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보 장치 재점검 사56:10, 겔9:4 편집자 묵상 글
▲파수꾼이 있습니까?
한 공동체에 어떤 재난이 닥치는 것은.. 파수꾼이 잠자고 있거나
아니면 파수꾼이 깨어있어도.. 그 경고에 주의하지 않거나
최악의 경우는, 아예 파수꾼이 없는/세워져 있지 않는 경우입니다.
세상에 ‘우연’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은
신앙적 관점에서 볼 때는.. 거의 없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어야.. 떨어져 죽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재난이 생기기 전에
반드시 ‘경고’하십니다.
문제는 파수꾼들이 깨어있어서, 경고의 나팔을 충실히 불어야 하며,
또한 사람들은 그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일이 아니라서?
어떤 재난이 생겨도..
나와 내 가족에 관련된 일이 아니면, 내 일이 아니라서
혹시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명자’는 아닙니다.
사명자(그 중에 특히 파수꾼/선지자)는
공동체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자기 일로 여깁니다.
그 일로 인해서.. 자기가 먼저 회개합니다.
자기가 경고의 나팔을 부는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죄부터!
경고의 나팔을 미리 불어야 할 사람이, 나팔을 미리 불지 못했거든요.
(하나님은 그 피값을, 그 파수꾼에게서 먼저 찾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사명자는
그 일이 더 크게 번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경고는, 1차에 알아듣지 않으면, 2차, 3차로 계속 번지거든요.
▲이 글의 주제는, 나에게/내가 속한 공동체에 경고 장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경고 장치/파수꾼이 없으면..
아무도 경고의 나팔을 불지 않을 것이고,
그 결과 부지불식간에 재앙이 닥쳐도.. 아무도 대처하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어찌 24시간, 365일을 계속 깨어 있을 수만 있겠습니까?
모두가 그렇게 자지 않고, 계속 경계만 하고 산다면.. 다 정신병에 걸리겠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편안하게 살더라도, 파수꾼은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계의 사명을 가진 자들은.. 반드시 늘 깨어 있다가,
위기의 때가 닥칠 때, 사전에,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이사야 시대의 암흑기
이사야 시대에 주의 종들이 ‘벙어리 개’가 되어서
하나님 말씀, 경고의 음성을 제대로 외치지 못할 때
이스라엘 사회에 암흑기가 찾아왔습니다.
이 파수꾼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사56:10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할 당시에,
영적으로 민감하게 깨어있었던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나팔을 불어야 할 때, 짖어야 할 때..
사명자들이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예레미야도 마찬가지
에스겔 선지자가 파수꾼의 사명을 받은 것은
겔3장과 33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경우에는 ‘살구나무’입니다.
야훼께서 예레미야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시자,
그는 ‘살구나무’ 가지가 보인다고 대답합니다. 렘1:11~12
이 살구나무는 특별한 메시지를 띠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살구는 ‘깨어 지키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선지자 예레미야의 사명 역시, 하나님께 위임 받은 바
‘깨어 지키는’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살구나무 환상을 본 즉시로,
경고의 환상을 보고 예언합니다.
그것은 끓는 가마솥 환상, 재앙이 닥칠 것이었습니다. 렘1:13~16
이사야-예레미야-에스겔의 경우에서 보듯이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파수꾼’을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당신의 ‘대언자’代言者로 세우십니다.
이 글의 주제는, 내 개인적으로,
우리 가정에서, 우리 공동체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파수군, 대언자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도 하나님은 ‘예언의 은사’를, 성령의 은사 중의 하나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말(예언,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리 경고/예언 없이, 행하지 않으십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실 때에도.. 아브라함을 통해 경고하셨고,
니느웨 성을 멸망시키려 하실 때에도.. 요나를 보내 경고하셨고,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려 하실 때에도..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을 통해 경고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이 미리 알리지 않고는 행하지 않으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나에게
또한 내가 속한 공동체에
어떤 ‘영적 경보 장치’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언자가 예언하기를 싫어하고,
(그러나 하나님은 그 피값을 반드시, 그 파수꾼/예언자에게서 찾으십니다.)
