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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5인의 미망인

LNCK 2010. 3. 25. 22:11

◈남겨진 5인의 미망인 믿음의 영웅들       계2:10   

 

스티브 세인트 선교사 간증 녹취

 

에콰도르에서 순교한 네이트 세인트 항공 선교사에게는  (1956년 짐 엘리엇과 함께) 

당시에 5살 된 스티브 세인트 (1951년생/사진) 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커서, 자기 아버지를 죽인 부족을 찾아가서 전도하는, 선교사가 된다.

 

Steve Saint의 이야기가 End of the Spear(2005)라는 책으로 나왔고,

같은 제목으로 2006년 영화로 미국에서 제작되었다. (국내에선 아직 미개봉인듯)

그가 2010년 3월 중순에 한국을 방문했다.

 

그(사진)가 cts 기독교 방송에 출연해서

자기 책에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즉 '남겨진 미망인들의 이야기'를 간증했는데,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남편들 5인이 순교로 생을 마감했다면,

이 남겨진 5명의 미망인 여인들은, 믿음의 삶을 삶으로써 자기 생을 마감했는데,

이것은 남편들의 순교에 못지않은 부르심 higher calling 이었다는 것이다.

그 자세한 간증 내용을 아래에서 녹취로 소개해 드린다.

 

 

◑1. 마저리 세인트 Marjorie Saint                      *스티브(간증자)의 어머니

 

▲그녀의 어린 시절

마저리 세인트 여사는, 항공 선교사 네이트 세인트(1923~1956)의 아내이자, 제 어머니다.

그녀는 아이다호 주 북쪽 지방의 매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에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한 때는 남의 집 뒤뜰의 차고에서, 일가족이 함께 살기도 했다.

 

어머니의 아버지는 원래 농부였는데,

경제대공황 때, 농장을 다 잃고서,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서 자기 집도 없어서,

남의 집 뒷마당 차고를 겨우 얻어서 살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반에서 최우수 학생으로 졸업했다.

(이 사실은, 어머니께서 소천하시기 얼마 전에 말씀해 주셔서 알았다.)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 간호사 교육을 받게 되었다.

 

20살이 되기 전에 선교사 헌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사 교육을 받던 때였다.

하루는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에, 선교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서

어머니는 굉장히 마음이 흥분되었다고 한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학교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학교가 다 마치기도 전에, 교회로 달려갔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때까지, 실제 선교사를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흥분되었던 것이다.

 

그날 밤, 강사로 오신 여자 선교사는, 어머니가 평소에 꿈꿔 오던

해외 선교사로서의 삶과 사역에 대해 자세히 설교하셨다.

 

여선교사는, 설교를 끝낸 후에,

그 교회 회중들을 향해서, 선교사로 자원할 사람을 초청했다.

“오늘 저녁 여러분 중에, 하나님께서 선교사로 부르시는 분이 있을 겁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느껴진다면,

이 설교단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어머니는, 그날 밤 교회에서, 하나님의 선교사로서 부르심을 느꼈고,

그 초청을 들었을 때, 가슴이 몹시 뛰었다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교회당 2층 발코니에 앉아 있었는데,

2층 계단을 내려와 1층 설교단 앞으로, 거의 달려가다시피 할 정도로 빨리 나아가서

설교단 앞에서 무릎을 꿇고서, 이렇게 헌신의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하나님,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저는 당신의 계획대로 살길 소원합니다.”

 

어머니는 82세 때,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2004년 암으로 소천)

제게 이 이야기를 해 주시면서, 눈물을 터뜨리셨고,

어머니의 눈물은 마치 소녀 같은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이내 미소를 지으시면서, 연이어서 말씀하셨다.

“아들아, 나는 그때, 그 대가가 어떤 것인지 (얼마나 어려운 것이지).. 정말 몰랐단다.

그러나 지금 처음부터 내가 삶을 다시 시작한다 하더라도

나는 기꺼이 내 삶을 또 주님께 바쳤을 거야!”

 

아들인 저는, 어머니가 치르신 그 대가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하시고 얼마 안 있어,

남미 서부해안 에콰도르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선교사로 사셨다.

 

남편인 네이트 세인트는, 남미 아마존 정글의 선교사와 원주민들에게

비행기를 통해 물품을 전달하는 ‘항공 선교사’였다.

 

정글은 도로가 없기 때문에, 비행기 말고는, 다른 교통수단이 거의 없었다.

