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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 속을 찾아오시는 예수님 2370

LNCK 2010. 3. 24. 21:30

◈풍랑 속을 찾아오시는 예수님                      막6:45~52                 10.03.14.설교스크랩/편집



▲인생에 풍랑은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요즈음은 전 세계적으로 유난히 자연 재해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이티 지진에 이어, 다시 터진 칠레의 지진으로

성경이 경고한 말세의 재앙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는 불안함이

온 세상을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요즘 밤사이 안녕하십니까? 라는 인사가 실감나는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즈음 안녕하신가요?

오늘 여러분의 인생 항해는 순항입니까? 아니면 풍랑을 경험하고 계십니까?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풍랑으로, 내가 타고 가는 인생의 배가 흔들릴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옳겠습니까?

우리는 이 레슨을 얻기 위해, 2천 년 전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경험한 예수님의 제자들의 현장으로 돌아가 보고자 합니다.


▲예수를 잘 믿어도.. 풍랑은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이 풍랑이 당황스러웠던 더 큰 원인은

그들이 주님의 명하심을 좇아 이 바다를 지나다 만난 풍랑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뱃새다로 가게 하시고”(막6:45)


그러므로 이 풍랑은 예수님의 명을 순종함으로 인해,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만난 고난이었던 것을 잊지 마십시오.

신앙의 길, 순종의 길에도 풍랑은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자 그러면 갈릴리 바다, 그 풍랑의 레슨은 무엇입니까?


▲지리학으로 보는 갈릴리 호수 주1)



◑1. 주님은 풍랑 당하는 우리를 보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인생의 풍랑을 만날 때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생각은

“내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혼자다”라는 것입니다.


2천 년 전 예수님의 제자들도 꼭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어째서 주님은 이런 시각에 이 바다를 건너게 하시고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풍랑과 더불어 싸우고 있는데 우리를 홀로 두고 계실까?”

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어떻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보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막6:48절을 보십시오.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48


여기서 ‘보셨다’는 말은, 그냥 구경하고 계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분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제자들을 지켜보시며 기도하고 계셨다는 말입니다.


자, 당신의 제자들을 갈릴리 바다로 보내시고

예수님은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46

거기 갈릴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언덕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며

그들이 풍랑 속에서 허우적이며 벌리는 사투를 지켜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의 예수님의 제자들인 여러분과 제가

인생의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힘겹게 노를 젓고 있을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홀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켜보며 기도하고 계시는 분이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그때보다 2천년 후를 사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지금 현재에서도 나를 지켜보시는 것이 가능하냐고 물으십니다.


그러면 롬8:34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 시니라”


그렇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살아계신 예수님,

그 분은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 우편에서

당신의 자녀들/나를 위해 간구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인생의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괴롭게 노 저으며 생존의 처절한 싸움을 싸우는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내 고통을 보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왜 보고만 계실까요?

    어릴 적 우리가 여러 가지 예방주사를 맞는데, 부모는 곁에서 그 고통을 보고만 있습니다.  

    마음으로 함께 아파 하지만, 부모는 그 고통을 보면서, 기도하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그 고통을 면하게 해 주었다가는.. 사랑하는 자녀가 병에 걸려 죽거든요.

 

 

◑2. 주님은 풍랑중의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는 우리가 풍랑 속에서 벌리는 사투를 지켜보시고 기도만 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때가 찬 시각, 마침내 그는 우리 곁에 우리를 구하러 다가오십니다.


막6:48절의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예, 마침내 오셨습니다. 때는 밤 사경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밤 사경의 시작은 새벽 3시에 해당됩니다.

유대인들은 저녁 6시에서 시작하여 그 이튿날 새벽 6시까지 밤을 4등분합니다.

그래서 저녁 6시에서 9시가 제1경, 밤 9시에서 12시가 제2경,

밤12시에서 새벽 3시가 제3경, 새벽 3시에서 6시까지를 제4경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신 시각이 아마도 3경이 끝나고 4경이 시작되는

밤의 절정, 새벽 3시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밤이 끝나고 새벽이 시작되는 바로 그 결정적인 카이로스의 시각에,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그 때 오셨느냐고 저에게 묻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분의 주권적인 결정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분은 우리의 힘이 다하고

더 이상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못할 때

그래서 참으로 그분을 의지할 준비가 되어있을 때를 기다리신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종종 늦게 찾아오시는 이유 한 가지 주2)                   ※맨 아래에, 꼭 읽어보세요.



