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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 같은 성령 2288

LNCK 2010. 1. 30. 22:11

◈생수 같은 성령                             요7:37~39                            2010.01.10.설교스크랩



◑본문의 배경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위 성경말씀에 나오는 명절은 ‘장막절’을 말합니다.

일주일 동안 계속하기 때문에

명절 끝날 즉 마지막 날에

예수님이 말씀을 하셨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장막절 행사는 7일 동안 계속하는데 ‘여호와의 절기’라고 하며,

12살 이상 된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예루살렘에 모여야 합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예루살렘에서 살아야 하는데

누구도 호텔이나 여관에서 편안한 잠을 자면 안 됩니다.


▲오늘날의 유대인 장막절 행사를 살펴보면

장막절은 각자 자기가 잠잘 천막을 가지고 와서

예루살렘 주변 아무 곳에 끝없이 천막을 치고, 일주일 동안 불편하게 살아야 합니다.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광야에서 천막을 치고 힘들게 살았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절기입니다.


이때는 음식도 영양가가 있는 것을 먹지 않습니다.

필요한 음식만 간단히 먹으며 일주일을 사는데

이 절기에는 자녀들에게 아주 철저히

조상들이 힘들게 살았던 일들을 가르치고 체험시킵니다.


그러면서 계속 시편을 읽는데 시편 113편에서 118편을 노래로 부릅니다.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이렇게 시작을 해서 시편 117편

“너희 모든 나라들아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리고 118편 마지막

“주는 광대하시고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의 생명의 근원이시니

그에게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는 말로 노래를 끝냅니다.


▲장막절 마지막 날 특별 행사로 ‘물 축제’가 열립니다.

그런데 장막절 마지막 날은 행사가 아주 큽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실로암 연못까지 5km 되는 거리를

두 줄로 사람들이 끝없이 서서 실로암 연못의 물을 그릇에 떠 담아서

예루살렘 성전까지 모두 가지고 오는 겁니다.


이때 부르는 노래가 이사야 12:3절에 있는 말씀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기르리로다.”입니다.

이 성경말씀을 노래로 부르면서 누구든지 다 두 줄로 서서 떠옵니다.


이때 제사장들은 맨 앞에서 금 항아리에 물을 담아서,

성전 안에 갖고 와서 제단 안에 전부 붓습니다.

조상들이 과거에 광야에서 물 때문에 아주 많은 고생을 했다는 것을

기념하는 종교예식입니다.


지금은 자신들이 물을 풍부히 마시면서 살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 표현을 물로 하는 ‘물 축제’인 것입니다.  註1)

 

▲물 축제 때, 예수님은 ‘생명수’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곳은 물을 붓기 위해 기다리는 장소에

사람들이 가득 모였을 때,

모두 물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물을 비유해 노방전도를 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러면 별안간 큰 소리로 예수님이 설교를 하시니 사람들이 다 쳐다볼 것 아닙니까?

“저 사람이 무슨 물을 가지고 있기에 나에게 와서 마시라고 하는 건가?”


그때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은 점점 더 의문을 갖습니다.

“배에서 무슨 강이 흘러나와?”


예수님 말씀에 대한 해석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수란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39절에 나와 있습니다.


성령의 상징적 표현은, 성경에 여러 가지로 나와 있는데

오늘 말씀에는 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성격은 물의 성격과 같다.

물을 연구하면 성령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물 축제 때, 성령을 물을 비교하여 전도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성령을 물에 비유하신 이유는)

◑1. 물은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태양계 행성에 물의 흔적을 찾는 이유 - 물만 있으면 생명체가 살 수 있으니까.

미국 항공 우주 센터에서는 매우 흥분하고 있습니다.

달에서 물 흔적을 발견했다고 좋아합니다.

또 화성에도 물 흔적이 있을 것이라고 계속 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행성에 물이 있거나/말거나 상관없지만

과학자들은 지구 바깥 행성에 물이 있는 흔적에 왜 그리 흥분하는가요?

물만 있으면 생명체가 살 수 있다는 결론 때문입니다.

물 흔적만 찾아도, 과거에 거기에 생명체가 살고 있었다고 단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휴스턴 나사에서는 달에서 식물 재배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과학적 실험을 많이 했습니다. 달과 똑같이 만들어놓고

유리관에 산소를 집어넣고 물을 주어서 상추, 오이를 자라게 하는 겁니다.

