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에 행5:12~16 -2004년 설교, 출처-
*원제목 : 세상으로 손을 펼치는 교회
▲성령충만 했던 초대교회 모습
그 모습을 잘 보여주는 성경구절이 사도행전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행2:43-47,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4:32~35절도 참조하세요)
그런데 본문 행5:12~16절의 기록은
앞서 4장까지의 기록들과 뚜렷한 차이를 한 가지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차이를 보여주는 단어가 "민간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설교문 제목
◑1. 민간에, 거리에 나갔던 성령충만한 교회
▲5: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민간에’는.. ‘백성들 사이에, 즉 교회 밖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서’라는 뜻입니다.
믿는 무리들 가운데서 서로 사랑하며, 함께 모여 예배하며 기쁨을 나누던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그 받은바 영적 능력을
이제는 교회 밖으로 펼치기 시작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물론 이적과 기사를 행한 것은 사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적기사는 주로 병든 사람을 고치고
더러운 귀신 들려 괴로움 받는 사람에게서 귀신을 내쫓아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을 행하시는 이는 사실은 하나님이셨고
사도들의 손은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도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게 하신 목적은
세상에(민간에) 복음의 전파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를 많이 일으키는 사도들의 손은
사실은 믿음과 기도와 기쁨과 사랑과 나눔으로 충만한
교회(하나님)의 그 은혜와 능력이 밖으로 펼쳐지는 하나의 수단이었습니다.
▲5:15a,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세상 사람들은, 병든 사람들, 귀신 들린 사람들, 그들을 메고 거리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들만이 거리에 나간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도 거리로 나간 것입니다.
사도들과 함께 교회가 거리로 나간 것입니다.
성령충만의 역사는.. 절대 교회 안에서 머물지 않습니다.
거리로(민간에, 세상에)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극단적인 방식으로 노방전도 하는 일부 사람들이, 거부감을 일으키는 이유는,
거리로는 나오기는 나왔는데, 성령의 권위는 나타나 보이지 않고,
전도를 ‘자기 의’를 드러내는 차원에서 혹시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당신은 성령충만 하십니까?
그런데 가정이나 교회에 항상 갇혀 있으십니까?
그것은 성령충만 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뭔가를.. 민간에.. 반드시 하게 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방언을 말하고,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가진 성도는
그것으로만 만족하지 않고, 그것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반드시 세상에/민간에 작은 봉사라도 하게 되어 있습니다.
◑2. 칭송과 신뢰를 받았던 성령충만한 교회
▲성령의 권위authority가 있었습니다.
5: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사도들이 행하는 이적과 기사는 사람들에게(민간에) 놀람뿐 아니라, 두려움도 일으켰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 바로 앞에서 보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사건을 전하는 기록의 끝인 5:11은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행적이 일으키는 이 두려움은
어떤 부정적인 공포심이라기보다는
순전하지 못한 마음의 상태로 함부로 접근할 수 없음을 느끼게 하는
일종의 경외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들이 너무나 존경스럽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여
그들과 한 무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사도들이나 신도들 앞에 선뜻 다가가기에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럽고
죄스럽게 여겨지는 그런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경외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고, 동시에 멸시하고 핍박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본문 13절은 그러한 정황을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아무튼 교회가 백성으로부터 칭송을 듣고, 존경을 받게 된 것입니다.
▲5:14절은, 교회가 백성으로부터 칭송을 듣게 된 결과를 또 이렇게 전합니다.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5:15b,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베드로가 지나갈 때, 그와 손을 잡지는 못할지라도
그의 그림자라도 몸에 덮이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면 병자가 나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베드로 사도가 지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길목에
병든 사람 귀신들린 사람들을 데리고 나아왔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병든 사람과 귀신들린 사람들을 메고 거리로 나오며
사도들의 그림자라도 그들의 몸에 덮이기를 바라는 (민간)사람들이 가졌던 절대적 신뢰입니다.
사도들과 그들을 앞세운 교회에 대한 민간의 신뢰입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가졌던 그 신뢰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이런 차원에서도 함께 보셔야 합니다.
선교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신유의 기적은 오지에서는 잘 일어나는데, 대도시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지에서 신유의 기적이 잘 일어나는 이유는,
그 방법 말고는.. 병자를 고칠 길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대도시에서는, 병원이나 약국이 잘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일반은총의 영역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병원이나 약국을 통해서도 고치시고,
또 전혀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오지에서는, 기도로도 병자를 고치십니다.
물론 병원이 있는 대도시에서도, 신유기도로 병자가 고쳐집니다.
지금 본문의 예루살렘은, 오늘날로 치면 오지와 같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유의 기적이, 오늘날의 대도시보다는 훨씬 더 많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3. 세상을 치유하는 성령충만한 교회
▲5:16절에는, 이 모든 현상의 결과를 다시 요약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예루살렘뿐 아니라 예루살렘 부근에서 온 사람들은
병들었든지/ 더러운 귀신 들려 고생하든지.. 다 나음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밖으로 손을 펴 세상 사람들의 실제적인 문제와 고통을 해결하며
사회를 치유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마치는 말
오늘 본문이 전하는 예루살렘 초대교회에 관한 기록은
우리로 하여금 오늘날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먼저 그 안에서부터 은혜가 충만했고,
한 마음으로 모이기를 힘썼으며, 함께 예배하는 기쁨이 있었고,
모든 것을 모두의 필요에 따라 나누는 사랑의 삶이 있었습니다. (행2장)
그리고 그러한 교회는 필연적으로 밖으로
손을 펼치지 않을 수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5장)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도
모든 문제의 해결과 치유의 능력을 가진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을 두려워하고 교회를 탄압하려는 세력도 한 쪽에 있었지만
세상은 교회에 신뢰와 존경과 사랑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지금 우리 교회는 어떠합니까?
예루살렘 초대교회 때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났듯이
세상으로 손을 펼치는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20:28 ▣ 성령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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