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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가 나타나려면 질그릇이 깨어져야 2133

LNCK 2009. 10. 16. 15:07

◈보배가 나타나려면 질그릇이 깨어져야         고후4:7~12             09.09.16.설교녹취



◑질그릇이지만, 보배를 담고 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4:7


▲1.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우리는 질그릇이지만, 보배를 담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속에,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부활의 보배가 가득 차게 되시기를 축원 드린다.


그래서 자기 질그릇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담은 사람은,

어떠한 일을 만나도 결코 낙심하지 않는다. 낙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데.. 그 곳에 낙심이 합석合席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 속에 그리스도의 보배가 보이지 않는 사람은,

일평생 노력하는 것이 있는데... 자기 질그릇을 좀 광택내고, 비싼 것으로 바꿔보려 애쓴다.


그런데, 반대로 자기 속에 그리스도의 보배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 질그릇을 광택내고, 비싼 것으로 치장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


자기의 가치는, 그 질그릇의 가치 때문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질그릇 속에 담고 있는 내용물의 가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조금 값비싼 질그릇에서 오는) 교만이 아니라,

(그 속에 보배에서 오는) 건강한 자기 자존심이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질그릇’을 자꾸 바꾸려고 하지 마시라.

성형수술, 학위 따는 것, 자동차나 집을 무리하게 장만하는 것, 비싼 명품 사는 것..

이런 것들을 깊이 기도하신 후에, 시도하시기 바란다.

질그릇이 아무리 바뀌어도,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보배이신 그리스도이시다.


내가 비싼 자동차를 타고, 명품 가방을 든다고 해서..

내 안에 보배가 더 돋보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사치’가.. 내 안에 보배의 영광을 더 가릴 수도 있는 것이다.


▲2.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4:7

여러분, 능력이 우리에게 머물 때.. 우리가 교만해 진다.

삼손이 그랬고, 솔로몬이 그랬다.


삼손이, 아무도 당할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이 임했을 때, 그래서 승승장구했을 때,

그는 주님의 말씀을 경히(가볍게) 여기게 되고... 결국 들릴라의 유혹에 빠졌다.


솔로몬에게는, 아무에게도 없는 지혜와 물질적 축복이 임했다.

그는 그 ‘능력들로 인하여’ .. 주님을 바라볼 필요를 점점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에게,

그런 능력이 없기를 축원 드린다.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4:7


다만, 우리 자체는 능력이 없지만,

능력이신 그리스도의 보배가 내 질그릇 안에 머물면서..

내가 ‘능력의 도구’로 쓰임 받는 것이다. 내가 ‘능력 자체’는 아니지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에게,

내가 감당치 못할 세상적 축복과 능력이 사라지기를 축원 드린다. (삼손과 솔로몬처럼 안 되려면)


여러분,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즐비하게 널려 있어도

내가 배가 부르면.. 어쩔 수 없이 사양해야 한다.

그걸 무시하고, 아깝다고 계속 먹다가는.. 크게 탈이 날 것이다.


(그런 사람이 많이 없지만, 보통은 없어서 못 먹지만)

간혹 먹는 것을 사양해야 될 지경에 놓이는 사람도 있다.

그 때는 반드시 사양해야 한다.

벌써 많이 먹어버렸다면.. 관장해 내시기 바란다.                             *관장 : 뒤로 빼 내는 것


▲주님이 주신 축복, 계시 때문에..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처음에 남들이 받지 못하는 계시(환상, 예언 등)를 받은 사람들이

계시에 점점 빠지다가,

나중에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보배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 못 받은 사람들은.. 중간이라도 하는데,

능력이 많아서 그런 것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잃어버리고, 잘못되어 버린다.


다른 은사나 물질적 축복도 마찬가지다.

조금 받은 사람들은.. 중간이라도 유지하는데,

많이 받은 사람들은.. 자아가 강해진다. 십자가의 자기부인이 사라져 버리고,

좋은 말로 ‘카리스마가 강한 사람’이라는데.. 실상은 ‘육이 강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정리하면, 능력, 은사, 계시, 물질, 그 외 무엇이든지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4:7

는 말씀처럼, 우리에게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은,

‘질그릇 속에 있는 보배이신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능력 있는 사람에게는.. 능력이 안 나오고, (가짜fake 능력은 나온다)

능력 없는 사람에게서.. 진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부인이 잘 이루어지고 나면

주님이 우리를 통해 능력을 행하시는데,

우리 각자는 ‘부담 됩니다.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나오면

내 속에 보배이신 예수님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않노니’ 하시면서 막 맡겨주신다.


