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삼자의 감정이입 빌2:12~14 07.04.29.태목사님 설교녹취
약간 생각을 요하는 내용이므로, 천천히 읽으셔야 내용파악이 가능합니다.
너무 급하게 읽으시면, 내용파악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영화 ‘미저리’로 설명해 보는 ‘감정이입’
▲감정이입이 아주 잘된 영화 <미저리 misery>
소설이나 영화의 줄거리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인기작가 폴 쉘던이 ‘미저리’라는 제목의 연작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된다.
비평가들은 ‘미저리’ 소설이 인기는 많지만, 문학성이 없다고 혹평하자
폴 쉘던은 빨리 ‘미저리’ 연작소설을 끝내버리고, 새로운 소설을 쓰려고 마음먹는다.
그래서 ‘미저리 소설’의 주인공 이름도 ‘미저리’인데
소설을 빨리 끝내기 위해, 소설 속 인물 ‘미저리’를 빨리 죽여 버리고 만다.
그래서 연작소설을 서둘러 끝내버리고,
새로운 문학성 있는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 쉘던은 시골 산골로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마침 내린 폭설로 인해, 차가 뒤집히면서, 눈길에서 얼어 죽게 되었는데,
지나가던 앤이란 전직 간호사가, 그 작가를 구조해서
그 산골 자기 집에 데려다 놓고, 작가를 간호해 준다.
작가는 자동차 전복사고로 인해, 자기 팔다리를 못 쓰게 되었고,
전적으로 간호사의 집에서 간호사의 수발에 의지해서 살게 된다.
그런데 마침 간호사 앤은 ‘연작소설 미저리’의 광적인 팬이었다.
그런데 소설에서 주인공 미저리가 죽어버리자
너무 감정이입이 잘 된 나머지, 그 즈음 간호사 앤이 광분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가 간호해 주던 그 사람이
다름 아닌 ‘소설 미저리’의 작가 폴 쉘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간호사는
작가를 협박해서, ‘소설 미저리’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쓰게 한다. 강요한다.
작가는, 자기를 돌봐주는 간호사 앤이,
정신이 이상한 것을 알고는
그 집에서 빠져나와 도망가려고 하지만
자기 사지가 불편하니까 제대로 도망가지 못하고, 간호사에게 붙잡힌다.
그러자 간호사는, 아예 도망 못 가게 하려고, 망치로 작가의 다리를 부수어버린다.
그리고 작가를 방에 가둬놓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작가가 소설을 고쳐 쓰도록, 계속 강요한다.
그러던 중 보안관이 탐문수사를 하던 중에, 이 감금사태를 발견하자,
간호사는 총으로 보안관을 쏴서 죽여 버린다.
그리고 소설 미저리가 행복한 결론으로 끝나도록,
소설을 다시 쓰라고 계속 강요하며, 작가를 구타하고, 학대한다...
이 간호사 앤이 ‘연작소설 미저리’에 감정이입이 되었는데,
감정이입이 너무 되어서, 그게 탈이었다.
사실 우리가 영화나 소설을 재미있게 볼 때 ‘푹 빠졌다’는 말을 쓰는데,
거기에 감정이입이 제대로 되었다는 뜻이다. 간호사 앤처럼은 아니더라도...
▲혹시 영화 <미저리>가 우리 신앙모습이 아닐까?
내 아들에 대해서, 아들의 인생 스토리를 하나님이 써 나가신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내 스토리/줄거리가 있다.
전직 간호사 앤이, 작가의 다리를 부러뜨리면서까지
자기가 생각하는 식으로, 소설의 주인공 미저리의 인생을 끌고 가라고 강요하듯이
내가 제삼자가 아니라, 당사자의 입장이 되어서
내 아들의 인생의 스토리를 하나님께 끊임없이 강요하면서
-그것을 ‘믿음생활’이라고, 지금까지 내가 신앙생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업도 마찬가지며,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내 건강도 마찬가지고, 내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 인생의 스토리 작가요, 당사자는... 하나님이시다.
