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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9

복음의 변질 2방향 2123

LNCK 2009. 10. 9. 21:12

◈복음의 변질 2방향                                갈1:7                            07.09.02.설교녹취, 정리


참된 십자가 복음이 차츰 변질되면, 크게 2가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데...

(#2121, #2122, #2123호 발행분을 연결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1. 샤머니즘 식의 기독교 복음


▲산에서 도를 닦는 사람도.. 세상을 돌아보면 실패한다. (내려오는 전설 이야기)

‘노춘’이라는 도사가 있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집을 나가서 금강산에 들어갔다.

도를 닦아서 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도를 닦는 도중에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노춘의 아내가 갑자기 기도를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했다.

집을 나올 때, 장독대에 뚜껑을 다 열어놓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의 아내는, 집으로 내려가서, 장독대 뚜껑을 다 닫고

(도를 닦으러 입산했으나, 세상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해서 중도 포기한 경우다.)

그냥 세상에서 도를 닦다가 삼미포에서 무당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남편 노춘은

금강산에서 계속 도를 닦다가.. 결국에는 비루봉에서 산신령이 되었다고 한다.


이 내려오는 전설이 뜻하는 것은, (전설이라서 믿을 바는 못 되지만)

산에서 도를 닦아 도사가 되려는 사람도.. 세상을 뒤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남편 노춘은.. 세상을 뒤돌아보지 않고 도만 닦다가.. 결국 산신령이 되었고,

그의 아내는.. 세상을 뒤돌아보다가.. 산신령이 되지 못하고, 무당만 되었다.


▲너무 사랑하던 딸자식이 죽고 나서, 미쳐서 무당이 된 여자

1927년, 일제시대 때,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어떤 엄마가, 아끼며 애지중지 키우던 자기 어린 8살 외동딸을 잃어버리자(죽자)

날마다 울면서 밤낮을 지새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실성해서 쓰러진 이후로, 죽은 딸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부터 그녀는.. 조선에서 소문난 무당이 되어버렸다.


그 후로 그녀는 죽은 자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용한 무당으로..

조선의 온 천지에 이름을 날리게 된다.


▲기독교 샤머니즘으로 나아가는 과정

이 세상의 삶-사업, 정욕, 자녀 등-을

도저히 자기 마음에서 떼서 내어버릴 수가 없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위에서, 자기 딸이 죽자, 자기가 무당이 되어 자기 딸과 접신한 것처럼,

그것들을 마치 우상처럼 애지중지 사랑하고, 그것들에 자기 목숨 걸고 매달린다.

세상이 너무 아까워서.. 절대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중에 예를 한 가지, ‘사업’을 들어서 설명해 보자.

그 ‘사업’이 너무 애지중지 귀하고,

내 마음에는 ‘사업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며 핑크 빛 소원을 품고 있는데,

현실은.. 그 사업이 내 소원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당연하다.


이 때 불신자들은.. 영계를 동원한다. 영계의 도움을 요청한다.

쉽게 말하면, 점쟁이나 무당을 찾아간다.


내가 ‘장독대 뚜껑을 열어 놔서 도를 못 닦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사업에 대한 미련 때문에, 내 마음에서 도저히 사업을 버릴 수 없는데,

내 힘으로는 도저히 내 소원대로 안 될 때,

영계와 세상에.. 내가 양다리를 걸치게 된다.


그래서 점집에 점을 치러 가거나, 절에 가서 비는데...

그와 똑같은 동기나 마음으로 .. 교회에 와서 비는 사람들이 있다.


기독교 교회 안에 이런 분위기/이런 신앙이 너무 많이 있다고 본다.

주님은 세상을 버리고, 세상을 등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도저히 이 세상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그런데 내가 그리 애지중지 아끼는 세상 일이.. 결국 내 힘/내 소원대로 안 된다.

(그러니까 불신자가 영계의 도움을 받으려고 무당집을 찾아가듯이)

신자들은.. 기독교 영계의 도움을 받아서.. 자기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한다.


여러분, 이런 <무속신앙>으로 기독교 신앙생활을 해 나가려 해서는 안 된다.

그 특징은 <소원성취/문제해결, 가내안전/사업번창>이다.

오직 자기 신앙의 목적이 거기에 주파수가 맞춰져 있고,


그런 것에 주님의 도우심을 보다 강력하게 이끌어내기 위해서

새벽기도/철야기도/금식기도/1천번제/각종헌금/각종봉사/심지어는 전도까지!

이렇게 충성해서 하나님께 잘 보여서,

결국은 <소원성취/문제해결, 가내안전/사업번창>을 목적하며 나아간다.


그래서 (목회자께 기도 받는 것을 싸잡아 성토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용한 무당에게 기도 받는 심정으로

신령한 목회자에게 특별/안수기도를 받기 원한다.

그 목적은 <소원성취/문제해결, 가내안전/사업번창>이다.


그 일을 더욱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빈손으로 오면 성의가 없으니까

마치 무당에게 복채 같은 것을 바치듯이

목회자에게 봉투를 들고 와서, 기도를 받으면서

<소원성취/문제해결, 가내안전/사업번창>을 간절히 염원한다.


‘봉투’가 좀 아깝기는 하겠지만

만약 진짜 그의 기도가 효력이 있어서, 소원성취/문제해결 된다면

거기서 얻는 유익은 100배가 넘으니까, ‘봉투’ 정도는 ‘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기도 받고서, 아이의 학교성적이 쑥쑥 올라가고,

그 기도 받고서, 진짜로 병이 낫는다면.. 세상에 이런 횡재가 없다.

