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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과 영성의.. 몸의 훈련

LNCK 2009. 4. 28. 13:26

◈경건과 영성의.. 몸의 훈련                   딤전4:8               06년4월 설교 스크랩          

 

*원제목:경건의 훈련은 범사에 유익(27과)        

   

    ▲믿음으로 살고자 애쓰는 어느 의사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오늘도 선교지(병원)를 향하여 갑니다.

너무 힘이 들어서 저로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사람들은 모든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병원을 찾아옵니다.

그러나 제가 고칠 수 있는 병은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고쳤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제가 고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고치시는 일에 물을 주고 거름을 준 것에 불과합니다.

 

어제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아빠도 없고 엄마도 포기한 외손자를 데리고 와서

무릎을 꿇고 제 다리를 붙들고는 ‘제발, 제발, 이 아이를 살려주세요!’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제가 그 괴질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어떻게 그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위로하며 그들에게 소망을 줄 수 있습니까?

저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게 능력을 주시면 저도 있는 힘을 다하겠습니다.

 

주님! 그 자리에 오셔서 그곳에서 주님의 일을 하시옵소서.

그래서 병실이 의사가 병을 고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임하여 역사하는 곳이 되게 하옵소서.

고침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저의 의술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영성의 <영적 차원>과 <역사적 차원>

  

여러분, ‘영성’/‘기독교 영성’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지요?

이 말은 198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많이 사용하기 시작한 말입니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성의 <영적인 차원>과

<역사적인 차원>을 먼저 구별하여 설명하여야 할 것입니다.

  

▲1. <영성의 영적인 차원>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여서 은혜를 베푸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나에게 찾아오셨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을 들려 주셨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응답하셨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 가운데 오셔서 우리들에게 하늘의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우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기독교 영성의 영적 차원이라고 말합니다.

  

▲영성의 영적 차원을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하나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1874년부터 3년간 심한 가뭄과 메뚜기 재해가 있었습니다.

메뚜기들이 떼로 나타나서 농작물을 거의 갉아 먹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주민들은 한숨과 눈물로 지냈습니다.

 

주지사 필스베리 씨가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특별 감사기도의 날을 정하고

주민 전체가 감사기도와 감사예배를 드리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힘든 3년을 지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복이라고 믿습니다.

감사는 힘들 때에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지금 우리는 크나큰 위기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지금이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려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교단 대표들은 필스베리 주지사의 제안에 동의 했습니다.

주민 전체가 일제히 감사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믿기 어려운 일이 얼마 후에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극성을 부리며 곡식을 갉아먹던 메뚜기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과학자들도 그 원인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감사의 기도에 응답하여 미네소타 주를 구원했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네소타 주민들의 감사예배에 응답하여 신비한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가운데 임하여 신비한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성의 영적인 차원입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임재하여

신비한 일을 행하는 것을 경험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2. <영성의 역사役事적인 차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임하여 은혜를 베푸십니까?”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디에 임하여 역사합니까?

사람들은 기도하는 곳, 예배를 드리는 곳, 교회나 기도원 등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 어디든지, 믿음의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그곳에 임하여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39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139:7-10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에서도 역사하시고, 직장에도 임하여 은혜를 베푸시고,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에도 임하시고, 의사가 병을 고치는 병실에도 임하시고,

메뚜기가 극성을 부리는 밭에도 임하시고... 어디에든지 임하십니다.

 

그러므로 <영성의 역사적인 차원>이란, 신령한 성도가 사는 시간과 공간이면

어디든지 하나님께서 임하여 은혜를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3. 기독교 영성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임하여서 우리를 만나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약하고 부족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으로 채우시는 것으로,

우리 모든 삶의 영역이 다 영성의 현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성적 차원과 역사적 차원이 어우러져,

하나님의 임재가 날마다, 내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의사는 자기가 일하는 병원에

하나님께서 임하여 병자들을 고치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하나님의 신비를 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앤드류 머레이 목사님은, 고아들을 키우면서

그 아이들을 돌보는 고아원에

하나님께서 임하여 고아들을 돌보아 주시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전쟁을 하면서 금식기도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전쟁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임하기를 원했고

그 전쟁이 하나님의 전쟁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 가정/ 직장/ 사회/ 자연/ 이 세상 땅 끝 어디든지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와 복으로 채워지는 영성의 현장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바로 여기에서 하나님의 신비를 보게 하소서!” 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 한 번 따라 합시다. “오늘도 하나님의 신비를 보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이제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눕시다. “하나님의 신비를 보며 삽시다.”

