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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다 그러나 좋다 2118

LNCK 2009. 10. 7. 11:17

◈좁다 그러나 좋다             마7:13~14             07.07.29.설교녹취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이 설교문의 개요 : ‘좁은 문’이 가리키는 이미지의 양면성을 봐야

‘좁은 문’이라는 성경구절이, 교회 바깥에서도 유명하게 된 것은

아마 앙드레 지드의 소설「좁은 문」때문일 것이다.


그 소설의 영향 때문인지, ‘좁은 문’이라는 이미지는

‘고난, 괴로움, 자기 부정’이란 이미지로 우리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렇지만 꼭 앙드레 지드의 소설 때문만은 아니라,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라는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충분히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를 전해 준다.


그러나 좁은 문의 ‘고난, 괴로움, 자기 부정이란 이미지가 과연 정확한가?’ 라는 것이다.

저는 오늘 설교를 통해

‘좁은 문’이 가지는 이미지를 새로운 각도로 해석해 보려고 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좁아서 오히려 좋다’는 것이다.

연애를 하는 커플은, 커피숍의 ‘넓은 홀’보다는,

거기에 딸린 ‘좁은 방’을 더 좋아한다.

좁은 공간이 두 사람에게 더욱 친밀하기 때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갈 때,

우리가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어서.. 오히려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고난, 괴로움, 자기 부정’이란 이미지도 있겠지만,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런 이미지보다, 더 중요하게 부각되어야 할 것이,

‘좋고, 편하고, 행복하다는 이미지’ 이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의 이미지를.. 둘 다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이 찬송에서 보더라도, 좁은 길이 무조건 괴로운 것이 아니라고 .. 노래한다.

밤낮 기뻐한다고 하지 않는가!


※‘좁은 문’과 ‘좁은 길’은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좁은 문을 열고 나가면, 좁은 길이 연결되어 있다.



◑좁은 길이라도 오히려 좋다


▲1. 좁은 길이라고.. 사람들이 안 찾는 것은 아니다.

주말이 되면, 서울 근교의 유명한 등산로가 미어터진다고 한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몰려드는지,

올라갈 때는.. 앞 사람의 히프만 쳐다보고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앞 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내려올 정도라고 한다.


그 등산로의 길이 좁은데, (좁은 길)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뭘까?

등산을 통해서 뭔가 얻는 유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산 정상에 서는 그 상쾌함, 내려와서 가벼워진 몸.. 이런 유익들이 있기 때문이다.


‘좁은 길’이라고 무조건 사람들이 많이 안 찾는 것은 아니다.

‘좁은 길’이라고 무조건 괴로움만 있는 것도 아니다... 라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나라에 ‘크고 넓은 교회’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작고 좁은 교회’는 설 자리가 없다고 불평할 수 있다.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꼭 맞는 말은 아니다.


포천에 무슨 허름한 막국수 집이 있는데,

서울에서 검은 세단들이.. 막국수 먹으려고 거기까지 찾아온다고 한다.


경기도 양수리 근처에도 무슨 뽕(잎 넣은 해물)칼국수집이 있는데,

‘그 집을 모르면 간첩’이랄 정도로 알려졌고, 주말에는 대기번호표를 나눠주었다.

그 집도 처음에는 비닐하우스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슬라브 건물을 갖추었다. 

사람들이 그 시외 비닐하우스까지.. 묻고 물어서, 찾아들었다. 


그러므로 작은 교회도.. 막국수, 칼국수 하나 잘 끓이듯이 하면,

<좁은 길이라서.. 사람들이 안 찾는 것은 아니다!>


선전하고 광고할 필요 없다. 신문에 간지로 끼어서 광고지 돌릴 필요 없다.

(요즘 시내버스 바깥 몸통에, 간혹 교회 광고를 하고,

목회자 사진까지 게시하는 것을 보는데... 상업성을 띠는 것 같아서 좀 그렇다.)

사람들이 물어서, 물어서 그 ‘좁은 길’로 찾아오게 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혹시 안 찾아와도 그만이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7:14

성경에 그렇게 예언되어 있지 않은가!


▲2. 좁은 길이라도 행복하다.


<박사고, 교수고, 뭐고... 결혼이 더 좋다는 노처녀>

오래 전에, 한 잘 나가던 여성 인재 한 분이 있었다.

명문 대학에, 대학원을 두 개 마치고, 출신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었다.

단, 그러는 사이에.. 시집을 못 갔다.


