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말한 믿음과 행위의 관계 롬2:13, 30 권연경 교수 로마서4강 26~36분 녹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사람은 율법을 듣는 사람이 아니요,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니... 롬2:13
학위 논문 같은 내용입니다. 천천히 읽어 보세요!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바울의 믿음의 행위 강조>라는 논지에 대해
그것을 증명하는 논리/성경적 근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믿음에는 행위가 동반된다’는 뜻의 바울식 표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갈라디아서, 로마서에서
일관적으로 ‘믿음에는 행위가 동반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데, 살펴보자.
▲1. 데살로니가전서 - <믿음의 역사>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이렇게 칭찬했다.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의 인내를 기억하고 살전1:3
여기서 ‘믿음의 역사’는.. ‘믿음의 행위’와 똑같은 말이다.
이것을 로마서나 갈라디아서 식으로 표현하면, <믿음의 행위>라는 뜻이다.
‘믿음’이 속알맹이라면, 겉껍질은 ‘(믿음의) 행위’인 것이다.
두 개를 서로 이질적인 상반된 개념으로 이해하면... 큰 잘못이다.
▲2. 갈라디아서 -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효력이 없되,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5:6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사랑으로써 활성화되는 믿음’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믿음’의 속알맹이가 있을 때,
‘사랑의 행위’가 겉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3. 로마서 - <믿어 순종>
모든 이방인 가운데 믿어 순종케 하나니 롬1:5
직역하면 ‘믿음의 순종에 이르게 한다’ ... 이런 표현이다.
역시 속알맹이가 ‘믿음’이면,
그것을 통해서 되어지는 결과가 ‘순종의 행위’이다.
위의 3개 구절 모두가, 바울은 같은 아이디어로 표현한 병행구절이다.
즉, 믿음에는 반드시 행위/사랑/순종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롬2:14절을 보시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사람은 율법을 듣는 사람이 아니요,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니... 롬2:13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고전7:19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예화
어느 주부가 요리를 끝내주게 잘 한다. 유명 식당 요리사 저리가라 한다.
그 주부에게 그렇게 솜씨가 좋은 비결을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거야 남편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죠!’ ← 믿음
이 이야기를 들은 이웃집 주부들이 말했다.
‘사랑하는 마음만 가지고 되겠느냐? 우리는 그런 마음 없겠는가?
어느 식당/요리학원에 가서 배웠든지, 아니면 친정어머니께 전수 받았든지...’ ←행위
속알맹이가 있으면, 겉껍질도 필요하고, 겉껍질이 있으면, 속알맹이도 필요하다.
<믿음이 속알맹이>라면, <행위는 겉껍질>인 것이다. 하나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믿음과 행위는 한 덩어리>다.
바울식 표현으로는 ‘믿음의 역사’,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믿음의 순종’
그러므로 믿음과 행위는 서로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다.
서로 보완되는 개념이다.
바울은 믿음과 행위를 갈라놓을 생각이 애당초 없었다.
그런데 오늘날 왜 사람들은, 믿음과 행위를 따로 따로 갈라놓는가?
◑2. 우리의 오해의 핵심은 바울이 말한 ‘율법의 행위’
▲우리가 로마서를 읽을 때, 오해하고 있는 것은
<로마서는, 율법은 안 지켜도 된다더라, 어차피 지킬 수도 없다더라>인데
그것은 오해/루머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로마서를 읽으면서, 그런 오해(안 지켜도 된다더라)를 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구절이 있다.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구원을 얻지 못하나니).. 롬3:20
그래서 우리가 자꾸 ‘율법의 행위’를 무시하게 되는데
이것의 속뜻은. ‘순종의 행위 없이도 구원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바울이 말하는 바 <율법의 행위>란 (‘율법의 일들’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실제로 ‘율법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대인들이 율법과 관련해서 자기 정체성/자랑거리로 내세웠던 것들>을 뜻하는데
예를 들면 ‘나는 할례받은 사람이야, 나는 율법을 소유한 사람이야,
나는 안식일 지키는 사람이야’ .. 이런 식의 것(정체성)들을 지칭하는 말이며,
즉 유대인을 이방인들과 구별해 주는 것들인데,
바울은, 그런 <율법의 행위로는 안 된다/구원 못 받는다>고 설명한 것이다.
가장 간략하게 설명하면
'율법의 행위'란 <할례, 절기 준수, 안식일의 외적 준수>를 뜻한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한 '율법의 행위'로 안 된다, 롬3:20 는 뜻이란,
(바울은 로마서 서두에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똑같다’는 사실을 계속 설명했다.)
‘할례 받았다고 되겠냐?, 그것 가지고는 안 돼!’ .. 이런 뜻도 되고,
‘율법만 갖고 있다고 되냐?, 아브라함의 혈통이라고 되냐? 안 돼!’ .. 이런 뜻이다.