‘주님, 그것 제게 맡겨주시면 큰 일 납니다!’

‘아니다.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축복/능력/계시를 받아라!

아무개야,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주지 않을 터이니.. 네게 이런 능력을 주겠다! 너는 감당할 수 있다!’


▲여러분, 은사(선물)를 받는 방법이 있다.

‘주시옵소서, 줏시옵소서!’ 이렇게 땡깡부려서 받는 방법이 있을지 모르나,

이것은 아주 확률이 낮은 방법이고,

확률이 높은 방법을 소개하면 이렇다.

 

여러분, 손자가 할아버지 보고 싶다고 전화하면,

할아버지가 그저 안 오시고, 꼭 뭘 사들고 오신다.


우리가 보배이신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그 분을 기다리면,

주님은 그저 안 오시고, 꼭 선물(은사)을 들고 찾아오신다.


여러분, 주님의 ‘옆구리 쳐서’ 선물 받으려 하지 마시라.

대신에 주님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애타게 사모하면..

선물(은사)은 자연히 따라오게 되어 있다.



◑질그릇이 깨어져야, 보배의 생명력이 나타난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후4:8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4:9


▲우리는 사방으로 우겨쌈과 답답한 일을 (가끔씩) 당하게 되어 있다.

핍박을 받고 꺼꾸러뜨림을 (가끔씩) 당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약하고 무능한 '질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일 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시라.


그런데 사도바울은, 바로 이 때 <예수의 생명>이 나타난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4:11


내 속에 보배로운 예수가 계신데,

그 질그릇의 겉껍질이 너무나 딱딱하고 강해서,

세상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면, 그 속에 보배는 안 보이고, 딱딱한 질그릇만 보인다.


그 때 주님은 가끔씩 ‘십자가의 죽음’을 우리에게 주시는데,

그래서 우리가 우겨쌈/답답한 일/핍박/거꾸러뜨림을 주신다.

그때 비로소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4:11

 

▲그래서 교회나 가정은 <십자가 지는> 사람을 통해.. 세워진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십자가 지워지는> 사람을 통해서.. 세워진다.

우리가 다 그것을 지기 싫어하지만, 주님이 억지로 지우시기 때문이다.


교회나 가정은.. ‘옳은 말’ 하는 사람 때문에, 세워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옳은 말’ 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고, 도리어 시험거리가 된다.


▲‘예수 죽인 것’(십자가)을 몸에 짊어지면.. 불편하다

그래서 우리가 우겨쌈/답답한 일/핍박/거꾸러뜨림을 당하는 것은.. 불편한 일들이다.

그러나 그 불편한 일들을 참고 견디는 사람을 통해서.. 주님의 나라가 세워진다.


십자가 지는 사람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부활의 능력이 곧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 지다가 ‘내가 이러다가 완전히 망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걱정할 필요 없다.

아니 빨리 빨리 망할수록 좋다.

주님의 부활의 능력은.. 망하고 죽은 다음에 비로소 세워지기 때문이다.



◑십자가가 지워진 사람 : 로제타 홀 의료선교사                                    *이 단락 편집자 글

 

닥터 홀의「조선 회상」 With Stethoscope in Korea by Sherwood Hall


가을은 독서의 계절인데, 사 두고 안 읽은 책 중에

닥터 홀의「조선 회상」이란 책을 읽고 있다. 


정말 독서를 못 한지가 몇 달이나 되었다. 성경도 겨우 겨우 읽는다.

뭐가 그리 바쁜지...


그래서 이번에는 ‘독서에 우선순위 priority’를 두기로 작심해 보았다.

다른 것을 다 제쳐놓고, 독서를 먼저 하게 된 것이다.

그랬더니 어머나.., 독서가 되는 것이다.


▲1. 가족을 잃은 슬픔을 선교의 열정으로 불태우다.

