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을 지키는 자만이 자기의 영혼을 지킵니다. 잠19:16 05.12.16. -스크랩, 정리, 출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그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 잠19:16
간단하지만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귀한 것이 영혼이라면,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무엇을 지켜야 하겠습니까?
물론 도둑으로부터 재산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건강도 지켜야 합니다.
건강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성도가 건강해서 주의 일을 열심히 해야지.. 자꾸 아프면 곤란합니다. (예외 있음)
그러므로 건강도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제일 지켜야 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
마귀는 도적인데 마귀가 우리에게서 제일 훔쳐가기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욥기에 나오는 것처럼 마귀는 우리의 재산을 도둑질해 가기 원합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도둑질해 가기 원합니다.
그래서 자녀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건강을 도둑질해 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마귀가 정말 원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증오하기 때문에, 멸하기 위해서, 괴롭히기 위해서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 우리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우리를 간절히 원하시고
마귀는 강렬한 증오심 때문에 우리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 지구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쟁탈전이 항상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끝날 때까지
매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쟁탈전이 벌어집니다.
하나님과 마귀가 인간의 영혼을 두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무력 전쟁이 아닙니다. 단순히 무력 전쟁이면
당연히 하나님이 이기고 모든 사람들이 천국에 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주권으로도 이기지 못하는 것은 ... 인간의 자유의지
어떤 사람은 ‘절대주권’에 의해서 예정과 구원을 말하는데..
그런 면이 반드시 있습니다만, 성경의 다른 면을 동시에 봐야 합니다.
(그것 하나에만 빠지면, 마귀에게 속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의 원리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기에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하고
마귀는 증오심으로 가득해서, 모든 사람을 멸하기를 원합니다.
마귀와 하나님 사이에 접전이 있고 격돌이 있는데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원한 운명은
단순히 하나님의 주권에, 혹은 마귀의 손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의지가 중요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casting vote
하나님의 주권도, 강력하게 역사해서 인간을 그 뜻대로 이끌어 가시지만,
그래도 인간이 끝까지 자기 자유의지로 불순종하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귀신들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반(反)해서 인간에게 역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에 반해서 그 사람 속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말하는 분은, '자유의지가 이긴다!’ 이런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가 이깁니다.
마귀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가 이긴다는 것입니다.
(꼭 그렇다는 뜻은 아니고,
그만큼 인간의 자유의지도 어떤 무시 못 할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런 선택권을 주셨기 때문에
인간이 마귀를 원하면, 예수님도 그 사람에게서 귀신을 못 내쫓습니다.
인간이 마귀에게서 자유하기를 원해야 되는데,
마귀를 통해서 돈벌이 등 유익이 되니까 못 내쫓는 사람도 일부 있고,
대부분은 마귀가 떠나면 자기가 죽을 것 같으니까, 그 협박 때문에 못 내쫓습니다.
마귀를 내쫓는데도, 당사자의 ‘자유의지’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옆에서 누가 도와주어야 하지만, 그것도 본인의 ‘자유의지’ 위에 역사합니다.
▲완악, 강퍅
그래서 성경에서 완악한 것과 강퍅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진노하신 것입니다.
완악/강퍅 이란..
인간의 의지가 죄에 달라붙어있는 것, 의지적으로 죄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하라고 해도 죄를 원하기 때문에 들은 척도 안 합니다.
회개하라는 설교를 듣기 싫어하고 도리어 공격하는 것, 이것이 완악한 것입니다.
이것이 강퍅한 것입니다. 이게 죄 중에 죄입니다. 이게 멸망 받을 죄입니다.
하나님이 죄와 허물을 사하시지만 형벌 받을 자의 죄는 결단코 면제하지 않는다. (출34:7)
고 하셨는데, 이것은 단순히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죄를 사랑해서, 자기 의지가 죄에 달라붙어 있어서
죄에서 떨어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못 이길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마귀가 인간의 영혼을 놓고 싸웁니다.
그런데 무력으로 하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힘으로 이겨서 전부 데려가시지
어떻게 하나님께서 ‘넓은 길을 찾는 많은 사람들을 버리시고
좁고 협착한 길을 찾는 소수의 사람들만’ 구원하시는 것입니까? 마7:13~14
절대주권에 의한 것이라면 절대로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단순히 전능에 의한 것이라면 절대로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날개로 그 새끼를 품으려함 같이 내가 너희를 품으려 한 것이 몇 번이냐?
(내가 너희를 보호하고 구원하려고 한 것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눅13:34
하시면서 주님은 우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셨지만 그들이 원하지 않을 때,
그들이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할 때 구원하실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보호하실 수 없었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자유의지로) 그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 잠19:16
이것은 참 진리입니다. 비슷한 말씀으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그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롬8:13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고전9:27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한 뒤에, 나는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
그러므로 지금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
모두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의 주권’ 신학이 맞는 말이지만, 이것이 너무 강조되어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너무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서- 구원을 너무 쉽게 여기고,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다 알아서 구원해 주시겠지..)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시한 나머지.. 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번 말씀한 것처럼 우리는 (자유의지로)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자유의지로)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자유의지는, 성령의 도우심과 성령의 공급하시는 힘을 받습니다.
그래도 결정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인간에게 이토록 위험한 자유의지를 주셨나?’ 하지 마시고,
그런 자유의지를 받은 것을, 인간의 특권으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인간만 받았습니다.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으로는 자기 영혼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사변적인 믿음으로는, 기독교 교리에 동의하고 신앙 고백하는 이런 믿음으로는
자기 영혼을 절대로 보존하지 못합니다.
마귀의 가장 큰 무기가 거짓말인데,
그 중에도 가장 효과적인 거짓말로 많은 교회와 크리스천들을 속인 말은
‘신앙고백만 하면 천국 간다’고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와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계명을 지키게 합니다. (후략)
▲관련글 스크랩 :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자신감> (이 단락 펀 글)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선악과를 만들어서, 따 먹게 해서, 인간을 타락하게 만들었냐는
고전적인 의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보면, 이것은 하나님의 자신감의 표현입니다.
인간에게 자유를 주고, 마음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실수, 실패, 범죄를 해도 내가 건져내겠다는 자신감입니다.
선악과를 보는 순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봐야 합니다.
부모도 자신감이 있으면 아이를 풀어줍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자녀에게 자유를 줍니다.
자신이 없는 부모는, 자녀를 못 풀어줍니다. 초조하고 안달해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신감’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를 풀어 줄 수 있습니다. 자유(의지)를 주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어거스틴은 어려서 방탕했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생아를 낳는 방탕한 삶을 한 때 살았습니다.
그런 어거스틴이 하루는 로마로 간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극구 만류합니다. 어머니의 영향권 아래에서도 방탕했는데,
로마에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눈물로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어거스틴은 로마로 갔습니다.
어머니 모니카는 주저앉아 절망하고 낙심했습니다.
자기 기도와 뜻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어거스틴은 로마에서 암부로스를 만납니다.
그는 당대의 최고의 복음 증거자였습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최고의 설교자를 만난 것입니다.
거기서 탕자 어거스틴은 성자 어거스틴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기독교 정통신학은 바울-어거스틴-칼빈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오도 가도 못 하고, 중간에 끼인 사람들... ▣ 율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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