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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대해서 죽은 자, 하나님께 대해 산 자 1876

LNCK 2009. 5. 6. 09:29

죄에 대해서 죽은 자, 하나님께 대해 산 자           롬6:1~23     권연경 목사 롬6강 12~43분 녹취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천국 간다!’를 외치면서

‘죄에 대해서 죽은 자’로 여기며 살지 않는 것은 ... 마치 마약과 같다.

당장은 기분이 좋지만, 결과적으로 기분 좋게 지옥에 간다.

 

 

기분 좋게 끝장난다는 뜻으로 .. 선정적이지만 ‘마약’이란 비유를 빌려왔다.

하지만 우리는 생생한 정신으로, 복음의 메시지 앞에 직면해야 한다.


롬6장이 가르치는 바는, 한 마디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는 ‘죄에 대해 죽은 자’로 살아가며 (점진적 성화의 과정)

그렇지 않고 '오직 믿음'을 되뇌면서 마음대로 죄 짓고 살면.., 죄의 삯은 사망(지옥)이라고 가르친다. 롬6:23 

                     

(매우 딱딱한 내용이지만, ‘단단한 음식’도 먹어야 하므로, 올려 봅니다.

우리가 많이 잊고 살아가는 내용이지만, 앞으로 더욱 자주 연구해서, 소개해야할 주제입니다.)



롬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예수님도 많이 탕감 받은 자가,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씀하셨다.

                                                              롬5:20,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그렇다고 고의로 죄를 더 짓자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신에, 아래의 과정이 일어난다. 곧 성화의 과정이다.

 

 

◑1. 죄에 대해 죽은 우리


6: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서 살리요

바울은 ‘죄에 대해서 죽었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아래 3절에서 한 번 더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표현을 쓴다.


즉, ‘죄에 대해 죽었음’=‘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음’이다.

 

 

▲1.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


롬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註↓)


‘예수와 합하여’는 ‘예수님 안에서’ 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into이다.

예수님 속으로 쏙 들어왔다는 뜻이다.


예수님 안에 들어와 보니까, 예수님은 과거에 죽으셨던 분이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었다.


로마 교인들이나, 우리들이나, 예수님 안에 쏙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죄에 대해 죽는다’,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다’는 말은 그런 뜻이다.

예수님 안에서, 예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는 생생하게 살아있을 터이니, 예수님 당신만 죽으세요’.. 가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이 이제 나의 죽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갈2:20절에서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혔다고 증거한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 우리가 설교를 들을 때,

    도화지에 사람을 그려서, 성경책 속에 끼워넣고,

    성경책을 강대상 위에 놓기도 하고, 피아노/ 땅 바닥 위에 놓기도 하면서 (성경책은 예수님을 의미)

    도화지에 그려진 사람이, 성경책이 가는 곳 어디에든지 따라가듯이

    예수 <안에 into> 있는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곳/부활하는 곳에 따라간다는 예화를 들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죄와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뜻이다.

이제는 죄를 ‘죽은 남편처럼 여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예수님이 자기 몸에 죄 그 자체를 안고 죽으신 것이다.

우리 죄를 소멸하기 위해서였다.


롬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율법은 못 하는데,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는 것이 있다. 연이어 나온다.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죄)하사

죄를 정죄해서 십자가에서 죄를 죽여 버리셨다.

우리가 죄와의 관계를 끊어버리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면, 좀 사악하고 악독한 남편이 있는데,

이혼도 안 해 주고, 너무 괴롭히니까

그 남편(죄로 비유)과의 관계를 끊는 일은

아내가 한강 다리 위에서 뛰어내려서 죽어버리면 된다.

예수님이 육신의 몸으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셔서, 육신과 죄의 관계를 끊어버리셨다.

예수님의 죽음은.. 죄 자체를 죽여 버리는 죽음이셨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와 합하여(안에서) 세례를 받았다.

결국은, 이제 나도 죄와 관계가 끊어져버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조폭이 감옥에서 예수를 믿었다.

 

출소할 때 보니, 밖에서 목사님도 기다리고, 두목도 자기를 환영한다고 기다린다.

그런데 이제는 목사님 쪽으로 가야 한다. 이제는 두목과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아담의 후손으로서, 이전에 우리는 죄의 다스림 아래에 있었다.

이제 우리는 '은혜의 다스림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은혜 아래  롬6:14

죄는 더 이상 우리와 관계가 없다.