아버지는, 물자 수송 이외에도, 선교사나 인디오 가운데, 위급한 환자가 발생하면,

경비행기로 그 환자를 후송하는 일도 하셨다.

 

어머니는 제게 말씀하시기를,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어머니 자신은, 어려서부터 ‘정글 선교사 훈련을 받으셨던 것이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아버지는, 앞서 일용직 근로자로 사셨다고 했는데,

비가 오는 날은, 당연히 일감이 없어서 쉬셨다.

 

그러자 아버지는, 자녀인 1남2녀(어머니 포함)를 데리고

마을에 가셔서, 마을구경을 시켜주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는, 어린 시절에, 비 오는 날을 좋아했고, 기다리셨다.

왜냐하면 그 날은, 아빠와 함께, 시내로 외출을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장성해서 결혼하시고,

    남미 에콰도르의 정글 가장자리 마을에서 사셨는데,

    거기는 비가 억수같이 많이 내리는 곳이었다.

    연간강수량이 1만 밀리미터나 되었으니, 정말 비가 많이 오는 곳이었는데, (한국은 연평균 1,300밀리)

 

    어머니는 그런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어린시절 추억을 갖고 계셨으니,

    어린 시절 어머니의 아빠와 비 오는 날이면 외출했던 그런 추억들도

    하나님이, 자기를 남미선교사로 부르시려고, 미리 준비시키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정글에서 첫 딸(나의 누나, 나는 둘째, 남동생이 셋째)을 출산하시고

    비가 많이 내리는 아마존 정글에서

    작은 텐트에서 1년이 넘도록 세 식구가 함께 살았는데도,

    텐트 생활하면서 그렇게 고생하시면서 사는 것도.. 좋아하셨다고 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어릴 적, 남의 집 뒷마당 차고에서 살던 때와 비슷하다면서

    남미 정글의 비 내리는 곳에서 텐트 생활을..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셨다.

    하나님이 후에 선교사로 쓰시려고, 남의 집 뒷마당 차고에서 일찍부터 훈련시키셨다는 것이다.

 

▲남편의 순교

어머니께서 그 날 밤 교회에서 선교사로 헌신했을 때,

‘어떤 대가도 기꺼이 치르겠습니다’고 말한 그 대가는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은 때에 너무 빨리 일어났다.

 

남편 네이트 세인트 항공 선교사가 매번 비행할 때마다 지나쳤던

한 부족에 대해 정보를 듣게 되었는데,

그 부족은, 아직 외부세계와 한 번도 우호적인 접촉이 없었던 원시부족이었다.

 

그 부족은 달력도 쓰지 않아서, 사람들은 자기 나이를 계산할 줄도 몰랐다.

와우다니 족(그 당시 이름은 아우카 족)은 그야말로 1956년 당시 아직 석기시대로 살고 있었다.

 

(※ 남편이 → 아버지로 바뀌더라도 같은 사람, 네이트 세인트 항공선교사, 어머니의 남편이자, 나의 아버지)

 

제 아버지 네이트 세인트 항공 선교사는, 평소에 요한계시록21:24절의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라는 말씀을 늘 암송하셨는데,

 

만약에 한 부족이라도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고, 주님이 재림하신다면,

그 새 예루살렘 성에, 만국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갈 때,

한 부족(의 왕)이 누락될 것을 늘 염려하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짐 엘리엇 등 동료 선교사들에게 말했다.

“여보게, 우리가 그 부족 사람들과 접촉을 해 봐야 할 것 같아!”

 

그런데 그 접촉은 용이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부족민들은 특히 험악했기 때문이다.

외부인이 누구든지 자기 영역에 침범하면, 그들은 창으로 무조건 찔러 죽였다.

 

아버지는, 처음에 경비행기로 마을을 선회하면서           *선회: 둥글게 도는 것 

비행기에서 바구니를 밧줄에 매어 내렸다.

그 바구니에는 선물을 담았다.

 

어느 나라든지, 어느 민족이든지, 누군가 외부인이 선물을 주면, 

그 의미는.. 적대적인 의미가 없고, 우호적인 관계를 원한다는 메시지다.

 

아버지는 비행기가 선회하도록 조종하셨고,

동승한 선교사는 바구니에 선물을 담아서, 밧줄에 매어서 마을로 내려 보냈다.

 

처음에 인디오들은, 바구니가 내려오자 다 숲 속으로 도망쳤다.

