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의 간절한 기도 약5:13~20 09.09.27.설교스크랩, 정리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약5:17
◑본문 개관
▲오늘 야고보서의 말씀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간절히 기도하라는 거지요.
뭐, 당연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에서 우리가 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간절히 기도드린다는 게 도대체 어떤 것이냐? ..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기도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서 기도하느냐는 차이가 있겠지만,
아무튼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본문 성경은 우리에게 간절히 기도하라고 합니다. 약5:17
일단 본문을 구절별로 개관해 보겠습니다.
▲13절, 언제든지 기도하고 찬송하라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5:13
어떤 상황이든지, 무슨 일이 생기든지, 항상 기도하고,
항상 우리 입에서, 우리 생활에서 찬양이 멈추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4절, 간절한 기도는.. 중보 기도를 요청합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약을 가지고 치료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름=약이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도, 강도 만난 사람에게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고 돌보아 주었습니다.
병든 사람이나 그 가족이, 교회 지도자들을 청하는 것은,
기도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입니다.
병든 사람의 기도는.. 대개의 경우 간절하고 진실합니다.
자신의 처지가 절박하니까요.
그런 간절한 기도자는.. 남에게 중보 기도를 요청합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18:20
두 세 사람이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주님의 임재가 나타납니다.
주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곳에는, 치료의 역사가 동반됩니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약(기름)을 쓰더라도, 기도를 하면서 약을 쓰라는 것입니다.
그 약을 통해서.. 주님이 역사하시도록..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요나서 4장에 보면, ‘하나님이 예비하셨다’는 말이 3번 나옵니다.
박넝쿨/벌레/동풍을 각각 예비하셨습니다.
박넝쿨이 자라는 것은.. 우연으로 볼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박넝쿨을 그냥 하나님이 직접 없애 버리시면 되는데,
벌레를 예비하셔서 (욘4:7) 그것을 갉아먹게 하셨습니다.
긴급한 상황을 제외하고, 하나님 기적은, 자연법칙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냥 요나를 직접 더워 지치게 만드시면 되는데,
동풍을 예비 하사(4:8) 요나를 더워 지치게 만드셨습니다.
자연법칙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은,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고
안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우연’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기름(약)을 바르면서 기도해서 병 고침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기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법칙 안에서 말입니다.
▲15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그 때, 그냥 기도하지 말고,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믿음의 기도’는.. 아래에서 차차 살펴보겠지만
‘무조건 나을 줄 믿습니다’ 하는 자기 확신의 기도가 아니라,
‘나을 줄 믿지만, 주님의 뜻대로 될 줄 믿습니다.’ 하는..
주님의 주권을 믿는 기도입니다.
병이 나아도.. 주님의 응답이고
병이 낫지 않고 계속 아파도..
그러나 어떤 경우든지, 그의 영혼은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주님이 어떤 경우에라도 선하게 인도하심을 믿는 .. 그런 믿음의 기도입니다.
그 병을 통해, 하나님이 하실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 그런 믿음의 기도입니다.
▲15절b,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병이 낫는 것과 죄 용서를 결부시키고 있는데요.
이어지는 구절과 연결해서 봅시다.
16절a,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이 말씀은 병에 걸리는 것과, 죄를 짓는 것이.. 동일한 일이라는 것일까요?
즉, 병에 걸리는 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고, 죄를 지으면 병에 걸린다는 말일까요?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요.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랬다고 해서, 다른 모든 경우를 그렇게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냥 병균에 의해 병에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둘 다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나 자신이 병에 걸릴 때는.. 죄를 지어서 그렇다 보고.. 스스로 회개할지라도
남이 병에 걸렸을 때.. 이 구절을 걸어서.. 남을 비판하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멕시코에 갔다 와서 신종 플루에 걸렸다면,
멕시코에 갔다 온 모든 사람은 신종 플루 환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경우를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키는 건 대단히 잘못된 일입니다.
어쨌거나, 자신이 병에 걸렸을 때는.. 대부분 저절로 회개 합니다.
▲16절b,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그리고 그런 ‘의인의 기도’의 예로 엘리야의 기도를 들고 있습니다.
성경에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주제(간절한 기도)와 관련해서
특별히 다윗, 에스더의 기도와 더불어, 엘리야의 기도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간절한 기도의 특징
▲1.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는 기도입니다.
심지어는 기도의 응답까지도 하나님께 다 맡기는 것입니다. (위 15절 설명 참조)
①다윗은 <기도의 결과를 다 하나님께 맡기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밧세바와 범죄한 후 낳은 아들이 병들자, 그를 살리기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결국 죽었습니다. 다윗도 실망했겠지요.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습니다.