모두 잘 자라고 있습니다.

저는 휴스턴에서 살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누가 방문하시면

모시고 가서 구경시켜드리는 일을 해서 많이 가보았습니다.


▲모든 문명, 대도시가 물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물이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생명의 근원으로 에덴동산에 4개의 물줄기가 흐르게 하심으로써

인간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신 것을 보게 됩니다.


인간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물을 생명의 근원으로 해서

물이 있는 곳에서 서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 모든 나라의 공통점으로 도시는 강을 끼고 발전했습니다.


한강이 있기 때문에 서울이 있는 것입니다. 한강이 생명줄인 것입니다.

대동강이 있기 때문에 평양이 있는 것입니다.

파리에는 센Seine 강이 있고, 뉴욕에는 허드슨 강이 있습니다.

세계가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동아프리카 몇 나라가 나일 강에 의존해서 삽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20km 밖에 되지 않는데, 나일 강의 물줄기는 6,690km입니다.

나일 강줄기 하나 때문에, 수많은 나라가 살아가는 겁니다.


여러분, 서유럽도 라인 강이 있어서 그렇게 풍요롭게 되었죠?

알프스에서 발원해서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모두다 그 물줄기 하나가 흘러가므로 문명이 발달했습니다.

이처럼 물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오늘 말씀에, 성령은 영적으로 생명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물’에 비유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성령은 물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성령 받지 못하면.. 영적으로 목말라 죽는다는 것입니다.


요4장에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소생하는 샘물이 되리라.”

‘물이 곧 생명’이라는 증거를.. 우리 자신들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기 사막이 있습니다. 백년이 가도 변화가 없습니다. 모래벌판입니다.

그러나 그 모래벌판에도 물줄기 하나만 집어넣으면 생명이 솟아납니다.

누가 가서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지 않아도

물만 들어가면 새파랗게 나무가 솟아나오고 싹이 돋아납니다.


또, 연못을 파보십시오. 물을 만들어 놓으면

누가 물고기를 잡아넣은 일이 전혀 없는데도

몇 년 만 있으면 물고기가 버글버글 합니다.

물이 있는 곳에 생명이 탄생하도록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하시고 그런 자는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렇게 예수님이 물 축제하는 날 물로 비유해서 노방전도하시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생명이 ‘배’에 들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왜 하필 ‘배 belly’를 말씀하신 것인가요?

이것은 유대 민족의 문화를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한국 사람들은 영혼의 장소를 말할 때 머리로 생각합니다.

내 영혼은 머리에 있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인도에 가보면 인도 사람들은 맨 발로 다닙니다.

처음에는 ‘신발값을 아끼려고 저렇게 맨발로 다니는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돈 많은 멋쟁이 여자들도 흙을 밟고 다닙니다.

발이 새까맣게 되고 딱딱하게 굳어도 맨발로 다닙니다.


그 사람들은 생명의 근원을 땅으로 생각하고, 영혼은 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영혼이 생명에 닿아야 된다는 믿음 때문에.. 맨발로 다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 나라 사람들은 (인간의 생명이) 배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 안에 심장과 오장육부가 다 있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가 생각하는 배에서 영원히 흘러나리라.” 말씀하신 겁니다.



(예수께서 성령을 물에 비유하신 이유는)

◑2. 물의 정화 능력 때문입니다.


물은 모든 것을 깨끗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물로 세례를 주셨는가요? 깨끗하게 하는 능력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성격은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이 물은 사람이 일부러 더럽히지만 않는다면 항상 깨끗함을 보존합니다.

폭우가 쏟아져서 장마가 져서 물이 새빨갛게 다 오염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저 산더미 같이 흘러가는 새빨간 오염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요?

그냥 내버려 두면 됩니다.


그 물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약품을 갖다 뿌리거나 아무 노력 안 해도

그냥 두면 물은 스스로 자기 몸을 깨끗하게 만듭니다.

시간만 주면 됩니다. 자가 세척이 가능한 것인 물의 성격입니다.


우리는 피곤할 때.. 물에 발만 담그고 있어도 피곤이 풀립니다.

