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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지도자의 4가지 이미지 2232

LNCK 2009. 12. 16. 17:46

◈영적 지도자의 4가지 이미지                  고전4:1~21                 인터넷설교 스크랩, 정리



누가 참된 ‘영적 지도자’일까요?

바울은 고전4장에서 영적 지도자에 대한 4가지 이미지를 소개합니다.

-노예의 이미지

-청지기의 이미지

-사형수, 더 정확하게 말하면 검투사의 이미지

-아버지의 이미지입니다.



◑1. 무조건 충성한다는 뜻으로 ‘노예’의 이미지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4:1~2


여기에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일꾼’(휘페레테스)은 본래 로마시대에 군함의

배 밑창에는 노를 젓는 노예underrower들을 가리킵니다.       주1)

 

과거에 <벤허> 영화를 보신 분은, 벤허가 일시적으로 노예가 되어서

배 밑창에 들어가서 열심히 노를 젓고 있던 모습을 떠올리실 것입니다.


거기 노 젓는 감독이 있습니다. 그 북소리에 맞춰서

오른쪽으로 노를 젓고,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서 젓는 노예들,

그 노예들 가운데 누가 더 높으냐, 낮으냐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까/없습니까?

(지금 고린도교회는 바울파/게바파/예수파 이렇게 나눠져 있었고, 서로 아마 다투었을 것입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오직 '일꾼/노예'들에게 있어서, 그 역할이라는 것은 명령에 따르는 것뿐이에요.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4:2


결국 영적 지도자들은 누구냐 하면,

‘주님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바울은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일꾼들이다.. 이런 표현을 썼어요.



◑2. 말씀을 나눠준다는 뜻으로 ‘청지기’의 이미지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4:1~2


또 하나의 표현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맡은 자>라는 표현입니다.

‘맡은 자들’은 히랍어로 오이코노모스 인데

이것 집을 관리하는 사람/청지기/집사인데,

영어로는 하우스 매니저, 혹은 steward라는 말로 번역할 수가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도 스튜어디스가 있지요.

본래 이 히랍어 단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뭐냐면

<부지런히 집안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것이 아니에요. 그건 다 주인의 양식이지만

주인이 맡겨준, 주인이 분배하는 배급하는 양식을 잘 받아 가지고

제 때에 양식을 부지런히 공급하는 사람.., 그게 <맡은 자> 라는 것입니다,


본문에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라고 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결국 영적지도자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성도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부지런히 공급하는 사람입니다.



◑판단을 유보하라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4:3~4


지금 고린도교회에서는 바울파/아볼로파 등의 분열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도바울은, 지도자들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라’고 권고합니다.


가장 중요한 판단자는 자기 자신도 아니다, 주변 사람들도 아니다.

그들에게는 가장 유일한 판단자, 그리고 절대적인 판단자가 계시다.

그리고 그 분이 그 분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판단할 것이다... 라고 권고합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고전4:5


중요한 것은, 일꾼들이 그 분을 바라보고

나를 가장 완벽하게 판단해 주실 그 분, 그 분을 바라보고

묵묵히 충성을 다 하는 것이.. 일꾼들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두 가지 잘못된 판단, 즉

-자기가 자기를 판단하려는 경향,

-또 이웃들에 의해서 매우 객관적이지 못한, 혹은 정확하지 못한 판단을 받을 때

이것을 어떻데 극복해 나갈 수가 있느냐?  


나를 정말 가장 완벽하게 판단해 주실 분은 누구라고 그랬어요?

주님이시다. 다만 나를 판단하실 분은 주님이시다... 라고 말합니다.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4:4


우리는 지도자들을 바라보면서 ‘저가 지도자 자격 있나?’

또는 자꾸만 자기만 바라보면서 ‘내가 자격 있나? 내가 목자 자격 있나?’