▲중요한 것은, 주님은 제자들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그가 오늘의 제자들을 버리시겠습니까? 그분의 약속을 다시 상기하십시다.


2천년 전 예수께서 제자들의 곁을 떠나 가셔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제자들은 깊은 근심에 잠겼습니다.

이제 누가 우리 곁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누가 우리와 더불어 동행하며,

누가 우리를 인생의 위기들 속에서 구할 것인가가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요13:36)

예수님의 대답이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그는 다시 구체적인 약속을 하십니다. 요14:16~18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성령님)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으리니”


그가 우리와 함께 또 우리 안에 거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다음 18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승리입니다.


    여러분, 부모는 자녀를 꼭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고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내가, 만약에 고아처럼 버려졌다고 느낀다면

    내 간절한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주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감동 영화 <투게더> 이야기   주3)



◑3. 주님이 풍랑을 그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막6:51절을 보십시오.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언제 풍랑이 그쳤습니까? 예수께서 배에 오르시는 순간,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제자들에게 계시하시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분은 배에 오르시기 직전

아직도 자신을 몰라보고 유령 보듯 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50


여기서 ‘내니’라는 말은 희랍어에 "ego eimi"라는 말로서 (영어의 I am)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 그의 신성을 나타내는 독특한 단어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야, 하나님이야>라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그를 몰라보고 그를 우리의 절망 속에 초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오시면 그가 일하시면, 이 풍랑이 그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이 밤 4경을 맞이했다 해도,

우리를 삼키려는 파도가 아무리 높다 해도,

아무리 그 거센 풍랑이 우리를 두렵게 한다 해도,

예수님의 오심을 초대하시겠습니까?


    내 풍랑 속으로 찾아오시는 예수님 그 분 자체를.. 영접하십시다.

    다른 것 바라기 이전에, 그 분 자체를 바라십시다.

    다른 것 기도하기 이전에, 그 분이 직접 내게 오시도록.. 기도로 구합시다.   


▲유대인 외과 의사의 간증 주4)


▲한신대 오영석 교수님 간증 주5)



...................................................


▲지리학으로 보는 갈릴리 호스 주1)

갈릴리 바다(호수)는 예루살렘에서 70km 북쪽으로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바다는 이스라엘 온 국토에 물을 공급하는 젖줄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이 바다의 근원은 헬몬 산입니다.


헬몬 산 남쪽 기슭 바니아스에서 발원한 지하수가

남쪽으로 흘러 갈릴리 바다로 유입되고,

이 물이 더 남쪽으로 흘러서 요단강을 만들고

이 요단강은 다시 사해로 흘러 들어갑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바다(호수)는 사해이고, 다음이 갈릴리 바다입니다.

이 바다는 예로부터 긴네렛 (긴네롯), 게네사렛, 디베랴

혹은 단순히 ‘바다’나 ‘호수’로 불리워 지기도 했습니다.


이 갈릴리는 평상시 맑고 아름다운 바다이지만

자주 폭풍이 일어 풍랑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바다에 폭풍이 잦은 이유는

갈릴리 바다와, 북쪽에 위치한 시리아와 국경을 만드는 골란 고원사이에

1,200km 정도의 급격한 표고차가 있어

북의 헬몬 산에서 부는 차가운 바람이, 데워진 갈릴리 바다의 공기와 부딪쳤을 때

갑작스런 바람과 풍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때로는 2m가 넘는 파도를 동반하는 것이어서

갈릴리 어부들이나 이 바다를 건너는 여행객들에게 큰 위협이 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이 바다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주 인생의 바다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풍랑을 묵상하는 영감의 근원이 되어 왔습니다.



주2) ▲예수님이 종종 늦게 찾아오시는 이유 한 가지 - 준비하라고.

저는 어떤 책에서 한 유망한 청년의 간증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주 믿음도 좋고 꿈도 많고, 머리도 좋은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졸업 무렵 몸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했지만 병명을 알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정확한 병명을 알았는데 근육무력증이라는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근육에 힘이 빠져서 나중엔 말라서 죽게 되는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대학을 갖 졸업한 아직 새파란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치료불가능한 병에 걸린 것입니다.

나중엔 연필 들 힘조차 없게 되고 늘 누워있는 생활이 계속되었습니다.


물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1년이 지나고 2년, 3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없었습니다. 

기도했는데도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투병생활이 기어지면서 새로운 취미가 생겼습니다.

