나, 떠나실 수도 있다.
‘구원을 이루는 삶’이란... 자연스럽게 지속적으로 성령과 더불어... 되게 되어 있다.
그런 삶이 만약 안 나타난다면... 아직 중생하지 못한 것이다.
성령은 우리 속에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게 하신다.
즉 성령이 내 속에서, 우리의 구원을 날마다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너희가 구원을 받고 있다는 증거
반대자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조금도 겁내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그러한 용기가, 그들에게는 멸망의 징조가 되고, 여러분에게는 구원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빌1:28, 공동번역
이 말씀은, 너희가 복음을 위해서 협력하고,
복음을 변호하기 위해서 고난 받고, (위 본문에 조금도 겁내지 않고)
끊임없이 복음에 합당한 천국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삶은
너희가 구원을 받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뜻한다. 빌1:27~28,
즉, 구원은 점점 이루어져/완성되어 감을 뜻하는, 또 하나의 구절이다.
<09.03.15. 설교녹취/정리 *원제목 : 구원을 이루는 천국시민의 삶
*그러나 위의 주장이 너무 극단적으로 강조되면
일반 성도들에게 과도한 불안감을 조성하고, ('구원받기 어렵겠구나')
교회가 구원을 매개로 전횡을 일삼을 수 있는 ('우리 지시/말 잘 안 따르면 천국에 못 가요')
그런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중세 암흑 시대에 아마 그랬던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이런 '중요한' 주제가 더욱 많이 논의되면서,
더 다듬어지고, 더 수렴되어, 점점 완성될 것입니다.<편집자 ▣ 믿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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