(1884 고종이 선교 윤허, 그 해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가 입국한지 얼마 안 되어)

1890년에, 미국 여의사 ‘로제타 홀’은, 한국에 (배를 몇 달 타고) 와서  1890.10.10.

1891년에 미국에서 의료선교사로 온 ‘윌리엄 홀’과 만나                   1891.12.15.

1892년에,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1892.6.27.

                                                             이 때가 로제타가 27세, 남편 윌리엄이 32세였다.

                              이들의 결혼식이 아마 한국에서 열린 가장 첫 서양식 결혼식일 것이다.


이듬해 1893년, 그들 사이에 첫째인 아들 ‘셔우드 홀’이 태어난다.     1893.11.10.

그런데 1894년, 사랑하는 남편 ‘윌리엄 홀’이 과로와 이질로 소천한다. 1894.11.24.


그러니까 로제타 홀은, 한국에 온지 4년 만에,

결혼한 지 2년 반 만에.. 사랑하는 남편을.. 한국에서 잃게 된 것이다.

자기 배에는 둘째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둘째는 아빠 얼굴을 한 번도 못 본 것이다.


그 충격을 잊기 위해, 또한 안식년으로, 로제타 홀은 고향 미국으로 돌아간다.

                                                                                         1894.12.16.

미국에 도착해서 얼마 후에, 둘째로 딸인 ‘에디스’를 출산한다.        1895.1.18. 

그해 로제타는 남편의 고향인 캐나다와 모 교회를 방문한다.         1895.9월중

그리고 거기서 영적인 힘을 얻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1897년 가을, 로제타 홀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1897.11.10.

1898년 봄, 로제타 홀은, 남편이 생전에 일하던 평양으로 가서

        남편의 뒤를 이어 의료선교를 계속 하려고 평양에 도착한다. 1898.5.1.

        그런데 몇 주 만에, 자기 딸 ‘에디스’가 이질로 소천한다.         1898.5.23.


세상에 이런 일이!

복음 전하겠다고, 선교하겠다고, 머나먼 한국 땅까지 왔는데,

4년 만에 남편을 데려가시더니, 또 4년이 지나 8년 만에 딸까지 데려가 버리셨다.

(다행히 첫째 아들 ‘셔우드 홀’은 살아남아서,「조선회상」을 썼다.

그 딸 ‘에디스’는 양화진에 남편 ‘윌리엄 홀’ 곁에 나란히 누워있다.


로제타 홀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1900.5.23.

우리의 사랑하는 에디스가 떠난 지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노블 씨의 딸 루스, 존스 씨의 아이 그레센,

아펜젤러 씨의 딸 메리를 볼 때마다, ‘에디스가 살아 있다면...’ 하고

그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에디스를 잃은 슬픔이 날이 갈수록 더 견디기 힘들어지는구나...    p.199  

     

로제타 홀은, 남편을 잃은 아픔, 딸을 잃은 아픔을..

오직 조선 선교에 열정적으로 쏟아 부었다.

하나님 아버지께 더욱 몸부림치며 헌신하였던 것이다.

 

딸 에디스는 서너 살의 꼬마였지만, 엄마가 수술할 때는 꼭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엄마의 얼굴에 피가 튀면, 수건으로 엄마 얼굴을 닦아주던 정말 착한 아이였다.

로제타 홀은, 딸 에디스가 크면, 엄마를 뒤이어 의사가 될 것을 꿈꾸고 있었다.

그래서 그 딸을 잃은 상심은 더 큰 것이었다.


   성경의 예를 보거나, 우리 주변의 예를 보거나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종종 크게 들어 쓰실 종들의.. 가족을 먼저 천국에 데려가 버리신다.

   그 깊고 넓은 섭리와 뜻을 다 알지는 못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땅에서 너는 오직 나에게만 헌신해라!’이다.

   김준곤 목사님, 장기려 장로님.. 다 그런 분이셨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로, 주님은 당신의 종들을 초대하신다...

   로제타 홀은, 남편을 보내고, 어린 딸 마저 보내고, 울며 울며 그 길을 십자가를 지고 걸어갔다.

   그래서 이뤄진 열매가 조선 선교요, (약 10년 후) 평양 대부흥이었다.

