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진정 자유하십니까? 요8:31~36 07.08.12. 유목사님 설교스크랩, 편집
오늘 이 자리에도 예수님을 믿고 신앙 생활하는 일이
아주 부자유하다고 생각되시는 분이 있으실 것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이 말씀을 들으실 때, 마음으로부터 아멘입니까?
여러분은 진리를 모르는 세상 사람보다 더 자유하십니까? 그렇게 느끼십니까?
◑2. 그러면 어떻게 ‘죄의 종/마귀의 종’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까?
답)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8:32
▲예수님을 믿고, 나의 영적 신분이 변화된 다음에
예수님 말씀의 약속을 확실히 붙드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8:31-32
여러분, 이 말씀이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가 누구 말을 듣고 따르느냐에 따라, 누구 종인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을 따르면 예수님 제자이고,
마귀 말을 따르면 마귀의 종인 것입니다.
이제는 주님 말씀을 들으려 하고 그 말씀을 품으면
주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8:36
그런데 이것은 <지식>이 아닙니다. 이 성경구절을 머리로 아는 것은 아무 소용 없습니다.
이것이 믿어지려면 '성령의 조명'이 필요한데요, 루터의 예를 살펴봅시다.
▲어느 날 갑자기, 롬1:17절이 믿어진 루터
종교 개혁자 마틴루터는 수도원에서도 얼마나 죄로 고민했는지,
고해성사를 받던 신부가 “루터야, 죄 좀 모았다 가져오너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그러던 루터가 로마서 1:17절 말씀을 읽다가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니까 이런 말씀들이 어제까지 지식적으로 믿어졌는데,
어느 날, ‘레마의 말씀’으로 내 심령에 단단한 못처럼 콱 박힐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날이 올 때까지 계속 기도하며 말씀을 들어야/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식적인 말씀 백 마디, 천 마디를 들어도 별로 소용없습니다.
한 마디라도 내 가슴에 콱 못이 박혀야 합니다.
루터가 오랜 세월의 고뇌 끝에, 어느 날 롬1:17절이 콱 박힌 것이지요.
▲체험을 통해서도 ‘말씀에 대한 확신’이 생기기도 합니다.
어느 날 루터는 몸이 몹시 쇠약해진 상태에서 침상에 누워 있는데
마귀가 방에 들어와서는 굉장히 큰 두루 마리 책을 펴놓는데
보니까 자기가 평생에 지은 죄를 다 기록해 놓았더랍니다.
루터는 그것을 다 읽고 난 다음에 마귀에게 말하기를
"맞다. 이 모든 죄를 내가 다 지었다. 그러나 네가 한 가지 잊은 것이 있군.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이 모든 죄를 다 씻어 주셨어!"
그 말을 하자마자 마귀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루터는 죄 값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죄 값에서만 자유함>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죄의 종노릇>하지 않게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요일5:18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믿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이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 살게 합니다.
죄 그 자체였던 우리 옛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6:6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롬6:14
우리가 이 말씀에 거할 때, 죄는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도덕적 완전주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의지적 노력 말고도 (이것도 어느 정도 필요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변화된 성품이,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나를 강권적으로 성화의 삶으로 끌고 가시는 면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중생(회심)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삶입니다.
즉 그전에는 죄의 종, 마귀의 종으로 살았다는 것이죠.
▲어떤 분은 갈2:20절을 통해, 자기의 변화됨을 확신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무슨 말씀이든지, 또 다른 말씀이라도 괜찮습니다.
자기 옛 자아가 십자가에 죽었다고 고백하고, 믿고,
그 순간에 ‘죄의 종, 마귀의 종’이던 나의 옛 신분도 따라서 죽었다고
고백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도덕적 완전주의는 아니지만, 이전과는 다른 변화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됨이 연부년 더욱 성숙해져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리의 말씀이 여러분을 자유케 하시는 것을 경험하셔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을 품어, 그것이 성령의 조명으로 (레마의 말씀으로) 다가와
그 진리를 통해, 죄와 마귀의 권세에서 자유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말씀을 '진실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위의 내용과 같은 맥락으로 보시면 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것은 - 사죄하시고,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위력을 강조한 반면
진실이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것은 - 본인의 회개적 측면을 강조한 것입니다. 둘이 같이 가야죠.
후자는, 다른 말로 '내가 죄인 됨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회개가 됩니다.
◑3. 적 용
▲새문안교회 김동익 목사님에 관한 일화
1998년에 한국에서 참 유명한 목사님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장로교의 모태 교회라고 새문안교회 김동익 목사님입니다.
그 분이 세상을 떠나신 소식을 듣고, 저는 대단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직 젊으신 목사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 목사님이 39세에 새문안교회 당회장 목사님으로 부임해 가셨는데
그런데 온 몸에 암이 퍼졌어요.
