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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몸을 산 제사로 2029

LNCK 2009. 8. 11. 22:13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롬12:1                광장교회 07년 31째주 설교스크랩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1)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2)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3)니라.



◑1. 너희 몸을

 

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은 으로 하는 것입니다.


자기 몸을, 있는 모습 그대로 드린 토니 멜렌데즈

몇 년 전, 로마 교황이 미국을 방문한 일이 있습니다.

교황을 환영하는 모임에서 두 팔이 없는 젊은이가

두 발로 기타를 연주하며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젊은이의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찬양이 끝나자 교황은 연단에서 내려와

이 청년의 뺨에 키스를 하며 축복해 주었습니다.

이 청년의 이름은 토니 멜렌데즈였습니다.


찬양이 끝난 후에 사회자가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왜 나는 두 팔이 없이 살아야 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까?”


토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 내게는 두 팔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불구의 몸일지라도

이 몸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지금의 내 몸을 가지고 하고 싶어 하는 그 일을 하고자 합니다.”


이 청년의 아름다움은, 두 발로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것보다도

자기 몸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드리고,

그 몸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몸이 온전하냐 아니면 불구냐 하는 것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자기의 모습 그대로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그 일만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으시고,

우리 몸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 설교의 주요 논지


▲내 몸의 한 부분이 ‘내 존재’를 대표합니다.

지금 어떤 목사님이 손을 내밀고, 내 손을 잡고 악수했다고 하면,

외형적으로는 그의 몸의 한 부분인 그의 손과, 내 몸의 한 부분인 내 손이

서로 접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 목사님과 만나서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여러분, 사실 저는 그 목사와 손만 접촉하였습니다.

그런데 훨씬 더 포괄적인 ‘만났다’는 말을 씁니다.

비록 손과 손만 만난 것이지만, 사실은 인격과 인격이 만난 것입니다.

<내 몸의 한 부분이, 내 인격 전체를 대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맹인 거지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디매오를 불러 세우고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막10:45-52


예수님은 바디매오의 몸의 지체 가운데 하나인 ‘눈’을 다시 보게 했는데

이것은 바디매오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요

바디매오의 인격을 구원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대매오의 몸의 지체의 한 부분을 고치신 것은

곧 바디매오를 고치는 것이요, 구원하는 것입니다.


▲내 몸은 곧 내 존재입니다.

내 몸의 한 부분은.. 내 존재를 대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몸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이 설교의 주제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몸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몸이 바로 내 인격을/내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영(혼)도 중요하지만,

그 영도 ‘몸’을 통한 것이지, 몸을 무시한 영은.. 신비주의에 빠질 뿐입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 내 몸을 통해서, 내가 존재합니다.

내 몸이 없다면 .. 내 존재가 이 세상에서는 사라집니다. 


예수님이 바디매오의 눈을 고치시고, 그 영혼을 고치신 것은

몸의 고침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몸을 무시하고, 영혼만 고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도 몸으로 신앙생활 하셨습니다.

바디매오는 자기의 눈을 고쳐 달라고 하면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했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하면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했습니다.


예수님의 인간사랑은, 인간의 몸을 치료하고 완전케 하신 것을 포함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육신, 즉 인간의 몸을 입어 세상에 오심으로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직접 친히 몸으로 사랑하신 것이지, 마음으로만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발로 걸어서 사람들을 찾아와서 몸으로 만나고

입으로 말씀하시고

손으로 안수하여 병을 고치시면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냥 천국에 계시면서도, 마음으로 얼마든지 우리를 사랑하실 수 있으셨을 텐데요...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최고의 사랑은 자기의 에 채찍을 맞으시고,

에 못을 박히고

십자가에 달려 자기 으로 고통과 저주를 받는 것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를 나누어주시는 분으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몸으로 사랑하고

몸으로 축복하고 몸으로 사람들을 섬겨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관념적이고, 철학적이고, 생각으로 하는 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몸으로 기도하고, 몸으로 사랑하고, 몸으로 봉사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사님 한 분이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고

교회에는 혼란과 파벌이 생겨나고,

목사배척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심각한 좌절에 빠졌습니다.


