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행복의 근거는? 마5:3~12 펀 글 정리
신앙생활 한지 1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행)복’이 뭔지 ABC를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주시는 참 행복, 참 평안은 그 개념조차 모르는 채,
‘예수 믿어도 나는 왜 이리도 안 풀리는 걸까?’ 하는데요..
우리들 대부분이 과거에 그러했습니다만...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은 ‘행복’이지, 축복이 아닙니다.
마5장 산상수훈의 서두에 나오는 ‘8복’은 행복에 가까운 것들입니다.
그것을 축복(5복)으로 이해하려니까, 예수님 말씀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게 됩니다.
행복은.. 보다 정신적인 복으로서, 영원한/진정한 가치가 있습니다.
축복(오복)은.. 보다 물질적인 복으로서, 잠깐의 가치가 있습니다.
(오복을 터부시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앞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8복의 전체 제목을 ‘참 행복’으로 잡았습니다.
영어성경에는, 그 전체 제목이 beatitude라고 나오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더할 나위 없는 행복, 지복至福 supreme happiness’이란 뜻입니다.
이것 역시 행복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그런데 한국인의 전통적 정서에 푹 절여진 보통의 한국인들은
‘복’이라고 하면.. 무조건 ‘오복’의 개념을 떠올립니다.
그러니 ‘8복’은 ‘5복’보다 3개나 더 많은.. 그래서 제목만 들어도 귀가 솔깃해지는데,
그 내용을 들어가서 보면.. 영 주소를 잘못 찾아온, 헛 다리 짚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한 때, 우리가 경제적으로/외형적으로 막 성장할 때는 (1980~90년대)
‘8복’을 설교하는 분은.. 그 당시에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듣기 꺼려하고, 심기가 불편해 하는.. 그런 내용을 설교해야 했으니까요.
▲오늘 나는 행복한가요? 행복하다면 왜 나는 행복한가요?
어떤 이들은.. 가난한 사람과 병자들을 보면서..
즉 자신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서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타인의 불행을 보고, 자신의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매우 단순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은.. 저주를 받은 것이고,
몸 건강하고, 물질이 비교적 넉넉한 자신은.. 축복을 받은 것인가요?
(이런 생각도 역시 ‘오복’에 절은 사고방식이죠.
그런데 사실 몸이 불편하고,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정신적/신앙적으로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앙생활을 10년 이상 했다는 신자들이.. 내가 행복한 이유를 들어보면..
-돈을 많이 벌어서 행복하고?
-자식이 공부 잘하고, 좋은 학교에 다니고, 좋은 직장을 가져서 행복하고?
-가족들이 아프지 않고 모두 건강해서 행복하다...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예수님께서 ‘8복’에서 말씀하시는 행복의 조건들이 전혀 아닙니다.
▲실제로 본인에게 들은 이야기인데요,
어떤 분이 미국 초행길에, 공항에 내리고 보니, 아무도 자기를 마중 나와 있지 않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콜럼비아 시(싸우스캐롤라이나 주)에 내려야 하는데
콜럼부스 시(오하이오 주)에 내렸던 것입니다. 그것도 한 밤 중에.
한국에서 표부터 잘 못 샀던 것이죠.
다행히 공항직원 (미국인 크리스천)의 도움으로, 그 집에서 하룻밤 신세지고,
그 집 전화로 친척과 연락을 취해서, 다음날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15시간 또 달려서
원래 목적지,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콜럼비아 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목적지가 다른 곳에 가서, 행복을 찾고 있더란 말입니다.
애써서 가도.. 거기엔 참 행복 beatitude이 없습니다.
부자가 행복하다고.. 누가 말하던가요? 부자에게 물어보십시오.
보통 집에는 ‘깔깔대는 웃음’이 있고, ‘달콤한 잠’이 있고, ‘가족간 결속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부잣집에는 .. 그런 것들이 점점 사라져버리고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참 행복의 주소를 정확하게 찾읍시다. 그 주소는 마5:3~12절입니다.