병원에서는 수술도 할 수 없다고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목사님에게 잠깐 동안 건강을 회복시켜 주셔서
다시 강단에서 설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병원에서 퇴원하시고 강단에 처음 다시 서게 된 날,
목사님도 교인들도 다 눈물바다의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 때 그 목사님이 설교하시면서, 병원에서 경험했던 일을 간증을 하셨어요.
수술도 다 포기해야 되고,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진단이 내려졌을 때,
모두가 잠이 든 깊은 밤이지만, 목사님이 도무지 잠이 오지 않더래요.
그래서 병상에 앉아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기 시작했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더랍니다.
‘하나님, 제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제가 이제 나이가 쉰여섯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오라하시면 가야 하지만,
허락하시면 한국교회 모태교회 담임목사로서
하나님 앞에서 한번 뜻 깊은 목회 발자취를 남기고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새벽녘에 너무나 강한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에 느껴졌다는 거예요.
‘이번은 살려 준다. 그러나 이전같이 목회하면 안돼!
말로만 하면 안돼. 직접 체험한 능력으로 나를 증거하라.
그래야 너도 살고, 성도들도 살 수 있어!’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주심을 깨닫고
의사들이 도무지 손도 댈 수 없다고 했지만, 모든 책임은 당신이 질 터이니
수술을 해달라고 해서 콩팥도 제거하고 내장도 거의 다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고
하나님께서 소생하게 하셔서, 강단에서 얼마동안 설교를 하셨었습니다.
(그 후에 목사님은 목회를 훌륭하게 하시다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제게 그 목사님의 간증은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 가장 성공적으로 목회하시던 분으로 존경받는 목사님,
훌륭한 설교자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목사님이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말씀을 들었다면, 나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정말 심각하게 했었습니다.
무엇이 성공적인 목회입니까? 무엇이 성공적인 인생입니까?
‘진리로 자유케 되는 인생’입니다.
자기 사업/사역이.. 크거나/ 작은 것에 상관없습니다.
자기가 유명하거나/ 무명한 것과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나는 오늘 정녕 예수 안에서 자유와 평안을 누리고 있습니까?
그것을 누리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를 기뻐해 주실 것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나를 자유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
여러분,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나면 생각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아십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생명이 한 30일 남았다면 무엇이 중요합니까?
지금하고 있는 사업이 성공하는 것이겠습니까?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겠습니까? 결혼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설 것이냐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 앞에 서는데 문제가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곧 죄 문제입니다.
그러나 죄 문제처럼 중요한데도 무시당하는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평소에는 다 잊어버리고 살아요. ‘사람들이 다 그렇고 그렇지 뭐, 나만 그런가?’
하며 삽니다. 죄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우리가 나가서 “우리가 죄사함 받는 길이 여기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을 믿으십시오!”
그렇게 전도해도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요.
그것은 안 믿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속죄함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고 여기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꼭 속죄함 받아야 되는가?’ ‘죄, 그냥 가지고 있으면 어때? 나는 다 잊어버린 걸.
나만 뭐 죄인인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살아요.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내가 알고 지었든 모르고 지었든
내가 지은 모든 죄는 반드시 그 값을 내게 물어옵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먼저 해결해야 될 중요한 문제가 죄 문제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지요?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했는데, 이미 지은 죄, 어떻게 해결하지요?
십자가 복음 안에 그 답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할 수 없는 죄인이지만,
모든 죄가 다 용서받고 새 삶을 살게 되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내 죄를 해결하는 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맨 마지막 말씀이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저 죽으신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셨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죗값을 다 해결하신 것입니다.
그것도 단 1%도, 무엇인가 더 해야 할 여지를 남겨 두지 않으시고
완전히 해결하셨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의 죄를 예수님이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죄로 인하여 죗값인 사망을 당해야 되는 우리 모두의 문제를
예수님이 다 해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선언하신 거예요.
이게 지식적으로는, 절대 내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다.
‘성령의 조명이 비춰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레마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다 비슷한 표현입니다.
남들에게는 그것이 그냥 하는 소리로 들리지만
내 귀에는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마치 루터가 롬1:17절을 확신했듯이,
정말 믿어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남들은 건성으로 믿어도, 내 마음에 반석 같은 확신으로 믿어지는 날이 옵니다.
물론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기도와/ 말씀과/ 갈등과/ 번민의 시간을 보내야 하겠죠.
그 확신이 하루아침에 쉽게 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옵니다.
▲닐 앤더슨 목사님께, 한 여인이 와서 상담을 했습니다.
그는 삶이 완전히 망가진 여인이에요.