율법을 안 지켜도 믿음만 있으면 의롭다 하심 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순진하게 그렇게 이해(오해)하고 있다.
▲만약 '율법의 행위 없이도 믿음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바울이 주장했다면,
바울은 로마서에서 유대인을 비방할 필요 없다.
그러나 로마서에서 바울이 유대인을 비방하는데, (2장)
유대인들이 율법을 열심히 지켰기 때문이 아니다.
율법만 가지고 있다고 자랑만 하지, (혹 외적으로 지켰을 런지 모르나)
유대인들이 율법을 안 지키고 있다고 비방한다.
바울이 율법주의자들을 비방하는 것은,
그들이 <율법을 사실은 안 지켰기 때문>이다.
바울이 '율법'(십계명 등 도덕법 의미)의 순종 없이,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
이런 식의 논지를 펴고 있다면, 로마서 서두에서 바울은,
'유대인이 율법을 안 지킨다'고 비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말의 앞뒤가 안 맞는다)
그러나 바울이 유대인들을 비방한 것은 .. 그들이 율법을 지키고 있지 않기 때문이요,
유대인들이 스스로 율법을 지킨다고 주장하는
<'율법의 행위'(할례, 안식일) 준수로는.. 의롭다 하심 못 받는다>는 것이다.
▲바울의 일관된 주장(성경의 통일성)에 근거해서 해석해 보자.
아래 로마서의 바울의 구절을 보시라.
바울이 롬3:20절과 2:14절에서 정 반대의 소리를 하고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듣는 사람이 아니라, 행하는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롬2:14
우리가 앞서 계속 살펴본 것은, (이번 발행분 말고도 앞에서)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사상을 절대로 주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태생적 유대인, 할례, 절기와 안식일 준수로는 구원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고전7:19
그러나 율법의 순종이 있어야 구원받는다는 사상은 계속 주장한다.
롬2:13, 롬1:5, 살전1:3, 갈5:6 등 위에서 인용해서 살펴보았다.
▲갈라디아서의 표현으로는,
우리는 원래 유대인이며, 이방 죄인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얻는 것이 율법의 행위대로가 아니라 믿음으로며... 갈:15~16
이 구절도 마찬가지다. (2천년이 지난 우리들은 오해하기 딱 알맞다)
‘율법의 행위’란 즉, 할례, 안식일 준수 같은 유대인의 정체의식을 뜻한다.
(지금 우리에겐 낯설어도, ‘율법의 행위’란 관용어가 당시에 통용되었던 모양..)
바울은 로마서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십계명 등 도덕법 준수를 비난하고 있지 않다.
바울의 일관된 사상은,
‘믿음’은 속알맹이,
‘행위/순종/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등은 겉껍질이다.
바울은 믿음과 행위를 절대로 분리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바울이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지 못한다. 롬3:20’는 구절에 근거,
‘바울은 행위를 무시했고, 오직 믿음만 강조했다’고 오해하는데,
그 이유는 ‘율법의 행위’라는 표현에 대해 오해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바울이 공격한다면,
유대인들이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을 공격했다. 롬2장에서.
세례요한도, 예수님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꾸중한 이유가,
율법을 지킨다(순종한다)고 꾸중한 것이 아니라,
외식하면서 율법을 안 지킨 것에 대해 꾸중했다.
성경의 통일성을 보더라도,
바울 역시 ‘율법의 지킴 없이도 구원받는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 않다.)
.................................... 더 읽으실 분 ................................
▲로마서에서조차 바울은, 율법과 행위를 갈라놓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사람은 율법을 듣는 사람이 아니요,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니... 롬2:13
▲예수님도 같은 맥락
예수님이 하신 말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는 말씀도 똑같은 맥락이다. 마7:21
그 외에도 예수님은 그물비유, 가라지의 비유 등에서
10번 넘게 같은 맥락으로 말씀하셨다.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계속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7:22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율법을 안 지켜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롬3:20절 때문인데,
그것은 '율법의 행위'(율법의 일들)를 우리가 오해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로마서를 이해할 때, 통상 '율법을 안 지켜도 된다, 믿음만 갖고 구원 받는다'고 하는데,
이것은 성경 아무데(마태복음, 베드로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계시록)도 안 맞는다. 통일성이 없다.
그 믿음 갖고 있다가 막상 지옥 갈 사람들이 많을까봐.. 심히 우려된다.
참된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참된 순종의 발걸음이 자동적으로 동반되기 때문이다.
하루 아침에 천지개벽으로 안 변하더라도, 반드시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있다. 마땅히.
그런데 만약 그게 없다면.. 그런 '지식적 믿음'만 갖고는.. 구원 못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면 바울은 오늘날 우리도 똑같이 책망할 것이다.
‘너희는 크리스천(당시의 유대율법주의자와 병행)이란 이름만 가졌지,
사실은 크리스천이 아니다. 세례(할례)는 너희 마음에 받아야 한다...’ 롬2:29 ▣ 믿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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