그런데 진짜 성적이 올라가고, 진짜 병이 낫기도 한다.

진짜 용한 분들도 간혹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전제前提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전제: premise;presupposition;proposition

기독교를 샤머니즘 식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소원성취/문제해결 또는 가내안전/사업번창>이 기독교의 목적/전제가 절대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의 십자가 신앙과 정반대되는 것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샤머니즘 식 기독교의 출발이

‘장독대 뚜껑을 덮지 못한 것이 아까워서 되돌아 간 데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즉, 세상을 버리고, 자기가 십자가에서 죽고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데,


반대로, 세상을 자기 가슴에 애지중지 품고서,

그 자기 소원을 성취하는데, 영계의 힘을 빌리려는 식의 신앙은

참된 기독교가 아니다. ‘샤머니즘 식 기독교’이다.


※무슨 두부 자르듯이

이런 <샤머니즘 식 기독교 신앙>과 <기독교 십자가 신앙>을

엄격하게 구분 짓기 힘든 면이 있다.

서로 일부분 공유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참된 십자가 복음을 잃어버리고

<샤머니즘 식 기독교 신앙>으로 도배를 하거나, 우선순위의 최우선에 둔다면.. 잘못이다. 

그것은 복음의 변질이요, 기독교 신앙의 왜곡이요, 마귀의 미혹이다.



◑2. 성공주의 / 자기계발식의 기독교 복음                                *관련글 : 순수복음과 성공주의 -클릭-

 

‘소원성취’라는 점에서는 위의 샤머니즘과 동일하지만

샤머니즘이 ‘영계/영적인 힘’을 빌리거나 동원하는 반면에,

성공주의는 ‘자기노력/자기능력을 극대화’ 시켜서.. 소원성취를 이루려 한다.


전자가 영적/신비주의적이라면

후자는 이성적/합리적/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동일하게 똑같은 것이다. ‘소원 성취/문제 해결’


이 분야에서, 시중에 나와 있는 <책제목>은 이런 것들이다.

긍정의 힘, 잘 되는 나, 성공하는 이들의 공통분모,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법칙, 5천만 원으로 10억 만들기

20대 피부 유지하기, 40대 아줌마 몸짱되기 .. 등등이다.


한 마디로,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며, 사기를 격려하고,

목표와 비전을 선명하게 품게 하고, 거기에 자기 최선의 노력을 다 해서

그 목표와 비전을 이루어서.., 한 마디로 ‘이 세상에서 성공해라’는 것이다.


샤머니즘이 영계의 힘을 빌려서 ‘자기 소원’을 이루는 것이라면,

성공주의는 ‘세상 지식, 삶의 경험,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노력’들을 총 집결해서

현세에서 일단 잘 되고 보자는 것이다. 축복을 받아서 잘 되자는 것이다.


1995~2000년대 사이에 아마 이런 성공주의 메시지가 가장 활발했다고 본다.

그 전에는 <적극적 사고방식/노만 빈센트 필>이란 책을 통해서만 전파되다보니

그 전파 속도가 매우 느렸는데,


1995~2000년대 사이에 인터넷을 위시한 각종 미디어가 대중화 되면서

그 미디어들을 매체로 해서,

이 성공주의/자기계발적 메시지가 전국으로 순식간에 퍼졌다.

처음에는 일부에서만 전파되는 것이.. 그 시기에 널리 대중화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은 한국이나 미국의 교포교계에서

성공주의/자기계발적 메시지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성공주의/자기계발적 메시지도.. 샤머니즘과 마찬가지로

무슨 두부 자르듯이

<기독교 십자가 신앙>과 <성공주의/자기계발 신앙>을

엄격하게 구분 짓기 힘든 면이 있다.

서로 일부분 공유하는 면(교집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참된 십자가 복음>을 잃어버리고

<성공주의/자기계발 신앙>으로 도배를 하거나, 신앙의 우선순위에서 최우선에 두게 되면.. 잘못이다. 

그것은 복음의 변질이요, 기독교 신앙의 왜곡이요, 마귀의 미혹이다.


▲마치는 말

참된 기독교는.. 세상에 대해 죽는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대해 .. 일단 죽는 것이다.


그 세상들을 죽이기는커녕 더 잘 ‘살리기’ 위해서

영계의 도움을 받거나

자기 능력을 극대화해서 총력전을 펴는 것은.. 참된 기독교가 아니다.


물론 기독교도 축복을 받고, 성공도 해야 하고,

아버지는 자녀를 사랑하셔서, 자녀들에게 좋은 것들을 주기 원하신다.


그러나 그런 (통칭해서) ‘축복’들은

반드시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한 이후에나 오는 것들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과했으나, 꼭 세상적 축복이 안 올 수도 있다.

영적 축복이 그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반드시 온다.)

 

위에서 언급한 샤머니즘, 성공주의가 비복음적인 이유는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는 ‘축복’을 선전하기 때문이요

그 축복이라는 것도 ‘현세적’인 축복을 주로 강조하기 때문이다.


여러분, 제가 한 번 은행에 예배인도 차 가보니까

거기에 어마어마한 뭉칫돈들이 쌓여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거기에 있는 직원들은,

그 ‘돈들’을 마치 ‘돌들’을 쳐다보듯이 보았다.

자기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가 운용을 하지만, 자기 돈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 때, 그런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너무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것을 ‘우상’처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내게 맡겨주신 ‘사명’으로 보고..

마치 은행직원들이 ‘돈뭉치’를 대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 복음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