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로 살고자 하는 욕심을 내자 마10:29~33 09.09.17.설교녹취
▲성경공부를 많이 하면서도, 한 가지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제자의 삶, 순종의 삶’이다.
우리가 성경공부를 통하여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수많은 말씀을 많이 접하는데,
그런데 자기가 막상 불신자를 접할 때,
내가 어떻게 전도를 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 매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성경지식은 많이 들었는데,
자기가 실제로 회개하고,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성령충만을 경험한 직접적 체험/간증이 없는 사람은
딱하게 결정적으로 전도할 말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창세기~계시록까지 성경을 많이 안다고,
다른 사람을 주님께로 이끌 수는 없다.
▲예수님께서 3년 동안,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성경의 전반적인 지식을 가르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제자의 삶을 직접 보여주셨고,
실제로 12제자들로 하여금 ‘가르쳐 지키게 하는데’ 주력하신 것으로 보인다.
제자들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전도해서 주님의 제자로 만들고,
그 주님의 제자들이 또 나가서 재생산 할 수 있도록
그런 어떤 실제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셨지,
‘지식적 가르침’은 (그것도 필요했고, 그것도 가르치셨지만)
그게 예수님 사역의 목표는 아니었다.
▲제 마음의 갈망은, 우리 성도들 각자가 이런 제자가 되는 것인데..
어느 날 믿지 않는 사람이 여러분에게 찾아와서
‘제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난감해 할 때,
물론 그 분을 교회로 인도해야 하겠지만,
-그 분이 주님께로 나아오는 것을 막고 있는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그 분에게 역사하는 사탄의 역사가 어떤 경로로 틈타는지 분변해주고..
-그 분에게 그 때 적절하게 필요한 말씀이 어떤 것인지 나누어주고..
-그 분의 영혼을 위해 중보기도하면서,
그 분이 신자가 될 수 있도록, 옆에서 부축하고 도와주는 ‘작은 목자’로서
우리 성도님들 각자 한 분, 한 분이 우뚝 서시는 것이다.
우리 성도님들이 그런 ‘제자’가 되시는 것이 .. 목회자로서 제 꿈이다.
그저 교회 오래 다녔다고, 교회 문화에 익숙하고,
찬송가 몇 개 외워 부르고, 성경 지식이 박식한 것에 .. 저는 별로 관심 없다.
▲제 자신을 돌아보면, 제 인생을 놀랍게 바꾸어놓았던 것은, ‘설교’보다는 ‘전도’였다.
제가 설교를 들음을 통해서 성장한 면도 있겠지만,
그 보다도, 제가 전도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양육하면서
제가 영적으로 크게 성숙할 수 있었다고.. 저는 그렇게 믿는다.
그러니까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음을 통해서 성장하는 사람,
즉 지식적으로 성장하는 사람은 .. 성장이 있지만, 매우 더디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양육하고, 전도하고, 양떼를 치면서 성장하는 사람은
즉 제자의 삶에 순종하면서 성장하는 사람은 .. 영적 성장이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전통적 교회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 영적성장과 영적건강을 위한 자양분 공급을.. 오직 설교와 성경공부에 의존한다.
그리고 자기만 돌아보고, 주변 사람들을 거의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니까 교회를 아주 오래 다니지만.. 사실 그 믿음의 수준은 늘 초신자와 다름없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그런 수준에 머물기를 원치 않는다.
설교도 듣고, 성경공부도 해야 하지만,
우리 각자가 ‘제자의 삶’을 살자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내 주위 사람들을 격려하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작은 목자’들이 되자는 것이다.
만약 그게 안 되면, 자기 삶에 ‘거룩한 불만족’을 가져야 한다.
‘나는 아직 한참 멀었구나!’ 하는 자괴감을 느껴야 한다.
예수 믿는 것이, 그저 자기 한 사람/자기 가정의 문제 해결/축복 받기로 끝나서는 안 된다.
그것은 참된 기독교가 결코 아니다.
▲여러분,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을.. 주님을 알게 하고, 주께로 인도하는 것
-이것보다 귀한 일은 세상에 없다.
사도행전에 나온 제자들이.. 자기 가족문제/생계문제가 없었을까?
그와 같은 문제는.. 역사 이래 모든 민족, 모든 사람에게 늘 존재해 왔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보면,
그 사도들이나 제자들의 가족문제.. 이런 것을 기록하지 않고 있다.
‘오직 그들이 다니면서 전도하고, 제자 삼았다.’ ..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자기 가족적 문제가 있든지/없든지..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오직 복음 전파/하나님 나라 .. 이런 것에 신경 쓰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영적 침체가 오면,
성도들은 사명/복음전파/하나님 나라 .. 이런 것에는 거의 관심 없고,
자기 가족문제/생계문제/장래문제 .. 오직 ‘자기’밖에 모른다.
여러분, 자기문제가 있든지/ 없든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란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으니
그런데 눈을 뜨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란다.
▲오늘 우리가 불신자들에게 어떤 영적인 영향력/ 전도를 하지 않는 삶을 산다면
오늘 우리의 삶이 결코 존귀해지지 않는다.
예수 믿는 감격이 없고, 복음의 감격을 모른다.
영적으로 ‘현상 유지’나 하면.. 다행이다.
여러분, 우리가 전도하다보면.. 점점 성화된다.
