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 벧전2:17 설교 여러 조각 모음
모든 사람을 존중 honor/respect하고, 하나님 안에서 형제 자매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왕을 존경하십시오. 벧전2:17
◑사람은 존중을 받을 때에 행복하고/건강합니다.
에릭 버언이라는 상담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존중받고자 하는 갈망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존중을 받아야 행복하고 건강하다.”
세상에 태어난 아기들은 몸의 접촉을 통하여 존중을 받습니다.
어머니가 안아주고, 닦아주고, 씻어주고, 먹여주고, 업어주고, 얼러주는 등
몸으로 접촉할 때에 아기들은 존중을 받는다고 느끼며 행복합니다.
그러나 아기들이 차츰 자라나면서 몸의 접촉과 함께 정신적인 접촉을 필요로 합니다.
인정해 주고, 관심을 표현해 주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면서
사람들은 정신적인 접촉을 받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나는 존중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I'm OK' 인생관을 형성합니다.
‘I'm OK' 인생관을 가지면 자신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를 존중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존중하며 인생에 대해서
언제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존중받는 인격을 형성합니다.
그러나 ‘나는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면 'I'm not OK' 인생관을 형성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감을 상실하고 열등감을 가지며
자기는 물론 타인도 무시하고 부정적으로 인생을 생각하며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인격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 그 말씀은 존중을 받을 때에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인정해주고, 축복해주고, 용서와 감싸줌을 받으며
돌보아주는 관계를 가진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사람들에게 충분한 감사를 받으며 살면
하늘을 날아오르는 기쁨과 감격의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존중을 받으며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충분한 감사를 받으면서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절반의 행복’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 자기에게 감사하는 사람들,
자기를 존중해주고 축복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에 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절반의 행복밖에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서로서로 그 사이에 서 있을 때에 행복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즉 이제 나도,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쪽에는.. 나를 존중하고 축복해 주는 사람이 있지만,
다른 한 쪽에는.. 이제 내가 존중하고 축복해 주어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존중과 사랑을 내가 나눠줌으로써.. 나머지 절반의 행복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존중하는 사람들과
내가 존중해 주어야 할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동안에
비로소 온전하고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사실.. 누군가 덕분에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게 결국은 누군가의 '덕분에'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요?
"한 사람은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요4:37)는 말씀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이 노력한 것을 누리며 삽니다.
의식주 어느 것 하나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들 아닙니까?
쌩쌩 달리는 길, 잘 닦여진 자전거 도로, 길 가에 핀 꽃들.. 다 누군가가 만들어 주었고,
맛있게 먹는 음식도.. 누군가 애써 농사짓고, 운반해 주었으며,
편리한 전기, 수도꼭지만 틀면 콸콸 쏟아지는 물.. 누군가가 수고해서 만들어 준 것들입니다.
교회 가서 내가 앉는 의자도.. 누군가가 애써 만들어준 것입니다.
'아, 인생은 고마움이구나.' 이 깨달음을 얻으면 생이 달라집니다.
노동자는 사용자가 고맙고, 사용자는 노동자가 고맙습니다.
스승은 제자가 고맙고, 제자는 스승이 고맙습니다.
고마움을 아는 사람은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나의 생명이라는 게.. 누군가의 사랑과 정성과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감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여러분, 식당에서 밥을 사 드실 때에도,
‘내 돈 내고 내가 사 먹는다’ 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내 돈을 내는 것이지만, 요리사의 수고와 종업원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식당에서 식사하다가 음식을 남기고 갈 때는 ‘남겨서 미안합니다’ 라고 말합시다.
일본 사람들은, 식당에 가면 절대로 음식을 남기지 않습니다.
아무리 매운 한국음식을 시켜놓고도, 억지로 다 먹고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남겨서 미안합니다’ 라는 말 한마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성껏 요리한 주방 직원들의 노고를 존중해 주는 말이지요!
◑하나님은.. 직접 역사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사람을 내게로 보내어 주신 하나님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나를 존중해주는 사람들을 통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직접 우리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부모님들과 가족들과 이웃들과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보내어
우리를 세워주셨습니다.
지금 조용히 생각해 보세요.
부모님, 가족들, 우리를 축복해 주는 이웃들,
직장, 교회, 믿음의 사람들, 그리고 국가와 여러 기관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보내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는 하나님께서는
앞으로도 더 좋은 이웃들,
우리를 축복하고 존중해 주는 이웃들을 계속 더 보내 주실 것입니다.
▲나를 파송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내어서
존중과 감사와 사랑을 받게 하시지만
동시에 우리들을 파송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사랑이 필요하고, 존중이 필요하고, 감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내어
사랑, 감사, 존중을 전달하는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합시다.