백성들이 그 예언을 듣기 싫어하고
(그 뒤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재앙이 따라옵니다.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거든요.)
하나님의 메시지를 무시했다면.. 그러면 완전 파국인 셈이지요.
▲죄를 당당히 지적함으로써, 선지자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데...
파수꾼은 사람이 꽃밭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못 들어가게 <경계>하는 사람입니다.
파수꾼은 일이 터지기 <전에>, 미리 <경계>의 나팔을 부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밭에 들어간 <후에>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을 때에는,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이 모두 그렇게 했습니다.
예루살렘이 망하기 전에는.. 강력하게 경고를 선포했지만,
망하고 난 후에는..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일이 터지기 전에는..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다가
일이 터지고 나면.. 그때 비로소 회개하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외가 있겠지만, 원리는 이렇습니다. 경고는 사전에, 위로는 사후에!)
▲가정에서 보통, 남편은 제사장, 아내는 파수꾼
하나님은, 가정에서 아버지의 손(안수)에 축복권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아내와 자녀를 축복할 때, 그것이 온전히 온 가정에 임할 것입니다.
반면에 아내의 기도는
온 가정을 늘 지켜 주는 파수꾼이며,
위기 때 가정을 살리는 비상구입니다.
▲마치는 말
하나님은, 지금 타락한 세상을 중보하며 울며 탄식하는 자를 찾고 계시는데, 겔9:4
지금 내가 울며 탄식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내 일이 아니라고 무관심한 것은..
어쩌면 나 역시, 타락한 세상에 동화되어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겔9:6 참조
오늘 우리는, 어떤 재앙을 만나게 될 때
‘영적 경보 장치’가 제대로 되어 있나를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미리 알리시고’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하나님께 ‘대언자, 예언자의 사명’을 받은 사람들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기 사명에 충실해야 하겠습니다.
예언이 자기에게 임했는데도, 예언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피값을 그에게서 먼저 찾으시니까요.
파수꾼이 파수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쟁할 때에도,
상대방의 경보 장치(레이더 등)를, 제일 먼저 파괴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영적 전쟁에 있어서도,
이런 ‘경보 장치’에 대해 특별히, 만반의 대비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관련글 나는 참된 파수꾼인가?
.................................................. 더 읽으실 분 ............................................
◑자기를 지켜줄 파수꾼을 세운 랍비
어느 유대교 랍비가 있었습니다.
그 랍비는 매일 저녁마다 마을을 둘러보면서
그날에 마을에 무슨 일이 생겼나 알아보곤 하였습니다.
그 마을에 또한 한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많은 땅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부자는 파수꾼을 고용해서, 매일 저녁 자기의 땅을 둘러보게 하였습니다.
어느 날 이 랍비가 마을을 둘러보는데,
부자가 고용한 파수꾼을 만났습니다.
랍비와 파수꾼 두 사람은, 함께 걸으면서 마을을 둘러봅니다.
먼저 랍비가 파수꾼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일하오?"
"나는 마을 부자를 위해 일합니다. 매일 저녁 그의 땅을 둘러봅니다."
이제는 반대로 파수꾼이 랍비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일하오?"
랍비는 머릿속으로 만군의 야훼 하나님을 위한다는 말이 생각나는데
그 말이 쉽게 입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파수꾼의 질문을 받고 보니
‘정말 내가 하나님을 위해 일하나..?’ 의심도 되고 자책도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참 망설이다가 랍비가 말합니다.
"내가 지금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말하기가 망설여지는군요. 죄송합니다.
사실 저는 마을의 랍비입니다."
두 사람은 침묵 가운데, 한참 걸어갑니다.
랍비가 다시 입을 엽니다.
"파수꾼이여, 내일부터 나를 도와주지 않겠어요?"
"물론이죠. 어떤 일을 하면 되죠?"
"단 한 가지 일만 하시면 됩니다.
그저 내가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지,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를 늘 일깨워 주세요. 늘 새삼 생각나게만 해주면 됩니다."
랍비는 그 마을의 영적 파수꾼입니다.
그런데 이 랍비는, 그 마을의 참 파수꾼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위한 파수꾼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