전도하는 사람을.. 주님이 점점 성화시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구역장, 목회자 .. 이런 분들을 보면
처음에 봤을 때보다 많이 성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이 구역식구, 양떼들을 늘 돌보고 인도하다보니.. 제일 먼저 자기가 변화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결혼해서 애 낳고 키울 때.. 철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기가 애를 낳고 길러보면서/고생하면서.. 부모가 먼저 인격적으로 성숙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는, ‘예배자’를 만들지만, ‘제자’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예배’에는 열심을 내는 신자가 많은데,
일평생 자기 문제에 빠져서, 일평생 자기 걱정만 하고 산다.
다른 사람에 관심가지는 ‘제자’는 되지 못하고 있다.
여러분, 여러분의 어떤 문제가
기적적으로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어떤 문제는 평생을 지고 가야 되는 문제도 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일평생동안 해결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만 해결 되고 나면, 내가 어떻게 헌신하겠다..’ 하다가는
일평생 헌신 못 한다.
저와 여러분은, 자기 문제가 있든지/ 없든지
복음전파/하나님 나라에 일평생 헌신하시는 ‘제자’들이 되시기 바란다.
여러분, 사도행전에 나오는 제자들이 부부갈등 없었겠는가?
그 제자들은 집세 내는 걱정 없었겠는가? (사도행전에는 자세한 기록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자기 문제해결에 치중하지 않고
주와/복음전파와/하나님 나라에 헌신하고, 고난 받는 삶을 살았다.
우리도 그렇게 되시기 바란다.
저는 교회에 새신자가 입교하면, 일정기간 동안 교회 봉사를 안 했으면 좋겠다.
대신에 복음의 능력, 복음의 진리에 대해서..
그 기간 동안에 차분히 배우고,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우리는, 새신자가 들어오면, 무조건 교회봉사부터 시작한다.
차량봉사를 하든지, 주방봉사를 하든지, 성가대를 하든지..
그래서 찬송가도 배우고, 교회 문화에도 굉장히 빠르게 익숙해지는데..
문제는 ‘복음의 능력, 복음적 삶’ .. 이런 것에 대해서는 영원히 ‘새신자’로 남는다.
여러분, 우리가 복음의 능력을 알고 복음적 크리스천이 되는 것과
기독교 문화를 배워서 교인이 되는 것은 .. 엄연히 다르다. 기독교 신앙은 '문화'가 아니다.
우리 교인들은, 기독교 문화에 익숙한 교인보다는,
복음의 능력을 알고 체험하는 교인들 되시기 바란다. (이 소단락 펀글)
▲모든 불행한 일을 만날 때에도,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시라. 이것이 믿음이다.
주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마음이 덜 아프고,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마10:29
여러분, 참새가 붙잡혀서 팔리는 것은.. 참새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불행이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섭리하신다.
하나님은 나의 행복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지만,
나의 작은 불행 하나까지도 다 주관하시고, 섭리하신다.
왜냐하면 참새 한 마리도 주관하시고, 머리카락 하나까지 다 섭리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정적 불화를 겪든지,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든지
(회개할 기회로 삼아서 자기가 회개하면.. 좋고)
모든 것을 주님이 섭리하시고 주관하신다고 ‘믿고’
내가 그 문제/염려들에 깊이 빠져서 헤매지 말고,
나는 주님이 내게 맡기신 사역과 사명에 치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욥은 자녀가 다 죽고, 모든 비즈니스가 다 망했다.
그 때 욥은 ‘주신 이도 여호와요, 취하신 이요, 여호와시니 다만 주를 경배할지라’
하면서 자기 믿음의 삶을 계속 이어갔다.
자기 문제의 수렁에 빠져서 허덕이지 않았다.
다윗은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에도
그냥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있었다.
시므이가 자기를 향해 저주할 때에도 ‘주님의 주권’을 겸허히 인정했다.
어떠한 환경을 만날지라도,
그 환경 때문에 자기 사역/삶/사명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기 사명의 길을 계속 인내하며 걸어갔다.
여러분, 현재의 삶이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제자의 삶’이 회복되시기 바란다.
그러면 정말 의미 있는 삶이 시작된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된다.
복음의 능력, 믿음생활의 감격을 체험하면서, 사명자의 영광스런 길을 가게 된다.
우리 성도님들은, 아무리 자기 삶이 어려워도, 그 문제는 주님께 맡기시고,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시인하시는 제자가 되시기 바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 문제에 발목 잡혀서, 제자의 삶을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마10:32~33
▲마치는 말
오늘날의 교회가 생명력을 점점 잃어가는 이유는,
또한 개인적 삶에 승리가 없는 이유는,
예배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성경공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런 것들은 충분히 있다.
그 이유는.. 제자의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목표삼고/욕심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또한 말씀을 듣고서, 또한 성경공부를 통해서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며, 영적 성숙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느리다.
그러나 자기가 말씀을 듣는 자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말씀대로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기도해주고,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에 자신을 헌신한다면,
‘제자’가 된다. 그러면 놀랍게 달라질 것이다.
자기가 성장하는 것을.. 자기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매 해마다 그의 삶은.. 놀랍게 변화되어 갈 것이다.
오직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1:8
여러분, 성령은 문제해결을 위해 받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려 할 때, 위로부터 성령이 임해 주신다.
세상과 환경은.. 이런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일 것이다.
이런 권세 있고 능력 있는 제자들이 되자!
이런 사람에게, 회사 일이건, 가정 일이건,
하나님께서 놀랍게 개입하셔서, 친히 해결해 주실 것이다. ▣ 제자 양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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