이제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만 받아오기만 하면

‘그 여대 장래 총장 감’이라는 그런 인정을 받는 재원이었다.


그래서 유학준비를 하던 중에, 덜컹 한 남자를 사귀게 되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미쳐버렸다.


그래서 그 장래가 촉망되던 여성 인재는

유학이고, 박사고, 교수고.. 다 내던져버리고,

그 남자와 결혼해서, 애 낳고, 시집살이 하면서.. 시부모 모시고 살게 되었다.


집에서 살림하고 애를 키워야 되니까.. 자연히 학교 일도 점점 관두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완전히 전업 주부로 바뀌게 된 것이다.


주변에서 보니까, 그 여자가 너무 아깝다는 것이다.

아니, 얼마나 남자가 좋고, 얼마나 결혼생활이 좋기에,

자기의 촉망되던 장래를 한 순간에 모두 접어버리고

그냥 그 평범한 전업주부의 길을.. 그렇게 갈 수 있느냐고.. 주위에서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자기 삶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시부모를 모시며, 남편을 내조하고, 애를 키우며 사는

그 ‘좁은 길’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3. ‘좁은 길’이란, <관계가 좁아지는 길>

위 예에서 보듯이

그 여성 재원이, 세상의 출세 길보다, 전업주부가 더 좋다고 말한 것은

<남편과 관계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교수가, 유명 배우가, 정치인이.. 세상에서 아무리 넓은 길, 출세 길을 달려가더라도

그래서 아무리 많은 사람과 폭넓은 교제를 나눈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과의 깊은 관계에서 오는 친밀함’은 느낄 수 없다.

그것은 단 한 사람(아내) 하고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여성 인재가 ‘한 사람과의 깊은 친밀함’.. 그것을 느꼈을 때,

세상의 넓은 길, 출세 길도.. 어느 정도 매력이 있었지만,

‘한 사람과의 깊은 친밀함’에서 오는 매력보다는 못하더라는 것이다.


여러분, ‘좁은 문/좁은 길’이란.. 어떤 면에서 <관계가 좁아지는 길>이다.

문이 좁고, 길이 좁으니까.. 자연히 두 사람이 서로 가까이 밀착하게 된다.


즉, 좁은 길을 걸어가는 성도는.. 주님과 관계가 좁아지고, 밀착되는 것이다.

그래서 ‘좁은 길이, 좁기는 하지만, 좋다’는 것이다.  ←설교문 제목

관계가 좁아지기/친밀해지기 때문이다.  ←설교문 제목


여러분, 처녀가 시집 안 가고 있으면, ‘넓은 길’을 쉽게 갈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을 자유롭게 만나서 데이트 하고, 자유롭게 사귈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행복하고 좋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넓은 길’을 가는 처녀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결혼해서 같이 살, 남자 한 사람.. 즉 ‘좁은 길’을 원한다.

‘좁은 길’ 즉 ‘좁고 친밀한 관계’가 더 좋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세상을 사랑하면서, 주님도 사랑하는.. 양다리 걸칠 수도 있지만,

그래서 그 ‘넓은 길’이 꼭 행복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매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곧 권태 해진다.


성도들도 오직 주님 한 분만 깊이 교제하며

‘좁은 길, 좁은 관계’의 길을 가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4. 목회 사역도.. 예수님 한 분과 좁은 관계를 가지면 된다고 본다.

목회자가 팔방미인이 될 수도 없지만, 될 필요도 없다.

컴퓨터, 음악, 기계다루기 등 다른 면에 유능할 필요는... 꼭 없다.


좁은 길을 걸으며, 주님 한 분과만 좁은 관계를 가지면

나머지는 다 해결된다고 본다.

성도들 신경 쓸 필요 없이, 그들이 나를 욕해도/칭찬해도 신경 다 끄고,

주님이 나를 욕하시나/칭찬하시나.. 그것만 신경 쓰면 된다고 본다.


사실 목회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근본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목회자가 주님 한 분과 좁은 길을 가지 못하기 때문에’

파생하는 모든 문제들이다.

 

▲마치는 말

‘좁은 길’에 괴로움이 왜 없겠는가? 당연히 있다.

그렇지만 괴로움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길, 사명자가 가는 길이 그렇다.

거기에도 즐거움이 있고, 남들이 이해 못하는 행복이 있다.

바로 주님과의 좁은/친밀한 관계에서 오는 기쁨이다.                                                 ▣ 복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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