그 목사님은 목회에 자신감을 잃고, 열등감과 죄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좌절 가운데서 성전을 찾아가 한 구석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고,

‘오, 하나님,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고 기도했습니다.


이때 그 교회의 젊은 부목사가 성전에 왔다가

나이 많은 담임목사님이 기도하는 자세와 말을 듣고 크게 감동받았습니다.

부목사도 성전의 다른쪽 구석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 하나님,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때 교회당에 청소하러 들어왔던 사찰 집사가

담임목사님과 부목사님의 겸손한 기도에 감명을 받고 

자기도 역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 하나님,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찰 집사는 기도하다가 문득 손에 들고 있는 빗자루의 무게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기도에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오, 하나님,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아닌 나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깨끗이 청소할 수 있는 손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담임목사는 문득 사찰 집사의 기도를 듣고 영감을 받았습니다,

‘오 하나님,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 것도 아닌 나에게

사람을 감싸주고 기도해 줄 수 있는 손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찰 집사에게 와서 손으로 사찰집사를 감싸 안고

‘오, 하나님, 집사님에게 하나님의 크신 복을 주시옵소서,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소중한 을 주셨는데

으로 집사님을 사랑해 주지 못한 죄를 용서하소서.’

하고 기도하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부목사는 담임목사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나에게 귀중한 무릎을 주시고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이제까지 무릎 꿇고 담임목사님을 위해 기도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소서.’

기도하면서 울먹였습니다.


그 교회는 사랑으로 감싸는 , 눈물로 기도하는 , 무릎 꿇고 기도하는 무릎으로

가득한 교회가 되어갔습니다.

갑자기 그 교회는, 하나님의 기적을 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몸으로 사랑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몸으로 기도하며 섬기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 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의 기적이 일어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들에게 몸으로 섬기며 사랑할 것을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너희 몸을 산 제사로


산 제사 living sacrifice란?

롬12:1절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산제사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레위기는 하나님께 드리는 여러 가지 제사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번제, 속죄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등입니다.


제물을 드릴 때에는 먼저 그 제물을 잡아서 피를 뿌리고

내장 등, 하나님께서 명하는 것들을 불에 태워서 제사를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제사는 죽은 제물을 드리는 (죽은) 제사입니다.

산 채로 제물을 드리는 법(산 제사)은 구약성경에서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산 제사를 드리신 예수님

그런데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 화목제물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골고다에서 희생의 제사를 드렸다고 말씀합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자기의 몸을 제물로 삼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이면서 동시에 제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제사가 아니라 살아있는 자기의 몸을

십자가의 제단에 산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 제사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몸을 제물로 삼아서 하나님께 산제사를 드렸습니다.


▲산 제사(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내 삶의 중심은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뜻도 포함됩니다.

구약성경은 우리의 삶의 중심이 예배가 되어야 함을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행진할 때를 기억하시지요?


12지파가 절도 있게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중심은 성막이었습니다.

성막이 움직이면 이스라엘도 함께 움직이고

성막이 멈추면 이스라엘도 함께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성전을 지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언제든지 이스라엘의 삶과 문화와 신앙의 중심은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법도대로 예배를 드릴 때에는

언제든지 이스라엘이 부강하고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며,

하나님의 얼굴빛으로 비췸을 받으며, 하나님의 성령님으로 충만하기를 간구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하나님은 임재 하여 은혜를 베풉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임하여,

우리들을 받으시고 우리들을 치료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들에게 응답하십니다.


오늘도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 우리 하나님께서 여기 임하셔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그 얼굴빛으로 비취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복으로 주실 것입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첫째로, 내 삶의 중심은 예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도.. 살아있는 몸으로 드립니다. 곧 산 제사 = 산 예배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 신약의 예배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기도 가운데 음성으로 드리는 기도는.. 입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묵상으로 드리는 기도는.. 머리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부르짖음의 기도는.. 가슴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세요. 그러면 그 찬송은 입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예배를 드리면서 찬송을 드리는데

어떤 분들은 입을 닫고 팔짱을 끼고 앉아 있어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영적으로 보일까요? 아닙니다.