하나님의 신비를 보며 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이요, 은혜요, 감사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신비를 보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적용 : 일상의 영성생활

 

 

▲경건에 있어서, 육체의 연습도 필요합니다.

바울 사도는 경건을 연습하라고 말씀하면서

육체의 연습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4:8

 

육체의 연습이라는 말은 고대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육체를 훈련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집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운동하는 시간만 훈련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하루 24시간 일주일 7일의 모든 생활을 훈련으로 생각합니다.

선수들은 잠을 자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않습니다. 일정한 시간에 잠을 자야 합니다.

잠을 자는 시간도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이 자도 안 되고 너무 적게 자도 안 됩니다.

 

일어나는 시간도 훈련입니다. 좀 더 자고 싶어도 훈련에 지장이 없도록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야 합니다. 먹는 것도 훈련입니다.

먹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함부로 먹을 수 없습니다.

또한 훈련하는데 유익한 음식이라면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하고

해로운 음식은 아무리 먹고 싶어도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뿐입니까? 운동하는 시간도 훈련입니다.

너무 많이 해도 안 되고 너무 적게 해도 안 됩니다. 쉬는 시간도 훈련입니다.

그래서 태릉선수촌에 입단하면, 휴대폰부터 반납한다고 합니다.

 

▲기도도 자세가 중요하다

여러분, 공부하는 학생은.. 자세가 중요합니다.

물론 자유로운 자세로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습니다만, 

공부를 오랜 시간 하려면, 자세가 올바른 사람이.. 결국 승리합니다.

 

운동도 마찬가집니다. 자세가 기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유대인들의 기도 자세를 보면,

-무릎 꿇고 

-두 손을 들어  ... 이것 한 번 해 보십시오. 팔은 좀 아프지만, 기도는 잘 됩니다.

-또는 땅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prostrate, 사제서품 받는 자세) 등이 있습니다.

 

요즘, 기도가 잘 안 되시는 분들, 그래서 괴롭다는 분들은

‘기도의 자세’를 한 번 원형으로 복귀해 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기도도.. 육체의 연습이 필요한데, 그것은 자세를 바르게 갖는 것입니다.

 

담배를 피우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라!

한경직 목사님이 남산에 사실 때에 이런 이야기를 저희에게 들려 주셨습니다.

자기에게 아주 가까운 미국 선교사 친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선교사가 일시 미국으로 귀국했을 때입니다.

 

그는 자기 아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자기 아들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말을 해야 하겠는데

오랜만에 만나서 야단이나 치면 아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 질것 같아

어떻게 하면 아버지와 아들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고

담배를 끊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였습니다.

 

그 선교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드디어 그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선교사님은 자기 아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네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이 아니다!”

 

그러자 아들은 곧 반발했습니다. “성경 어디에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했습니까?

성경에서 담배라는 말을 한 마디만이라도 찾으면 담배를 끊겠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웃으면서 “한 가지 네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너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하는 말씀대로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기도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아들은 “그렇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너는 담배를 피우기 전에도 꼭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담배를 피워라.”

아들은 웃으면서 “어떻게 담배를 피우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해요?” 하고 말했지만

그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6개월이 지났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아버지, 나 담배 끊었어요!”하고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웃으면서 “왜 끊어, 더 피우지.” 했더니 그 아들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기도하고 나서 담배를 피우니 맛이 없어요!”

그렇습니다. 경건의 훈련은.. 모든 일을 기도하고 나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부 싸움을 하고 싶으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보세요.

“하나님, 지금 부부싸움을 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싸울 때에 거기 임하여 하늘의 사랑과 평화로 가득 채우소서.”

그렇게 기도하고 나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부부싸움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벽기도의 육체훈련

여러분, 우리 한국교회는 새벽기도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새벽기도를 하여야 복을 받는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는 그것 때문에 새벽기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기도는 우리의 경건훈련에 아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새벽기도를 나오고자 하면 잠자는 시간부터 훈련을 하여야 합니다.

좋은 텔레비전 프로가 있어도 절제해야 합니다.

재미있는 연속극이 있어도 참아야 합니다.

일찍 잠자리에 들지 않으면 새벽기도에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잠자는 것부터 해서 일어나는 것, 그리고 하루의 생활 스케줄도

새벽기도에 맞추어 조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하루의 삶을 경건훈련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벽 기도회부터 시작합시다.

그래서 하루를 훈련으로 삼아서 기도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하루가 되게 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하는 하루가 될 것입니다. (후략)          

 

오성춘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