그러다가 호기심이 발동해서, 그들은 바구니로 다가와서, 선물들을 발견했다.

선물은 쇠로 된 농기구, 장신구 등이었다. (석기시대를 살던 그들은 아직 쇠를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알루미늄 솥도 내려 보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여자들은 그 솥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셔츠 같은 옷도 내려 보냈다.

 

선교사들이 비행기를 선회하며 선물을 내려 보낸 지, 세 번째 날에,

인디오들은 자기들의 선물(돼지이빨 목걸이, 애완용 새)을,

바구니에 담아서 답례로 보내주었다.

이런 답례 선물은, 선교사들에게 무척 고무적이었다.

 

그래서 다음번에 선교사들은, 부족의 강변 모래평지에 비행기를 착륙시켰다.

첫 접촉이 있었고, 이틀 후에

남자 한 명, 여자 두 명이 비행기 근처로 다가왔다.

 

이제 선교사들은, 다음 날, 더 많은 인디오들이 찾아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토요일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비행기는 기다리다가 돌아갔다.

 

그 다음날, 1956년 1월8일, 일요일 아침,

아버지는 원주민 마을 위로 비행하며 내려봤지만, 마을엔 아무도 없었다.

그날 정오 무렵에, 선교사들은 원주민 인디오들에게 모두 살해되었다.

선교사들은 장렬하게 순교했다.

 

 

    (※지금 이 간증은, 책에 소개되지 않은 선교사 아내들의 삶에 대한 간증이므로,

     순교한 남편들의 자세한 정황 설명은 생략함. 그 내용은 책에 나옴.)

 

 

▲자기 남편을 죽인 원주민들을 위해 기도하신 어머니

그 당시 아직 어렸던 저는,         *

스티브 세인트/ 당시 5세/1951년생

어머니가 종종 우시는 모습을 보고서.. 뭔가 직감했다.

 

제 어머니는 믿음의 여인이었다.

아버지가 살해당한 후에 매일 밤마다,

어머니는 2남1녀 자녀들을 불러놓고 가정예배를 드리셨으며,

그때 아버지를 끔찍하게 죽인 원주민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빼놓지 않으셨다.

그때 저는, 어머니가 정말 믿음의 영웅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저는, 남겨진 미망인들의 삶을 소개하면서

그들은 '믿음의 영웅들'이며

그들의 삶은, 남편의 순교에 못지않은, 더 고결한 부르심higher calling 

을 하나님께 받았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다들 20대 전후반의 젊은/어린 나이에

다들 어린 자녀들을 키우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남편을 잃은 슬픔을 훌륭하게 극복하고,  

더욱이 남편의 뒤를 따라 정글로 들어가서, 남편을 죽인 부족의 선교에 계속 헌신했고,

 

제 어머니도 

매일 밤마다 가정예배를 인도하시면서 

남편을 죽인 부족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으니.. 정말 믿음의 영웅들이 맞다.

(사실 이빨을 갈고, 치를 떨고, 저주해야.. 그나마 속이 좀 후련할 것 같은데...)

   동시에 어머니는, 우리가 비극이라고 여기는 그 사건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셨다... 10년 후 1966년에 재혼하셨다가 2004년 소천하셨다.

 

 

◑2. 올리브 플레밍           Olive Fleming                        *피트 플레밍(1928~1956)의 아내

 

당시 그녀는 20대 초반의, 5인 중에 가장 젊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남편 피트 플레밍과 결혼하기 위해, 미국에서 에콰도르로 건너왔다.

 

남편 피트 선교사는, 그녀가 정글에 오기 전에

키추아 말과 스페인 어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오기 전부터 많은 준비를 했고,

에콰도르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생활을 약 1년가량 지냈던 터였다.

 

그들 신혼부부는 1년 만에,

남편의 고결한 헌신(순교)을 주님께 바쳤다.

 

▲순교하기 이틀 전에 꿈을 꾸다.

(올리브가 나/스티브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올리브는, 남편 피트가 죽기 이틀 전에, 꿈속에서

남편이 온몸에 창에 찔린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잠에서 깨어나서, 남편이 순교할 것임을 짐작하였다.

(이런 꿈을 꾸고 나서, 아내 올리브는 과연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나/간증자/스티브는 무척 궁금했다.)

 

‘여보, 내가 아주 안 좋은 꿈을 꾸었거든,

그러니까 당신이 정글에는 당분간 안 가는 것이 좋겠어요!