입을 벌려서 몸으로 찬송하는 사람이 영적입니다.


말씀을 받을 때에 마음으로 받거나 영으로 받는 사람이 있어요?

우리의 몸을 떠나서 영으로 말씀을 전한다는 사람을 만나면

이단이라고 의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종들을 불러서

그 종들의 입과 몸과 보이는 행동을 통해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영적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몸으로 기도하여야 합니다.

입술의 기도로, 머리의 기도로, 가슴의 기도로, 온몸의 기도로 기도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찬송하고자 하는 분들은.. 몸으로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입과 귀와 눈과 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몸으로 그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몸으로 드리지 않는 예배는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이곳에 몸이 왔습니다.

그리고 몸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몸이 따르지 않는 예배는.. 영적인 예배가 아닙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 제외)

 


◑3. 영적인 예배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1


▲예배드리는 동안, 하나님은 내 몸을 변화시키십니다.

우리의 영적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기 원하시는 것은

-내 몸을 변화시키시는 일입니다.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지요?

은혜로운 예배, 감동을 주는 예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시지요?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이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몸을 영적인 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기 전에, 우리의 감정을 뜨겁게 하기 전에

우리의 몸을 훈련하고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예배를 드리는 제일 첫 번째 목적은 우리의 몸을 훈련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이 영적으로 변화를 받는 것이 중요해요.

그것이 마음에 감동을 받는 것보다, 감정이 뜨거워지는 것보다

훨씬, 훨씬 더 중요합니다.


영적으로 몸을 훈련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영적으로 몸이 변화를 받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입이.. 기도하는 입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이.. 기도하는 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기도하고 찬송을 드리는 것은

우리 몸이 기도하는 몸으로 변하고, 우리 입이 찬송하는 입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말씀을 눈으로 읽고, 귀로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과 귀가 영적으로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몸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 우리의 몸이 영적인 몸,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몸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가.. 우리의 삶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동안에 우리의 입이 기도하고

찬송을 드리는 입이 변화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의 입은 영적인 입으로 변화를 받아서

이 세상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든지.. 늘 기도하며 찬송하는 입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입을 가지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거짓을 말하고

정죄하고 저주하며 비판하게 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영적인 입으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그 입으로 기도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눈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고 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행하는 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리하면, 영적인 예배가 무엇입니까?  

산제사로 드리는 예배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입과 눈과 귀와 머리와 가슴과 배와 손과 발이

영적으로 변화를 받는 예배입니다.


여러분, 지금 몸과 마음과 생각과 모든 것을 몸에 집중하세요.

“여러분의 입이 기도하는 입으로, 찬송을 드리는 입으로 변화를 받게 하소서.

우리의 눈이 말씀을 읽은 눈으로 변화를 받게 하소서.

우리의 귀가 말씀을 받는 귀로 훈련을 받게 하소서.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는 몸으로 변화를 받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세요.


예배를 드리는 동안에는 그 입으로 찬송하다가 집에 가거나 직장에 가면

같은 입으로 비판하고 정죄하고 시비를 거는 입으로 변해서는 안 됩니다.


예배를 드리는 동안에는 그 입으로 축복하고 사랑을 전하는 입으로 사용하다가

교회를 떠나면 그 입으로 저주하고 상처를 주는 입으로 변해서는 안 됩니다.


예배를 통해서 여러분의 몸이 영적으로 변화를 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그 변화된 몸과 지체의 각 부분으로.. 세상에 나가서 '예배의 삶'을 그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영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적용

①우리 부부관계에서부터 시작할까요?

하나님은 우리 입으로, 배우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축복하고 존중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 배우자가 아직 축복받고 사랑받고 존중받을 만하지 못했을 때에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고 존중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입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행해야 합니다.

배우자에게 선한 일을 하세요. 배우자가 기뻐하는 일을 하세요.

배우자에게 온전한 뜻을 행하세요. 여러분의 몸으로 그것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거기에 임하여 하늘의 생명의 기적을 일으킬 것입니다.


