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적 침체와 그 극복 간증 인터넷강의 녹취, 정리
제(어느 40대 설교자)가 직접 겪은 영적침체와
그것 때문에 유진 피터슨 목사님을 찾아가서 나눈 상담 일화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내가 겪었던 영적침체
저는 원래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공부하려고 계획했었는데,
유진 피터슨과 제임스 휴스턴(?) 목사님 때문에 캐나다 리전트 신학교로 진학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책은 참 좋았다. 그 분의 강의도 좋았다.
그런데 제가 그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한인교회) 목회 현장에 들어가서 느꼈던 점은,
‘책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 난관이었다.
그러면서 유진 피터슨은, 목회에 대해, 내 생각에는
‘너무 이상주의적idealistic인 방향 제시만 하고 있다’는 나름대로 평가가 생겼다.
실제 현장에서는, 그 이상주의적인 교훈이 제대로 적용되기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한 지역교회에서 섬겼는데
그 교회에 분쟁이 있었다. 그래서 사역자인 저도 어려움을 심하게 겪었다.
어떤 분은 제게 ‘당신은 사탄의 아들이다’ 이런 욕도 했다.
그런데도 다수의 교인들은, ‘제가 떠나지 말고 섬겨달라’고 부탁했다.
다행인 것은, 하나님께서 신비스럽게 제 마음을 보호해 주셔서
제가 들은 심한 말들이, 제게 상처로 남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런 비난들이, 제 에너지를 심하게 소진시킨 것은 분명했다.
꼭 ‘교회 내 분쟁’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영적침체가 찾아왔는데, 그 현상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1. 사역의 기쁨이 사라져 버렸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첫 번째 목회지에서 목회로 섬기는데
몇 년 안 되서 내가 목회자로서 삶이 행복하지 않더라는 고민이 생겼다.
시애틀의 교회에서 하루에 16시간씩 열심히 사역했다.
물론 처음에는 기쁨으로 그렇게 장시간 중노동을 했는데,
내가 영적 침체 spiritual depression에 빠지니까,
사역에 있어서 기쁨이 싹 사라져버리고, 교회 일이 점점 고역으로 다가왔다.
▲2. 내가 ‘사람을 가려서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목회에 동역하는 일꾼들을 만나는 일은.. 즉각 만났는데,
어떤 면에서 목회적 케어care가 필요한 사람들, 즉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
그들의 면담 요청이 들어오면, 내가 2~3주 후로 자꾸 약속을 뒤로 미루었다.
이렇게 약속을 훨씬 뒤로 미루는 것, 즉 내가 바쁘다는 식의 핑계를 대는 것은,
사실은 ‘나는 당신을 별로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뜻의 간접적 표현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나는 그 길을 계속 가고 있었다.
▲3. 제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영적 침체 현상은
제 설교가 더 이상 은혜스럽지 않다는.. 내 스스로의 느낌이었다.
교인들은 잘 직설적으로 내색하지 않는데,
또 그런데 개념이 없는 분들은 무조건 ‘은혜받았다’고 격려해 주시는데,
내 스스로 드는 느낌은
제가 일주일에 2~4차례 설교를 했는데,
제 설교가 성도님들 가슴에 꽂히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허한 울림이든지, 겉도는 설교였다.
제가 설교준비를 장시간 오래 하는 스타일인데..
설교준비에 시간을 작게 쓰는 것도 아니고,
책을 안 읽는 것도 아니고,
기도를 안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설교가 더 이상 impact(충격)이 없다고 느끼기 시작하니까
강대상에 서면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한 느낌’이 매주일 들었었다. 그 당시에.
그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4. 내가 더 이상 영적으로 성장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저를 만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제가 명랑하고 밝은 것 같지만,
당시 영적침체를 겪고 있었던 실제 제 내면은
매우 우울하고, 내가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침체를 극복해야 하는지.. 도무지 뾰족한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밤 1~2시경, 제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저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감당할 수 없어서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주차하고는, 거기서 혼자 꺼억꺼억 울기 시작했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우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 동안 영적침체로 계속 제 속에서 쌓였던 어떤 어려움들이
그 시간에 한계점을 넘기고 쏟아져 나온 것 같았다.
그 다음날 아침, ‘이래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신학교에 전화해서, 유진 피터슨 목사님과 면담 약속을 잡았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한지 이미 몇 해가 지났지만,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제게 특별히 도움 되는 상담을 해 주실 것 같았다.
그래서 약속된 날, 저는 시애틀에서 밴쿠버의 리전트 신학교로 올라갔다.