예수 믿은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참 행복’이 뭔지 모릅니다. 신자들이 체험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제껏 ‘엉터리 주소’를 가지고 찾아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해외 가난한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면서,
우리가 ‘엉터리 주소’를 가르쳐 줄 수도 있습니다.
‘예수 믿고 복 받으라!’ 하면서 엉터리 복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참 행복의 실제 사례
-일례로, 우리는 타인에게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면서
엄청난 위로와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혹시 자신이 받게 되는 모욕과 멸시를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한없이 낮추셨기에
하나님께서 모든 이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름을 주셨던 그 예수님의 체험을..
우리가 동참하고, 비슷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빌2:6-11
하나님이 나를 높여주시는.. 그 행복을 느낍니다.
-물질적으로는,
마치 밭에 보물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사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 기쁨을 (비슷하게..) 느낍니다. 마13:44
-세상은 고해苦海입니다. 사노라면 고통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11:28)”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 나아가,
내 모든 고통의 짐을.. 그 분께 다 맡기는 것입니다.
‘참 행복 beatitude’은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를 얻는 것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그리스도인들은 기본적으로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찬양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큰 기쁨이자, 행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그리스도인이기에, 참으로 행복함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요?
오늘부터 우리는 ‘주소를 잘 찾아야’ 하겠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마5:3~12 ※팔복 간략 해석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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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평생 눈을 떠 가는 과정입니다.”
몇 해 전에 한 번 들은 말이지만, 그 이후로 늘 뇌리 속에 잊혀지지 않고
늘 뱅뱅 맴도는 말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눈을 떠 가야 하겠습니다.
‘5복’에 관한 눈을 점점 감고, ‘8참 행복’에 관해서.. 눈을 점점 떠 가야 하겠습니다.
▲참 행복을 살아내고 있는 봉사자의 간증
얼마 전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 시몬 형제가 기억난다.
그는 한때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던 형제였다.
우연히 본당에서 노숙자를 관리하는 한 자매 봉사자를 만난 후
노숙생활을 청산하고 예비자 교리를 받으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던 형제였다.
유난히 무덥던 8월 초, 시몬 형제는 복수가 차서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예비신자 교리를 받았고
퇴원하면 술도 끊겠다며 좋아했다.
예비신자 교리 교육이 끝나고, 본인이 원했던 시몬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도 받았다.
시몬은 한 달 후엔 퇴원할 수 있을 거라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러던 중 병이 악화되어 임종을 준비하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봉사자들은, 임종을 앞둔 시몬 형제에게
마지막으로 가족을 만나게 해주고 싶어.. 수소문한 끝에 가족을 찾아냈다.
오랜 시간 연락을 끊고 지냈던 형제들과 어머니를 만났고
가족이 시몬의 병실을 지켰다.
시몬 형제는 기초생활수급자였기 때문에
임종을 하더라도 장례비용을 지급받을 수 있었고
부족한 금액은 본당에서 지원해 주기로 했다.
그래서 시몬의 장례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시몬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했고
모든 장례 절차는 가족이 알아서 처리했다.
그런데 그동안 시몬을 돌봐주던 봉사자들에게 연락도 하지 않은 채.
장례 절차가 끝나버린 것을.. 나중에 알았다.
한 봉사자가, 시몬의 친형제들에게 전화해서
‘나머지 장례비용을 7남매가 10만 원씩 부담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던 것이다.
그 한마디가.. 가족의 마음을 다치게 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우리는 마지막 임종의 길을 정성껏 살펴줌으로써 많은 전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나니, 안타까움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허탈했다.
우리 나름대로 열심히 봉사했는데도,
본의 아니게, 싸늘한 냉대가 돌아올 때도 있는 것이다. 살다 보면...
하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하늘나라 창고에 차곡차곡 보화를 쌓는 것이라고 서로를 위로했다.
앞서간 시몬 형제를 돌아볼 때,
겹겹이 그를 둘러싸고 있던 불신감, 늘 소외당한다는 마음,
그 마음들이 조금씩 열리는 것을 보았고,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잃었던 가족과의 만남, 노모에게 용서를 청했던 것들이
시몬 형제에게 큰 은총이 되었으리라 믿으며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새겼다. <임종심 (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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