 

이것은 ‘단순히 죄에서 용서 받았다’는 것 이상이다.

관계가 끊어져버려서, 이제는 더 이상 죄 아래(노예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2. 그와 함께 장사된 우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장사되었나니’ .. 매장되었다는 뜻이다.

안 묻어놓으면 혹시 다시 살아날지 모른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아래 파묻어버린 것이다.

그만큼 나 자신이 완전히 죽었다는 뜻이다.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자를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롬4:17

하나님과 같은 맥락이다.


즉, 우리 옛 사람을 완전히 땅에 파묻어 버린 이유는,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진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법적으로는,

이제 죄와 아무 연관성이 없는 사람이다.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고, 완전히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

 

그런데 현실은, 내 삶에 아직 죄의 잔재가 조금씩 남아있다. (성화를 통해 점점 사라져간다)

그렇지만 우리의 ‘법적 신분’을 명확히 깨닫고 살아야 한다.


예를 들어, 감옥에서 예수 믿고 출소한 사람이,

이제는 성도의 신분으로 목사님과 가까이 지내며 살아야지,

아직도 자기가 조폭인 줄 알고, 두목과 가까이 지내며 살면 안 된다.

하루아침에 완전하게 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자기 신분은 알고 살아야 한다.


그 자기 정체성이 ‘매일 성화의 삶’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어떤 유혹의 갈림길에서 자기 정체성이 되살아 날 때, ‘아, 내가 죽었지...’ 하면서

성도는 돌아서는 것이다.


 

▲3. 전 남편과 이혼한 우리

 

롬7장에서, 바울은, 또 하나의 비유를 드는데, 남편과 사별/이혼한 여자 비유이다.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롬7:2~3

 

예를 들어, 전 남편과 이혼하고 새로 재혼했는데,

전 남편이 만나자고 전화하면.. 절대로 나가서 만나면 안 된다.

그래도 계속 전화하면, 자기 전화번호를 바꾸든지, 이사 가든지 해야 된다.


이제 전 남편(죄)이 자꾸 휴대폰에 문자text를 넣을 때, 만나러 나가서는 안 된다.

이제는 죄와 관계가 끊어졌으므로, 만나러 나가면 안 된다.


 

남편이 살아있을 동안에, 부인이 다른 데 시집가면 욕 먹는다.

그런데 남편이 죽고 난 후에 재혼하면. 아무도 욕 안 한다.


여기서 바울이 ‘죽는다’는 표현을 쓴 포인트는

<관계가 끊어졌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2.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우리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리라


‘죽으심의 연합’은 과거 사건이지만,

‘부활의 연합’은 미래 사건이다. 이것은 우리 소망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지금 내 몸속에는 새 생명이 역사하고 있다. 완전한 부활체는 아니지만.

그 새생명이 점점 자라가고 있는 것이다.


얼핏 보면, 과거의 삶과 다른 것이 없게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새생명이 잉태되어, 점점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 마지막은 ‘몸의 부활’이 될 것이다.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6:4절과 같은 내용의 반복이다.

예를 들면, 초가집에 벼룩이 많다. 벼룩을 한 마리씩 잡으려니 너무 힘이 든다.

그러면 초가집을 홀랑 다 태워버리고, 새로 집을 짓는 것이다. 그런 내용이다.

 

 

◑3. '여기는 자'에게 따르는 삶의 변화, 드리는 삶


6: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이렇게 먼저 ‘신분의 변화, 법적 변화’는

자동적으로 ‘생활의 변화,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예를 들면, 군대에서 장교들의 생활과 사병/예비군들의 생활은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다르다.

장교는 ‘장교로서의 자부심, 프라이드’가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휴일 날에 학생들이 하루 종일 신나게/요란하게 파티를 하고는

저녁이 되자 학생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자기 일상으로 돌아갔다. 2차, 3차, 외박 나가지 않았다.

그 학생들은 ‘우리에겐 프린스턴 스피릿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프린스턴 학생들이니까 남다르다'는 것이다.

(적절한지 모르지만, 신분의 변화/법적 변화가.. 삶의 변화와 연결됨을 설명하는 예화)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6: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6: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첫 남편’에게는 이미 죽었고, 이제 ‘새 남편’하고만 관계가 있는 것이다.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여길지어다’ .. 이 표현이 ‘법적 신분’을 표시하는 말이다.