사랑과 감사와 존중이 필요한 사람에게로 나갑시다.
그들에게 사랑과 감사와 존중을 전달하는 사람이 됩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들을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선언(indicative)은
명령(imperative)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에 걸맞는 사람이 되어라!’ 입니다.
곧 자기 주위의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존중하고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가는 길이 곧 나의 희망
제일교포 2세인 서경식 씨는
일본의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재원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몇 군데서 취직을 거절당했습니다.
결국 그는 힘든 알바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글을 썼고,
<소년의 눈물>이란 책을 써서, 아주 인기를 얻고
‘클럽 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책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희망이 있어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는 길이 곧 나의 희망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이런 고백이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희망이 있어서 가는 길이 아니더라도,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이 전제가 중요합니다.
내가 가는 그 길마다.. 하나님이 내게 희망을 주실 것이다’ 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미리 끝까지 다 보여주시는 것이 ..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도덕적/영적인 영역>에서는 확실히 보여주시지만
구체적으로 내가 <걸어가는 실제 삶의 영역>은 확실히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도덕적/영적인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으면,
무슨 사업/직업을 할 것인가, 어디서 할 것인가.. 등 <실제 삶의 영역>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나를 존중해 주신다/나를 반드시 도와주신다’를 믿고서
자기 이성적 판단을 근거로 해서 힘차게 나아가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관심은, 당신의 사업적 성취나 직업의 만족도 보다는
당신의 영혼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어쨌든 내게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나를 존중해 주신다. 나를 도와주신다’ 라는
강력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 내가 동서남북 어떤 길을 가더라도,
내가 가는 그 길이 ‘희망의 길’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그가 보디발의 집에 가니까, 그 집이 복을 받았고,
그가 감옥에 가니까, 감옥이 복을 받았고,
그가 총리가 되니까, 애굽이 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어디를 가든지.. 그가 가는 길이 ‘희망의 길’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그릇 과 파이프
여러분, 복의 형태가 그릇일까요/파이프일까요?
그동안 우리는 복을 담는 ‘그릇’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큰 그릇을 준비하여야 큰 복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축복의 형태가
그릇이 아니라 파이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읽은 말씀 중에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이 참 좋습니다. 창12:3
하나님은 하나님의 축복이 그냥 우리에게서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축복이 우리로 말미암아 세상으로, 많은 사람에게로
흘러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얼핏 생각하면 별로 매력적인 말씀이 아닙니다. 내가 손해 보는 말씀 같습니다만,
여러분은 축복의 파이프가 되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축복의 그릇이 되고 싶으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세상과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가게 하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통하여 여러분에게로 흘러 들어오게 하고 싶으십니까?
우리는 대개 축복의 <그릇>이 되고 싶어 합니다.
복은 내게로 들어와야 하는 것이지
나를 통하여 남에게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식과 생각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파이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물은 <그릇>에 많을까요, 아니면 <파이프>에 많을까요?
여러분 물은 그릇보다 파이프에 많습니다. 그것은 사실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축복의 통로가 되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제 자식이 축복의 그릇이 되지 않고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릇에 담긴 축복의 양과 질은
파이프에 담겨 있는 축복의 양과 질에 비교될 수 없습니다.
............................................ 더 읽으실 분 ..............................................
▲예화 : 당신의 친절은 예수님의 구원을 전달하는 통로입니다.
빌리 선데이가 목회하던 교회에, 로우드 히버가 찬양대장으로 있었고,
조이라는 청년 찬양대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별로 영리하지 못하여서, 바보 같은 행동을 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찬양대장은 그를 감싸주고 그에게 따스하게 대하고 악수하였습니다.
그는 찬양대장과 악수하며 그에게 따스한 사랑의 언어를 듣고 만족하며 돌아갔습니다.
찬양대장은 가끔 그 청년을 보면서 언짢을 때도 있었고,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모든 대원을 감싸주고 존중해야 한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순종하였습니다.
어느 날 중년의 남자가, 찬양대장에게 다가와서 손을 내밀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우리 조이에게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얘가 별로 똑똑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웃들로부터 친절을 받으면서 살아오지 못했어요.
그는 어떤 일에도 그렇게 열성적으로 참여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이 교회 찬양대에 와서 노래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는 열성을 다해서 준비하고 성가대에 오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그 애 때문에, 저는 오늘 밤 이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조이의 할아버지, 제 아내 등 우리 식구 모두가 이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대장님의 친절과 감싸줌이 우리 조이에게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게 해 주었습니다.”
찬양대장의 친절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조이와 조이의 가정에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당신이 오늘 주님의 이름으로 전달하는 친절은
예수님의 구원을 전하는 하나님의 통로입니다. ▣ 크리스천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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