이미 죽은 아들을 위해서는, 더 이상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를 데려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그것까지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합니다.
물론 아기가 아직 살아있는 동안, 그가 기도하는 동안,
그는 그 아이를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건 당연한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요.
(살려 주시려면 살려 주시고, 아니면 마시고.. 그런 기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살아나는 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그 아이를 데려가시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안 순간,
다윗은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고, 더 이상 매달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순순이 받아들이고, 그 기도는 그대로 접습니다.
②에스더는 <자기 목숨을 하나님께 맡기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금 자기가 기도하지만,
그 일 때문에 자기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래도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죽게 되면 할 수 없지요. 죽어야지요.
그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그렇다면 기꺼이 받아들여야지요.
그리고 기도합니다.
에스더가 기도하면서, 이 백성을 살려주시고 싶으면 살려주시고, 아니면 마시고,
그랬을까요? 그러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겠지요.
그러나 그 일을 위해 자기는 죽어도 좋다고 하는 겁니다.
죽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렇게 해야지요. 내가 죽겠습니다.
이렇게 때로 간절한 기도는.. 목숨을 걸면서 드려야 하는 기도입니다.
굳이 자기 목숨을 걸 필요가 없는 데도.. 자원해서 (성령의 감동으로) 그렇게 위험을 감수한 것입니다.
③엘리야는 <모든 불이익과 목숨을 하나님께 다 맡기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비가 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시니까,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비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시니까,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몰래 숨어서, 아무도 모르게 한 게 아니었습니다.
먼저 아합 왕에게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에게 그렇게 되리라고 말해줍니다.
도발이지요. 왕의 권위와 권력에 맞서는 겁니다.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고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대로 되었습니다.
아합이 보기에 엘리야가 얼마나 미웠겠어요?
아합은 오히려 엘리야를 보고 나쁘다고 합니다.
엘리야가 아합을 찾아가자, 아합은 엘리야를 보고
“그대가 바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냐고 묻습니다.
엘리야가 비를 오지 않게 했다는 겁니다.
자기가 잘못해서 비가 오지 않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도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기도했습니다.
오해와, 위협과, 도망자 신세가 되는 것과, 온갖 고난을 각오하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간절히 드리는 기도는 자기 생각, 자기 고집, 자기주장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입니다.
자기가 죽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나는 기도한다.
하나님의 뜻에 다 맡기고, 오직 기도해야 할 그 일을 위해,
내가 기도해주어야 할 그 사람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겁니다.
자기 입장 생각하고, 이해관계 따져가면서 기도하지 않고,
전적으로 그 기도제목만을 생각하면서, 온통 거기 집중해서 기도하는 겁니다.
모든 마음이, 모든 생각이 오직 주님께만 향해 있고,
주님만을 바라며 기도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주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시든,
그로 인해 내가 살든지 죽든지, 내가 잘 되든지 손해를 보게 되든지,
주님 뜻이라면 따르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게 간절하게 드리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은,
그냥 열심히 자기주장만 하는 것을.. ‘간절히 기도’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해달라고, 내가 원하는 대로만 이루어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런 것은, 간절한 기도가 아닙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온갖 불이익을 당하게 되고,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계속 기도하는 것이.. 간절한 기도입니다.
위에 에스더, 엘리야는.. 자기가 크게 손해보는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2. 본문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간절한 기도’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겁니다.
물론 자기 문제를 놓고서도 간절히 기도해야 하겠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남을 위해,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위 14절 설명 참조)
에스더는 자기 민족을 위해 기도했고,
엘리야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오늘 야고보서에서도,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자기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런 기도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간절히 하는 기도에 이르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물론 열심히 기도해야 하지만, 기도의 범위를 넓혀가야 합니다.
교회는 서로 기도하는 공동체입니다.
혼자, 자기만을 위해 기도하려면 교회가 필요 없지요.
그냥 집에서 혼자 기도하면 되지 않겠어요?
그러나 그런 기도로는, 간절히 드리는 기도가 될 수 없단 말입니다.
간절히 드리는 기도는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겁니다.