조금이라도 기운이 날 때면 책을 읽고 신문을 읽고 스크랩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5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5년이 지나갈 무렵, 하나님은 기적적으로 그 청년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고침을 받은 지 10년이 지난 후에

그 사람은 그 캄캄했던 5년간의 세월에 대해, 간증하는 글을 이렇게 썼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불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어려운 상황을 내게 주셨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 대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그 일을 위해 준비시키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성공적인 기업경영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준비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기업을 하나님의 뜻대로 정직하게 경영할 수 있는 신앙적 준비요,

다른 하나는 다방면에서 많은 사람을 이끌어 갈 수 있는

광범위한 지식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병석에 있을 때 저에게

이 두 가지를 준비시켜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5년 동안 읽었던 책과 모든 자료들이

그 뒤 10년 동안 회사를 경영하는데 꼭 필요한 기본적인 재산이 된 것입니다.


질병도 그것이 하나님의 귀한 은혜인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은 귀한 것입니다.

질병이든, 실패든, 성공이든, 하나님이 주신 것이면 그것은 귀한 것입니다.

장애물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훌륭한 기회가 됩니다.”


이렇게 글을 끝맺고 있었습니다. 참 감동이 되지요.

이 분이 누구냐 하면 이랜드의 박성수 사장입니다.



주3) ▲감동 영화 <투게더> 이야기

‘패왕별희’의 감독으로 유명해진 첸 카이커 감독이 제작한

‘투게더’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정말 제대로 골랐더군요.

시종일관 진한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참부모란, 참스승이란 이런 모습이로구나, 하는 것을 잘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우스꽝스런 모습의 아버지 리우청의 모습이 계속 제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시장에서 일하는 아버지, 어색한 구식양복, 어울리지 않는 원색 와이셔츠에,

전혀 아닌 빨간 모자를 쓴 아버지,

아들 입장에서 보면 조금은 창피한 ‘촌뜨기’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 푼도 쓰지 않는 아버지지만,

아들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바칩니다.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 신동이란 말을 듣고 자란 아들 ‘샤오천’의 장밋빛 미래를 위해

아버지는 그야말로 ‘전력투구’합니다.


아들이 훌륭한 교수의 가르침을 받도록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합니다.

아들의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서라면 자신은 바보가 되어도 좋은 아버지입니다.

아들에게 입히기 위해 직접 뜨개질을 하는 아버지입니다.

아들의 오디션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까봐 공연장에조차 나가지 않는 아버지입니다.

결국 아들의 성공을 위해 아들을 떠나가는 아버지입니다.


중요한 무대를 앞둔 어느 날, 지도교수는 바이올린 연주가 잘 안 된다는 소년에게

“네 연주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처음 자신을 찾아왔을 때,

‘꼭 제자로 삼아 달라’고 신신당부하면서 밝힌 소년의

출생내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느 추운 겨울, 북경 역을 지나던 아버지 리우청은

바이올린과 함께 한쪽 구석에 누워있던 갓난아기 샤오천을 발견합니다.

착해빠진 아버지는, 추위와 배고픔에 자지러질듯 울어대는 아기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하늘이 준 인연으로 여기고 아들로 받아들입니다.


추위와 굶주림에 얼어 죽어가던 아기, 생모로부터 버림받은 아기,

세상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북경 역에 누워있던 아기를 끌어안고,

그 아기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삶은 완전히 포기하는 아버지 리우청의 모습에서

저는 하나님 자비의 한 자락을 느꼈습니다.   <국>



주4) ▲유대인 외과 의사의 간증 

독일의 히틀러가 광기를 부리던 시절

저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있던 유대인 외과 의사가 있었습니다.

모든 수인들이 절망 속에 삶을 포기하고 있던 때에

그는 혼자 조용히 있을 때면 노래 한곡을 늘 읊조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마아민, Ani ma'amin>이라는 노래였습니다.

<아니 마아민> “나는 믿는다”는 뜻입니다.


이 노래 가사의 전문은 이렇습니다.

“나는 믿네. 메시아의 오심을 온전히 믿네.

그의 오심이 더딜지라도. 나는 날마다 그를 기다리네.”


그는 이 노래를 부르며 매일 아침 그가 숨겨둔 유리 조각으로

피가 나도록 면도를 하며 새 날을 맞이했습니다.