주님은 당신의 몸까지도, 당사자가 아니고 제삼자라는 것을 고백하셨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내 스토리 말고, 당신의 스토리대로 이끌어 가시옵소서!’ 라는 뜻이다.
‘나는 작가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따라가겠습니다!’ 라는 고백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마치 하나님의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강요하듯이 하나님이 소설을 새로 쓰시라고 떼를 쓴다.
예를 들면 ‘강청하는 기도’ 같은 것이다.
여러분 그것은, 제삼자의 자리를 벗어나
내가 내 인생의 당사자의 자리에 서는 것이다.
내가 당사자가 되면, 내가 나서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원망과 불평으로 살게 된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빌2:14
내가 당사자이기 때문에 원망과 시비가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안달복달하며 계속 살다가는 구원을 못 이룰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항상 복종’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
여러분, 우리가 간호사 앤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제삼자’로 물러나야 한다.
남편을.. 내 마음대로 움직여 가려하면 안 된다.
자녀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키우려하면 안 된다.
그러면 원망과 시비가 생긴다. 막 싸우고 다투게 된다...
◑1. 제삼자로 살기
▲잘못된 믿음의 사람은.. 이 세상에 살 때, 철저히 ‘당사자’로 살지만,
참된 믿음의 사람은.. 이 세상에 살 때, 철저히 ‘제 삼자’로 산다.
사도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다. 빌2:12
정말 믿음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두렵고 떨어야 하는 문제는 <당사자로서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이다.
본문에 빌립보 교인들에게 바울은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도록 하라고 권면한다. 빌2:14
↘이 말씀은, 모든 일에 있어서 <당사자의 입장에 서지 말라>는 뜻도 된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그 문제를 받아들이면, 원망과 시비가 반드시 있게 된다.
성도들이 제삼자의 자리를 벗어나, 당사지의 입장에 서게 될 때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구원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버린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신 말씀도
내가 잘 처신해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뜻이기 보다는,
예수님과의 결혼생활을 잘 영위해 나가라는 뜻이다.
구원을 결혼식에 비유해 볼 때
여러분, 결혼했다고 다 끝난 것인가?
아니다. 결혼 한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결혼식이 끝났는데, 마치 남편이/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은
결혼생활을 벗어난 것이다.
성도가 세례 받고 성도가 된 후에도, 주님과 결혼생활을 계속 영위해 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자식 문제 때문에, 왜 원망과 시비가 생기는가?
여러분 스스로가 자식의 ‘당사자’라고 생각하니까 그렇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여러분은 자녀의 ‘당사자’가 아니다. ‘제삼자’이다.
사업하시는 분들이, 사업에 원망과 시비가 생기는 이유가 무엇인가?
엄밀히 말하면, 여러분이 사업의 ‘당사자’가 될 때 그렇다.
만약 여러분이 사업의 ‘제삼자’가 된다면.. 원망과 시비로부터 한결 자유롭다.
바울사도가 모든 일이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고 하신 것은
모든 일에 ‘제삼자’의 자리를 벗어나지 말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마음이 앞서 가신다. 그리고 내가 뒤따라간다.
주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내가 좋아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내가 기뻐한다는 뜻이다.
모든 일에 하나님이 주도자이시고, 내가 제삼자로 뒤따라간다는 뜻이다.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하여... 빌2:12
여기서 ‘복종하여’ 라는 말도.. 내가 절대로 당사자가 되지 말라는 뜻이다.
‘내가 주도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죽이라는 말이다.
◑2. 하나님께 감정이입 되기
▲1단계가, 일단 내가 내 인생에 있어서 <제삼자>의 자리로 물러나는 것이라면,
2단계가, 이제 제삼자의 자유로운 자리에서, 하나님께 <감정이입>이 되는 단계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정이입’이 되었다는 것은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완전히 똑같아 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 기뻐하고,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것으로 슬퍼하게 된다.