물에 손만 담그고 있어도.. 기능 회복이 느껴집니다.

물은 자체 정화 능력 + 회복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도 똑같습니다.

더러워진 모든 것을 정화시키고 순결함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게 되면 사람이 변해버립니다.

시들시들하게 날마다 힘이 없던 사람이 성령을 받으면 힘이 있습니다.

용기가 생깁니다. 새로운 희망을 바라보는 생명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펄펄 끓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 에너지가 폭발할 만큼 강합니다.

메마른 심령, 사막의 모래밭과 같은 마음 밭일지라도

 

성령의 물줄기 하나만 지나가게 되면

그 시간부터 그곳에는 살아있는 물고기가 생기고

풀이 솟아나고, 풀이 자라게 되는.. 생명력이 있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바로 물 축제에 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줄 테니까 내게로 와서 마시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선교사들이 오지를 찾아가는데,

그곳에서 성령의 물줄기 하나만 대주면.. 사람들이 변하잖아요?

그 변화는 누구도 모르는 기쁨입니다.


요즘 언론에서 앞으로 중국이 세계 최대 강국으로 변한다는 뉴스를 자주 합니다.

정말 그럴 것 같습니다.

지금 세계가 다 불경기로 고난스러운데도

2010년 중국은 9퍼센트 경제 성장을 장담하고 있잖아요?


그러나 사실 ‘30년 전’에 제가 중국 선교하러 갔을 때는 너무 실망했었습니다.


우선 제가 찾아갔던 심양 거리에, 똥 냄새가 너무 나서 다닐 수 없을 만큼 지저분했고

여관에 들어가 보니, 담요 세탁을 너무 안 해서 도저히 들어가 잠을 잘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중국이 살아났느냐 하면, 교회가 살아나면서부터입니다.

여러분! 심양의 서탑교회 건축에 저도 공헌한 사람인데

문화 혁명 때는 그 건물을 공산당 사무실로 사용했습니다.


그 교회 오해원 담임 목사님은,

공산당들이 끌고 나와서 새끼줄로 묶고 모자를 씌웠는데

모자에 “잡귀신이다.”라고 썼습니다. 

그래서 거리에 그분을 막 끌고 다니면서 창피를 주고

교회는 공산당 사무실로 사용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바뀌었는가? 등소평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 그때부터

중국이 점차로 자유롭게 예배드리기 시작했잖아요?

그때부터 중국 경제가 살아나고 시장 경제가 도입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중국 경제와 중국의 교회가 함께 달려가고 있습니다.


랴오닝 성 종교 국장과 오해원 목사님을 제가 미국에 초대했었습니다.

미국의 교회들을 모두 보여주며 선물도 사드렸는데

랴오닝 성 종교 국장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왜 미국이 이렇게 세계 강대국이 되었는지 내가 미국 와서 알았습니다.

제가 종교국장인데도 교회 한 번도 안 나갔습니다. 이제 돌아가서 교회 나가겠습니다.”


지금 중국의 5대 종교 가운데 기독교가 가장 많습니다.

목사가 없어서 집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교인이 5천명이 넘는 곳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보다, 교회 밖에서 예배드리는 사람이 매주 더 많습니다.


저는 심양 사탑교회에서 하루 종일 5번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이 지금 얼마나 잘 삽니까? 교회와 더불어서 똑같이 성장합니다.


우리나라는 선교사 숫자와 GNP 숫자가 같습니다. (16,000)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게 다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주 확신하는 것이 있습니다.

만약 북한이 중국을 모델로 삼는다면.. 북한도 똑같아 집니다.

북한의 교회가 살아나야합니다. 그러면 북한 경제도 살아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죽은 나라를 살려내고 죽은 거리를 생명 있게 탄생시키고

죽은 사람을 일으킵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미얀마, 베트남, 방글라데시, 북한 모두

우리 대한민국과 같이 교회 천국 되고 성령의 물줄기가 들어가면.. 다 가능합니다.



◑3. 물은 '상황에 대처능력'이 있습니다.


물은 꼼짝 못하게 누가 붙들어 매는 것이 아닙니다. 늘 흐르고 변화합니다.

얼마나 적응능력이 좋은가? 추울 때는 얼어서 고체가 됩니다.

더우면 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버립니다.