그리고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제 영적침체, 무기력 증에 대해 설명을 드렸다.
▲You are a bad pastor!
제 말을 들이시고, 대뜸 목사님이 제게 하시는 말씀이 ‘너는 나쁜 목사야!’였다.
물론 웃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었다.
그리고는 자기가 쓴 책들을 다시 읽어보라고 권면했다.
그때 저는, 그 자리에서 막 분노하기 시작했다.
“목사님의 책은, 이론text은 있는데, 실제context가 없습니다!
목사님은 목회현장을 떠나신지 이미 너무 오래 되었기 때문에
학문의 전당에서 이상적인 것만 가르치고 계십니다.
지금 현장 목회자들은, 어떤 고충을 겪고 있는지.. 목사님은 전혀 모르세요.
예를 들면, 성도 한 명이 혼전 임신을 했는데,
본인은 아기를 낳아서 기르려고 하고, 그 부모는 낙태를 강요합니다.
그 때 목사님의 책에서, 저는 별로 뾰족한 답변을 얻지 못 합니다”
제가 막 울음 섞인 어조로 심하게 따졌다.
◑그 때 유진 피터슨은 목회자의 영성 유지를 위해 3가지를 짚어 주셨다.
▲1. 탈진에 대해서
‘너는 지금 리듬이 깨져 있다.’ 라고 제게 말씀하셨는데
아마 ‘탈진 Burn-out 되어있다’는 말씀을 완곡하게 표현하신 것 같다.
*그리고 왜 사역자가 탈진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주님과 가까이 교제에서 오는 행복, 만족감, 자존감이 아니라
이 세상의 성공, 성취, 업적에서 오는 행복, 만족감, 자존감을 추구할 때,
사람은 대부분 예외 없이 과로overwork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의식/또는 무의식 속에는 이런 생각이 견고한 진처럼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사회에 매우 필요한/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바빠야 나는 중요한 사람이야’
이런 쓸데없는, 비복음적인 생각들이,
그런 잘못된 생각들을 강요하는 세상 풍조에 휩쓸려서,
사역자들도.. 자기도 모르게 휘둘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복음을 깨달으면
자기 사역의 크고/작은 규모에 관계없이
자기 지위의 높고/낮음에 관계없이
자기 연봉의 많고/작음에 관계없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기신 사명을 수행한다.
누가 나보다 사역이 크고, 지위가 높고, 연봉이 많으면
(약 5초간 기분이 잠시 안 좋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맡기신 ‘그의 사명’이고, 나는 ‘내 고유한 사명’이 따로 있다.
내가 그의 사명을 대신 못 하듯, 그도 나의 사명을 대신 못 한다.
그리고 내가 못하는 (크고 위대한) 일을, 하나님나라를 위해, 내 대신 한다고 생각하니
그의 많은 수고가 고맙고 감사하기까지 하다.
정리하면, 절대로 남과 비교해서 자기 스스로 쪼그라들지 않는다.
진짜 복음으로 누리며 살면...
*탈진의 치료법은?
①시편기도를 하라
기도를 하되, 특별히 시편을 음미하고, 묵상하면서 기도하라고 하셨다.
교회, 목회, 성도들 이름 붙들고 기도하는 것을 잠시 내려놓고
시편 구절을 계속 암송하면서, 1년 동안 집중적으로 기도하라고 권면하셨다.
기도시간에, 다른 기도 하지 말고.. 이 ‘시편기도’를 주로 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편기도’를 통해서, 주님과의 멀어진 간격을 좁히라는 뜻이다.
주님과 친밀한 관계 intimacy를 다시 회복하라는 권고였다.
사역자들이 기도를 정기적으로 하더라도,
교회/목회/성도들 문제를 위해서 주로 기도하다 보니
정작 ‘자기와 주님과의 교제’는 희박해지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정말 성도를 사랑하고, 위하는 사역자는,
자기가 먼저 ‘좋은 크리스천’이 되는 것이다.
자기가 먼저 주님과 깊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자기가 주님과 가까우면,
그 혜택은 고스란히.. 성도들에게 돌아간다.
사역자 자신부터가 밝아지고, 기쁨과 은혜가 충만해지기 때문이다.
②‘설교하려고 성경을 보지 말고, 너 자신을 위해서 성경을 보라.
너는 설교자이기 이전에, Christ-follower이다.’ (‘라고 하셨다’ 생략합니다.)
나는 성경을 보면서, 신학생 때부터 설교를 했으니까
‘설교 아웃 라인’을 잡는데 습관적으로 매우 익숙해 있었다.