내 입장이.. 완전히 하나님의 입장에 서는 것이다.
이렇게 완전한 감정이입이 일어날 때, 무서운 신앙인이 되는데...
▲<제삼자 - 감정이입>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
①아브라함은 이삭의 육신의 아버지이지만,
제삼자의 입장에 선다. (신약적 표현으로는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 감정이입이 된다.
그래서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이삭을,
하나님이 죽이셔야 하는 그 입장으로 감정이입을 해 버리니까,
하나님 편에 서서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하고, 행동하니까..
결국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고,
천하만민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후손을 통해 복을 받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다.
②욥을 보시라,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사태를 본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1:21
내가 갖고 있는 재물,
그 재물에 대해, 자기는 제삼자로 빠져버리고
그 재물의 당사자는 하나님이시며, 자기는 하나님께 감정이입해 버린다.
그래서 자기 재물의 당사자이신 하나님이, 그 재물을 없애버리려 하니까
‘하나님이 없애버리시려면, 없애버려도 좋다’고 고백한다. 욥1:21
이게 바로 <제삼자-감정이입의 믿음>이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에서 자기가 완전히 죽고, 다시 부활한 사람의 믿음’이다.
③예수님도 ‘제삼자-감정이입’의 믿음을 가지셨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살고/죽고 하는 것을
자기 자신을 당사자로 여기지 않으셨다. 하나님을 당사자로 여기셨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신 것이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④사도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빌2:13
모두가 ‘제삼자 - 감정이입’의 믿음을 가지셨던 것이다.
▲간단한 적용
여러분, 얼굴에 나이 들어 기미가 끼기 시작해도
머리카락이 점점 빠지기 시작해도
일단 제삼자 입장으로 물러서시기 바란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예수를 믿을 때, 십자가에서 이미 죽은 몸이기 때문이다.
자기 몸이 십자가에 다 찢겨 죽게 되었어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을 묵상해 보시기 바란다.
▲잘못된 감정이입
외과 의사가 수술할 때보면, 메스를 들고, 환자의 배를 쭉 갈라버린다.
일반 사람이 보면 ‘어쩌면 남의 배를 저렇게 무자비하게 가르나...?’ 한다.
그런데 외과의사 들이 하는 말이
‘자기 자식/아내 배는 그렇게 못 가른다’는 것이다.
왜 환자의 배는 째면서, 자기 자식의 배는 선뜻 째지 못하는가?
-감정이입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꿰매는 것도 마찬가지다.
남의 자식, 남의 아내 배는.. 마치 옷 꿰매듯이 꿰맨다.
그런데 자기 자식, 자기 아내의 배는.. 그렇게 못 꿰맨다고 한다.
감정이입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자녀양육/사업.. 이런 것들이 잘 안 되는 이유는
감정이입이 되어 있으니까
의사가 손 떨려서 자기 자녀 수술 못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손이 떨려서.. 오히려 자녀/사업을 망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삼자가 되어 있을 때,
자녀와 사업에 대해 어떤 감정적 의존관계가 없을 때는
보다 자연스럽고, 보다 자유스럽게 자녀와 사업을 대하다 보니
오히려 그것이 더 잘 된다는 것이다.
자녀가 대학에 떨어져도 ‘내 체면 완전 구겼다. 망신살 뻗쳤다’ 하지 마시고
제삼자로서 하나님의 일로/남의 일로 생각하시고 대처해 보시라.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자녀와 사업의 당사자는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의 마음에 내 감정이 이입되어 사는 것.. 이것이 믿음의 길이다.
정리하면, 사업/목회/자녀에 감정이입이 되어 있으면 안 되고,
거기에 제삼자 입장이 되어서
오직 하나님께만 감정이입 되어서,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고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 원망과 시비가 없어지고, 한층 판단이 자유로워지며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을 온전히 살게 되는 것이다. ▣ 삶의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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