너무 그런데 에너지 소진하지 마시고,

‘나를/그를 불러주신 분이 주님이시니까.. 주님이 하라는 대로만 하겠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노예 된 사람들의 사역의 태도가 아니겠습니까?


주님이 나를 불러 주셨고, 주님이 나에게 명령하시니까

‘노 젖기 시작!’ 그러면 젖는 거예요, 그냥 ‘오른쪽, 왼쪽’하시면 그대로 하는 거예요.

그 분의 명령을 따라서 우리는 순종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절하게 하나님의 비밀의 말씀을 공급해서 섬기는 거예요.

묵묵히 그 일을 최선을 다해서 충성스럽게 감당한다면

주님 오시는 그 날, 주님이 나에게 상급을 주실 것인 줄 믿습니다.



◑3. 고난을 겪는 자라는 의미로 ‘구경거리, 검투사’


내가 생각컨데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고전4:9


‘미말에 두셨다’는 것은, 행진의 끝 end of procession 입니다.

로마 사람들이 세계를 정복하고, 개선의 퍼레이드를 벌일 때,

그 행렬 맨 뒤에 포로 된 사람들이 묶여서 끌려다녀요.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포로 중에서 쓸 만한 건강한 포로들을 데려다가 ‘검투사’로 많이 써먹었어요,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구경거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야수, 야생 동물들, 사자 같은 동물들을 튀어나오게 하고

그 사자와 더불어 사람이 싸우게 만들고, 또 서로 싸우게 만듭니다.


그때 원형경기장에서 그 주변에 둘러싸인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게 ‘구경거리 spectacle’입니다.

마치 영적 지도자들이, 그런 모습이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바울은, 복음 전하다 붙들려서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뭐 감옥에 안 가도, 영적 지도자가 되면 감시하는 자가 많아요.

사생활이 없어지고, 자기의 모든 삶이 드러나고 노출되고

또 구경거리가 되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피할 수 없는 어떤 고난,

복음 때문에 받아야만 하는 어떤 고난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영적 지도자들이

반드시 이런 고난을 꼭 받아야 한다고 생각지 않아요.

그러나 피할 수 없이 받아야 하는 어떤 고난에 대한 각오와 결단은

모든 영적 지도자들에게 반드시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수의 제자라면 , 우리 주님보다 나을 것이 없잖아요.

우리 주님도 고난의 길을 가셨는데, 그러나 고난으로 끝난 것은 아니에요,

고난 건너편에 영광이 그 분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러나 영광에 앞서서 그 분은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었습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영광은 원하지만 고난은 원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면

복음을 위해서 수호하기를 원하는 모든 영적 지도자들은

어떤 고난을 반드시 각오해야 됩니다.


▲대조적으로 ‘왕 노릇’ 하는 고린도 교인들

그런데 바울이 그런데 이런 고난의 삶을 영적지도자로서 살고 있었는데,

그 당시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삶은 어떠했느냐.. 바울이 그것을 대조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이미 부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없이도 이미 여러분은 왕노릇을 하였습니다.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왕노릇 할 수 있도록 차라리 여러분이 진짜 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4:8/쉬운성경


‘너희들은 왕 노릇 하려고 한다’ .. 모여서 밤낮 뭐 하냐면

교인들이 영적 지도자들을 판단이나 하고 앉아 있단 말이죠.

바울이 나으냐, 베드로가 나으냐, 그리고 나는 바울 따라가겠다.. 등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다.  4:10


▲영적지도자들이, 피할 수 없이 각오해야 되는 어떤 고난이 있어요.

이게 그냥 뭐 구경거리 정도가 아니라 바울이 어떻게 느꼈냐면,

더 아주 극단적인 언어를 여기 13절에서 쓰고 있는데요.. ↙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4:13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했단 말이예요?

비방을 당하면서도.. 권면 하고,  :13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면서)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12                                    *후욕 :  꾸짖을 후, 욕될 욕 

핍박을 당한즉 견디고 참으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고백입니다.