그러니까 성경만 펴면, 저절로 설교 대지를 생각하며 읽게 되는 습관이 있었다.
여기서도, 위 ‘시편기도’와 같은 맥락이다.
성경을 읽을 때, ‘나와 주님과의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성도들과 주님과의 관계’를 생각하기 이전에,
‘목회, 설교’를 생각하기 이전에
‘나와 주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그럼 설교준비는 어떻게 하나?
아래 ▲2. 에서 다시 설명드릴 것이다.
③안식하라.
그냥 쉬는 것 resting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
반드시 재창조 recreation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월요일 날 쉴 때, 그냥 잠자는 것보다는,
화초를 가꾼다든지, 텃밭을 일군다든지.. 어떤 ‘취미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식의 질을 높이라는 것이다.
목회를 완전히, 깡그리 잊어버리고, 내 정신이 그날 하루 온전히 쉴 수 있는
(정신이 목회를 떠나서 완전히 딴 생각 할 수 있는, 그게 정신이 쉬는 것이니까)
그런 휴식의 질을 높이라는 것이다. 그래야 탈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 설교는 story-telling식으로 하라.
예수님이 master story teller였는데..
-설교(웅변)를 하려고 하지 말고,
-성경(교리, 지식)을 가르치려고 들지 말고,
내가 예수의 제자가 되려고 애쓰며 살았던 내 삶의 주변 이야기를..
쉽게 말하면 ‘내 삶의 적용’이야기를 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난 주간에 내가 만난 어떤 사람을 통해서, 내가 깨달은 것,
내가 어제 저녁에 아내와 나눈 대화를 통해서 내가 느낀 점,
내가 삶 속에서 깨닫고, 느끼고, 배우는 어떤 것들에 대해서...
(그러나 자기 자랑, 자기 공로 선전은 피해야 함. 주로 자기 갈등, 내면 이야기 하는 것임)
그러니까 설교 시간에, 남의 이야기, 성경인물 이야기(제 삼자의 이야기) 하지 말고,
자기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다.
말씀을 가지고, 참된 제자로 살려고 애쓰던 과정에서 생긴 이야기들,
그 진솔한 이야기들을 하라는 것이다.
※이게 우리가 잘 알던 ‘간증 설교’와 비슷한데, 그것과 다른 점은
간증 설교는.. 같은 내용 한 두 가지를 몇 년 간이나 계속 써 먹는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 수 십 번을 우려서 먹는다.
그러니까 생동감이 사라지고, 나중에 ‘내용 부풀리기’도 자기도 모르게 할 수 있다.
‘스토리 텔링’이 개념을 잡기가 쉽지 않은데, (편집자가 이해하는 바로는)
어쨌든 다윗의 이야기, 예수님의 이야기, 헬렌 켈러 이야기를 인용하더라도
‘남의 얘기’로 하지 말고, ‘자기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다.
‘그런 분들은 이러이러 했는데.., 내가 해보니까 이러이러 하더라’
‘내 삶의 진솔한 이야기’가 들어가야 된다는 것이다.
안 그러면, 설교가, 공허한 남의 이야기,
그것도 수 백~수 천 년 전의 (성도들과 전혀 관계없는) 옛날이야기로 끝나버린다.
▲3. 공동체를 추구하라.. 제게 멘토가 없다는 이야기
①위로는 영적 아버지(가톨릭으로 말하면 代父)가 필요하고,
그래서 내가 잘 못 보고, 내가 잘 못 행하는 점들을
지적해 줄 수 있는 그런 권위자/멘토가 필요하고
②옆으로는 친구 멘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까놓고 말하면
‘요즘 내가 무슨 죄의 유혹을 받고 있어’ 라는 얘기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깊은 신앙적 친구관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공동체의 필요성’이다.
사역자가 맨날 성도들만 가르치다 보면,
자기 자신의 내면적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눌
그 어떤 공동체를 가지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앞으로 목회를 1~2년 할 것이 아니라,
일평생 해야 할 사람들은, 기도 가운데,
이런 ‘공동체 관계’를 꼭 형성하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만 승리할 것이다. (후략)
※덧붙여 말씀드리면, 제(어느 목회자)가 유진 피터슨 목사님과 상담을 가졌다고,
나의 영적침체가 그 날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거기서 들은 교훈을, 제가 직접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데는 2~3년이나 더 걸렸다.
그런 가운데서 저는, 몇 년이 지나서, 그 침체에서 비로소 탈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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