땅에 물이 필요하면 내려와서 곡식을 자라게 하고,

바늘구멍도 유유히 통과하고, 막아버리면 슬그머니 넘어가 버립니다.


물이 힘을 서로 모으면.. 막을 수 없는 힘이 생겨서

그것이 떨어지는 힘으로 댐에서 전기를 일으켜 불을 밝혀줍니다.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브라질과 파라과이 국경에 있는 이타이푸 댐을

제가 구경한 적이 있는데, 거기 가서 ‘물의 힘’을 실감하며 쳐다봤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물과 같이 '상황에 대처능력'이 있어서

핍박을 가하면 얼음같이 더 딱딱해지고

수증기같이 고요하고 조용하게 역사하고

때로는 산더미 같은, 폭포수와 같은 힘을 일으키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물과 똑같습니다.

바늘구멍만 생겨도 뚫고 들어가고, 땅 속으로 들어가고

나무뿌리에 물을 대주는 것과 똑같이 심령 속으로 파고들어 생산력을 공급해줍니다.

 

물은 절대로, 상황이 어렵다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불가능하다고 .. 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물을 마시라! 장막절 마지막 하이라이트에

물 축제를 하는 이들이여! 왜 물들을 들고 서있는가?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니 영생의 물을 주겠다.”

지금 서서 노방전도하시는 겁니다.


♬빈들에 마른 풀 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의 허락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적용


▲제자들 삶의 터닝 포인트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설교도 예수님한테 직접 들었습니다.

이 지상의 최고의 복된 자리에 그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놀라운 기적들도, 자기들 눈으로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이 그들을 필요로 할 때는 다 도망갔느냐 말입니다.


나사로 부활한 것을 그들이 직접 모두 봤잖아요?

예수님도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어 돌아가셨지만

다시 살아나신 것을 그들이 직접 체험했잖아요?


하지만 모두 도망가고.. 부활 후에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흩어졌습니다.

왜 그랬는가요? 성령의 충만함을 아직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 그들은 주님의 사역을 시작했는가?

오순절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이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충분히 알고 있는 지식도,

내가 직접 체험한 확실한 사건도

성령님의 역사가 나에게 있을 때만 생명적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 다 봤어. 맞아. 살아났어! 그런데 나와는 크게 상관없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해서 자기 입으로 발표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맞습니다. 그보다 더 좋은 지식은 기독교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기적 현장을 베드로가 제일 많이 체험한 사람입니다.


바다 위를 걷는 것도 베드로가 해 봤잖아요? 그런데 왜 다 도망갑니까?

언제부터 그들은 주님의 필요를 사역했는가요? 성령 충만을 체험한 그 이후부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자 할 때는

지식 많은 사람도 크게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을 받습니다.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한 맘 충만하게 하소서

성령이여 강림하사 크신 권능 주소서 원하옵고 원하오니 충만하게 하소서

힘이 없고 연약하나 엎드려서 비오니 성령 강림하옵소서. 충만하게 하소서.♬


저는 간혹 제 자신을 심사숙고해서 돌아봅니다.

만약 제 육신의 아버지께서 나더러

“아들아, 너는 앞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라.” 하셨다든지

제 어머니께서 저더러 “너는 개척교회 많이 세워라. 참 좋은 일이다. 고생되지만 괜찮다. 해봐라.”

이렇게 저에게 시키셨다면.. 제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제가 성령 받지 않았다면 이랬을 것 같습니다.

“당신들이 하려면 하시고, 말려면 마시지..

왜 나한테 그런 고생스러운 일을 하라고 시키십니까?”


그런데 제가 이 일을 왜 하지요?

성령의 내재성이 이루어지면.. 혼신의 힘을 다해서

그 일에 몸을 바치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생수의 강이 배에서 흘러넘치는 성령의 파워로

온 세상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역사화 하는 힘이 생겨집니다.

성령님이 내재한 심령은, 간혹 열심도가 식을 수는 있어도,

결코 그 열심이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후략)                                                 ▣ 성령론          



註1)

이 ‘장막절-물 붓기’ 행사는, 성경에는 흔적이 없는 같아 보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에는 시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언제부터 이 ‘물 붓는 행사’가 시행되었는지.. 예수님 당시에도 시행되었는지

그것은 앞으로 연구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