우리가 서로를 기억하고, 서로의 사연, 형편, 아픔과 눈물을 기억하고 기도해줄 때,
우리는 간절히 기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3. 평소에 늘 기도하지만, 특별히 간절히 기도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간절히 기도해야겠지요. 하지만,
오늘 성경에서는, 간절히 드리는 기도를 특별히 드려야 할 때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병이 들었을 때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위험이 닥쳤을 때, 앞길이 막혔을 때 등등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겁니다. 그럴 때,
다른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다른 어떤 길도 없을 때,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을 때, 그런 때 우리는 정말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나를 구원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정말로 간절히 그 제목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항상 기도해야 하지만, 언제나 할 수는 없는 기도가 있습니다.
다른 것 다 내려놓고, 다른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내 모든 것을 걸고 오로지 기도만 하는 것은.. 항상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어떤 때는 그렇게 기도해야 할 때가 있는 겁니다.
그 때에는 정말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다른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다른 어떤 도움도 기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며,
하나님만을 향해서 내 생명을 걸고 기도하는 겁니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 자녀를 위해서, 성도들을 위해서,
우리 교회를 위해서, 혹은 나라를 위해서, 늘 그렇게는 하지 못하더라도,
한번쯤은 내 모든 것을 건다는 각오로 기도해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그 기도 때문에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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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간절한 기도
다윗이 밧세바와 더불어 부정한 일을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밧세바가 임신을 했습니다.
그 아이가 태어난 후에,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치셔서 그 아이가 몹시 앓았습니다.
다윗이 그 아이를 살리려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리면서 금식을 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다윗이 왕궁에 돌아와서도 밤을 새웠으며,
잠을 자도 맨땅에 누워서 잤습니다.
그는 땅바닥에서 일어나려고 하지도 않고, 음식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픈 지 7일 만에 아기가 죽었습니다.
신하들은 아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다윗이 알면
혹시 왕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쉬쉬하고 있었는데,
다윗이 이 사실을 알고는 땅바닥에서 일어나서,
목욕을 하고, 몸에 기름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 성전으로 들어가서 경배합니다.
왕궁으로 돌아와서는 음식을 차려오게 해서 먹었습니다.
사람들이 의아해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니까 다윗이 하는 말이,
“아이가 살아있을 때에 내가 금식하면서 운 것은,
혹시 주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그 아이를 살려 주실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오.
그러나 이제는 그 아이가 죽었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계속 금식하겠소?
내가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가 있겠소?
나는 그에게로 갈 수 있지만, 그는 나에게로 올 수가 없소.”
다윗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고 난 후의 모습은 우리를 당황하게 합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기도하지 않은 사람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왜 그렇게 기록하고 있는 걸까요?
▲에스더의 간절한 기도
에스더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에스더는 이스라엘 사람이었지만, 페르샤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페르샤의 실력자 하만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미워해서,
계략을 꾸며서 페르샤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전멸시키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에스더는, 이 일을 자기에게 알려 준 모르드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어서 수산(페르샤의 수도)에 있는 유다 사람들을 한 곳에 모으시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게 하십시오. 사흘 동안은 밤낮 먹지도 마시지도 말게 하십시오.
나와 내 시녀들도 그렇게 금식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는,
법을 어기고서라도, 내가 임금님께 나아가겠습니다. 그러다가 죽으면, 죽으렵니다.”
당시 제국의 왕들은 항상 암살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중국의 진시황도 주변에 하도 자객이 들끓으니까
주변 100보 안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고 하는데,
페르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왕의 허락 없이는 왕비라고 해도 왕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만약 왕의 허락 없이 접근하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다가오는 것을 보고도, 왕이 제지하지 않고 가까이 오도록 허락한다면
죽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걸 에스더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죽게 되면 죽기로 하고,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에스더의 어깨에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생명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생명 역시 걸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을까요?
결국 그 기도가 이루어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을 고비에서 벗어났고,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민 하만이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에스더가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백성들에게는 자기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서로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한 거지요.
오늘 야고보서 말씀,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
오늘 야고보서에서 간절히 드리는 기도의 예로 들고 있는 엘리야는 어떻습니까?
엘리야가 활동하던 시대는 이스라엘의 아합왕이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아합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 가운데 하나였지요.
정치적으로도 그랬지만, 바알과 아세라 등 온갖 우상들의 신전을 세우고 섬겨서,
성경의 기록을 보면, “그 이전의 이스라엘 왕들보다 더 심하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였다”고 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아합에게
“앞으로 몇 해 동안, 내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비는커녕
이슬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비가 멈춘 지 삼년 반이 지난 후에 다시 아합을 만나러 가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제사장들과 한판 대결을 벌이고는,
그들의 무력함, 그들이 섬기는 신의 무능함을 드러내고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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