수용소 간수들이 가스실로 보낼 사람들을 선택할 때마다

그들은 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이 친구를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대개 가스실로 보내지는 우선순위는 이미 삶을 포기해 버린 이들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스실 후보에서 제외될 때마다 그는 이 노래를 나지막하게 부릅니다.

<나는 믿네, 아니 마아민!>


전쟁은 끝났고 그는 생존자가 되어 수용소를 나가

스페인에서 병원을 차리고 개업의가 됩니다.

해마다 그는 유월절이 되면 이 노래를 다시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후 그는 이 노래 가사를 조금씩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믿네. 메시아의 오심을 온전히 믿네.

그의 오심은 확실하지만 사람들이 성급하기만 하다네.”



주5) ▲한신대 오영석 교수님의 간증 

한신대 신학과 교수님 중에 오영석 교수님이 있습니다.

원래 그 분이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는데

너무 가난해서 다른 친구들은 다 중학교에 가는데

자기는 중학교도 못가고, 날마다 풀이나 베러 다니고

지게 지고 나무나 하러 다녔습니다.


하루는 자기 신세가 하도 처량해서, 나무하러 갔다 오면서 이런 기도를 했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도 중학교에 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때 마음에 이런 감동이 왔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전상서를 올려라."


이 학생이 그 감동을 받고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를 써서 봉투에 "하나님 아버지 전상서" 라고 쓰고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우체부가 우편물 분리를 하는데 주소도 없이

"하나님 아버지 전상서"라고 써있는 편지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지를 몰라서 망설이다가

'그래 하나님 아버지를 좋아하는 사람은 목사밖에 없으니까 목사한테 갖다 주자'

해서 그때 당시에 해남읍 교회에 계시던 이준묵 목사님께 갖다 드렸습니다.


그 목사님이 편지를 읽고 감동을 받아서, 그 소년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불러다가 그 목사님이 운영하는 고아원에 데리고 와서

중학교, 고등학교 공부를 시켰습니다.

한신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계속해서 한신대학을 졸업하고

나중에는 유학을 가려고 유학 준비를 하는데

나라에서 어떻게 조치를 취했는지 여권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도 그럴 것이 이 분이 유신 정권 때 유신 반대 데모를 하다가

요주의 인물로 찍혔거든요. 아무리 여권 신청을 해도 여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유신시대 때 가장 데모를 많이 했던 학교가 고려대와 한국신학대학이었습니다.


그래서 갈 길이 막막해서 유학 가는 것을 잠시 접어두고

경기도 어느 시골에 있는 교회에 가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교회 근처에 있는 골프장에 경찰 제2국장이 골프를 치러 왔습니다.


그래서 경찰 국장과 친분이 있는 그 교회 장로님이 경찰국장에게 가서

"우리 전도사가 외국 유학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여권이 안 나와서 유학을 못가고 있으니

여권 좀 나오게 해 주십시오." 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경찰 국장이 장로님의 부탁을 받고 여권을 받게 해주려고 알아봤더니

요주의 인물로 붉은 줄이 쳐 있더랍니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장로님에게 전화를 해서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아예 갈 생각하지 말라고 하십시오." 그렇게 전했습니다.


실망한 이 분(오영석 교수)이, 어느 날 수유리 언덕을 넘어오는데

동쪽에서 빛이 비취는데, 너무 찬란하게 비쳐서 눈을 뜰 수 없었습니다.

그때 마침 성령의 감동이 오더랍니다.

 

그래서 눈밭에 엎드리고는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오 주님, 내 길을 열어주시옵소서. 이 밝은 햇살같이 내 앞길도 밝아지게 하옵소서."

하고 눈물 뿌려 기도했답니다.


그날 밤 잠을 자면서 꿈을 꾸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지프차를 타고 와서는

문을 열고 "영석군 나와" 하더니

지프차를 타고 중앙정보부로 데리고 들어가더랍니다.

들어가면서 철커덩 하고 문이 닫히는데,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진짜로 중앙정보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오영석씨입니까?" "예, 그런데요?"

"빨리 와서 여권 받아 가시오."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그분이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서

교수 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그 분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요주의 인물에서 해제되고 여권이 나왔는지

아무도 모른답니다.


이 얘기는 한신대 교수님들이 신입생 채플시간에 꼭 들려주시는 얘기입니다.

어떻게 해 볼 수 없을 때, 사방팔방이 다 막혀 있을 때,

방법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이 단락, 펀 글                                                        ▣ 크리스천 삶(리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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