당신이 혹시 죽을지도 몰라요!’

만약 이렇게 말하며 제지했더라면..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그렇게 말린다고, 그녀를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아내 올리브는, 전혀 남편을 제지하지 않았다.

남편 피트가, 정글에 가는 것을.. 전혀 막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은.. 꿈대로 창에 찔려 죽었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저는 여기서, 올리브 역시 믿음의 여인임을 알게 되었다.

만약에 올리브가 극구 자기 남편을 말려서,

정글에 못 가게 해서, 남편을 살렸더라면.. 아무도 그녀를 비겁하다고 욕하지 않는다.

그건 아내로서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그녀는, 모든 것을 하나님 뜻에 맡겼던 것이다.

자신의 삶이나, 남편의 삶이

모두가 하나님께 이미 드려져 있었고,

하나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가 발 벗고 나서서, 적극적으로 그 뜻을 가로막지 않았던 것이다.

저는 이것이, 대단한 믿음의 결단이라고 본다.

남편이 순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것을 자기 힘으로 막지 않았던 것이다.

 

 

◑3. 바바라 유더리안  Barbara                                   *로저 유더리안 Roger Youderian(1924~1956) 의 아내

 

그녀는 남편과 함께, 인근 슈와르 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슈와르 부족은 특이한 부족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적을 죽인 후에, 두피를 잘라내어,

그 두피 가죽을 접어서 허리에 차고 다니거나,

집에 매달아 둠으로써.. 자신의 용맹성을 과시하던 부족이었다.

 

바바라와 로저 부부는, 그러한 야만적인 부족과 함께 살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는데,

네이트 세인트 선교사가

아직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않은 부족이 있으니,

같이 복음을 전하러 가자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와오다니 부족 선교를 위해서, 이들 부부도 현지에서, 힘을 합치게 되었다.

 

 

 

얼마 전에 저는, 영화 관계 일로, 와오다니 족이 사는 정글을 방문했다.

정글을 빠져나오면서,

거기에 바바라 선교사님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는 그 집으로 달려가서 ‘바바라 이모’라고 불렀다.

그녀는 진짜 나의 이모aunt가 아니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그녀를 이모라고 불렀다.

 

그 때는 밤늦은 시각이었고, 그녀는 자고 있었다.

그렇게 밤늦게 자는 시간에서 찾아가서 문을 두드릴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친한 사이였다.

 

저는, 바바라 이모에게

나와 동행한 영화 관계자 9명을 소개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바바라 이모네 집으로, 밤늦은 시간이지만 모두가 쳐들어갔다.

 

그때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이렇게 질문했다.

“바바라 선교사님,

저는 5명의 순교자들에 관한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던 터였습니다.

그 중에도 제 삶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젊은 여인이었던 당신과 당신의 자녀들이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송두리째 바뀌어버린

모진 삶을 꿋꿋이 헤쳐 나간 것이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 친구는 이렇게 질문했다.

“실례가 될 수 있겠지만, 꼭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당신은 아직 젊은 여인이었고,

어린자녀들은 둘이나 딸려 있었고,

당신이 너무 너무 사랑했던 남편은 돌연 순교했습니다.

 

이제 남은 유품은, 남편의 시계와 신발뿐이었습니다.

그것을 쳐다보면서 당신이 하나님께 ‘왜입니까? Why?’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대답하시던가요?”

 

바바라 이모는, 그 친구를 보더니,

살짝 눈을 깜빡이며 조금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저는 하나님께 ‘왜요?’ 라고 물은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저는 이모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녀의 행복하던 인생이 졸지에 전부 다 파괴된 것 같았다.

 

그 느낌은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알고 있다.

당시 제가 5살이던 그때, 제 아버지Nate Saint가 순교한 이후에,

우리에게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었다. 절망적이었다.

 

그런데 20대의 젊은 미망인(바바라)이

부양해야 될 아이가 둘이나 딸려 있었고,

졸지에 남편은 죽었고,

그런데 하나님께 “왜입니까?” 라고 한번도 묻지 않았다니...

(그렇게 섭섭한/실망스런 마음이 한 번도 없었다는 말인가?)

 

그것은.. 그녀가 ‘믿음의 영웅’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오직 믿음으로 사는 여인에게.. 하나님께 대한 원망, 탄식은..

