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에 공동체가 살게 하소서 행27:13~25 -10.04.18.설교스크랩, 출처-
천안함 사태로 온 국민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 크리스천이라면, 이러한 때 조국공동체에 힘이 되어져야 합니다.
성경에서.. 배와 관련된 사건을 살펴보다가.. 본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유라굴로 태풍으로 276명이 탄 배가 좌초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바울 한 사람이 “안심해라!”며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그리고 결국 바울 한 사람 때문에 함께
배에 있던(공동체) 사람들 모두 살아났습니다.
▲1. 내가 공동체를 안심시키는.. 한 사람이 됩시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안심해라” 라고 외칠 수 있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합니다.
주1) ‘조국이여 안심하라’고 외친 김용기 장로
본래 가나안 농군학교는 일제 강점기인 1935년부터
김용기 장로님께서 농민 운동과 복민 이념을 기초로
조국 광복과 그 이후의 복된 조국의 미래를 꿈꾸며 시작하신 운동이었습니다.
그분의 일생의 모토는 “한손에 성경, 한손에 괭이를!”이었습니다.
그는 용인, 광주, 원주 등에서 시작하여 조국 방방곡곡에
메마른 황무지를 개간하여 가나안의 이상촌을 건설하여
복된 민족을 일으켜 세우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는 나라와 민족이 어려울 때마다 산 중턱에 있는 기도실에 들어가
민족을 위해 기도하시던 중보 기도자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 기도실 입구에 무엇이라고 씌어있는지 아십니까?
“조국이여, 안심하라”이었습니다.
김용기 장로님이 ‘조국이여 안심하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깊은 기도 속에서, 어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래서 조국은 망하지 않고, 세계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나라가 될 것을.. 장로님은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조국이여, 안심하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공동체가 회복되어지고 그 공동체가 복을 받게 된다면
나는 진짜 크리스천일 것입니다.
나 때문에 공동체가 살아나는 그런 크리스천 되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렘5:1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한) 사람a man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겔22:30
▲2.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한 사람이, 전체 공동체를 살립니다.
그렇다면 공동체를 살리는 진짜 크리스천은 어떤 사람인가요?
하나님 말씀을 최우선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공동체를 살리는 크리스천입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을 때
바울은 확신이 섰습니다. 행27:23~25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바울은 하나님의 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살릴 수 있는 최고의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의 배와 같이, 죽음을 앞둔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만 있다면.. 그 공동체는 소망이 있는 줄 믿습니다.
이런 소망을 줄 수 있는 성도가 진짜 그리스도인입니다.
또한 자기 사명을 아는 사람이 공동체를 살리는 크리스천입니다.
▲3. 사명자는, 사명을 완수하기 전에는.. 죽지 않습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24절)라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대해 바울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는다.”
바울은 자신이 결국은 가이사 앞에 서야 하는 사명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하여 로마를 복음화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이사 앞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복음을 위해서 자기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는 한
자기는 죽지 아니할 것이라는 것이요
동시에 배(공동체) 안의 모든 사람들도 죽지 아니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런 크리스천이 속해있는 공동체는
그 사람으로 인하여.. 옆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나게 될 것이고,
그가 속한 공동체 전체가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관련글 보기 : 위와 비슷한 내용의 더 자세한 설교
▲그 외 관련글
경보 장치 재점검 예수님은 성을 보시고 우셨다 하나님식 문제 해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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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글 스크랩 : 근거 없는 '긍정적인 사고'는 안 돼! -출처-
▲분명 부정적인 말과 수근거림은 모든 종류의 공동체에 있어서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그렇기에 근거 없는 부정적인 생각과 수근거림은
엄격히 경계하는 것이 매우 마땅하다.
그러나 때로는 '부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말과 생각이
매우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바로 실제 상황이 부정적일 때이다.
이럴 때일수록 한시라도 빨리 실제 상황을
정확하고 냉정하게 대면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그에 따른 정확한 판단을 근거로 신속한 대책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오!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라고 생각한다.
▲크리스천의 긍정적인 사고와 말의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세상 사람들의 마술적이고 자기 최면적인 '긍정적인 사고'와는 달리
참된 성도들의 긍정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며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와 자비에 있다.
그렇기에 온 세상이 대적하여 일어나는 듯한 상황에서라도
참된 성도들은 초연할 수 있는 것이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시27:3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셀라)" 시46:3
이 절대적으로 확실한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23:4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시46:5
즉,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우리 가운데 임재하실 때이다.
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가?
하나님께서 우리 중에 거하시는가?
아...!
슬픈 일이다!
이 질문에 대해 우리가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단 말인가!
▲근거 없는 긍정적 사고
두려운 현실들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하면
사람들은 천연덕스럽게 반문한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나도 천연덕스럽게 반문하고 싶다.
‘주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지.. 어떻게 그토록 확신하십니까?’
슬프다...!
지금이야말로 부정적인 현실을
냉정하게 대면하고 인식해야 할 때가 아닌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 앞에서
우리 스스로의 진정한 상태를 정직하게 보고 있는가?
우리의 죄악들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지 아니한가?
이 죄악들 가운데 어떻게 우리가 감히 하나님께 얼굴을 들 수 있을까!
우리는 주의 길을 배반했으며
복음의 능력을 교묘히 부인하면서
세상과 타협해 온 것이 아닌가?
아! 슬프다!
여기에 대해 우리가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가?
우리 가운데 이토록 큰 죄가 있으니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겠는가?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시66:18
아!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자신에 대한 진실을 정직하게 인식하려고 하기는커녕
오히려 스스로 비참하고 벌거벗었다는 진실을 부인하고
그저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아 있다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죽은 자로다" 계3:1
"네가 이르기를, 나는 부자라. 재산을 불렸으니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가련한 것과 비참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도다." 계3:17
▲지금은 근거 없는 ‘긍정적 판단’을 버릴 때!
아! 우리가 이제라도 자신의 벌거벗음을 인식하고
누더기 같은 ‘자기 의義’를 내어버리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분께로 속히 달려가야 하지 않겠는가?
오! 진실을 바라보자!
이것이 단지 '부정적인' 수근거림이나 불평불만인지
아니면 우리가 이제 대면해야 할 냉정한 현실인지
냉철하게 대면하고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자!
그리고 신속하게 재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잠시 우리를 치셨으나 불쌍히 여기사 치유해 주실 유일하신 분
곧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우리 하나님께로 겸손히 나아가자!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찌니라" 호14:2~3
슬프다!
나는 언제까지 이 신물 나는 자기 최면을 계속할 것인가?
우리는 언제까지 이 신물 나는 자기 최면을 계속할 것인가?
오! 하나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선지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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