비록 현실은 죄의 잔재 가운데 살더라도,

법적으로는 ‘여기며’ 살아라, 자기 신분을 알고 살아라는 것이다.


그렇게 ‘여기며’ 살 때,  

사도바울이 말하는 ‘믿음의 행위’가 뒤따르게 된다. (롬6:12~14절에서↓)


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도구)로 하나님께 드리라


만약에 칼이 의사의 손에 잡히면.. 수술도구(의의 병기/도구)가 되지만,

강도의 손에 잡히면.. ‘불의의 병기’가 된다.

하나님께 붙잡힌 자들은, 의의 병기로 살아가게 되어 있다.


과거에 우리는 죄에게 잡혀 있어서, 죄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불의의 병기’였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손에 잡혀 있어서, 하나님이 부리시는 대로 ‘의의 병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내어 드리는 일은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내가 드려야 한다.

 

신앙에 있어서 '나의 순종'도 반드시 필요하다.

내 몸을 의에게 종으로 ‘드리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주님이 구원의 잔치상을 다 차려놓아서, 내가 할 일/상 차릴 일은 없다.

그러나 차려진 음식 ‘떠먹는 것’은 내가 해야 한다. 그것도 안 하면 안 된다.)

 

     예수를 믿을 때,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너희가 율법(할례)으로써가 아니라

     믿음으로써 성령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할례)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갈3:2

 

     믿음으로 받은 이 성령이

     내 속에서 '나를 의의 병기로 드리도록' 역사하신다/도우신다.

     우리는 의지적/윤리적으로가 아니라,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써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며, 영생의 길을 살아가는 것이다. 

 

     롬8:13절에서도, 영으로써 육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고 했다.

     성령의 인도함 가운데, 순종하는 삶을 뜻한다.

 

                                                                                                           ※관련글 : 내가 먹이주는 놈이 이긴다.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은혜 아래 있으니... 은혜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뜻이다. 롬5:21참조


물론 지금 우리가 아직 완전히 죄에서 떠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죄의 잔재가 남아있지만, 분명한 것은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내가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복음은 복음이다.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6: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6: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6: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영생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 즉 성화의 과정을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 마지막은 영생이다.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렇지 않고, 즉 6:2~22절 사이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은혜로, 믿음으로, 믿습니다. 아멘!’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살면...

‘죄의 삯은 사망’이 된다.

여기서 '사망'은 영생의 반대다. 지옥을 뜻한다.

                (참고로,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지옥'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사망이 곧 지옥이다.)

 

이 6:23절은, 서두의 6:1절과 연결된다고 본다.

서두의 6:1절은,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한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비슷한 표현으로는, '무슨 죄를 짓든지 은혜로 다 용서해 주신다'이다.

이 말은 맞지만 적용을 제 멋대로/고의적으로 잘못 할수도 있다.

그런 경우 6:23절과 연결된다. '죄의 삯은 지옥이다!', '그런 자들은 지옥에나 가라'는 뜻이다.  

 


롬8:13절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죽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으로써 육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영생한다)고 말한다.

내 육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살다가는.., 영생을 못 얻는다.

'영으로써 육의 행실을 죽인다'고 했다.

그냥 도덕주의, 어떤 유교적 절제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 가운데서 육의 행실을 죽이는 것이다. 

그런 사람만 산다/영생한다.

 

 

▲마치는 말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천국 간다!’를 외치면서

‘죄에 대해서 죽은 자로 여기며' 살지 않는 것은 ... 마치 마약과 같다.

당장은 기분이 좋지만, 결과적으로 기분 좋게 지옥에 간다.

 

 

기분 좋게 끝장난다는 뜻으로 .. 비록 선정적이지만 ‘마약’이란 비유를 빌려왔다.

하지만 우리는 생생한 정신으로, 복음의 메시지 앞에 직면해야 한다.


롬6장이 가르치는 바는, 한 마디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는 ‘죄에 대해 죽은 자’로 살아가며 (점진적 성화의 과정)

그렇지 않고 마음대로 죄 짓고 살면, 죄의 삯은 사망(지옥)이라고 가르친다.

 

 

註) 롬6:3절,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표현은 갈3:27절에도 나온다.

갈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여기서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표현에 대한 해석은 -여기 클릭-                                             ▣ 믿음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