아예 꿈꿔보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하나님의 신비적 역사로, 그 고난을 능히 감당할 믿음을 주셨을 것이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순교로 부르심을 받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다.

 

그러나 순교에 못지않게 중요한 부르심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에 따라 매일을 순교자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이 5명의 미망인 여인들은, 남편의 순교에 못지않게

‘믿음에 따라 매일을 순교자처럼 살았던’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순교보다 더 어렵다.) 

 

당시 미국의 LIFE 잡지는,

에콰도르에서 순교한 5명의 전도유망한 청년선교사들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얼마나 큰 낭비인가?’ 라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제가 위에서 설명한 내용들은,

LIFE 잡지 같은 데는 실리지 않는다.

그래서 제Steve Saint가 이렇게 간증하게 된 것이다.  (후략)        

 

 

............... (아래부터는 편집자가 인터넷에서 조사한 내용).......................

 

 

◑4. 엘리자베스 엘리엇   Elisabeth Elliot(1926~아마 생존)                           *Jim Elliot (1927~1956)의 아내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짐 엘리엇의 휘튼 신학교 동기생이었다.

짐 엘리엇은 1952년 에콰도르에 도착했는데,

엘리자베스가 1953년 에콰도르에 따라왔고, 그들은 에콰도르에서

동료 선교사의 증인 아래 간단히 결혼식을 올렸고,

1955년에 (순교 1년전) 첫째 딸 발레리를 출산한다. 

그러니까 남편은, 만 1살된 딸과, 신혼 3년된 아내를 남기고 순교한 것이다.  

 

그녀는 남편을 죽인 인디오 아우카 부족에게 들어가서(순교한 네이트 세인트의 누나 레이첼과 함께),

2년간 선교 사역한다. 이때 아우카 부족은 복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남미 선교에 더 투신하다가, 미국으로 돌아와서 70세가 될 때까지

20권이 넘는 저술활동과 순회 강연으로 바쁘게 섬겼다.

 

엘리자베스는 다른 네 미망인들의 부탁을 받고

이들 다섯 선교사와 주변의 기록을 엮은 책 Through the gates of Splendor(영광의 문)을 펴냄으로써

전 세계에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알리고

그 책을 읽고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들이 속출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독후감 「영광의 문」

 

이 책은 Beyond the gates of Splendor 라는 제목의 저예산 다큐멘터리 영화로 2002년 제작되었다.

스티브 세인트가 주연으로 등장한다.

이번에 찍은 'End of the Spear(창끝)' 영화는 두 번째, 좀 더 영화답게 찍은 작품이다. 

 

(그녀는 1969년에 재혼해서, 남편 신학교 교수와 함께, 순회 강연에 헌신했다.

남편은 4년만에 죽었고, 또 재혼했다. 역시 새남편도 순회 강연에 동참했다.)


 

◑5. 마릴로우 맥컬리 Marilou McCully                                       *Ed McCully(1927~1956)의 아내    

 

남편 에드는 총각 때, 몸집이 거구에다가 휘튼대학교에서 스포츠 스타, 웅변가로 인기를 날렸다.

그가 짐 엘리엇과 교제하면서, 짐 엘리엇을 따라 선교에 투신하기로 하고,

휘튼을 졸업하고 다녔던 법대를 1년 마치고 중퇴한다.

그리고 선교 동원가로 순회 활동하던 중, 방문한 교회에서 아내 마릴로우를 만나게 된다.

둘은 1951년에 결혼하고, 1952년 12월에, 8개월된 아들 Stevie를 데리고, 배를 타고 에콰도르로 떠났다.

 

5명의 선교사가 아우카 부족(당시 이름, 현재는 와우다니) 선교활동을 시작한 것은

1955년 가을이었다. (1956년 1월 8일에 순교)

선교사들을 공격한 원주민은 6명의 전사와 3명의 여자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5명의 청년 선교사들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야생동물 퇴치용) 권총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항하지 않았다. 그냥 자기 목숨을 가만히 내어준 것이었다.

 

남편 에드가 죽을 때, 마릴로우는 임신 8개월이었다. 그들 사이에 세 번째 아이(Matt)였다.

그녀는 출산을 위해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선교지로 돌아와서, 6년동안, 선교사 자녀들을 돌보는 일을 했다.

그녀는 그 후에 미국으로 돌아가, 병원 사무원으로 일했으며, 2004년 암으로 소천할 때까지 재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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