 

▲2. 죽기를 각오한 선교/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는 선교

이 책에 보면, 남편 윌리엄 홀이,

1892~1894년까지 살아 생전에 평양에서 선교본부를 최초로 개척하면서 당한

여러 어려움과 핍박이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당시 닥터 윌리엄 홀이, 고향에 보낸 기도편지의 한 대목은 이렇다.

이제 조선에서 자유롭게 선교할 날이 가까워졌는가 보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의 자식 몇 사람의 생명을 요구하시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p.151


다음은 가까운 동역자 노블 목사가 기록한 글이다.

한번은 평양에서 외국인에게 증오심을 가진 어느 관리의 영향으로

군중들이 들고 일어난 적이 있었다. (외국인들이 나라를 망친다고 쇄국정책을 펼 당시임)

조선인들의 적개심이 어떻게 터져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상태일 때,

나는 닥터 윌리엄 홀에게, 이 상황의 전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희생시켜서 이 도시의 문을 여실 생각이라면,

나는 그 희생자가 되는 것을 피하지 않겠습니다”고 대답했다.  p.113.


결국 남편 윌리엄 홀 박사MD는, 조선에 죽으러 온 것이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평양에서 선교를 시작했으며, 여러 번 위기를 넘겼다.

그런 그는, 자기의 소원대로, 한국에서 과로와 열병으로 순교했다.


그로부터 약 4년 뒤인 1898년, 아내 로제타 홀 여사가 평양에 들어갔을 때는

그 남편의 살신성인의 희생 때문에, 비교적 핍박 없이 의료선교를 감당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채 못 되어, 1907년 평양에서는 ‘평양대부흥’이 일어난다.


불과 15년 전까지만 해도 선교사에게 돌을 던지고,

선교사를 포함한 모든 외국인들을 다 죽이려고 소동하던 도시가,

(※대동강 변 제너널 셔먼 호 사건은 1966년)

이제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선교는 꼭 ‘대가’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대가이다.

대가 없이는 선교/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도 한 알의 밀알을 그처럼 강조하셨고, 스스로 대가를 치르셨다.


닥터 윌리엄 홀은, 그 대가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는, 그 대가를 자기가 치르겠다고.. 자원하고 나섰던 것이다.

 

오늘도 대가cost를 치르지 않겠다는 사람은

아무런 열매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3. 한국 맹인들을 위해서 점자를 도입한 로제타 홀

‘점자’ .. 이런 것은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로제타 홀 의료선교사에게는

‘한국의 맹인 여자아이들’이 불쌍하게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한국 사람도 멸시하고, 한국 사람도 관심 갖지 않는 맹인들을

낯선 외국인이 관심가지고,

그 일을 위해서, 미국에 안식년으로 갔을 때, 스스로 먼저 점자를 배우고

그리고 그것을 한국식으로 도입해서

밤에는 바늘로 손수 찍어서 한글 점자책을 만들고...


도대체가 로제타 홀은, 세상과 거꾸로 가는 사람이었다.

그가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는 맹인아이들을 위하여

점자책까지 만들어 보급했다는 사실은..

정말 낮고 천한 사람들을 돌아보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보통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 만나고, 유력한 사람과 시간 보내고.. 그러지 않는가!


평양에 이주한 뒤 어머니(로제타 홀)는 맹인인 봉래를 데리고 교육을 시작했다.

처음에 이 점자 교육은 진도가 느리고 지루했다.

그러나 봉래가 점자로 조선 알파벳을 해득한 뒤에는 순풍에 돛단배같이 진도가 빨랐다.

일 년 만에 봉래는 어머니가 준비한 모든 교재들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점자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고, 말하는 것을 받아 적으며,

자신이 점자 교습을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봉래에게 뜨개질까지도 가르쳤다.


봉래가 글을 배우고 행복해진 것을 본 병원 환자들은,

어머니에게 자기들이 알고 있는 다른 맹인 소녀들도 받아달라고 간청했다.

이렇게 하여 조선에서는 첫 번째 맹인 학교가 생기게 되었다.


어머니는 맹인 소녀들도 정상적인 소녀들과 함께 배워야 하며,

여러 운동이나 놀이에도 똑같이 참여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p.203.            ※관련글  클릭 - 화면의 하단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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