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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상태에서 봐야 정확하다 2260

LNCK 2010. 1. 13. 14:46

◈배부른 상태에서 봐야 정확하게 본다        눅16:13         인터넷설교 스크랩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 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눅16:13



▲배고플 때와 배부를 때.. 밥이 다르게 보입니다.

제가 배가 고프면, 집에 가서 밥 달라고 해요.

그런데 밥이 늦어지면, 못 참아 가지고, 냉장고를 열고 아무거나 꺼내서 막 먹어요.


다 먹고 날 즈음에, 아내가 금방 해 놓은 밥을 퍼서 주는데.. 먹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금방 해 논 밥을

공복으로 바라 볼 때와

배를 가득 채운 후에 바라볼 때와는... 같은 밥인데,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내가 배부를 때 보는 빵과, 배고플 때 보는 빵... 완전히 다르죠.

배부를 때 보는 빵, 집에 쌓여 있어도.. 나중에 그냥 버립니다.

그런데 내가 배고플 때는.. 허접한 빵이라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웁니다.

 

▲마찬가지로, 돈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집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말씀을/은혜를/임재를)으로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나서 돈을 쳐다보면,

‘나를 위해서 돈이 어느 정도 필요한가’  ... 그 액수가 명확하게 보여요.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돈을 보면.. 너무너무 맛있어요.

그런데 아무리 아무리 돈을 먹어도.. 배가 안 차요.

마음에 전혀 만족이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일평생 ‘조금만 더 가지면 만족하겠지..’ 하며 삽니다.


돈을 ‘액면가’original value 그대로 정확하게 바라보려면

내가 먼저 하나님을 잔뜩 먹고 나서, 배부른 상태에서 돈을 봐야,

나를 위해서 돈이 어느 정도 필요한가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가족도 마찬가집니다.

아내를 바라보는 눈도, 남편을 바라보는 눈도 같은 원리입니다.

내가 뭔가 지금 ‘굶주려 있는 상태/공허한 상태’에서 아내를 바라보면,

아내가 나의 공허함을 채워줘야 하는 대상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만족이 안 됩니다.


내가 배부른 상태에서 보는 아내가.. 진짜 아내의 모습/가치입니다.

그 때라야 아내의 모습/가치를, 제대로 발견할 수 있어요.


자식도 마찬가지에요.

내가 사회에서 뭔가 잘 안 풀려서 기가 죽어 있습니다.

그러면 자식을 바라볼 때,

‘너라도 공부를 잘 해서, 이 애비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면 안 되겠니?’

괜히 자녀에게 부담만 잔뜩 주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배부른 상태에서 보는 자녀가.. 진짜 자녀의 모습/가치입니다.

그 때라야 자녀의 가치를, 제대로 발견할 수 있어요.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기 고유의 인생/사명’이 똑똑히 보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부족함, 허전함을 채워주는.. 어떤 소모품, 희생양이 아닌 거죠.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은

하나님으로 배부르면, 돈이 시시하게 보이고,

돈으로 배부르면, 하나님이 시시하게 보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돈으로 동시에 내 영혼을 배부르게/만족하게 못 한다는 뜻입니다.


로마 시대 때 하도 먹을 것이 많으니까,

로마 귀족들이 배는 한계가 있고 해서

먹고 나서 토하고.. 또 맛있는 것 먹고 또 토하고... 그랬다죠?

그래서 하인들이 항상 잔치자리에 준비하고 있다가,

그 구토물들을 받아 내거나, 잔치 도중에도 계속 청소했다는 역사가 내려져 옵니다.


사람의 배는 하나입니다.

거기다가 여러 개를 같이 못 담습니다.

하나님으로 채우면.. 돈을 토해내야 하는 거고,

돈으로 채우면.. 하나님을 토해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토해 내고, 그 빈자리에 돈을 또 더 채워 넣어야 하니까요.


▲하나님은 크십니다. 위대하십니다.

내 영혼에 하나님이 들어가셔야 채워질 그 자리를

다른 무엇으로 채워도.. 사이즈가 맞지를 않아요.

하나님이 너무 크시기 때문입니다.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하고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세계’ 중에 어느 것이 더 크겠어요?

내 영혼에 하나님을 빼내고 나면, 그 어떤 것으로도 그 빈자리를 절대 채울 수 없습니다.

너무 빈자리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 그 영혼의 빈자리를 가득 채우고 나면, 

예수님도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먹고 배부른 다음에는,

일용할 양식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넉넉잡아 한 달 쓸 돈 이상은 안 가진다고 합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하나님으로 잔뜩 채우신 분 아닙니까.

그러니까 세상으로 말하면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었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배부른 상태에서, 늘 만족하고 사신 것이지요.

 

배부른 자의 특징은.. 나누는 삶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가 유무상통했지 않습니까. 서로 지갑을 열어서 나눠썼어요,

그런데 이게 가능하겠어요?


성령이 충만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먹고 배부른 것 아닙니까!

돈에 대한 윤리관이 바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먹고 배부르고 나니까,

돈을 바라볼 때, 유무상통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없는 사람에게 내 돈 가져가라.. 이겁니다.


▲어떤 부목사 사모가, 부목사 사례비가 많지 않은데, 틈틈이 적금 들어 1천만 원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그 부부가 ‘우리도 이제 부자구나’ 하며 통장을 열어보며 서로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골 전도사님이 홍수를 만나서, 교회 뒤에 산사태가 나서 지붕이 무너졌어요.

어떻게 어떻게 해서, 그 얘기가 부목사 사모 귀에까지 들어오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 사모님이, 적금들은 것을 깨서, 시골교회에 헌금으로 다 보내드렸다고 하네요.


돈이 있어서 나누는 게 아니에요.

자기 마음이 하나님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돈을 아낌없이 나누는 겁니다.


▲마치는 말

하나님으로 내 배를 채우고 난 뒤에 보면.. 세상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는데,

하나님으로 내 배를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끊임없는 갈증과, 부족함 투성이 입니다.


미국에 아주 큰 교회 유명한 목사님이,

‘사람들의 need를 알면 부흥한다’고 (답답한) 얘기를 하십니다.


물론 그 선한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 사람들의 need는 어떤 need 입니까? 죄인들의 관심사 아닙니까!

거기에 맞춰주라고요? 제가 제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어요. 속 터지는 일 아닙니까.

그 필요가 끝이 없는 필요입니다.

예레미야 표현으로 ‘터진 웅덩이’(밑 빠진 독)입니다.   렘2:13


교회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인간적 필요를 채우기 이전에,

하나님으로/은혜로/말씀으로/성령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고요!


사업 때문에 바쁜 사람,

자식 기르느라고 바쁜 사람들,

자기 일로 정신이 다 빠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내 속에 채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먼저 채워서 배부르고 보면.. 돈의 실체를 정확히 알고,

나를 위해 필요한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가 분명해 질 텐데

하나님으로 채우지 못해, 내 영혼이 너무 허전하고 배고픈 가운데

돈으로 그 허전함을 끝없이 채우려 한 적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하나님으로 내 영혼을 가득 채우게 하시고,

그러기 위해 매일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기도하는 시간, 말씀 듣는 시간을 갖도록 마음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 물질과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