말할 수 없는 죄와 타락으로, 스스로 자기 삶을 3번이나 포기하려고 했던 여인입니다.
그러나 자살하려고 할 때마다 더 두려운 것이 있었어요.
죽음으로 끝나면 차라리 좋은데, 만약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하나님이 더 두려운 거예요.
그래서 3번 자살을 시도했지만 결국은 죽지 못하고,
전도를 받아서 교회를 나왔고 목사님에게 상담하러 온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그 여인에게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에게 보내셨고,
당신의 죄를 대신 지시고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당신은 구원받았습니다.
믿기만 하면 십자가의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당신이 누리게 됩니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나 이 여인이 그것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은 다 사랑하셔도 나를 정말 사랑하실까?’
이 여인이 그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말했어요.
“목사님, 제가 3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던 여자입니다.”
그랬더니 닐 앤더슨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당신은 당신의 자녀가 죽으려고 했다고 해서
그 자녀를 미워하며 버릴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처럼,
우리도 “내 죗값은 다 치뤄졌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도 이것 믿는 것 하나도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냥 믿기만 하라는데도. 예수님이 다 해결하셨고 그냥 믿기만 하라는데도
그것을 못 믿는 이들이 있어요. 성령의 조명이 없이는 그게 안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속에
‘나는 더러운 자야, 내 실체를 사람들이 알면 나는 도무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거야.’
하는 죄책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리 의지가 약하고 넘어져도 상관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이 구원을 받도록 모든 죗값을 다 해결하셨음을 믿기만 하면
그 속죄의 은혜를 힘입게 되기 때문입니다.
.......................................< 더 읽으실 분>............................................
◑1. 자연인은 죄의 종, 마귀의 종으로 삽니다.
▲요8:33,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리둥절했습니다.
자유란 자유 없이 얽매인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것입니다.
포로나 감옥에 갇힌 죄수들, 당시에 만연했던 노예들에게나 간절한 것입니다.
종이 아닌 자유 시민은, 굳이 자유가 그렇게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이미 자기가 자유롭게 잘 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 대부분도, 자신을 종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처럼 이 말씀이 와 닿지 않고, 아리송할 수 있습니다.
▲요8:34, 죄를 범한 자마다 죄의 종이라
그러면 예수님은 왜 이런 말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진정 얽매여 종노릇하는 문제를 말씀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 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죄를 범한 자마다 죄의 종이라!”
‘나는 종이 아니라’고 생각하셨던 분들, 어떻습니까?
충격을 받으신 분이 많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 안 짓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러면 <나도 죄의 종>이라는 말입니다.
‘아니 죄 한번 지었다고 어떻게 죄의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솔직히 대답해 보십시오.
정말 죄 한번 지은 정도입니까?
죄를 내가 짓고 싶으면 짓고, 짓기 싫으면 죄를 안 지을 수 있는 문제입니까?
죄를 짓고/안 짓고가.. 여러분 마음대로 통제가 됩니까?
죄 짓지 않으려고 노력해 보셨습니까? 결과는 어떻습니까?
죄 안 지으려고 금식하고 기도해도,
죄의 본성은 여전히 그대로 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이제는 알아야 합니다. 내가 자유롭게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누구에게 종이 된 적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살지만
나의 실상은 죄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 뒤에는 마귀가 있는데, 더 나아가 ‘마귀의 종’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적인 진리를 보지를 못합니다.
내 인생이니까.. 내 마음대로 사는 줄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인생을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이 정말 원했던 삶을 살았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죄에 무섭게, 죄에 묶여 끌려가는 어떤 힘에 의해서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지 말아야 될 것을 하고, 해야 할 일을 못 하고 삽니다.
▲요8: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예수님께서는 죄와 마귀의 종노릇하는 데서 자유함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죄의 종은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마귀가 처할 지옥에 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돈 있고, 성공하고, 건강하면 뭣합니까?
죄의 종으로 살았다면 말입니다.
결국 마귀의 종으로 살다가 마귀 있는 지옥으로 갈 터인데
그것이 어떻게 행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마귀의 종 요8:36~
예수님께서는 요8:35절-59절에서 유대인들이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그래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 마귀의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마귀)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요8:38
종이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는 자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유대인들을 죄의 종이라는 말하셨습니까?
마귀의 지시대로 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에 유대인들이 펄쩍 뜁니다.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8:39절
그 때 예수님께서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동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이 마귀의 자식인 증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40절에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말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살인자입니다.
둘째는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하는 것이고
셋째는 마음에 욕심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말입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8:44
48절에 가서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귀신들렸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마귀의 종노릇하며 산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원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우리 삶/행동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딛1:16
마7장에서 예수님께서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하시면서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 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백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롬7:19-24
정직한 사람은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 죄, 복된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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