②남편이 직장에서 욕을 먹고 자존심을 상하면서도 죽으면서 그 일을 하고

그렇게 많지도 않는 월급이지만 그것을 위해서 힘을 쓰는 것은

바로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그것은 가족을 위한 십자가입니다.


남편들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자존심을 죽여가면서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남편들이여 여러분들이 직장에서 자존심을 죽여가면서 일을 하고 있다면

바로 여러분들은 가족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있는 것이요,

하나님께 영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③아내들이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집안을 청소하고

허드레 일을 할 때에 남편들은 그까짓 것 하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내들이 가족들을 위해서 손으로 걸레질하고 빨래하고

밥을 짓고 하는 것이 곧 영적인 예배입니다.


아내 되신 여러분들은 허드레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감을 가지고

그 일을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상을 주실 것입니다.   


④우리의 부모님과의 관계를 이야기합시다.

여러분,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산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영적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부모님을 공경하고 효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하되 여러분의 입으로, 눈으로, 귀로, 손과 발로,

온 몸으로, 물질을 바쳐서 사랑하세요.


여러분들이 부모님을 효도하고 공경할 때에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영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영적인 예배는 몸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영적인 예배는 삶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 일들,

여러분들의 입으로 기도하며, 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며,

손으로 발로 섬기며 온 몸으로 최선을 다해서 섬기는 일들이.. 영적인 예배입니다.

 

'영적인 예배'라고 해서.. 무슨 신비적인 체험들이 가득한 예배란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먼저 우리 몸을 산 제사로 드리고,

그 시간에 우리 몸과 지체의 각 부분이 변화되고, 성화되어 

세상에 나가서 그 변화된 몸과 입과 손발로, 세상을 섬기는 것이

바로 산 제사요, 영적인 예배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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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몸을 산 제사로 드린 게일 바토쉬

게일 바토쉬의 아버지는 죽음의 침상에서까지

자기의 딸 게일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게일은 정신지체로 생김새까지도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게일은 수 천 명이 모이는 대형교회에서

가장 훌륭한 일꾼 가운데 하나로 소문이 날 정도로 큰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 교회에서 경영하는 어린이 선교원의 교사로서

빈민아동들의 뒷바라지를 너무나 잘 해내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교회 담임 목사에게 자기의 어렸을 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털어 놓았습니다:


“목사님, 제가 어렸을 때에 저의 아버지는 저 때문에 무척 고민했었습니다.

정신지체아인 어린 딸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어 보려고

제 아버지는 있는 힘을 다 했지요, 병원이라는 병원은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예요.


그러나 의사들은 내게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알아내지 못하고

나를 고치지도 못하더군요.

어느 날 나는 병원에는 더 이상 가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렸답니다.

이제 나는 하나님 앞에 간구 하리라고 작정했지요.


저는 병원을 찾아가는 대신 교회에 가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지요.

‘하나님 하나님은 나의 전부를 가장 잘 아십니다.

나는 아무 일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아실 것입니다.

이제 내가 무슨 일을 하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때 나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어요.

이러한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나는 선교원에 있는 어린이들과 친구가 되었지요.


나는 하루 종일 교회에 있으면서 기도드리고,

그러고 나서 선교원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기 시작한 거예요.

나에게는 아직도 더러운 아이들을 씻어주고 닦아 줄 손이 있었어요.

싸우는 아이들을 안고 기도할 수 있는 팔과 입이 있었어요.

그들과 함께 뛰어 놀 수 있는 발이 있었어요.


그 아이들은 차츰 나를 무시하지 않고 따르기 시작했어요.

하나님은 드디어 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을 가르쳐 주셨지요.

나는 그분이 원하는 대로 보잘 것 없는 나의 손과 발, 입과 눈, 귀와 몸을 드렸지요.

성령님은 나의 지체 구석구석까지 지배하시고 사용하시기를 원하는 분이셨어요.”


게일 바토쉬는 놀라운 성령 충만의 사람이 되어

성령께서 원하시는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성령의 도구가 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 예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