저는 어떤 의미에서 지금도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다보면

이런 고난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바울도 이런 고백을 했는데,

오늘 우리도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고백이 우리의 자랑이 되면 좋겠습니다.


‘나는 구경거리처럼 취급을 당한다,

죽이기로 작정된 사람처럼, 사형수처럼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축복하겠다, 나는 참겠다, 견디겠다 복음을 위해서..,’

이것이 바로,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종들이고

영적인 사역자들의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4. 자녀를 사랑한다/책망한다는 의미로 ‘낳은 아버지’의 이미지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서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고전4:14~15


내가 너희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너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내가 일종의 ‘영적인 아비’와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냐?

하지만 아비로서 바울이 그들에게 존경받고 싶어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책망 할 수가 있다’는 것이죠.


고린도 교인들은 많은 문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문제를 넘어서서 성숙하기 위해서는 때로 책망도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너희의 아비라면, 내 책망을 받아 달라’ 이 말입니다.


지금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것 이예요. 마지막 절 한번 보세요.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4:21


4:20절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

왜 이런 말을 합니까?

고린도 교인들은 말만 그냥 많이 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능력에 있다.., 여기서 능력이란 의미는 ‘삶의 능력’이라는 의미예요.


너희들의 삶이 중요한 것이다.

‘정말 하나님의 능력이 너희들의 삶을 바꾼 흔적을 가지고 인생을 사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지.. 말만 많이 하고, 판단만 많이 하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이따금씩 진정한 성숙을 나타내 보이지 못하고, 판단만 하고, 비판만 하고,

이런 분위기를 유도하는 교인들이 종종 있어요, 종종 있어요.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울은 그것이 교만함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 졌으나,

(우리가 고린도서를 읽어보면 바울이 아주 여러번, 이 교만에 대한 강조를 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을 알아볼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의) 능력을 알아보겠다. 4:18~19


이렇게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책망하되,

그들을 낳은 아버지로서.. 안타까움과 사랑을 가지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한 가정에서도,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아버지하고 좋은 관계,

특별히 성장과정에 있어서 부모의 충고와 교훈을 제대로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바울이 설교 더 잘 해, 베드로가 설교 더 잘 해’

앉아서 영적 지도자들 판단하지 말고,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위대한 설교를 들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설교를 붙들고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단 말이예요,


▲헨리 나우웬이 인도의 마더 테레사를 방문했을 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그렇게 성자 같은, 예수님 같은 삶을 살 수 있었던 비밀은 뭡니까?”


그 때 나우웬이 들었던 대답은 아주 평범한 대답이었어요,

아주 평범한 대답, 그러나 오랫동안 그것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해요.

테레사가 이런 말을 하더래요


“무슨 비결이 있겠습니까? 그냥 주님 말씀 따르려고 노력을 했죠,

그리고 주님의 종들의 말씀

주님의 종들이 준 말씀을 따르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습니다.”


마더 테레사도, 주의 종들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겸손한 태도입니다. 

 

 

주1)

'일꾼' 휘페레테스는 '배 하층에서 노 젓는 노예' 말고도  

다른 의미로, 손으로 일하는 종(마26:58), 관리의 형 집행인(마5:25) 등의 의미가 있다.

행5:22, 26절에서는 '성전 경비원'으로도 이 단어가 쓰였다.

 

행26:16절,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이 자기를 사환(휘페레테스)과 증인(마르투스)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아마 이 사건이 있은 직후부터, 바울은 자기를  사환 '휘페레테스'로 여긴 것 같다.

 

'노 젓는 노예' 든지, '형 집행인'이든지 , '성전 경비원', '사환'.. 이들의 공통점은

'손으로 섬기는 사람'이라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는, 같은 4:1절의 '맡은 자/청지기'와 비슷한 말로,

한 문장 안에서 두 단어(일꾼, 맡은 자)가 서로 동의어처럼 쓰인 것으로 보인다.                                    ▣ 리더쉽, 목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