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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는 최후의 승리 2375

LNCK 2010. 3. 27. 15:32

◈십자가는 최후의 승리                      요11:45~47                     10.03.19. 인터넷설교 녹취

 

 

◑저주받는 자 같으나 축복의 사람이요


▲1. 악한 세력이 처음에는 승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여러분, <자기가 살기 위하여 남을 죽이려는 세력들>,

그들은 엄청난 세속적인 조직의 힘으로 밀고 들어오기 때문에

<남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을 죽이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끊임없이 패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도바울은 전도여행을 하면서 곳곳에서

대적자들에게 쫓겨서 도망 다녀야 했고,

어느 한 곳에서도 승리자로서

당당히 설 수 없었습니다.


바울사도는 잠시 동안 승리하는 것 같았어도

곧바로 박해가 일어났고,

살기등등한 대적자들에게 의해

끝없이 쫓겨다니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공의회의 결의대로 붙잡혀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며

“당신이 그리스도이거든 거리서 내려오라!” 하면서 침을 뱉을 때에..

예수님이 십자가의 저주 속에 죽으시고 무덤에 묻혀버렸을 때에,

정의의 빛은 꺼지고, 불의와 거짓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예수님의 대적자들은 축배를 들며

“우리가 이겼다” 하고 소리 지르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의 뜻 때문에 <남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이 죽으려는> 예수님은,

자기들의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자기를 살리기 위하여 남을 죽이는 자들>의 손에

허무하게 굴복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정의를 따르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누가 주님을 따르겠습니까?


이기주의자들이 승리하고,

힘을 가진 자들이 득세하고,

폭력을 쓰는 자들에게 운명이 손을 들어준다면,

누가 하나님 편에 서고자 하겠습니까?


▲2. 결국은 십자가가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명백히 거짓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십자가의 저주가 하나님의 신비요, 최종적인 승리라는 사실은,

틀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놀라운 뜻이

바로 거기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죄에 빠진 인류의 구속이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저주의 십자가는 축복의 근원이 되었고,

패배의 장소는,

원수를 무너뜨리는 최후 승리의 장소로 바뀌었습니다.


지는 것 같으나.. 이기었고,

죽는 것 같으나.. 살아나셨고,

끝나는 것 같으나.. 거기가 바로 새 창조의 시작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써..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백성들이 구원을 받았고,

거기에서 흘러나온 보혈의 피는

오늘도 세계 도처에 흘러

저주 받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은 대적자들을 통해서도, 그 뜻을 실현해 나가십니다.

대적자들이 아무리 훌륭한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뭉쳐서 조직적인 노력을 경주하여

모든 세속의 권한으로 대적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오히려 그 모든 대적자들을 사용하셔서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더 빨리 성취하여 나가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깊이 체험한 아우구스투스 톱 레이디는 이런 찬송을 지었습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내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찬503장 2절)


▲4.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예

그는 하나님의 비전을 이 땅위에 실현하며,

흑인과 백인이 서로 함께 손을 잡고

하나 되어 사는 새 세상을 이 땅위에 오게 하고,

흑인과 백인들 사이의 인종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죽음에 내어주고자 했습니다.


모세가 느보 산에서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위안을 받았듯이,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자기는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비전을 이 땅 위에 실현하기 위해 힘쓰지만

자신은 가나안 땅에는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언 바로 그 다음날에 저격당하였습니다.

그의 비전은 사라지고, 그의 꿈은 아무 열매 없이 끝나는 듯이 보였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 당했을 때,

이기주의자들이 승리하고,

하나님의 계획은.. 이 땅 위에서 사라져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미국 사회의 변화는 너무나도 놀라운 것입니다.

만약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오늘날 다시 살아나서

흑인과 백인이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가를 본다면,

그마저도 크게 놀랄 정도입니다.


▲5. 누가 최후의 승리자일까요?

자기들이 살기 위하여 남을 죽이는 자’들은

‘결국 남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가 죽는 자’들을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저주받은 자 같으나, 최후에 승리자였습니다.


여러분, 십자가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결국 하나님은 ‘남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가 죽는 자’들을

다시 살려 주실 것입니다. 결국 승리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 살고자 하는 자                       10.03.12.인터넷설교 녹취


▲1. 자기는 죽고, 남을 살리고자 했던 허준

여러 해 전에, TV드라마 중에서 <허준>이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엄청난 도전과 위기에도 좌절하지 않고,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뜻을 이루어가는 허준의 입지전적인 모습이

당시 IMF의 경제위기와 좌절을 경험하던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한 정서적인 공감을 인정하면서도,

이 드라마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교훈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은 죽음 앞에도 굴하지 않고 도전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목회자는, 이 드라마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한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허준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이 세상의 이야기(일반은총)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빛(신성)이 스며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가르치시기를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또는 ‘한 알의 겨자씨가 심겨지면, 싹이 나고 자라서 큰 나무가 된다.’

이렇게 세상의 이야기들 속에서도, 십자가의 진리를 발견해 내시고, 가르치셨습니다.


이와 같이, 허준의 이야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빛/성경적 진리’가 숨겨져 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드라마에서 허준은, 자기가 살기 위하여 남을 죽이는

이기주의자들의 도전과 공격가운데서도

남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습니다.


▲2. 자기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이고자 했던 종교지도자들

요11:45~47절에, <자기중심적인 사람>과

하나님을 존중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극명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는 공의회는

‘한 사람 예수를, 백성을 위해 죽여서

온 민족을 망하지 않게 하는' 결의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두고서

‘대를 위해서 소를 죽이는 것’이라고 변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온 국민을 위해서, 한 사람의 목숨을 죽이는 것은

충분히 공감을 얻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동기는

자기들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지극히 본능적인 것이었습니다.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사실은 이것이 저들의 숨은 동기였습니다.


▲3. 결과

이스라엘의 운명은

공의회가 우려하던 대로

AD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서 완전히 정복당하여

성전까지도 폐허가 되어버리는 운명을 맞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대로 살려두면,

그렇게 당할 것이라고 우려했으나, (그래서 죽였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도

그런 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노력하고, 지혜를 다하고,

자기를 지킨다고 발버둥 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작정하시면,

그런 운명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4. 자기가 살고자 남을 죽이는 자는, 죽고..

자기를 살리기 위하여 희생양을 찾는 자들은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도전해 옵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태어나셨을 때에

헤롯 왕이 자기 군대를 동원하여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습니다.


아기 예수는, 아무런 정치적 배경도 없고, 군대도 없고,

지켜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반면에 헤롯은, 강력한 힘을 소유한 정치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힘을 다 모아, 아기 예수를 살해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헤롯의 모든 권력과 지혜와 방법으로도

하나님의 계획을 깨뜨릴 수는 없었습니다.


▲5. 죽고자 하는 자는 삽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은

인간이 어떤 노력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고자 하면,

많은 열매를 맺는 기적을 일으킬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삽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습니다.


이번 사순절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내가 죽고자 하는 절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죽고자 하는 자를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을

이번 사순절과 부활절에

우리가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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